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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4 10:14
[한국사] 고구려의 역산은 과연 황하 갈석산인가? (추적)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814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역산이 위치 미상의 지명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저는 당 태종 2차 원정 당시 오호도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고구려군과 싸운 장소인 역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易山이 曷山이고이 曷山이 碣石山인 것을 파악하였습니다 당 시대를 다룬 사서 기록에서 고구려의 경계로 언급된 산은 갈산(은 역산)과 갈석산이 유이합니다

가. 사실 정보

1. 삼국사기(고려, 1145 년) 고구려본기 보장왕 7년(서기 648년) 기사 : 易山

夏四月 烏胡鎭將古神感 將兵浮海來擊 遇我步騎五千 戰於易山 破之 其夜 我軍萬餘人 襲神感舡 神感伏發 乃敗

ㅡ 오호도의 오호진을 지키는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역산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2. 자치통감 주(남송, 호삼성, 1285 년)  : 易山 = 曷山

烏胡鎮將古神感 將兵浮海擊高麗,遇高麗步騎五千,戰於易山,破之。〔「易山」,新書作「曷山」。將,即亮翻。麗,力知翻。騎,奇奇翻。〕

ㅡ 오호도의 오호진을 지키는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역산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ㅡ 역산은 갈산(曷山)

3. 신당서(新唐書, 북송, 1044~1060) :  曷山

二十二年,詔右武衛大將軍薛萬徹為青丘道行軍大總管,右衛將軍裴行方副之,自海道入。部將古神感與虜戰曷山,虜潰;虜乘暝襲我舟,伏兵破之。

ㅡ 오호도의 오호진을 지키는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갈산(曷山)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ㅡ 갈산은 역산

4.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청초 한족 학자 고조우 저, 1659~1678) : 曷山 = 易山 = 在高麗界

鎮將古神感浮海擊高麗,破之於曷山。曷山在高麗界,或作易山。

ㅡ 오호도의 오호진을 지키는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갈산(曷山)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ㅡ 갈산은 역산으로 고구려 경계에 있다

5. 통전(通典, 당나라 재상 두우 편찬, 776년부터 착수, 30여 년에 걸쳐 초고 완성, 이후에도 계속 보필) : 碣石在今髙麗舊界

<通典卷一百七十八>

盧龍
〔 漢肥如縣有碣石山碣然而立在海旁故名之晉太康地志同秦築長城所起自碣石在今髙麗舊界非此碣石也

① 노룡은 한 비여현으로 갈석산(碣石 - )이 있다.

ㅡ 해석 1안 : 진(晉) 태강지리기에서 이르기(同)를 진(秦)이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시작된다 했는데 지금 고구려 옛 경계에 있으며 이 갈석산이 아니다
ㅡ 해석 2안 : 진(晉) 태강지리기에서 이르기(同)를 진(秦)이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시작된다 했는데 지금 고구려 옛 경계에 있는 것은 이 갈석산(노룡 갈석산)이 아니다

漢遼西郡故城在今郡東又有漢令支縣城臨閭闗今名臨榆闗在縣城東一百八十里盧龍塞在城西北二百里〕

③ 한 요서군 옛 성이 지금 북평군 동쪽에 있다. 또 한 영지현성이던 임여관, 지금의 임유관이 노룡현성 동쪽 180리에 있고 노룡새가 노룡현성 서북 200리에 있다.

<通典卷一百八十六 (東夷下 髙句麗)>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今騐長城東截遼水而入髙麗遺址猶存 〔 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髙麗中為左碣石 〕

① 갈석산은 한 낙랑군 수성현에 있는데 이 산에서 장성이 시작된다
② 지금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건너(끊고) 고구려로 들어가는데 (고구려에) 실제로 유적이 남아 있다

ㅡ 해석 1안 : 상서(서경)에서 말하기를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에 들어간다”라고 했는데 즉 황하가 바다에 다다른 곳에 있는 우갈석은 지금 북평군 남쪽 20여 리에 있으며 즉 고구려에 있는 갈석은 좌갈석이다
ㅡ 해석 2안 : 상서(서경)에서 말하기를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황하에 들어간다”라고 했는데 즉 황하가 바다에 다다른 곳에 있는 것은 우갈석이며 지금 북평군 남쪽 20여 리 즉 고구려에 있는 것은 좌갈석이다

6. 통전 ㅡ 당 노룡현의 위치 : 北平郡 平州

<通典卷一百七十八>

北平郡
〔東至柳城郡七百里南至海一百里西至漁陽郡三百里北至塞百八十里東南到臨榆闗一百八十里西南到馬城縣一百八十里西北到石城縣一百四十里東北到柳城郡七百里去西京四千三百二十里去東京三千五百二十里戶三千三十一口一萬三千七百七十〕

平州
〔今理盧龍縣殷時孤竹國春秋山戎肥子二國地也今盧龍縣有古孤竹城伯夷叔齊之國也戰國時屬燕秦為右北平及遼西二郡之境二漢因之晉屬遼西郡後魏亦曰遼西郡隋初置平州煬帝初州廢復置北平郡大唐因之領縣三〕

7. 상서(서경) : 夾右碣石入于河

冀州:既載壺口,治梁及岐。既修太原,至于岳陽;覃懷厎績,至于衡漳。厥土惟白壤,厥賦惟上上錯,厥田惟中中。恆、衛既從,大陸既作。島夷皮服,夾右碣石入于河。

8. 사기색은(史記索隱, 저자 司馬貞 : 679~732) 주석(태강지리지 인용)

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史記』, 「夏本紀」)

9. 진서(晉書, 648년) 지리지 평주 낙랑군(樂浪郡) 조선현(朝鮮縣)과 수성현(遂城縣)

朝鮮, 周封箕子地.
ㅡ 주가 기자를 봉한 곳이다
遂城, 秦築長城之所起
ㅡ 진(秦)이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10. 易水

易水의 발원지 易縣은 하북성 보정시 속현

11. 한서 지리지, 후한서 군국지, 진서(晉書, 648년) 지리지,위서(魏書, 북제 위수 편찬, 554~559 년) 지형지 교차

요동ㆍ낙랑 등의 군현은 북위에 의해 하북성 고죽국 지역인 평주의 영주 관할로 예속 됐다가 다시 6진의 난(六鎭之亂, 523 년)시기에 하북성 보정시 쪽으로 교치

나. 사실 정보 근거 본인의 추정 과정과 주장으로서의 추정의 확장

저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당 태종 2차 원정 기사를 다시 유심히 살펴보던 가운데에 이 2차 원정의 전장터가 1차 원정의 요택ㅡ요수ㅡ요동/안시성과 다르다는 것과 당군이 주로 수군을 이용하여 고구려로 침략하였다는 것을 새삼 다시 파악했고 이들 침략 경로와 전장터 가운데에 지난 해에 그 경로와 위치를 고찰, 입증한 바 있는 가탐 도리기 바닷길 경로 상의 오호도, 그리고 오호도에 있는 오호진의 병력과 그 부장인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고구려군과 싸운 장소인 역산에 주목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산동 등/래주에서 요동 대련으로의 직항도해가 불가능했으므로 가탐 도리기에서 도서편에 이르는 여러 시대별 전근대 해당 항로가 등/래주를 출발지로 삼아 시계방향으로 연안항해를 하는 경로였습니다

따라서 오호도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싸운 고구려의 역산은 그 가까운 곳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 우선 주해도편의 지도를 통해 오호도와 도리진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오호도는 래주 연안, 도리진은 그 북쪽의 소청하(Xiaoping river)가 남쪽으로 감싸고 바다로 흘러는 드는 리진현 연안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오호도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싸운 역산은 도리진이 있는 소청하 근처거나 그 북쪽 지역으로 황하와 소청하 사이일 것이라 추정하였습니다

한 편, 상기 <가>의 사실 자료 1~4의 기록을 통해 역산이 갈산이며, 또한 고구려의 국경지대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1) 역산은 갈산으로, 오호도/도리진과 가까운 곳
2) 고구려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당시 고구려 땅

이라는 사실이 도출되었는데
그 전까지 고구려의 서쪽 경계는 현 난하 일대일 것이라 추정해 온 차이기에 비록 사실 교차에 따라 도출된 결과라 할지라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조차 위치 미상으로 분류한 역산에 대하여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외의 자치통감, 신당서, 독사방여기요 등의 사서가 같은 사실 내용을 전하면서 역산은 갈산이며 고구려 경계ㅡ라 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1) 易山 = 曷山인데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曷山 = 碣石山일지도 모른다
2) 易山은 易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는 추가 가정을 하였습니다

상기 <가>의 사실 자료 5의 통전 기록은 비록 서로 모순된 내용을 적고 있음에도 모두 碣石이 고구려 경계에 있거나 고구려 영토에 있다고 진술함으로써 역시 <가>의 4의 독사방여기요 기록인 “曷山在高麗界,或作易山”과 상통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0) 고신감의 역산은 도리진~황하 일대 ㅡ 본인 추정
1) 고신감의 역산은 고구려 경계 근처 ㅡ 본인 추정
2) 그 역산은 갈산(曷山) ㅡ 자치통감주, 신당서, 독사방여기요
3) 그 갈산(曷山)은 고구려 국경에 있음 ㅡ 독사방여기요

A : 2)와 3)을 통해 1)의 추정이 입증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4) 갈산(曷山)은 갈석산(碣石山) ㅡ 본인 추정
5) 갈석산(碣石山)은 옛 고구려 국경에 있다 ㅡ 통전
6) 역산은 역수(이수)와 연관 ㅡ 본인 추정

B : 3)과 5)를 통해 4)의 추정이 입증가능해졌습니다

A와 B가 0)으로 되돌아와 수렴되면서 0)의 추정이 성립 가능해졌으며 6)과 연결됩니다

상기 <가>의 사실 자료를 보시면서 아래에 제가 다시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 역수(이수)는 하북성 남부 보정시 역현(이현)에 발원하여 대청하, 또는 황하(의 물줄기는 수시로 변했습니다)로 흘러든다

2) 황하는 어느 시대든 현 보정시와 (도리진이 있는 )소청하 사이에서 바다로 흘러들었다

3) 상서(서경)에서 말한 최초의 원조 갈석산은 황하 하류에 있었다

4) 오호진의 고신감은 바다를 건너 고구려 경계의 역산에서 싸웠다

5) 어느 갈석산이든 간에 고구려 국경, 고구려 땅에 있던 어느 산의 이름이 갈석이었다

저의 주장은 다음의 추론에 근거합니다

1) 사실
易山 = 曷山 

2) 추정
曷山 = 碣石山

4) 사실
易水의 발원지 易縣은 하북성 보정시 속현

5) 사실
易水는 대청하, 또는 황하로 흘러듦

6) 사실
최초의 갈석산(碣石山)은 황하 하류에 위치

7) 사실
갈산은 고구려 땅으로 그 국경에 위치

8) 사실
갈석산은 고구려 땅으로 그 국경에 위치

9) 사실 근거 추정
역산은 오호도에서 연안 항해를 하여 도달하는 곳으로 오호도와 가깝거나 최소한 도리진(소청하)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

하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역산은 황하 근처
2) 역산은 갈석산으로 불린 산
3) 당 태종 2차 원정 당시 고구려 국경은 황하 일대
4) 고구려 국경선이 당 태종 2차 원정 당시 황하 일대였던 이유는 1차 원정에서 사서 기록보다 참패하여 오히려 고구려에 땅을 빼앗겼고 그것이 주로 수군을 이용한 전략 수정을 낳았으며
5) 산동 봉래시, 산동 즉묵시, 강소 숙천시, 강소 염성 정혜사(몽롱탑) 등의 전설을 낳았다
6) 이들 지역의 전설은 고구려군의 침략으로 황하 일대에서 피란 온 피란민의 전쟁 기억이 그 지역의 산하기물 등에 투사돼 형성되었다

다. 통전의 右碣石과 左碣石 문제

통전은 상서(서경)와 태강지리지(사마정이 사기색은으로서 사기에 주석으로 인용한)를 근거로 우갈석과 좌갈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일단 상서의 갈석(원조 갈석)은 황하 하류에 있었으므로 황하의 입해 물길 위치 변화상과 당나라 두우 시기 북평군의 위치를 정확히 고증한다면 그 산의 위치가 간단히 해결될 일입니다

통전은 또한 갈석산의 위치에 대하여 모순된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① 노룡현은 한 요서군 비여현으로 갈석산이 있다
② 한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태강지리지에 이르기를) 진 장성이 시작된다
③ 황하 입구에 있는, 상서의 갈석은 우갈석이고 옛 고구려 경내에 있는 갈석은 좌갈석으로 요수 건너에 있으며 유적이 남아있다

사실 현 중국(지리적 명칭으로서)에 남아있는 갈석산, 또는 갈석산을 별칭으로 지닌 산은 다수이다


1. 원조 갈석산 : 하북성 해풍현 ~ 산동성 무체현

우선 상서에 기록된 원조 갈석, 즉 옛 황하 하류에 있던 갈석은 도배시러님이 제시해주신 기록대로

海豐縣 馬谷山,〈縣北六十里。高三里,周六七里。山半有洞廣二丈餘,深不可測。
一名大山。或以爲即古之碣石。

으로 현 허베이성(河北省) 창저우시(滄州市, 창주시)에 소속된 하이싱현에 소재하며 이곳은 산동성과 인접하므로 산동성 빈주시 무체현(빈저우시 우디현)에 걸쳐 있다.

이곳의 갈석이 바로 우공의 갈석이며 상서에 기록된 “夾右碣石入于河”의 그 갈석이다

2. 진 장성 시작점 1안으로서의 갈석산

일명 대갈석(청 함풍 5년, 1866년에 명명)으로 하북성 노룡현 ~ 창려현 ~ 무녕현에 걸쳐 있는 갈석

3. 작은 갈석산

역시 하북성 창려현 서북쪽에 있으며 일명 소갈석으로 몽둥이를 닮아 봉추산이라는 별칭이 있다

4. 진 장성 시작점 2안으로서의 갈석산

하북성 진황도 갈석산으로 응각암, 협자와 등의 이칭이 있다

5. 의무려산

당 영주 유성을 현 조양시에 비정해 놓고는 <당육전>/<신당서 지리지>의 “갈석은 영주의 동쪽에 있다”/”영주 유성 동북진에 의무려사와 갈석산이 있다”는 기록을 근거를 들어 이곳 또한 갈석이라 한다

6. (심지어)  이병도의 갈석산

현 서북한 평양 인근
이병도의 학설과 통전 동이열전 고구려전의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今騐長城東截遼水而入髙麗遺址猶存”을 근거로 하여 중국역사지도집에서는 만리장성을 서북한까지 이어 표시하고 있다

통전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盧龍漢肥如縣有碣石山碣然而立在海旁故名之晉太康地志同秦築長城所起自碣石在今髙麗舊界非此碣石也

① 노룡현은 한 요서군 비여현으로 갈석산이 있다
ㅡ 현 중국 하북성 창려~노룡~무령현의 갈석산
태강지리지 갈석산은 한 낙랑군 수성현
② [해석 1안] : 진(晉) 태강지리기에서 이르기(同)를 진(秦)이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시작된다 했는데 지금 고구려 옛 경계에 있으며 이 갈석산이 아니다
ㅡ 태강지리지 갈석산이 고구려 옛 경계에 있다
    [해석 2안] : 진(晉) 태강지리기에서 이르기(同)를 진(秦)이 쌓은 장성이 갈석에서 시작된다 했는데 지금 고구려 옛 경계에 있는 것은 이 갈석산(노룡 갈석산)이 아니다
ㅡ 태강지리지 갈석산이 고구려 경계에 있다는 말인지 노룡 갈석산이라는 말인지 알 수 없음
③ 당 노룡현(한 요서군 비여현) 갈석산 ≠ 태강지리지(낙랑군 수성현) 진장성 시작점으로서의 갈석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今騐長城東截遼水而入髙麗遺址猶存 〔 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髙麗中為左碣石 〕

① 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
ㅡ 현 하북성 해풍현과 산동성 무체현 사이에 있는 원조 갈석산

②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長城起於此山今騐長城東截遼水而入髙麗遺址猶存 = 髙麗中為左碣石

ㅡ 여기에서 말하는 요수가 어디인가?
ㅡ 요수는 갈석, 요동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에 걸처서 황하 일원에서 동북쪽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돌아오며 무수한 곳에 그 이름을 남겼다
ㅡ 옛 고구려 땅 안에 유적이 실제로 남아있다고 두우는 적고 있는데 그게 지금 어디이며 어디에 그 유적이 남아있는가?
ㅡ 한 낙랑군 수성현인가 아니면 이 낙랑군 수성현이 끊임 없이 서쪽으로 교치된 경로상의 낙랑군 수성현인가?

라. 낙랑군 수성현 문제

1. 사기색은에서 사마정이 주석으로 달며 인용한 태강지리지 기록

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史記』, 「夏本紀」)

2. 진서(晉 - )지리지 낙랑군

朝鮮, 周封箕子地.
ㅡ 주가 기자를 봉한 곳이다
遂城, 秦築長城之所起
ㅡ 진(秦)이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저는 지난 해 겨울에 중국 역대 지리지를 비교하여 기존 한 요서ㆍ요동ㆍ낙랑군 등의 인구 변화상을 고찰하고 공손씨, 모용씨, 고구려의 활동상에 따라 기원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이들 군현이 기존의 위치에서 하북성 쪽으로 교치된 정황을 고찰하였습니다

또 도배시러님과 함께 이들 고찰을 공조하며 동시에 모용씨의 룡성이 현 조양이 될 수 없음과 수나라 요서 유성이 역시 현 조양이 될 수 없음을 추적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전하지 않는 태강지리지는 이름만 태강연호를 달고 있을 뿐 진서지리지와 동시대 같은 정보를 담고 있음을 가볍게 고찰한 바 있습니다

한서 지리지에는 장성 이야기가 없습니다 낙랑군 수성현에는 장성은 커녕 새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진서지리지에 ‘진장성이 시작된다’는 설명이 붙었고

태강 연호를 근거로 3세기 말에 쓰여졌다고 추정되는 태강지리지에는 후대(648)에 쓰여진 진서지리지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 붙어서 ‘갈석산’이 최초로 언급됩니다

후대의 사서보다 전대의 사서가 더 자세할 수 있습니까?

실제 요동ㆍ낙랑 등의 군현은 북위에 의해 하북성 고죽국 지역인 평주의 영주 관할로 예속 됐다가 다시 6진의 난(六鎭之亂, 523 년)시기에 하북성 보정시 쪽으로 교치되었습니다

즉 수ㆍ당 시기(를 다루는 사서)에 언급되는 낙랑군 수성현은 진의 수성현이거나 북위의 수성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강지리지(갈석, 진장성)와 진서지리지(진장성)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들 기록이 전하는 시대는 낙랑군이 하북성 고죽국 자리에 교치됐던 시기이며 이 시기의 지리정보가 후일 북위 때에 하북성 남부 보정시로 교치된 후의 정보에 합산돼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도배시러님의 견해와 같이 후세 사가들이 혼동했거나 일부러 혼동을 주기 위해 정보를 섞었다고 보여지는 것이죠

실제 통전의 기록 양상을 보면 갈석산이 고구려 땅 안에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는데 이 사실을 토대하여 갈석과 진장성 시작점을 계속해서 동쪽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들 기록을 정리하면
1) 한 낙랑군은 진 시기에 한 요서군 지역으로 교치가 됐으며 진(晉) 말, 늦어도 북위 시기, 특히 523년 6진의 난으로 인해 하북성 남부 보정시로 교치가 되었습니다
2) 따라서 수성현에 진장성이 시작된다(진서지리지), 진장성이 시작되는 갈석산이 있다(태강지리지)는 지리정보는 당 노룡, 창려 자리에 있을 당시의 지리정보이며
3) 당나라 시기에는 이 자리에 북평군이 자리잡으므로 한 비여군과 갈석산만 언급할 뿐인 것이죠
4) 즉 태강지리지의 갈석산 정보는 낙랑군이 진(晉) 시대 노룡/창려, 혹은 그 근방에 있을 때의 정보
5) 통전의 노룡현 갈석산은 당 나라 시대 북평군 노룡현의 정보
6) 4)와 5)의 갈석산은 같거나 비슷한 위치(추정컨데 노룡/창려 갈석과 진황도 갈석 정도의 거리)
7) 상서의 갈석은 우공 시대의 정보로 현 하북 해풍/산동 무체의 갈석산

다시 정리할까요?

갈석 A = 원조 갈석(상서 우공)
갈석 B = 북위에 의해 보정시로 교치되기 전의, 원래 위치에서 진(晉) 시기의 위치로 교치돼 온 갈석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
갈석 C = 당 북평군 노룡현 갈석(통전) = 주해도편의 노룡/창려 위치
갈석 D = 고구려 국경, 혹은 고구려 땅에 있던 갈석(통전, 독사방여기요)
갈석 B와 갈석 C는 같거나 지근 거리
갈석 A는 우갈석, 갈석 D는 좌갈석(통전 두우 주장)

역산易山 = 갈산曷山 = 갈석산碣石山 = 도리진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
(易山 = 曷山 = 碣石山)

역산을 역수와 관련 있는 어떤 산으로 상정하더라도 역시 황하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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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3-14 10:16
 
감방친구 18-03-14 10:17
 
감방친구 18-03-14 10:18
 
촐라롱콘 18-03-14 11:42
 
[[당시에는 산동 등/래주에서 요동 대련으로의 직항도해가 불가능했으므로]]....???
.
.
.
다른 구간들은 직항도해가 상당히 어렵다 하더라도.... 반면에 등/래주에서 요동 대련은 직항했을텐데요....??

왜 또는 한반도 남부에서 출발한 선박이 한반도서해안과 요동반도 연안일대는 연안항해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요동반도에서 산동반도 구간은 주로 직항로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산동-요동 해역 중간에는

이정표 또는 피난처로 삼을만한 묘도열도에 속하는 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감방친구님 말씀대로라면 해로를 이용해서 등/래주~요동반도 구간을 이동하는데도 발해만 연안을

빙돌아 갔다는 말씀이신지.....???

더구나 당시에는 이미 당항성 등을 포함한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서 서해를 가로질러

산동 또는 절강지역으로 가는 항로도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침몰-표류할 확률은 상당히 높았겠지만....
     
감방친구 18-03-14 14:10
 
[감방친구님 말씀대로라면 해로를 이용해서 등/래주~요동반도 구간을 이동하는데도 발해만 연안을

빙돌아 갔다는 말씀이신지.....??? ]


가탐 도리기(당나라)와 장황의 도서편(명나라)에 제시된 산동~요동 바닷길 경로가 연안 항해 경로입니다
     
감방친구 18-03-14 14:12
 
가탐 도리기와 장황의 도서편에 제시된 바닷길 경로 대조 고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83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8
     
감방친구 18-03-14 14:13
 
주해도편(명나라)의 지도에 나타난 산동에서 하북성에 이르는 중국 동부 연안 지명들

http://blog.daum.net/_blog/photoImage.do?blogid=0BVH1&imgurl=http://cfile239.uf.daum.net/original/1534420E4A9F66C72D3074
칼리S 18-03-14 12:32
 
촐라롱콘님 말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답이 나옵니다.

당나라가 수군을 이용해서 공격을 하면 요동반도로 직항해서 우리 서해안을 따라 공격하는게 정상적인 루트죠. 안 그러면 수군으로 공격을 할 이유가 없죠.

발해가 등주를 수군으로 공격했듯이 당나라도 수군을 이용해서 공격한다면 당연히 요동반도쪽이나 서해안을 공격하는데 사용했겠죠.
     
감방친구 18-03-14 14:16
 
[발해가 등주를 수군으로 공격했듯이 ]

아, 이거 좋은 지적이십니다
그런데 발해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당나라 등주를 공격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학계통설에 따르면 당시에 요동반도가 발해 땅도 아니었고요
          
칼리S 18-03-14 15:11
 
님이 현재 가정하시는 것중에 가장 큰 문제점은 당시의 해상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겁니다.

당장 당이 백제를 멸망시킬때 대규모 해상선단을 동원했을 정도로 서해는 바람만 맞으면 도해가 어려운 바다가 아닙니다.

당연히 발해 역시 압록강 하구에서 충분히 등주로 공략 가능하죠.
               
감방친구 18-03-14 15:28
 
님, 제가 그걸 왜 고려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함에도
저렇게 사실이 교차하고
산동ㅡ대련 직도해를 상정하면 의문이 드니
이렇게 밤을 새며 따져보는 것이죠
               
감방친구 18-03-14 15:29
 
한두 가지만 보지 마시고
제반을 따져 보셔야죠
감방친구 18-03-14 13:28
 
촐라롱콘님, 칼리에스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당 태동 2차 원정 내용을 제가 직접 간략히 정리한 것입니다

당 태종의 2차 원정은 1차 원정의 교훈
ㅡ 육로를 통한 군량 수송의 어려움
ㅡ 대규모 원정에 따른 과도한 국고 및 인력 손실
등을 토대로

ㅡ 해로를 이용한 군량 수송
ㅡ 고구려 멸국이 아닌 압록강 북쪽 땅 취득
ㅡ 대규모 원정이 아닌 보다 소규모 병력을 사용하여 수시로 타격

으로 전략을 수정합니다

이에 따른 2차 원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차 침략
ㅡ 규모 : 육군 3천 명, 해군 1만 명
ㅡ 출병지 : 육군은 영주도독부&신성. 해군은 산동 래주.
ㅡ 특징 : 육해군 모두 수전에 능한 정예병으로 구성
ㅡ 전과 : 육군 - 요수를 건너 남소성을 비롯한 여러 성 물리치고 불 지른 후 퇴각. 해군 - 국경에 들어와 1백여 차례 전투. 석성(石城)을 공격해 빼앗고, 적리성(積利城) 아래까지 진격하며 대승(고구려군 사망자 2천 명)
ㅡ 경과 : 해군과 육군의 전투 승리로 강남 12주의 공인(工人)들을 징발하여 수백 척의 큰 배를 건조케 하여 침략군의 규모를 증원

2) 2차 침략
ㅡ 규모 : 해군 3만 명.
ㅡ 출병지 : 산동 래주
ㅡ 전과 : 오호진(烏胡鎭)의 장수 고신감(古神感)이 병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공격. 고구려의 보병과 기병 5천 명과 역산(易山)에서 맞부딪쳐서 승리. 그날 밤 1만여 명의 고구려 군대가 고신감의 배를 기습했으나 고신감이 복병을 출동시켜 승리. 당나라 대승.
ㅡ 경과 : 자신감을 얻은 당 태종은 압록강 이북 탈취에서 고구려 멸국으로 전략 수정. 30만 명의 대규모 원정 준비. 이전 수ㆍ당의 고구려 원정 시 육로를 이용한 군량 운반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해로를 통한 군량 운반. 1 년 분량의 군량미 준비.
“당 태종이 좌령좌우부장사(左領左右府長史) 강위(强偉)를 검남도에 파견하여 나무를 베어 선박을 만들게 하였다. 큰 배 중에는 길이가 1백 척, 넓이가 오십 척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따로 사신을 파견하여 이 배들을 수로를 통하여 무협(巫峽)에서 강주(江州)와 양주(楊州)를 거쳐 내주로 이동하게 하였다.”

3) 3차 침략
ㅡ 규모 : 30 만 명
ㅡ 출병지 : 산동 래주
ㅡ 특징 : 고구려 외곽성을 거치지 않고 바닷길을 통하여 고구려 중심부 직접 타격 시도
ㅡ 전과 : 당 설만철. 바다를 통해 바로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 40 리 지점에 주둔하여 박작성을 공격하였으나 거듭 실패. 고구려의 오골성(烏骨城)과 안지성(安地城) 등 여러 성에서 온 병력 3만여 명이 박작성 지원하며 당나라 패배
ㅡ 경과 : 당 태종이 또한 내주자사(萊州刺史) 이도유(李道裕)에게 군량과 기계를 운반하여 오호도(烏胡島)에 비축 명령

그러나 당 태종이 죽으면서 고구려 2차 원정은 중지
감방친구 18-03-14 13:39
 
당 태종 2차 원정은 1차 원정과 달리 육군과 수군 모두 고구려 국경 지대를 수시 타격하는 형태를 취하며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2차 원정은 총 3차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2차까지 당나라가 모두 승리합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서
2-1차에 1만 3천의 정예병(육군 3천, 수군 1만)
2-2차에 3만 명(수군)
이었던 것과 달리
2-3차에는 2차 원정의 목표를 압록강 바깥 영토 취득에서 고구려 멸국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30 만 명의 대군의 수군으로(뱃길, 즉 바다를 통해) 압록강으로 직접 들어와서 박작성을 우선 타격했으나 거센 저항으로 발이 묶였다가 오골성, 안시성 등에서 고구려 구원병 3만 명이 도착하자 실패합니다
신수무량 18-03-14 13:43
 
직접적인 증거가 사서의 기록이라면, 그와 관련하여 간접증거(지명)들이 있죠...
북경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와 관련된 지명들 입니다.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표적인 것이 고려영(高麗營)이죠...(지금은 지명을 바꾼 것으로 압니다..)
근거가 되는 명확한 기록도 없고 각각의 설만 난무하지만(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해석), '영(營)'이라는 단어는 간단한 단어가 아니죠...
저는 감방친구님이 제시한 사서기록들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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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외곽의 ‘고려영’이란 지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http://blogs.chosun.com/hbjee/2010/11/16/%EB%B6%81%EA%B2%BD-%EC%99%B8%EA%B3%BD%EC%9D%98-%EA%B3%A0%EB%A0%A4%EC%98%81%EC%9D%B4%EB%9E%80-%EC%A7%80%EB%AA%85%EC%9D%80-%EC%96%B4%EB%96%BB%EA%B2%8C-%EC%83%9D%EA%B2%A8%EB%82%9C-%EA%B2%83%EC%9D%BC/

북경 고려영(高麗營)에 관하여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BVH1&articleno=15944558

중국의 한민족사 - 중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고려영(高麗營)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yk70000&logNo=70022827172&parentCategoryNo=&categoryNo=16&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 만주,북방고토의 `고려(高麗)`지명 위치와 분포.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DEV0&articleno=16493922
--

우리 고려(고구려)조상들은 북경을 포함하여 만주등지에 '고려'라는 이름을 남겨놓았고(북경지역의 고려는 이미 그 이름 바꾸었다고 하는데...), 백제조상들은 일본열도에 '백제'라는 이름을 남겨 놓았네요..(오사카는 백제이름이 수두록한데 이것도 슬슬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감방친구 18-03-14 13:47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1. 만약 래주 ㅡ> 대련 방식으로 직도해 했다면
1) 2-1과 2-2의 수군이 고구려 국경에서 전투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ㅡ 요동반도 끝에 도착하여 다시 서북으로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고구려 국경지대를 공격하는가?
2) 2-3의 박작성 공격
ㅡ 고구려 중심부 직접 타격으로 2-3에서 전략을 바꾸는데 왜 압록강이나 그 남쪽 평양 부근이 아니라 압록강 북안, 그것도 한참 들어간 박작성을 타격하는가?
ㅡ 래주에서 대련 방면으로 직도해 했더라도 이 요동반도 끝에서 현 압록강까지 연안 항해로 족히 5~6백리이다

2-1차와 2-2차에서 당나라의 육군과 수군은 모두 국경지대에서 치고 빠지는 방식을 취합니다
육군은 요수를 넘어와서 그쪽 방면 외곽성을 기습타격하여 무너뜨린 후 불을 지르고 퇴각하는 방식
수군은 국경지대에 들어와 마찬가지로 분탕을 지르는 방식을 지르는 취합니다

학계 통설에 따라 고구려 강역을 비정하더라도 그리고 래주ㅡ요동반도 남단 직접도해를 했다 하더라도
1) 요동반도 남단이 고구려 국경지대는 아니죠?
2) 요동반도 남단에서 고구려 국경지대를 가려면 다시 서북 연안 항해를 수백 리 해야죠?
3) 당 수군이 퇴각하려면 다시 그 수백 리를 되돌아 요동반도 끝에서 산동으로의 당시 기술로는 위험한 직접도해를 감행하거나 이도 아니라면 시계반대 방향으로 연안을 따라 퇴각해야죠?
     
신수무량 18-03-14 14:02
 
[요동반도 끝에 도착하여 다시 서북으로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고구려 국경지대를 공격하는가?]
- 적진 가운데로 가서 아군쪽으로 나가면서 전투를 벌이는데 형국인데...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병법상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퇴로가 없는작전 정도로 생각됩니다. (지금의 특공대/공수부대 전략)

 [래주에서 대련 방면으로 직도했더라도 이 요동반도 끝에서 현 압록강까지 연안 항해로 족히 5~6백리이다]
적 본대가 대련으로 직도했다고 가정하면, 현 평양은 고구려의 멸망시기 수도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대련에서 본대가 공격할 수 있는 일정거리 내에(5~600리는 적지역에 와 있는 본대가 움직이기엔 너무 멀죠...) 있는 어느지역이 당시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
          
감방친구 18-03-14 14:06
 
래주ㅡ산동 직도해도 매우 위험하고
적 (고구려) 영토에 들어와서 수만의 수군이 연안항해 수백 리를 한다는 것도 매우 위험하죠

전혀 상식적이지 않죠
감방친구 18-03-14 14:03
 
이러한 사실 정황에
삼국사기에는 역산이 위치 미상 지명 목록에 등재돼 있고
중국 측 사서에는 역산이 갈산으로 고구려의 국경에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당 태종 2차 원정 전장터가 1차 원정과 다르고 전쟁 및 전투 양상이 다릅니다

2차 원정에서 수군은 고구려 국경지대를 무수히 타격했고
오호진의 고신감이 타격한 고구려 역산이 갈산이며 갈산은 고구려 국경에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두 분 말씀대로라면
당시 기술로는 표류ㆍ침몰의 위험이 높은 산동ㅡ요동 직접 도해를 선택해 다시 연안을 따라 고구려 국경지대까지 갑니까?

학계통설에 따르면 당시 고구려 국경선은 현 요하인데 당 수군이 100여 차례나 국경지대에서 분탕을 치는 동안 그 주변에 응당 있어야 하는 기존 고구려성들이 거명이 안 됩니까?
안시성은 2-3에 압록강 직접 타격 때에나 등장하고요
칼리S 18-03-14 14:51
 
글이 너무 산만해서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오호진의 위치를 이상하게 잡으신거 같은데요?

오호진은 묘도군도의 섬들 중에 위치해 있었다고 보고, 이는 산동과 요동반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군기지가 있기에 적합하죠.

그리고 님과는 다르게 대부분 오호진은 지금의 황성도로 보는게 통설입니다.
     
감방친구 18-03-14 14:55
 
산만하다기보다는 길죠
산만하게 보인다면 스마트폰으로 작성해서 그럴 겁니다

오호진은 오호도로
역대 어느 사서든 산동 연안, 래주 앞의 오호도입니다
오호도에 당 태종 때 진을 설치해서 오호진입니다
     
감방친구 18-03-14 15:00
 
오호도를 묘도군도로 보는 것은 독사방여기요에 근거해서 그렇습니다

독사방여기요에서 오호도의 위치를 래주동북200리라고 적고 있어서 여기에 근거한 겁니다
근데 이 동북이라는 방위는 가탐 도리기의 '동북해행'의 동북을 잘못 인용/해석하여 적은 결과입니다

가탐 도리기의 바닷길 경로는 장황의 도서편 경로와 일치하며 그 경로가 모두 등/래주에서 연안을 따라 시계방향에 위치해 있으며

명나라의 주해도편 지도에 정확히 표시돼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3-14 15:00
 
가탐 도리기와 장황의 도서편에 제시된 바닷길 경로 대조 고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83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8

주해도편(명나라)의 지도에 나타난 산동에서 하북성에 이르는 중국 동부 연안 지명들

http://blog.daum.net/_blog/photoImage.do?blogid=0BVH1&imgurl=http://cfile239.uf.daum.net/original/1534420E4A9F66C72D3074
     
감방친구 18-03-14 15:02
 
1. 신당서 가탐도리기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2. 장황의 圖書編

沙門島爲解宋寨界 單山爲黃縣界 桑島爲馬停寨界 龜島爲昌邑縣界 歆末島爲壽光界 都里鎭爲蒲臺界 靑島爲利津界 黃島爲賓州界 直沽口爲寶低縣界 塔山爲盧龍衛寨界 南半洋山爲昌黎縣界 計一千二百里,抵遼東北半.

3. 성경통지

桃花島

新唐書地理志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烏湖島三百里至都里鎮二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감방친구 18-03-14 15:11
 
가탐 도리기 바닷길(당나라) 경로는 등주를 출발지로 도리진을 중간 기착지로 하여 도화포에 도착합니다

장황의 도서편 경로는 역시 등주를 출발지로 하고 도리진을 중간 기착지로 하여 하북성 노룡, 창려 등을 지나 요동 북안에 도착합니다

가탐 도리기와 도서편에서 등주 ~ 도리진 사이의 섬들은 모두 산동 연안의 섬들입니다

그리고 도리진은 산동 소청하 (Xiaoping river) 앞바다의 섬이며 포대현 연안에 위치합니다

가탐 도리기의 도화포는 청나라 때 영원주였던 현 호로도시 연안에 있던 도화도의 포구입니다

장황의 도서편 경로상에서 도리진 ~ 요동 북안 사이의 노룡, 창려는 말 안 해도 하북성 지역임을 아실 겁니다
     
감방친구 18-03-14 15:12
 
내용을 가나다로 세분해 표시했으니 구분해서 이어서 보시길 바랍니다

또 댓글로 별기한 지도와 관련 고찰을 참고하세요
감방친구 18-03-14 15:18
 
0) 사실
오호도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와 고구려 국경 역산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ㅡ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신당서, 자치통감, 독사방여기요

1) 사실
易山 = 曷山 
ㅡ 자치통감주, 신당서, 독사방여기요

2) 추정
曷山 = 碣石山
ㅡ 본인의 추정

4) 사실
易水의 발원지 易縣은 하북성 보정시 속현
ㅡ 중국 일반 지리정보

5) 사실
易水는 대청하, 또는 황하로 흘러듦
ㅡ 중국 일반 지리정보

6) 사실
최초의 갈석산(碣石山)은 황하 하류에 위치
ㅡ 상서 (서경), 통전 등 역대 중국 사서

7) 사실
갈산(曷山)은 고구려 땅으로 그 국경에 위치
ㅡ 독사방여기요

8) 사실
갈석산(碣石山)은 고구려 땅으로 그 국경에 위치
ㅡ 통전
도배시러 18-03-14 15:28
 
진장성에 관해.............
8. 사기색은(史記索隱, 저자 司馬貞 : 679~732) 주석(태강지리지 인용)
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史記』, 「夏本紀」)

인용이 잘못 되었지요 ?  長城所起 => 진서지리지는 秦築長城所起 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이러는거죠.
기록은 맞지만... 진장성은 거기에 없다는거죠.

통전도 같은 입장입니다. 두우가 아는 진장성이 시작된곳은 보정시 백석산 장성문 이죠.
[통전] 碣石山在 漢樂浪郡 遂城縣 長城起 於此山 그래서 長城起 리고 합니다. (고구려 천리장성?)

모두가 진나라 秦은 빼고 태강지리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인 왜곡이죠.
태강지리지는 그렇게 적었지만 그곳에는 진나라 장성이 있을수없다.
     
감방친구 18-03-14 15:34
 
그리고 웃긴 게
태강지리지는 전하지도 않고 태강지리지를 인용한 사마정은 당나라 사람이고
뻔히 있는 진서지리지는 언급도 없고

겨우 태강 연호를 명칭으로 썼다는 것을 근거로 진 당시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태강지리지보다 후대에 쓰여져서 분명 태강지리지를 비롯한 역대 사서 지리 정보를 참고했을 진서지리지는 갈석산 얘기는 없어요. 갈석산은 없으면서 진이 쌓은 장성이 시작된다는 문구만 있고.

더구나 당나라 당시 수성현 위치는 보정시 쪽이고

통전은 의도적으로 고구려 갈석의 위치를 동쪽으로 밀어내며 왜곡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도배시러 18-03-14 15:37
 
통전의 주장은 그곳에 고구려 천리장성이 있다는 것이죠.
그당시에 고구려가 장성을 자체적으로 쌓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니...

애매할땐 주어를 생략하고 장성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칼리S 18-03-14 15:29
 
님의 의견과 저는 애당초 너무 달라서 그러니깐 그냥 제 생각만 말씀드리고 말죠.

일단 님의 바닷길 해석은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해석하는 가탐도리기의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해로는 지금의 봉래인 등주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묘도열도를 거쳐 요동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여순에 이르고 이어 요동반도에서 장산열도를 거쳐 압록강 하구에 이르고,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 장구진(황해 풍천), 곡도(백령도), 고사도(강화도), 덕물도(덕적도)를 거쳐 신라의 대외 항구였던 당은포(경기도 화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일단 님과 저는 아예 처음 가정부터가 워낙에 다른지라 반박하면 끝이없고 해서 이만하겠습니다.
     
도배시러 18-03-14 15:32
 
일본인의 상상소설논문을 인용하시는건가요 ?
관련 사서 원문을 제시하면 좋겠습니다.
사서 원문을 무시했다면 문헌근거라도 보고 싶네요.

아니면 묘도열도의 섬이름과 가탐도리기의 섬이름이 일치한다는 증명이라도 ?
          
칼리S 18-03-14 15:37
 
가탐도리기의 몇리 몇리 이런건 엉터리입니다.

기본적으로 가탐은 직접 가본게 아니라, 그냥 듣고 쓴것뿐입니다. 즉 지금처럼 계산하면 오판하기 좋습니다. 가탐도리기 보세요. 그거리들 다 따져보면 다 엉망진창입니다.
               
감방친구 18-03-14 15:38
 
경로를 보셔야죠
대사도, 오호도, 귀도, 흠차도, 도리진ㅡ이거 다 산동 연안을 따라 있는 지명입니다
도화포는 현 호로도시 연안에 있던 지명이고요
               
도배시러 18-03-14 15:39
 
묘도열도의 섬이름과 가탐도리기의 섬이름이 일치한다는 증명정도는 해보셔요 ?

저는 가탐의 섬 이름과 묘도열도의 섬이름이 일치하리라 생각했었지만 아니네요.
전혀 다릅니다.
               
감방친구 18-03-14 15:44
 
저도 처음에 가탐 도리기 바닷길 경로를 고찰하며 독사방여기요만 참고했을 때에는 묘도군도의 섬이겠거니 생각해서 학계 통설이 맞나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도서편, 성경통지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 비교 분석하여서 학계통설이 틀렸다는 것과

연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도는 연안항해 경로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를 명나라 당시의 연안 상세지도인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서 확인했고요
     
감방친구 18-03-14 15:36
 
가정이 다른 게 아니죠
저는 직접 사서 원문을 교차 분석하고 고지도를 참고하여 연구했는데
님은 남이 쓴 설명을 참고하고 있을 뿐이죠

제가 가탐도리기, 도서편, 독사, 주해도편 지도, 금사 등의 자료를 제시했는데 그건 왜 안 보시고
     
감방친구 18-03-14 15:37
 
가탐 도리기와 장황의 도서편에 제시된 바닷길 경로 대조 고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83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8

주해도편(명나라)의 지도에 나타난 산동에서 하북성에 이르는 중국 동부 연안 지명들

http://blog.daum.net/_blog/photoImage.do?blogid=0BVH1&imgurl=http://cfile239.uf.daum.net/original/1534420E4A9F66C72D3074
칼리S 18-03-14 15:40
 
등주가 왜 수군기지로 중요했을까요?

다 요동과 한반도를 가는 전초기지였기 때문이죠. 무슨 등주에서 중국 연안따라 이동할거면 등주가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겠죠.

등주 묘도군도 여순을 거치는건 고대 바닷길의 기본입니다.
     
도배시러 18-03-14 15:43
 
그건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고... 역사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는게 더 중요합니다.
          
칼리S 18-03-14 15:43
 
그럼 가탐도리기 당은포구에서 신라왕성까지 700리인데 그럼 당은포구가 어디인가요?
               
도배시러 18-03-14 15:47
 
또 지금 사람에게 맞춰서 결론을 유도할려고 하네...
그 당시 사람들은 어케 생각했는지 추적해야 한다니까요 ?

묘도열도의 옛지명이 가탐도리기에 나오는지 먼저 확인하는게 기본입니다.

저는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했습니다.
저도 님과 똑같이 묘도열도에 가탐도리기 지명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후벼 팠어요. ㅠㅠ
                    
감방친구 18-03-14 15:49
 
ㅋㅋㅋ 그렇죠 사실은 묘도군도는 원래 도배시러님 전문 분야죠 ;;;
               
감방친구 18-03-14 15:48
 
가탐도리기 바닷길과 뭍길 경로는
요동에서부터 그 거리가 왜곡이 됩니다

그리고 애초에 뭍길 경로는
가탐 당시 안동도호부가 요동성에 없었음에도(안동도호부가 요동ㆍ신성 등에 있었던 시기는 안동도호부 역사상 극히 일시간. 대부분 기간을 요서에서 움직이다가 가탐 당시에는 이미 폐지됨) 마치 당시까지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죠

어느 사서든 그 사서만 보면 진실 접근이 어렵습니다
               
도배시러 18-03-14 15:49
 
그리고 묘도열도는 발해만 백제관할 15섬이 있는 지역 입니다. - 수서 백제편
당나라가 그 지역은 점령을 못했다고 할수도 있지요.
                    
칼리S 18-03-14 15:55
 
백제는 당의 대규모 수군전단이 오는것도 막지 못한 판국인데, 뭔 묘도열도를 지킵니까?
                         
도배시러 18-03-14 16:06
 
지킬 이유는 없죠. 점령할 이유도 없고....
     
감방친구 18-03-14 15:50
 
아니 사서 기록과 지도를 보시라니까 자꾸 이러시네
          
칼리S 18-03-14 15:58
 
사서 기록을 보세요. 가탐도리기 보면 등주에서 동북으로 바닷길을 이용했고, 섬들을 지나는데 이건 결국 등주에서 묘도열도를 지난것 말고는 해석이 안되는 겁니다.

지도 보세요. 지도 보면 답이 보입니다.
               
감방친구 18-03-14 16:01
 
ㅎㅎㅎ 이거 참 현웃 나오게 하는 재주 있으시네
               
감방친구 18-03-14 16:02
 
그러니까 그 사서와 지도가 뭔지 알려주세요
               
도배시러 18-03-14 16:02
 
상식적으로 맞는 말인데....
문제는 지나가는 섬의 이름이 산동-요동 반도의 섬이름은 안나오고,
산동~북경 사이의 섬이름이 언급된다는것. 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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