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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8 08:11
[한국사] 유사역사학이 떠받드는 푸스녠의 진실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718  

푸스녠(1896~1950).중국 산둥지방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영국, 독일 등에서 유학하고 1929년부터 베이징대 교수를 역임했다. 1949년부터 대만대학교 총장을 지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 푸스녠(1896~1950).중국 산둥지방 출신으로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영국, 독일 등에서 유학하고 1929년부터 베이징대 교수를 역임했다. 1949년부터 대만대학교 총장을 지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물밑 한국사-59] 유사역사가들이 떠받드는 외국 학자들이 몇 명 있다. 사실을 알고 보면 거의 다 오독을 한 결과이다. 그 학자들이 주장하지 않은 학설, 또는 과장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학자 중에는 베이징대 교수 출신으로 중국 분리 후 대만대 총장을 역임한 푸스녠(傅斯年)도 들어 있다(우리나라에는 우리 독음대로 '부사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사역사학에서 푸스녠은 고조선의 실체인 동이를 인정한 위대한 학자 취급을 받는다. 정말 그럴까? 푸스녠의 '이하(夷夏)동서설'은 국내에 번역까지 되었다. 푸스녠이 주장하는 것은 동서로 대립한 이족과 하족이 다 중화족의 일족으로 현 중국의 모든 영역이 중국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임지현, '근대 국경의 역사' 7장 6절 영웅사변기와 근대 중국의 민족사).

이후 고고학의 발전으로 푸스녠이 주장한 이족과 하족의 대립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렇게 폐기된 푸스녠의 학설은 중국 쪽의 유사역사가들과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이 지지한다. 양국의 유사역사가는 목적이 완전히 대립 충돌하는데 서로 푸스녠이 자기네에게 유리한 말을 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중국 쪽의 유사역사가들은 이족은 중화의 한 갈래이므로 한민족이 은나라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 자기네 족속의 한 부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기자가 조선으로 간 것이 바로 은나라 고향으로 간 것이라고 말한다(이성규, '고대 중국인이 본 한민족의 원류', 한국사시민강좌36).

2012년 상하이에서 다시 출판된 푸스녠의 동북사강
▲ 2012년 상하이에서 다시 출판된 푸스녠의 동북사강
푸스녠은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역사학을 '구국의 역사학'으로 탈바꿈시키고 오늘날 동북공정의 단초가 되는 '동북사강(東北史綱)'을 내놓았다.

일본은 만주를 중국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 만선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학자들의 위기감도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서로 간의 적대적 에너지를 흡수하며 몸집을 불려나갔던 것이다.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푸스녠은 비분강개한 어조로 "서생들은 어떻게 조국에 헌신해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들은 만주 지역이 본래 중국의 영토였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구국을 위해 역사가들이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했다(이병호, 동북공정 전사:부사년의 '동북사강' 비판, 동북아역사논총20).

푸스녠은 동북지방, 즉 만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걸 읽고도 유사역사가들은 푸스녠을 칭송할 것인가?

"발해를 둘러싼 3면은 모두 중국문화 발상지이며, 요동 일대는 영원토록 중국의 군현이었으며, 백산과 흑수 일대는 오랫동안 중국의 번병이었다. (중략) 2천년의 역사를 볼 때, 동북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강소성이나 복건성이 중국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동북사강 2쪽)

오늘날 중국에서 만주 지방을 동북 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푸스녠의 제안에 의한 것이다. 그는 선사시대부터 만주에 중국인들이 거주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내 유사역사가들이 '은=동이'로 동일시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은과 동이는 다른 종족으로 파악했다. 푸스녠은 은나라가 만주에서 발원해서 산동지방에 있던 동이를 정복했다고 말한다. 고구려와 부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여와 고구려의 통치 계층은 중국의 북변에서 이주하여 온 자들이었고,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을 통치한 부여는 한·위 시기에 동북에 있었던 최대의 속국이었다."

신라에 대해서도 "당나라를 잘 섬겨 왜에 망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이다.

푸스녠이 원래 말한 동서의 대치, 즉 이족과 하족의 대립이란 중국과 비중국의 다툼이 아니라 중국 안에서의 대치일 뿐이다(이유진, 누가 왜 예를 말하는가, '동북아 활쏘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이하동서설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국 내 동서 간의 대립이기 때문에 푸스녠은 진(서)-육국(동), 유방(서)-항우(동), 조조(서)-원소(동)라고 삼국시대까지 동서 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다 손권의 오나라 때부터 강남이 개발되면서 동서의 대치는 적어지고 남북 대치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동북에서 일어난 한민족이 남하하여 은나라를 세우고 '동족'인 동이족을 정벌하는 등 위엄을 떨친 것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는 유사역사가들이 있다. 그러나 푸스녠은 이런 설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한무제의 정벌 이전에 이미 중국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집단이 폭넓게 거주하고 있었다고 본다. 푸스녠은 중국인을 '한어(漢語)를 사용하는 한족(漢族)'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그는 '방언'에 나오는 '북연조선(北燕朝鮮)'이라는 말을 단서로 연나라와 조선은 같은 말을 썼다고 주장하고 한무제가 조선을 침공한 것은 다른 민족과의 싸움이 아니라 이 지역을 다스리던 중국인 통치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행한 전쟁이라고 판단한다. 위만조선 정복이 서역과의 긴 전쟁과 달리 1년밖에 걸리지 않은 단기간에 완수된 것은 원래 중국과 밀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푸스녠은 한족이 문화적으로 가장 우수했기 때문에 한족과의 접촉 빈도에 따라 문화적 우열이 가려진다고 주장한다. 가령 읍루는 한족과 많이 접촉하지 못해서 가장 열등했고 예족은 한족과 빈번하게 접촉해서 가장 우수한 문화를 가졌다고 말한다. 푸스녠의 '동북사강'을 영역한 리지(李濟)의 'Manchuria in History'는 훨씬 직접적으로 이런 점을 설명하고 있다. 비중국계 민족이 일시적으로 중국에 대해 자립할 수는 있지만 이들은 결국 우수한 중국 문화에 동화된 뒤에 다시 중국에 흡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주사변을 맞아서 쓰인 책인 만큼 푸스녠은 동북 지방을 위해 수천만 명이 희생되어도 거리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오직 동북에 달려 있다고 외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김창규, 부사년의 민족문제 이해와 동북 인식, 역사학보193).

푸스녠이 주장하는 만주는 본래부터 중국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바로 동북공정의 논리와 동일하다. 그는 고구려와 삼한은 종족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은나라의 후예인 고구려는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에 맞선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유사역사학에서 이런 주장을 늘어놓은 푸스녠을 찬양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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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18 09:06
   
A : 여순/대련의 대흑산성은 (당나라가 깨부순) 고구려 비사성
B : 여순/대련에 (당나라 가탐의) 도리진이 있다.

A, B 중에 뭐가 유사역사학이냐 ?
     
감방친구 18-03-18 09:18
   
ㅋㅋㅋ
칼리S 18-03-18 10:06
   
비사성은 대흑산에 있고, 고구려에서 축성한 것이며

여순 인근에 도리진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불려진 것이다. 가탐은 고구려 멸망 이후의 사람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좃도 모르는 바보들은 자신들이 무슨 대단한 것인냥 착각하고 있다 ㅋㅋㅋ.

넓이와 거리도 구분 못하는(넓이는 무조건 커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바보가 역사를 논하니 여기 수준이 참 떨어지지 ㅋㅋㅋ.

중국의 동북공정(역사왜곡)에 맞서 우리도 역사왜곡 하자는 인간들이 바로 현 우리 유사소설가들의 일관된 논리 아닌가? 역사를 창조하는 우리의 유사환뽕가들 ㅋㅋㅋ
     
뚜리뚜바 18-03-18 10:11
   
와 ㅋㅋ 곧 현자님 오시겠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타나서 지릴뻔 ㅋㅋㅋㅋ
단어 선택에 또 한번 지립니다 현자님. 바보들, 유사환뽕가 ㅋㅋㅋ 이딴 소리하고 수준떨어진다는 소리가 어찌 그리 잘튀어 나오시는지 ㅋㅋ 수준 참...  ㅋㅋㅋ
소설가면 소설가지 유사소설가는 머에요? 이젠 단어도 만들어 내시는 거에요? ㅋㅋㅋ 일관된 창조론 잘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화이또~!
          
칼리S 18-03-18 10:16
   
별로... 앞으로 수준 낮은 유사소설가 인간들의 글에는 반박글 할 생각도 없으니깐 신경 꺼도 된다 ㅋㅋㅋ.

어차피 지들끼리 소설 쓰는데 반박해봤자 시간 낭비겠지.

김용의 역사무협지가 차라리 환뽕 맞은 애들이 쓰는 판타지보다 그나마 더 역사같지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0:29
   
그래서 험한 167km를 24시간 내로 주파한다고요?
                    
칼리S 18-03-18 10:39
   
수나라 별동대가 보병위주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리고 살아 돌아간 수가 얼마 되지 않는건 모르냐? 결국 도망간 놈들이 말타고 가는데 그걸 못 간다고?

수나라 역시 선비족 출신의 국가라는 걸 잊지마라. 말 한마리씩 타고 댕긴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0:48
   
일단 그 당시의 이동로를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이용해서 안주와 의주사이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167키로 36시간으로 나오는데, 전력을 다해 도주했으니 충분히 하루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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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 타고 도망간거얌?
                         
감방친구 18-03-18 10:50
   
말 타고 도망친 게 아니라 뛰어서 도망쳤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예 하루밤낮을 뛰어서 도망쳤다고
                         
감방친구 18-03-18 10:54
   
가을 7월, 우문술의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강을 절반쯤 건널 때, 우리의 군사가 후방에서 그들의 후속 부대를 공격하였다. 적장 우둔위장군 신세웅이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여러 부대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장수와 군졸이 뛰어 도주하는데, 하루 걸려서 압록강까지 4백5십 리를 행군하였다.(將士奔還 一日一夜 至鴨綠水 行四百五十里 將軍)”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영양왕 23년 (612 년)
                         
감방친구 18-03-18 10:55
   
댁은 아무리 봐도 삼국사기든 신당서든 제대로 한번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칼리S 18-03-18 10:57
   
ㅋㅋㅋ 무슨 수나라가 보병 위주의 군대라고 착각 하지 마세요.

수나라는 엄연히 한족왕조가 아니라 한화가 되긴 했지만 엄연한 선비족 국가입니다. 그리고 뛰어서 도망을 가면 그 전에 고구려 추격병들에게 다 쓸리죠.

수나라 별동대는 기마병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공격행군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 것이고, 살아 돌아간 자가 얼마 안된다는 거 자체가 최대로 잘 도망간 수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으로 이동거리가 충분히 가능하죠.

말타고 도망친게 아니라니 참 어처구니 없는 소리 하시네 ㅋㅋㅋ. 님 보면 참 해석하는게 어이가 없어요. 수나라 장군들도 다 걸어 댕겼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나라를 한족 왕조로 착각들 하지 마세요 ㅋㅋㅋ
                         
감방친구 18-03-18 10:57
   
게다가 어디가서 빌어먹지도 못 할 정도로 언행이 무례한 사람입니다
                         
감방친구 18-03-18 10:57
   
칼리S 18-03-18 10:57
ㅋㅋㅋ 무슨 수나라가 보병 위주의 군대라고 착각 하지 마세요.

수나라는 엄연히 한족왕조가 아니라 한화가 되긴 했지만 엄연한 선비족 국가입니다. 그리고 뛰어서 도망을 가면 그 전에 고구려 추격병들에게 다 쓸리죠.

수나라 별동대는 기마병 위주로 편성되어 있고, 공격행군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 것이고, 살아 돌아간 자가 얼마 안된다는 거 자체가 최대로 잘 도망간 수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으로 이동거리가 충분히 가능하죠.

말타고 도망친게 아니라니 참 어처구니 없는 소리 하시네 ㅋㅋㅋ. 님 보면 참 해석하는게 어이가 없어요. 수나라 장군들도 다 걸어 댕겼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수나라를 한족 왕조로 착각들 하지 마세요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0:58
   
삼국사기에 뛰어 도주했다고 나와있는뎁...........
그냥 님이 역사서 하나 저술하세요 ㅋㅋㅋㅋ
                         
칼리S 18-03-18 11:00
   
將士奔還 一日一夜 至鴨綠水

여기서 걸어간다고 씌여 있나요?
                         
감방친구 18-03-18 11:01
   
칼리S 18-03-18 11:00
將士奔還 一日一夜 至鴨綠水

여기서 걸어간다고 씌여 있나요?

ㅡㅡㅡㅡㅡ

어이구~~~

제발 그냥 댁 집 방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요
아무리 익명의 커뮤니티라지만 창피하지도 않나보네
                         
남북통일 18-03-18 11:03
   
가을 7월, 우문술의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강을 절반쯤 건널 때, 우리의 군사가 후방에서 그들의 후속 부대를 공격하였다. 적장 우둔위장군 신세웅이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여러 부대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장수와 군졸이 뛰어 도주하는데, 하루 걸려서 압록강까지 4백5십 리를 행군하였다. 수나라의 장군으로서 천수(天水) 사람인 왕인공(王仁恭)이 후군이 되어 우리의 군대를 막아 물리쳤다. 내호아는 우문술이 패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물러났다. 다만 위문승의 군대만이 온전하였다. 처음 9군이 요동에 도착했을 때는 총수가 30만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갔을 때는 다만 2천7백 명뿐이었고, 수만에 달하는 군량과 군사 기재들이 탕진되었다. 양제가 크게 화를 내면서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어 계묘일에 돌아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양왕 [嬰陽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763&categoryId=49615&cid=49615#TABLE_OF_CONTENT10
여기 들어가서 삼국사기 완벽하게 정독하고 오세요~
                         
남북통일 18-03-18 11:04
   
일단 그 당시의 이동로를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이용해서 안주와 의주사이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167키로 36시간으로 나오는데, 전력을 다해 도주했으니 충분히 하루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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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뛰어갔다고 적어놓았으면서 태도를 급 바꾸시네 ㅋㅋㅋ
                         
칼리S 18-03-18 11:07
   
진짜 무식한 인간들이랑 말이 안 통하는구나

삼국사기 원문에는 보병처럼 걸어간다는 말이 아닌데, 해석에서 뛰어 도주했다고 해서 진짜 보병처럼 도망갔다고 생각하는구나 ㅋㅋㅋ.

이런 멍청한 인간들하고 무슨 대화가 되냐? ㅋㅋㅋ

세상에 30만 별동대가 보병이라니 ㅋㅋㅋ. 게다가 장수까지 뛰어 댕기는 꼴이라니 ㅋㅋㅋ.

참 진짜 바보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남북통일 18-03-18 11:09
   
일단 그 당시의 이동로를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이용해서 안주와 의주사이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167키로 36시간으로 나오는데, 전력을 다해 도주했으니 충분히 하루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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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이 이렇게 적어놨는데 대체 뭔 말이 그렇게 많지?
그리고 삼국사기가 그렇게 못마땅하면 그냥 댁이 역사서 하나 편찬하슈.
뭔 그리 말이 많냐......
                         
감방친구 18-03-18 11:10
   
칼리S 18-03-18 11:07
진짜 무식한 인간들이랑 말이 안 통하는구나

삼국사기 원문에는 보병처럼 걸어간다는 말이 아닌데, 해석에서 뛰어 도주했다고 해서 진짜 보병처럼 도망갔다고 생각하는구나 ㅋㅋㅋ.

이런 멍청한 인간들하고 무슨 대화가 되냐? ㅋㅋㅋ

세상에 30만 별동대가 보병이라니 ㅋㅋㅋ. 게다가 장수까지 뛰어 댕기는 꼴이라니 ㅋㅋㅋ.

참 진짜 바보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ㅡㅡㅡㅡㅡㅡㅡ

ㅋㅋㅋ 아휴
스파게티 18-03-18 10:45
   
음  저분 왜캐 흥분하심?  항상 현자인거처럼  댓글달던 사람인대
칼리S 18-03-18 11:10
   
일단 그 당시의 이동로를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이용해서 안주와 의주사이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167키로 36시간으로 나오는데, 전력을 다해 도주했으니 충분히 하루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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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뛰어갔다고 적어놓았으면서 태도를 급 바꾸시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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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킬로미터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36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한거는 구글맵상의 도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도주하는거니깐 167킬로미터를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건데 머가 이상하나? 뭘 태도를 바꾼다고? 도주해서 도착한 놈들이 보병이라고 생각하냐? 진짜 얼탱이가 없네. 기마병 중에서도 빠른 놈들만 도망갔으니 도망자 수가 얼마 안된거지 참. 초딩처럼 다 설명해줘야 하는지 참 이해력 개 후달리네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1:13
   
말장난은 집에서나 하세요~
     
감방친구 18-03-18 11:13
   
제발 주제를 알고 말을 끼어드세요
아는 건 거렁뱅이처럼 어디서 주서들은 귀동냥이 다인 사람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깝죽깝죽 개구리모냥 기웃거리네
          
칼리S 18-03-18 11:14
   
님이나 좀 주제를 아세요.

진짜 상식이 없는 분이네 ㅋㅋㅋ
               
감방친구 18-03-18 11:15
   
아휴 ㅎㅎㅎ
칼리S 18-03-18 11:12
   
소설도 머리가 되야 잘 씁니다.

멍청하게 소설을 쓰니깐 비웃음 당하는 것이죠. 애당초 역사로 소설을 쓸거면 머리를 잘 굴려서 좀 쓰세요. ㅋㅋㅋ
     
감방친구 18-03-18 11:14
   
댁은 댁 머리 어디다 뒀는지 얼릉 찾으슈
불쌍한 사람이네 어그로가 취미라니
          
칼리S 18-03-18 11:18
   
어그로가 취미가 아니라, 님이 머리가 나빠서 알려주는 거죠.

님은 상식이 매우 부족하다는게 님 글에서 뚝뚝 묻어 나오는거 모르나요? 진짜로? ㅋㅋㅋ

여기서 놀지 마시고, 부흥같은데 가서 한번 놀아보세요. 님이 제정신으로 평가받을까요?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1:19
   
그럴 시간에 삼국사기 한번이라도 정독하시는 게 훨씬 유익합니다~
삼국사기를 믿지 마 부흥을 믿어!
                    
칼리S 18-03-18 11:21
   
님은 역사 공부가 아니라, 국어랑 상식 공부 좀 하세요.

글을 해석도 못하는데 뭔 역사책을 읽습니까? ㅋㅋㅋ
               
감방친구 18-03-18 11:20
   
뭐가 이리 어그로 똥질이 끈질겨?
그 정성으로 밖에 나가서 박스나 줍든가
방구석에서 그러고 있질 말고

뭔 인간이 저렇게 한심스러워
                    
칼리S 18-03-18 11:22
   
님 수준에 맞게 상대해 드리는 거죠.

좀 깨시길 바랍니다. 부흥이 싫으시면 다른 좀 역사 위주의 토론 사이트 가셔서 님 글 평가를 받아 보세요. 바보 소리 듣기 딱 좋은 님 글들 말이에요 ㅋㅋㅋ
                         
감방친구 18-03-18 11:23
   
신경 끄고 여기서 꺼져
그 좋다는 부흥 가서 쿵짝 맞춰 각설이 품바 놀이나 하세요
               
감방친구 18-03-18 11:22
   
그리고 이 인간아, 내가 나이가 40이 넘었고
등단 작가고 이날까정 국어, 논술 가르치며 살아온 사람인데 어디서 상식을 운운하냐?
에휴 진짜
                    
남북통일 18-03-18 11:24
   
공자, 맹자라도 되나 보죠 ㅋㅋㅋㅋ
촐라롱콘 18-03-18 11:29
   
말타고 도주했건, 열나게 뛰어서 도주했건 살수~압록수 거리가 450리 거리라니...

대략 오늘날의 청천강~압록강 거리와 거의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군요....^^


[[가을두산(加乙頭山)【주(州) 동쪽에 있는데, 주인(州人)들이 진산(鎭山)으로 삼고 있다. 】대천(大川)은 청천강(淸川江)이다.【주성(州城) 북쪽을 둘러 있다. 예전에는 살수(薩水)라 일컬었으니, 곧 고구려 을지 문덕(乙支文德)이 수(隋)나라 장수 우문술(宇文述)·우중문(于仲文) 등 9 장군을 패퇴시킨 땅이다. 조준(趙浚)이 일찍이 시(詩)를 짓기를, "살수가 출렁출렁 푸른 하늘에 잠겼는데, 수병(隋兵) 백만이 고기가 되었구나. 지금도 아직 어초부(漁樵夫)의 이야기로 남아 있으나, 한갓 나그네의 웃음거리도 되지 못하네." 하였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개천(价川)에 이르기 25리, 서쪽으로 안융(安戎)에 이르기 37리, 남쪽으로 숙천(肅川)에 이르기 25리, 북쪽으로 박천(博川)에 이르기 2리이다.]]
 
출처 :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안주목
     
감방친구 18-03-18 11:33
   
그런데 그 세종실록에서는 고구려 평양이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한 건 모르세요?
          
촐라롱콘 18-03-18 11:50
   
그러니까 세종을 명군이라 칭할 만 하지요!

세종시기에 고구려도읍지가 평양인 것을 과거기록들을 상고해가며 정확히 밝혀냈으니....
               
남북통일 18-03-18 11:54
   
그랬다는 기록은 세종 실록에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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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고해 보면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도읍한 데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기 그 나라에 세운다면 될 것이다.”-세종실록 1427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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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를 하기는 했지만은, 정확한 위치를 찾은 건.........?
                    
촐라롱콘 18-03-18 12:02
   
고구려 시조가 도읍한 초기 고구려의 도읍지야 그 당시 조선땅에는 없으니

당연히 찾기가 어렵지요....!!!
                         
남북통일 18-03-18 12:05
   
백제의 초기 도읍지가 전주입니까?
                         
촐라롱콘 18-03-18 12:25
   
1. 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도 한성부(京都漢城府)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이니, 일명(一名) 북한산군(北漢山郡)이다. 백제근초고왕(近肖古王)이, 동진(東晉)간문제(簡文帝)함안(咸安) 2년(372) 임신에 남한산(南漢山)으로부터 와서 도읍을 정하여【남한산은 지금의 광주(廣州). 】1백 5년을 지내고, 문주왕(文周王)이 고구려의 난을 피하여 고마나루[熊津]001)로 옮겨 도읍하였고...]]


2.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본래 백제의 웅천(熊川)이다.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이 한성(漢城)에서 이곳으로 옮겨 도읍한 지 63년을 지나서, 26대 성왕(聖王)이 또 도읍을 남부여(南扶餘)로 옮기었는데, 당(唐)나라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더불어 백제를 평정하고는, 웅진 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고 군사를 머물러 두어 진압하였는데...]]


3.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부여현

[[본래 백제의 소부리군(所扶里郡)인데 26대 성왕(聖王)이 웅천(熊川)으로부터 와서 도읍하고 남부여(南扶餘)라 하였다. 1백 20년을 지나 31대 의자왕(義慈王) 때에 이르러, 당나라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더불어 이를 쳐서 차지했는데,【곧 현경(顯慶) 5년이다. 】당나라 군사가 돌아가매, 신라에서 백제의 옛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
.
.
실록이라는 것이 어전회의에서 오고간 대화를 죄다 기록해 놓은 것인데....

그거야 당시 어전회의 과정에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시조묘를 정하고 3국의 도읍지

관련 주제가 그날 즉흥적으로 나온 화제라면...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예조판서를 비롯하여

세종과 몇몇 신하들의 두뇌풀 속에서는 미쳐 몰랐던 사실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3국의 시조묘를 세우고 도읍지가 어디인지 찾는 과정이 예전부터 긴 시간을 두고

논의되었던 프로젝트에 가까운 업무라서... 예조판서 등이 온갖 기록을 죄다 찾다가 도저히

못 찾았기 때문에 세종 앞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면 수긍이 가겠지만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날 즉흥적으로 나온 주제라면 당시 예조판서를 포함한 왕과 신하들이

고구려, 백제 도읍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을 수도 있는 것이구요....!!!

오늘날처럼 키보드 자판 몇 번 두드리면 알고싶은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남북통일 18-03-18 12:27
   
제 말의 요지는
백제 초기 도읍지도 제대로 모르던 마당에
어찌 고구려 평양,졸본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느냐. 이 내용입니다
                    
촐라롱콘 18-03-18 13:04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평양부

[[본래 삼조선(三朝鮮)의 구도(舊都)이다. 당요(唐堯) 무진년에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아 평양에 도읍하고,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周)나라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손(孫) 준(準) 때에 이르러,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亡命)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準)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王儉城)【곧 평양부(平壤府)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衛滿朝鮮)이었다. 그 손자 우거(右渠)가 〈한나라의〉 조명(詔命)을 잘 받들지 아니하매, 한나라무제(武帝)원봉(元封) 2년에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쳐서,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의 4군(郡)으로 정하여 유주(幽州)에 예속시켰다.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에 이르기를, "현토와 낙랑은 본래 기자(箕子)를 봉한 곳인데, 소제(昭帝) 시원(始元) 원년에 임둔·낙랑으로써 동부 도호(東府都護)를 설치하였다." 하였고,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변한(卞韓)은 낙랑 땅에 있다." 하였다. 고구려장수왕 15년 정미【유송(劉宋) 태종(太宗) 원가(元嘉) 4년.】에 국내성(國內城)으로부터 평양으로 이도(移都)하였는데, 보장왕(寶藏王) 27년 무진【총장(摠章) 원년.】에 당나라고종(高宗)이 장수 이적(李勣)을 보내어 왕을 사로잡아 돌아가니, 나라가 멸망되고 신라에 통합되었다. 고려태조 원년 무인【양(梁)나라 말제(末帝) 정명(貞明) 4년.】에 평양이 황폐되어 있으므로, 염주(鹽州)·배주(白州)·황주(黃州)·해주(海州)·봉주(鳳州) 등 여러 고을 백성들을 옮겨서 그 땅을 실(實)하게 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를 삼았는데, 광종(光宗) 11년 경신【송나라 태조(太祖) 건륭(建隆) 원년.】에 서도(西都)로 고치고, 목종(穆宗) 원년 무술【송나라 진종(眞宗) 함평(咸平) 원년.】에 또 호경(鎬京)으로 고쳤다가, 문종(文宗) 16년 임인【송나라 인종(仁宗) 가우(嘉祐) 7년. 】서경 유수관(西京留守官)으로 고쳐서 경기(京畿)의 4도(道)를 두었고, 숙종(肅宗) 7년 임오【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원년.】에 문무반(文武班) 및 오부(五部)를 두었다. 인종(仁宗) 13년 을묘【송나라 고종(高宗) 소흥(紹興) 원년.】에 서경(西京)의 중[僧] 묘청(妙淸)과 유참(柳旵) 및 분사 시랑(分司侍郞) 조광(趙匡) 등이 모반(謀叛)하여, 군사를 보내어 절령도(岊嶺道)를 끊고 국호(國號)를 대위(大爲), 연호(年號)를 천개(天開)라 하며, 모든 관료(官僚)를 두고, 그 군사를 ‘천견충의(天遣忠義)’라 하니, 이에 원수(元帥) 김부식(金富軾) 등을 명하여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가서 이를 토평(討平)하고, 유수(留守)·감군(監軍)·분사(分司)·어사(御史)를 제외한 모든 관반(官班)을 없애고, 또 경기(京畿)의 4도(道)를 삭제하였다. 원종(元宗) 10년 기사【송나라 도종(度宗) 함순(咸淳) 5년.】에 서북면 병마사 영기관(西北面兵馬使營記官) 최탄(崔坦)과 삼화 교위(三和校尉) 이연령(李延齡) 등이 난(亂)을 일으키어 서경(西京) 및 여러 성(城)을 가지고 몽고(蒙古)에 붙으니, 원(元)나라에서 서경을 동녕부(東寧府)로 삼아 관리를 두었다가,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원나라 지원(至元) 27년.】에 원나라에서 서경과 여러 성(城)을 도로 우리 나라에 돌려주었으므로, 다시 서경 유수관(西京留守官)으로 삼았다. 공민왕(恭愍王) 18년 기유【명나라 태조(太祖) 홍무(洪武) 2년.】에 만호부(萬戶府)를 서경에 두고, 좌익(左翼)·우익(右翼)·전군(前軍)·후군(後軍)·정예(精銳)·정의(精毅)·충의(忠義)·충성(忠誠)·신첨(新僉)·신성(新成) 등 10군(軍)을 두어, 각기 상·부천호(上副千戶)를 두었다가, 뒤에 평양부로 고쳤다.]]
     
남북통일 18-03-18 11:35
   
조선시대에는 광개토대왕릉비를 금황제묘비라고 할 정도였어요.......
     
꼬마러브 18-03-18 20:22
   
세종실록지리지는 고구려 건국 약 1500 여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책입니다.

다시 말해, 고구려의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서는 가치가 낮습니다. 1차사료가 아니라... 그냥 참고용이죠.

사료 가치의 경중을 구분하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인데... 많은 분들이 이것을 쉽게 빼먹습니다.
신수무량 18-03-18 11:53
   
옳바른 생각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봅시다.
유사역사학(자)이니 환빠나 국뽀이니 이런 단어 쓰는 사람치고 생각이 재 옳바른 사람 못봤음...가짜역사학자(=그 뿌리가 식민사학에 기반을 둔 BD SH의 후학들과 그 추종자들이죠...이도 아닌사람들은 적발이와 장개무리들이고..)들이 판을 치니 그 추종하는 부류들도 설치는 현실. 여기도 몇몇있는거 같은데 정신차립시다. 
우길필요도 없고 본인의 주장하는 바를 근거를 대고 주장하면 누가 머라하나요?  유사역사학이니 국뽕이니 이런 말 필요없습니다.
도데체 우리나라역사계에서 식민사학의 때와 지나애들에 대한 사대주의적 생각은 언제 바뀌려나...
지금같은 역사를 우리 자식들/후손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고 싶을까...
주위의 못된 역사도둑들은 자신들 역사도 아닌데도 지네들거라 우기는게 현실인데...
     
촐라롱콘 18-03-18 13:48
   
[[지금같은 역사를 우리 자식들/후손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고 싶을까...]]....???
.
.
지금 배우고 있는 우리 역사가 어때서요....???

역사상 잘 나갔던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오늘날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현실에서

수많은 외침과 시련을 극복하고 적어도 수 천년 동안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나가는 것도 모라자

오늘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가 자랑스럽지 않다니요....??? 

오히려 우리민족이 수 천년 동안 터를 잡아온 한반도를 완전 보잘것없는 젓같은 동네로

전락시키고, 만주와 중원에 더욱 마음이 가 있는 이들이야말로 장차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단초를 제공하는 행위일 거라고 생각되는데......
          
꼬마러브 18-03-18 20:32
   
자랑스러워 할 필요도 없고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긍정도 비관도 아닌 진실입니다.

우리는 그저 사실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신수무량 18-03-18 22:49
   
말뜻을 못알아들으시나 아님 알면서 그러시나...그 식민사학의 때를 씻으라니까 그러시네요.
지금 만들어진 애들이 배우고 있는 우리역사책이 잘 만들어졌나요?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래서 수많은 외침 잘막고 착하게 한반도내에서 꿋꿋하게 잘 지키며 이어왔다?
누가 한반도를 머같이 보나요? 누굽니까?
역사를 바로 알 생각은 안하고 기존 식민사학자(가짜사학자들 역사매국노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에서 조그만 벗어나도 달려드는 무리들이 옳바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해한다 18-03-18 13:20
   
칼리 s님의 주장이 편협하신거 같습니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들입니다. 해석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근거에 대해선 내버려 두십시오. 논리적으로 아닌 글은 반박하시면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이번 댓글에서는 탐문심을 억제하고자 하는것이 보이는 군요.  칼리 s 님의 역사에 대한 탐문은 무엇입니까? 진실을 찾는 겁니까? 아니면 본인이 배운바를 전파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현재 알고 있는 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함입니까? 우리의 역사는 엄청 손상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알고 있는 역사가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근거가 있다면 탐문해야만하며 검증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과정과 결과물은 미래의 우리 후손들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에 탐문심을 떨어트리는 언행은 저는 용납 할 수 없습니다.
이해한다 18-03-18 13:26
   
훗날 우리나라가 강성해지는 흥하는 시기에 이 탐문한 자료들은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문심을 가지신 분들을 저는 응원하겠습니다.
이해한다 18-03-18 13:33
   
참고로 우리가 배운 역사가 손상되었으며 왜곡되었다라고 주장하게된 근거는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조선편수사에 의해서입니다.
history2 18-03-19 01:51
   
너무 인기글이라,,,,글 한번 남깁니다...성지순례 하는 마음으로 정독했습니다...단 2일 안들어 왔을 뿐 인데....
마그리트 18-03-19 07:32
   
고구려가 은의 후예라 ㅎㅎ
차마 동이족이 명시되어 있는
모든 사서를 갈아치울 순 없고
궁색하네
구름위하늘 18-03-19 18:25
   
중국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중국에 유리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지...
언급한 부사년이 누군지는 덕분에 알게되었지만,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고 히틀러가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잖소?
정치가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풀어서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만드는 것이죠.

우리것으로 남은 역사서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
외국 역사서 상의 기록과 외국땅에 있는 유물로 얻어진 이야기를 걸러서 들어야죠.
다큐멘터리도 걸러서 이해해야 하는데,
하물며 외국사람의 견해라면 ...

나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겠다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함.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생각을 조금 다시할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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