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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0 19:47
[한국사] 신라 석씨왕조의 몰락과 각종 설들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638  

석씨 왕조의 몰락 
  
신라의 초대 왕통을 열었고주로 왕비가문으로서 신라 말에 다시 왕을 배출한 박씨와 내물왕 이후 왕위를 독점한 김씨에 비해서석씨는 승승 장구 한 시절이 있었지만유례이사금 시절부터점차 구도계 김씨(미추왕의 아버지)들에게 밀리더니두 대를 더 못가고 흘해이사금을 마지막으로역사의 무대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고현재 월설 석씨는 한국의 희귀성씨가 되었을 정도로 세가 미미하다.
왕족이었으며신라를 반석에 올려 놓았지만사라져 버린 석씨에게 무슨일이 생긴것일까? 석씨시대 왜를 정벌하고 포상팔국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기백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포상팔국의 난.jpg
                           포상팔국의 전쟁을 지휘한 석우로 장군(이매계) 

1. 석씨 왕실의 몰락
  
흘해이사금이 석씨 왕실의 마지막 왕으로이후 석씨 왕실은 석씨 어머니를 둔 실성 마립간을 제외하고는 신라 왕계와 중앙의 기록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게 된다더 먼저 왕위 계승에서 빠져버린 박씨 왕실은 이후에도 왕비를 배출하고, 아주 오랜 후에는 잠깐이나마 다시 왕위에도 오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볼 수 있겠다석씨 왕실의 몰락에 관해서는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2. 족내혼으로 인한 몰락설 
  
석씨가 이렇게 몰락하게 된 데에는 족내혼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혁거세거서간부터 시작하는신라 개국시부터 존재했던 박씨와는 달리석씨는 석탈해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동해 바다 건너 외부에서 온 세력들이었고 묘하게도 석씨는 족외 와 혼인을 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던 것인지아니면 배타성이 강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같은 석씨 근친끼리 혼인하는 족내혼이 잦았다
실제로 석씨 출신 왕인 내해 이사금도 같은 석씨를 왕비로 들인 기록이 있다이런 근친혼의 누적 부작용으로 결국 석씨들의 자손 단절로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이다석씨 왕실의 왕통이 자주 단절되곤 했던 것도 이런 족내혼에 의한 자손 단절의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이는 비슷하게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인 김씨가 개국시부터 존재했던 토착 세력인 박씨와 혼인 관계를 통해 세력을 확장한 것과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자손이 자주 단절된 탓에 세력이 약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씨에게 권력을 내줄수밖에 없었던 것이 석씨 몰락의 이유라는 추정이다비슷하게 나중에 김씨 왕가의 성골 혈통의 단절도 진골을 배제하기 위해 근친혼을 계속하다가 결국 자손 단절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3. 이매계(석우로)와 
골정계(첨해왕)과대립설
  
두 번째는 바로 석씨 내부 왕실 계통의 대립 때문이라는 것이다.
석씨 집단은 9대 벌휴 이사금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왕실 내에 a)장남 골정 계열(骨正)과 b)차남 이매 계열(伊買)로 분화되었다. a)골정계는 상대적으로 석씨뿐만 아니라 박씨김씨와 개방적으로 혼인 관계를 맺은 집단이며, b)이매계는 석씨 족내에서만 폐쇄적인 혼인 정책을 추구했다이 두 집단은 벌휴 이사금 시기부터 대립적인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벌휴 다음인 내해 이사금은 일단 차남 이매계였으나그 다음의 조분 이사금부터는 장남 골정계가 왕위를 독점했다
두 집단의 정치적 대립은 이매계 핵심 세력인 석우로(昔于老)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석우로가 일본인들에 의해 화형당해 끔찍하게 살해당할 때 당시 왕이었던 첨해이사금은 이미 김구도 계열 김씨(미추왕)와 정치적 연합을 맺어 석우로가 왜군에게 죽임당하는 것을 방관하였다
  
석우로의 죽음으로 이후 이매계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기에 이른다우로의 죽음은 당시 권력 구조를 골정계 중심으로 재편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정치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던 구도계 김씨의 정치 세력을 급격히 확대하는 발판이 된다그로 인해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 이사금이 뒤를 이어 왕위에 이르는데미추는 바로 구도계 김씨이다.
물론 미추는 일단 석씨의 사위 신분으로 왕위를 이은 것이라 미추 사후에는 다시 석씨 집단이 일단 왕위를 잇지만이미 김씨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나라를 이끌 수 없는 상태였음이 여러 사례에서 등장하며(유례이사금), 계속해서 군사적경제적으로 성장한 구도계 김씨의 입김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뒤 구도계 김씨(내물왕)가 고구려와도 손을 잡고뒤로 밀려난 박씨 집단과는 혼인 정책으로 연합 상태를 이루게 되었으니 석씨 집단은 결국 역사의 흐름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4. 반론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 설 모두 맞지 않는 것이 많다
우선 족내혼으로 인한 몰락의 경우 당장에 석씨 왕실을 열었던 벌휴 이사금의 어머니가 김씨이다이미 여기서부터 석씨 왕실이 족내혼으로 이어온 집안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후에도 벌휴 이사금의 두 태자 골정과 이매의 부인도 죄다 석씨가 아닌 다른 성씨다우선 골정의 부인은 구도의 딸 김씨이고이매의 부인은 내례부인으로 지마 이사금의 딸로 추정되므로 박씨다이후 내해 이사금의 경우 골정의 딸과 결혼했고조분 이사금은 내해 이사금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족내혼이 되지만조분 이사금의 경우 박씨 성의 부인이 따로 또 존재한다첨해 이사금 이후 석씨 왕실의 왕들의 부인기록은 남겨져 있지 않다다만 미추 이사금 사후에 오른 석씨 왕들은 선왕의 사위가 왕위에 오른다는 관습에 비추어보면 전부 미추 이사금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씨 성의 부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한마디로 석씨 왕실의 족내혼은 실상을 뒤져보면 그다지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오히려 이후에 김씨 왕실에서 족내혼이 꽤나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맞지 않는다.
  
두 번째 설인 골정계와 이매계의 대립도 당시 신라 왕실의 계승 원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설이다무엇보다도 조분 이사금은 골정계 신분이지만, 이매계의 사위 신분으로 왕위에 올랐다즉 위에서 말하는 설명 자체의 하나가 이미 망가진다두 번째로 석우로와 미추는 모두 조분 이사금의 사위 신분에 있었다한마디로 구도계 김씨인 미추는, 이매계 사위로 즉위가 가능했슴으로, 굳이 골정계와 손을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즉 석우로가 아니더라도 미추(우로나 미추 모두 이매계, 미추는 김씨)가 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첨해가 왕위에 오를 경우, 미추의 왕위 계승은 어려워진다그래서 첨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미추가 관여했다는 것이 높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미추의 반정/쿠데타설) 
  
즉 위에서 나온 두 가지 설보다는 이미 미추의 즉위로 김씨 가문이 강해진 상황에서 미추의 사위 신분으로 왕위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후대의 석씨 왕들이 제대로 된 세력 확장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김씨 가문에게 왕위를 내줬다는 해석이 더 맞다고 본다
그리고 석씨 왕실이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자신 세력의 피가 섞인 실성이 내물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지만이후 눌지가 실성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서 석씨 왕실도 같이 몰락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a) 이매계 석우로에 대하여
  
석우로는 10대 내해왕의 아들로서 조분왕의 시대에는 태자의 자리에 있었다.
내해왕의 유언에 따라 석우로를 대신하여 왕이 된 조분왕은 석우로를 태자로 삼아 다음 왕위를 이을 수 있게 하였다때문에 원래는 조분왕의 뒤를 이어 이매계인 석우로가 왕이 되어야 했지만, 골정계인 조분왕의 아우인 첨해왕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230년 3월에 왕위에 오른 조분왕은 7월에 내해왕의 태자였던 석우로를 이찬에 임명하고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경북 김천시 개령토벌을 명한다우로는 감문국을 무너뜨리고 그 땅을 속군으로 만들어 신라 땅으로 만들었다이에 가야와 관계가 깊던 왜군이 231년 4월에 금성으로 쳐들어고신라는 간신히 이를 막아냈고 왜군은 병력 1천여명을 잃고 퇴각한다하지만 232년 5월에 왜군이 다시 쳐들어 온다조분왕은 우로를 앞세워 왜군을 대적하게 했는데 우로는 바람과 화공을 이용하여 두 달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던 싸움을 대승으로 이끌었고 왜군은 전함을 모두 잃고 전 병력이 몰사했다.
  
이 싸움 이후 왜 왕은 함부로 군대를 동원하지 못했다. 244년 조분왕은 석우로를 재상격인 서불한에 임명하고 병사를 겸하게 한다.
이에 신라군은 북진정책을 펼쳐서 245년에는 북한강을 건너 칠중하(임진강근처까지 이르게 된다이에 고구려의 동천왕은 그해 10월에 군대를 파견하여 신라를 공격했고 우로가 군대를 지휘하여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마침 위나라가 관구검을 앞세워 평양으로 쳐들어 올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면서 전선은 교착상태로 빠져든다그런 와중인 245년 5월에 조분왕이 승하한다.
  
조분왕 사후 원래 석우로가 왕위를 승계했어야 하나왕위를 이은 첨해왕은 석우로나 미추보다도 오히려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으나석연찮은 이유로 왕위에 오른다(그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첨해왕은 외교에 있어서도 조분왕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고구려에 사진을 보내 화친을 맺었고 왜와도 화친관계를 맺게 된다
  
b) 골정계 첨해 이사금에 대하여)

 재위기간은 247년부터 261년까지이다일명 이해(理解점해(詀解)라고도 한다조분이사금의 동모제(同母弟)아버지는 골정(骨正)이고어머니는 옥모부인(玉帽夫人)이다즉위년(247)에 아버지 골정을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에 봉하였다따라서, 첨해이사금의 즉위를 형제상속으로 보기도 하고골정계(骨正系)의 독립이라는 점에서 가계내의 계승으로 보기도 한다. 248년 고구려와 화의를 맺었고, 255년 백제가 봉산성(烽山城 지금의 경상북도 榮州로 추정됨)을 공격해 왔으나 이를 빼앗기지 않았다.
  
한편영토의 확장에 노력하여달벌성(達伐城 지금의 大邱)을 쌓았으며 사벌국(沙伐國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을 점령하였다그리하여 이때에 이르러 사로국(斯盧國)은 진한의 전지역을 통일하였다. 261년 12월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이에 당시 국정을 맡고 있던 석우로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왜 왕을 모독하는 이런 욕설을 하게된다.
  
"조만간에 너희 국왕(왜 왕)을 염전의 노비로 만들고왕비는 찬부(식모)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석우로의 말이 왜국 사신의 귀에 들어가면서 왜와 신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고 왜 왕이 군대를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하게 된다이에 첨해왕은 석우로로 하여금 왜군 장수 우도주군을 찾아가 사과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왜장 우도는 석우로를 화형시킨 뒤 본국으로 귀국한다석우로가 비록 말실수를 하긴 했으나 한 나라의 왕족이요 재상인 그가 화형 당했음에도첨해왕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때문에 첨해왕은 왕실과 백성들로부터 큰 원망을 듣게 된다.
  
이런 첨해왕이 갑자기 죽은 이후(반정으로 죽은 듯 함조분왕의 사위인 김씨 미추왕이 왕이 되게 된다미추왕은 석우로와 함께 조분왕의 사위였기 때문에 평소에도 친한 사이였을 것으로 보여진다미추왕의 시대에는 266년 8월에 백제가 봉산성을 급습해 왔으나 성주 직선이 2백 명의 군사로 물리친다. 274년에도 백제가 신라 변경을 침입해 왔고 278년에는 신라의 전초 기지인 괴곡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성과없이 물러가게 된다.
  
283년 9월에 다시 변경을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고, 10월에는 괴곡성을 포위하였다가 물러가게 된다석우로가 왜군에게 화형당해 죽은 이후 석우로의 부인 명원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미추왕이 즉위한 뒤 왜국에서 사신을 보내왔는데 우로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그녀는 미추왕에게 청하여 왜국 사신을 개인적으로 대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다미추왕이 승낙하자그녀는 왜국 사신들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다음부리고 있던 장사를 시켜 그를 뜰에 내려놓고 태워 죽이도록 하였다.
  
이 일로 왜인들이 분개하여 금성에 침입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나왜군은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5. 결론 

결국, 석씨는 골정계와 이매계의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려던 김미추가 어느쪽에 힘을 주었느냐로, 서로간의 승/패가 나뉘게 되는 상황이었고, 김미추는 골정계와 이매계 두 쪽 모두와 팽팽히 접촉하며 결국 이매계로 대표되는 석우로를 골정계왕 첨해를 통해 제거했고, 첨해는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하여 골정계 조차도 굴복시켰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미추가 조분의 사위의 신분으로 왕이 되었기에 유례이사금 이후 두세대를 기다려야 했지만, 국정의 주요 키는 김씨가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석씨는 내분과 혈연의 단절이라는 두가지를 모두 잃고, 내물마립간 이후 김씨왕조 성립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거기다, 김씨 사이의 내전인 실성-눌지간의 전쟁에 끼어들다, 결국 실성계로 몰려 실성왕 세력과 함께 멸문 당한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석우로.jpg
                                                    삼국사기 석우로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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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키 18-03-20 20:33
   
신라사 중 제일 말도 안되는 주장중 하나가 박 석 김씨 세왕조가 돌아가면서 했다는 건데
고대사에서 여러왕족이 돌려가며 해먹는 건 유래가 없는 헛소리중 하나죠.
신라는 박씨 집안이 세운 왕조이고 외래세력이었던 석탈해나 김알지는 그들의 힘 덕분에
박씨 왕조에 낑겨 합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왕족의 상황에 따라 순번이 돌아와서 석씨와 김씨도 왕이 될수 있었겠죠.
후반엔 박석의 혈통이 근친이던 내부경쟁으로 인해 몰락하면서 김씨가 쭉 이어 간 것일 테고요.
history2 18-03-20 20:41
   
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미추가 석씨의 마지막 순간에 국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양면작전을 잘 썼고, 석씨는 나름대로 내분과 근친혼으로 자멸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6시내고환 18-03-26 20:47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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