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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1 08:59
[한국사] 낙랑군 지도
 글쓴이 : 삼바
조회 : 1,911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요즘에도 서북한에 낙랑군을 그린 지도가 있던데, 대부분의 지도는 사서 몇줄만 봐도 지도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패수는 한서에는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되어 있지만 설해문자에는 동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고, 수경도 동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옛날에 그린 중국측 지도의 약점들이 요즘엔 아무나 확인 해볼수가 있지요..
만리장성의 끝 갈석산이 진황도시 서쪽 난하의 하류에 있습니다.
그러면 갈석산이 북한에 있을수도 없고 만리장성이 북한에 있지도 않겠지요????
중국이 연구한 한대의 지명을 다 부정할수도 없고 명확한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서북한은 낙랑군 지역이 아니고 낙랑국이 됩니다.
한나라가 낙랑군을 병합하기 전에는 난하지역이 요동지역입니다.
이거 착각하면 안되지요.
한나라가 낙랑군 병합이전에 난하지역이 요동이고, 그이후 요동군은 요하지역으로 됩니다.
그런데 사가들의 일부는 사기의 내용대로 인식합니다.
요동군의 동쪽에 낙랑군이 있다고 여전히 믿는 일부사가들은 낙랑국 지역이 옛날 고조선의 중심부로 생각했죠? 
그런면 정말 난하가 고대 요동 이였던 근거가 있느냐만 보면 간단할건데, 사관이 게입되면 근거가 있던 말건 평양이 낙랑군이라고 주장을 하지요?
우선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나하 하류 동쪽 갈석산입니다.
사기 진시황본기 이세황제의 신하들이 갈석산에 다시 다녀오는데, 요동이라 되어 있고.
사기에 한고조의 사당이 요동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한서지리지 시대에는요동에 한고조의 사당이 당연히 없고 요서에 있게됩니다. 요동은 요동군이 설치된곳이 요동이 되고, 요동군이 설치된곳의 강이 요수가 됩니다.
송나라 지도에는 요동군이 역수에 있어서, 역수를 요수라 하고 있지요(역수가 고대 요수라 주장한 대부분의 근거는 송나라 시대) 
낙랑군은 사서에 다 요동에 있다고 되어 있는 이유는, 당연히 요동군이 고조선 지역에 다시 설치되어 그런것입니다. 사기에는 한고조의 사당이 요동에 있었는데, 한서지리지에는 요동군은 고조선 지역에 설치되고, 요서군의 군치 차려현에 한고조의 사당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서 지리지 이전에는 요서군의 군치 차려현이 요동군의 군치 양평현이 됩니다.
유주5군.jpg
https://blog.naver.com/joymug/220297889744
이렇게 낙랑군이 요동군과 요서군의 사이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11년에 부여가 낙랑군 공격.
118년에 고구려가 현도와 화려를 공격
모든 사서에 낙랑군은 요동에 라고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위 지도 장난삼아 그린 지도 아닙니다. 
-------------------------------
위의 지도는 아무나 사용할수 있습니다. 공개된 지도입니다. 저작권 없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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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21 09:04
   
요서군의 군치 차려현에 한고조의 사당이 있습니다.
=> 한고조 사당이 있는 곳이 경사(서안)인데... 추가로 존재하는 곳이 요동군  맞습니다.

위씨조선 정벌 이후에
요서군 차려현에 한고조의 사당이 있으니... 전한의 요서군을 옛 요동군으로 해석이 가능하죠.
     
삼바 18-03-21 11:09
   
도배시러님도 역사에 밝으시니, 요서군 유성현에 대하여 검토 해보십시요.
유성현은 난하와 만리장성이 만나는 동쪽지역입니다.
이 유성현이 대릉하에 있다고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 수경주를 만든 역도원인데, 역도원의 유성현 주장은 오류가 가득합니다.
조조가 오환을 정벌하는데 무제기에는 노룡새에서 백단이 500리라고 나와있는데, 역도원은 이것이 잘못 되였다면서 조양에 유성이 있으니 노룡새에서 유성이 500리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우리 학자들은 검증없이 그대로 믿지요.
위서 지형지를 보면
기양군 유성현-------이 유성현이 본래 한나라 유성현임
창려군 용성현에 유성----이 유성현은 477년에 기양군을 창려군에 병합하면서 용성현 안에 교치한 유성(현 아님)
그런데 그 후 역도원은 교치된 창려군 용성현의 유성을 한나라 유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요류이지요.
한나라 유성현은 무제기에 조조가 오환 정벌때 간 유성이 맞고 무제기 내용이 맞습니다.
역도원은 후대에 북위가 조양에 교치한 유성을 한나라 유성이라 주장한것 뿐입니다.
          
도배시러 18-03-21 18:17
   
조양에는 영주 유성군이 없습니다.
당나라 영주, 사주가 있는데.... 조양에서 사주자사의 딸 묘비가 발견되었죠.
게다가 중국사학자들은 조양이 거란거주지역으로 알고있는 상태이며,
한일 사학자들이 조양을 영주로 우기는 현실이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칼리S 18-03-21 13:31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 신라의 초창기 기록들을 보면 낙랑과 싸우는 일들이 있죠.

백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신라가 그들과 접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까요? 최리의 낙랑국이다?

그렇다면 300년에 기림이사금 시절 낙랑과 대방이 歸服했다고 나오는데, 이는 또 어찌 설명할까요? 설마 경주의 찬란한 유물유적 무시하고, 신라도 한반도 북부 만주로 이동시킬건가요? ㅋㅋㅋ.
     
꼬마러브 18-03-21 13:55
   
낙랑국과 대방국으로 봐야죠.

당시 중국에서는 한반도에 백제나 신라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어요.

중국 사서에서 "백제"라는 나라가 등장하는 처음의 것이 바로 <진서>입니다. 근초고왕 때이죠.

근초고왕 이전에는 중국 사서에 백제가 등장하지 않아요.

신라 역시 <삼국지>에 진한의 소국 중 사로국이 있다... 이 정도만 적혀있지, "신라"라는 나라가 중국 사서에 대대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삼국시대 후기에 이르러서 입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칼리S님이 제시하신 기록에 나오는, "낙랑"과 "대방"이 중국의 낙랑군과 대방군이라고 한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중국 사서에서 낙랑군과 대방군이 백제나 신라와 충돌했다는 기록을 제시하면 되는 거에요. 교차검증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중국 사서에는 백제, 신라와 충돌하기는 커녕 존재 자체가 언급되지를 않습니다.

즉, 중국의 낙랑군 대방군과는 별개의 낙랑국 대방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삼국사기>에서는 낙랑왕, 대방왕 이런 식으로 나와있습니다. 심지어 백제는 대방왕의 딸과 결혼하여 동맹까지 맺어요.

중국 군현의 태수가, "왕"을 칭하고 외국과 "혼인동맹"을 맺을 수 있나요?

상식이 있다면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칼리s님이 말씀하신, 가림이사금 때 낙랑과 대방이 歸服하였다는 기록이요.

그 기록의 전문이 이거에요.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두 나라가 항복하였다.
樂浪帶方兩國歸服

<삼국사기>에서는 낙랑과 대방을 군현이 아니라 "나라"로 보고 있단 말입니다.
          
칼리S 18-03-21 14:17
   
낙랑국에 이어 대방국인가요?

삼국사기에서 낙랑이 신라와 부딪쳐서 싸우는데, 왜 신라라는 명칭이 필요한가요? 어차피 중국 입장에서 쓴 것도 아니고, 신라 입장에서 낙랑 대방과 엮인거죠.

중국 정사에서 아주 변방 낙랑 대방이 신라 백제와 소규모 접전을 하는것까지 다 적을까요?

당연히 신라나 백제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한 것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아주 극미한 일이죠.

대방군이라는 것도 요동 공손씨가 만들었는데, 이걸 국으로 바꿔버리면 그냥 말장난이죠.

대방국은 그럼 어떤 존재인가요? 그럼 님 말대로면 낙랑국이나 대방국도 중국 사서에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요?
               
꼬마러브 18-03-21 14:21
   
낙랑군과 대방군은 요서에
낙랑국과 대방국은 각각 평양과 황해도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이죠.

백제와 신라도 삼국시대 후기에 들어서야 중국 사서에 나옵니다.

낙랑국과 대방국을 중국 사서에서 찾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칼리S 18-03-21 14:40
   
낙랑군, 대방군은 요서에 낙랑국, 대방국은 현 통설의 낙랑군, 대방군 지역을 차지한 국가란 게 님의 의견이죠?

그리고 낙랑국과 대방국은 중국 사서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도 말이죠.

그런데 일단, 삼국사기와 더불어 그 시대를 보는데 가장 중요한 사서중의 하나가 진수가 쓴 삼국지(그 중에서 위서의 동이전)죠.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대방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진수가 몰랐다면 못 썼겠지만, 대방은 후한 공손씨가 만들었기에 당연히 진수도 아는거죠.

위서 동이전을 보면 한에 여러 소국들이 열거됩니다. 이럴진대, 낙랑국이나 대방국이라는 큰 국가(韓의 소국들보다)는 빼고 썼을까요?
                         
꼬마러브 18-03-21 14:50
   
<삼국지>가 편찬된 시대 상황을 봐야죠. <삼국지>는 낙랑국이 고구려에 의해 종속된 이후에 만들어진 사서입니다.

그리고 중국 사서에서 낙랑국과 대방국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제 실언이네요. 정정합니다.
                         
밥밥c 18-03-21 16:14
   
위지동이전을 읽어 본 적이 있기는 한가요?

위지동이전에서는 대방군에서 삼한의 끝자락까지 해안으로 7천리를 이동한다고 적혀있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7959
                    
도배시러 18-03-21 18:15
   
삼국사(기)의 낙랑 대방의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것으로볼때
낙랑군... 낙랑국이 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상존합니다.
     
신수무량 18-03-21 14:02
   
이 논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다른 나라들보다도 유독 낙랑이 신라를 괴롭혔던 것으로 기록된 이유를 신라와 고조선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신라본기에서 낙랑의 신라 침입 기사는 일반적인 전쟁 기사와 달리 약간 특이한 점을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신라는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조선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낙랑을 끌어들여 신라의 국가 이미지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 낙랑에서 신라를 침공한 주체는 낙랑(樂浪)태수로 보기 어렵고, 낙랑국왕이었다. 실제 『삼국사기』 신라본기도 고구려에 멸망한 낙랑국 유민이 신라로 투항해 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낙랑이라는 이름은 위만조선 시기부터 있었는데, 낙랑의 실체와 관련하여 『한서』 지리지 분야조의 현도·낙랑군 지역에 대한 소개 기록이 주목된다. 여기에 보면 기자에 대한 내용은 풍부한 반면 위만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것은 기자와 관련 있는 원(原)고조선 세력이 위만조선을 자신들의 역사로 보지 않았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사기』 조선열전에는 기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위만조선과 원고조선 세력을 구분해서 보아야 함을 시사한다. 위만은 고조선의 서계에서 세력을 키워 고조선을 복속하였는데, 위만에 패한 고조선 세력은 위만조선에 융합되어 정체성을 잃었던 것이 아니라 현(縣)급 수준으로 규모가 축소된 상태에서 별도의 지역에 거주하였다. 이들은 위만조선 시기에 위만조선의 ‘조선’과 구별하여 낙랑 또는 낙랑조선으로 불렸으며, 한의 군현 설치 이후에도 국가를 유지하였다. 진(秦)의 역을 피해 내려왔다는 점, ‘國’ 대신 ‘邦’을 사용하였다는 점, 연(燕) 지역에서 피난해 왔다는 점 등은 결국 신라를 세운 조선 유민은 위만조선계임을 의미한다. 즉 신라는 위만조선과 관련 있으며 신라를 괴롭힌 낙랑은 원고조선 세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은 원고조선 세력인 낙랑을 끌어들여 위만조선계가 세운 신라는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 도가 행해지는 나라임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http://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406889

어릴때 들었던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는 어디갔는가? 살아와서 증언 좀 해 주시면 좋겠구만...
호랭이해 18-03-21 15:06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東沃沮)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닷가에 연해 산다. 지형은 동북간이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는 된다. 북쪽은 읍루( 婁), 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해 있다. 호수는 5천 호이다. 대군장이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將帥)가 있다. 그들의 말은 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것도 있다. 한나라 초에 연의 망명자 위만이 조선왕이 되면서 옥저는 모두 복속하게 되었다. 한 무제 원봉 2년(기원전 109)에 조선을 정벌하여 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4군을 설치하였다.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 뒤에 이(夷), 맥(貊)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 지금의 이른바 현도 고부(故府)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 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單單大領)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東部都尉)를 설치하였다. 불내성(不耐城)에 치소를 두어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 옥저도 모두 현이 되었다. 건무(후한 광무제 연호) 6년(30년)에 변경의 군을 줄였는데, 도위도 이때 폐지되었다. 그 후부터 현에 있던 우리머리(渠帥)로 모두 현후(縣侯)를 삼았다. 불내, 화려(華麗), 옥저 등의 모든 현은 전부 후국이 되었다. 이들 이적(夷狄: 오랑캐)들은 서로 침공하며 싸웠다. 오직 불내예후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조(功曹), 주부 등의 제조(諸曹)를 두었는데, 예인(濊人)이 모두 차지하였다. 옥저 여러 읍락의 우두머리들은 스스로를 삼로(三老)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옛 현이었을 때 제도이다. 
 나라가 작아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에 신속(臣屬)케 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 대인(大人)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大加)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 하여 맥(貊), 포(布), 어(魚), 염(鹽), 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 나르게 하였다.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동옥저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병 전투를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 예절은 구려와 비슷하다.

 위략 : 그 나라의 혼인하는 풍속은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 신랑집에서 맞이하여 장성하도록 길러 아내를 삼는다. 성인이 되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여자의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하는데, 돈을 지불한 후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장례를 치를 때에 큰 나무 곽(槨 : 덧널)을 만든다. 길이가 10여 장이나 되며 한쪽 머리를 열어 놓아 문을 만든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모두 가매장을 하는데, 겨우 형체가 덮일 만큼 묻었다가 가죽과 살이 다 썩은 다음에 뼈만 추려 곽속에 안치한다. 온 가족을 모두 하나의 곽속에 넣어 두는데, 죽은 사람이 숫자대로 살아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나무에 모양을 새긴다. 또 질솥에 쌀을 담아서 곽문 곁에다 엮어 매단다.

관구검이 구려를 토벌할 때 구려왕 궁(동천왕을 말함)이 옥저로 달아났다. 군대를 진격시켜 공격해 옥저의 읍락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3천여 급을 목베거나 포로로 사로잡았다.  궁은 북옥저로 달아났다.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置溝婁)라고도 한다. 남옥저와는 8백여 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풍속은 남북이 서로 같으며 읍루와 접해 있다. 읍루는 배고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그들을 두려워한다. 여름철에는 언제나 깊은 산골짜기의 바위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않아야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서 산다. 

 왕기(王 )가 별도로 군대를 보내 궁을 추격, 동쪽 경계 끝까지 갔다. 그 곳의 사는 노인에게 물었다. " 바다 동쪽에 또 사람이 사느냐" 노인이 대답하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느날 배를 타고 동쪽으로 흘러가 한 섬에 도착하였다. 그 섬위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습속은 해마다 7월에 동녀(童女)를 구해 바다에 집어넣는다." 또 말하였다. "바다 가운데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순전히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 또 말하였다. "바다 가운데 떠올라 있는 베옷 입은 사람을 건졌다. 그 시체는 마치 중국사람 같고 입은 옷의 두 소매 길이가 3장(丈)이었다. 또 난파되어 해안에 밀려온 배 한 척을 잡으니 그 배에 있는 사람의 목 부분에 또 얼굴이 있었다. 사로잡아 말을 걸어 보았으나 서로 통하지 않았고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 그 지역은 모두 옥저의 동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
     
꼬마러브 18-03-21 15:21
   
지명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오류죠.

사실 <삼국지> 자체가 중화뽕이 굉장히 심한 사서이기 때문에... 불순한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삼바 18-03-21 16:01
   
동이전은 동옥저의 역사에 원래의 옥저의 역사가 첨가된 것입니다.
동옥저가 동북한에 있었다면, 원래의 옥저는 동북한 보다  서쪽에 있었겠지요.
               
꼬마러브 18-03-21 16:19
   
네 맞습니다.
history2 18-03-21 23:04
   
『史記』 「夏 本紀 太康地理志」,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사기』「하 본기 태강지리지」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晉書』「地理志」樂浪郡조-遂城:秦築長城之所起

 『後漢書』 「光武帝 本紀」 ‘樂浪郡,故朝鮮國也,在遼東’『후한서』「광무제본기」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  낙랑군은 고조선의 땅이다. 낙랑군은 요동에 있다.

    창려의 갈석산이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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