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 게놈에 데니소바인 피 두 차례 섞였다!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55
2010년은 고인류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해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해독되면서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현생인류의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2% 정도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화석이라고는 어금니 하나와 새끼손가락뼈 하나뿐인 미지의 인류의 게놈이 해독되면서 파푸아뉴기니인에서 이들의 피가 무려 6%나 섞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뼈가 발견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 지역 동굴의 이름을 따서 데니소바인(Denisovan)으로 명명된 이 미지의 인류는 게놈 분석 결과 현생인류보다는 네안데르탈인에 더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즉 약 6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데니소바인 계열이 먼저 갈라지고 그 뒤 약 4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갈라졌다. 2012년 데니소바인의 게놈이 좀 더 정밀하게 해독되면서 동아시아인에서도 데니소바인의 피가 소량(0.2% 내외)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모두를 선조로 둔 셈이다.
- 주1 : 현대 한국인 DNA = 호모사피엔스 96.8% + 네안데르탈 3% + 데미소미안 0.2%)
- 주2 : 현대유럽인의 몸에 포함된 네안데르탈 유전자 : 평균 2%
데니소바인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술지 ‘셀’ 3월 15일자 온라인판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5639명의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동아시아인은 과거 두 차례에 걸쳐 데니소바인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게놈에서 데니소바인의 기여도가 훨씬 큰 파푸아인의 경우 오히려 한 차례만 만난 것으로 나왔다. 무슨 근거로 이처럼 다소 모순돼 보이는 결론이 나왔을까.
연구자들은 현대인의 게놈 데이터에서 과거 다른 인류의 게놈 조각을 찾을 때 네안데르탈인 게놈과 데니소바인의 게놈을 참조하지 않는 새로운 분석법을 개발했다.
현대인의 게놈에서 이들 게놈과 비슷한 조각을 찾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게놈을 비교해 특이한 서열의 게놈을 추려낸 뒤 이를 네안데르탈인 게놈과 데니소바인의 게놈과 비교해 그 정체성을 규명하는 방식이다. 즉 선입견을 배제해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다만 확실하게 다른 게놈 조각들만 선별하다 보니 이렇게 짜 맞춘 결과 현대인의 게놈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기여도가 기존 연구의 절반 수준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데이터 분석 결과는 동아시아인에서 놀라운 사실을 보여줬다.
먼저 현대인의 게놈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기여도는 전자가 훨씬 높았는데 이는 기존 연구와 일치하는 결과다.
그런데 데니소바인에게서 유래된 게놈 조각을 참조게놈인 알타이 데니소바인의 게놈(전체가 해독된 유일한 데니소바인 게놈이다)과 정밀하게 비교한 결과 쌍봉낙타의 등처럼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즉 게놈 조각의 3분의 1은 참조게놈과 80% 정도의 높은 유사성을 보인 반면 3분의 2는 50% 수준의 유사성에 그쳤다.
즉 3분의 1은 알타이 데니소바인과 가까운 데니소바인 그룹에서 온 것이고 나머지 3분의 2는 다소 먼 데니소바인 그룹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파푸아인의 경우는 전부 먼 데니소바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제시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갈 때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뉴기니 일대에는 데니소바인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때 동아시아로 진출한 현생인류가 그곳의 데니소바인(알타이 데니소바인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집단)과 만나 피가 섞였다. 참고로 알타이 데니소바인 화석의 주인공은 약 4만1000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남아시아로 진출해 현생인류 역시 그곳의 데니소바인과 만났는데 특히 뉴기니에 정착한 인류는 교류가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훗날 남아시아 현생인류 일부가 동아시아로 이주해 이미 그곳에 정착한 현생인류와 피가 섞이게 됐다. 그 결과 오늘날 동아시아인의 게놈에는 데니소바인 두 집단의 피가 흐르게 됐다는 것이다.
참고로 논문에서 분석한 동아시아인의 게놈은 중국인 세 그룹으로 남중국 시솽반나의 다이족(93명), 동중국 베이징의 한족(103명), 남중국의 한족(105명)과 일본인(104명), 베트남인(99명)이다.
아쉽게도 한국인의 게놈 데이터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 결론을 적용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영향 더 큰 이유는
한편 네안데르탈인 게놈의 경우 원래는 유럽과 서아시아인의 게놈에 영향이 있었느냐가 관심사였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이 지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해독 결과 아시아 전역의 사람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혼혈이 된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뒤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자 동아시아인들의 게놈에 남아있는 네안데르탈인 게놈의 양이 유럽인에 비해 오히려 30%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2014년 발표된 최초의 고품질 네안데르탈인 게놈 역시 알타이산맥 데니소바 동굴에서 얻은 뼈에서 얻어졌다. 즉 2010년 추가 발굴 과정에서 인류의 발가락뼈가 나왔고 게놈 분석 결과 데니소바인보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데니소바 동굴이 DNA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가 보다. 그 뒤 다른 지역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몇 건 더 해독됐는데 넓은 지리적 분포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알타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참조로 해서 현대인의 게놈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 기존 결과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인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가장 많이 섞였다. 한편 참조게놈과 유사성은 현대인의 모든 집단에서 80% 내외로 높게 나왔다. 현대인과 네안데르탈인은 한 차례 조우했다고 볼 수 있는 결과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다양성이 낮기 때문에 확실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아시아인에서 유럽인보다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아시아인이 여러 차례 네안데르탈인과 만났을 거라는 가설이 있는데, 아무튼 여기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결과다. 연구자들은 유럽의 경우 네안데르탈인과 만난 이후에도 아프리카에서 추가로 호모 사피엔스가 유입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더 많이 희석된 게 아닌가 추측했다.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중국 허난성에서 발굴한 11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 사람의 뇌용량은 무려 1800cc로 나와 지금까지 확인된 인류의 머리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두개골 형태가 호모 사피엔스 보다는 역시 머리가 큰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워 학계에서는 데니소바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게놈의 DNA가 많이 파괴돼 이를 증명하지는 못했다.
수만 년 전 동아시아인의 조상들이 만난 데니소바인(알타이 데니소바인과 가까운)은 이 큰 머리의 소유자가 속한 집단의 후손들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