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3-22 06:28
[한국사] 가탐 도리기 항로 묘도군도 비정 비판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786  

※ 이 글은 가탐 도리기 항로가 수ㆍ당 수군 항로와 일치하느냐를 논하는 글이 아닙니다
※ 이 글은 가탐 도리기 항로의 묘도군도 비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 스마트폰으로 작성돼 읽기에 다소 불편함이 따를 수 있습니다


가. 가탐 도리기 원문과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항로 및 경유지를 묘도군도로 비정한 견해


1. 신당서(新唐書) 가탐 도리기(道理記) 원문

一曰, 營州入安東道.
(생략)

二曰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過 烏牧島 貝江口 椒島 得 新羅西北之長口鎮. 又, 過 秦王石橋 麻田島 古寺島 得物島 千里 至 鴨淥江 唐恩浦口. 乃, 東南陸行七百里至新羅王城. 自 鴨渌江口 舟行 百餘里, 乃, 小舫泝流 東北 三十里 至 泊汋口, 得渤海之境. 又, 泝流 五百里 至 九都縣城 故 髙麗王都. 又, 東北泝流 二百里 至 神州. 又, 陸行 四百里 至 顯州. 天寳中, 王所都. 又, 正北如東 六百里 至 渤海王城.

(정리)

二曰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登州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過 烏牧島 貝江口 椒島 得 新羅西北之長口鎮.
又, 過 秦王石橋 麻田島 古寺島 得物島 千里 至 鴨淥江 唐恩浦口.


(해석 1 : 중국 사서 지리지 DB 다시 쓰는 유기)

등주(登州)에서 동북쪽으로 바닷길로 (대사도(大謝島)와 구흠도(龜歆島)와 어도(淤島)와 오호도(烏湖島)를 거치는 300리를 바닷길를 가고,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건너서 마석산(馬石山)의 동쪽에 있는 도리진(都里鎮)에 이르는데까지 200리이다. 동쪽 해연(海壖, 해변/해안)에 정박한다. 청니포(青泥浦)와 도화포(桃花浦)와 행화포(杏花浦)와 석인왕(石人汪)과 탁타만(橐駝灣), 오골강(烏骨江)을 지나는 800리의 바닷길을 가고 남쪽의 해연(海壖)에 정박한다. 오목도(烏牧島)와 패강구(貝江口)와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新羅)의 서북쪽에 있는 장구진(長口鎮)에 도달한다. 또한 진왕석교(秦王石橋)와 마전도(麻田島)와 고사도(古寺島)와 득물도(得物島)를 지나는 1000리를 항해하면 압록강(鴨淥江)의 당은포구(唐恩浦口)에 이른다. 이내 동남쪽으로 육로를 이용하여 700리를 가면 신라(新羅)의 왕성(王城)에 도달한다. 압록강(鴨渌江)의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泊汋口)에 도달하는데 발해(渤海)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丸都縣)의 성(城)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王都)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또한 육로를 이용하여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도달하는데 천보(天寳) 년간에 왕이 도읍한 곳이다. 또한 정북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渤海)의 왕성(王城)에 도달한다.

(해석 2 : 학계 통설에서의 해석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764089&cid=49346&categoryId=49346)

등주에서 바닷길로 동북쪽으로 가는데, 대사도(大謝島)·귀흠도(龜歆島)·말도(末島)·오호도(烏湖島)까지 300리나 된다.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건너 마석산(馬石山) 동쪽의 도리진까지 200리나 된다. 동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청니포(靑泥浦)·도화포(桃花浦)·행화포(杏花浦)·석인왕(石人汪)·탁나만(橐駝灣)·오골강(烏骨江)을 지나는데 800리나 된다. 다시 남쪽 바닷가를 따라 오목도(烏牧島)·패강구(貝江口)·초도(椒島)를 지나야 신라 서북쪽의 장구진(長口鎭)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진왕석교(秦王石橋)·마전도(麻田島)·고사도(古寺島)·덕물도(得物島)를 지나서 1,000리를 더 가면 압록강의 당은포구(唐恩浦口)에 이르는데, 여기서 동남쪽으로 육로로 700리 가야 신라의 수도에 도착한다. 압록강 하구에서 배를 타고 100리 정도 가다가,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동북쪽으로 30리를 거슬러 올라가 박작구(泊汋口)에 이르면 발해의 국경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이르니 이곳은 옛 고구려의 수도이다. 다시 동북쪽으로 2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육로로 400리를 가면 현주(顯州)에 이르니 천보 연간에 (발해)왕이 도읍하던 곳이다. 다시 정북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의 수도에 도착한다.

1) 등주 ~ 오호도
ㅡ 총 3백 리
ㅡ 경유지 : 등주(봉래) - 대사도 - 구흠도 - 어도 - 오호도

2) 오호도 ~ (馬石山東之)도리진
ㅡ 총 2백 리
ㅡ 경유지 : 오호도 - 오호해 - 도리진
ㅡ 해석 1 : 도리진의 동쪽에 정박(東傍海壖)
ㅡ 해석 :  동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3) 도리진 ~ 오골강
ㅡ 총 8백 리
ㅡ 경유지 : 도리진 - 청니포 - 도화포 - 행화포 - 석인왕 - 탁타만 - 오골강
ㅡ 해석 1 : 오골강의 남쪽에 정박(乃南傍海壖)
ㅡ 해석 2 :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4) 오목도 ~ 신라 서북쪽 장구진
ㅡ 거리 : 정보 없음
ㅡ 경유지 : 오목도 - 패강구 - 초도 - 신라 서북쪽 장구진

5) 진왕석교 ~ 압록강 당은포구
ㅡ 총 1,000리(이전 경로 오골강~압록강까지의 합산 거리)
ㅡ 경유지 : 진왕석교 ~ 마전도 ~ 고사도 ~ 득물도 ~ 압록강 당은포구

6) 압록강 ~ 신라 왕성
ㅡ 총 700 리
ㅡ 특기 사항 : 육로, 동남쪽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7) 압록강 ~ 박작구
ㅡ 총 130 리
ㅡ 특기 사항 : 100 리 지점에서 작은 배로 갈아탐, 이 지점에서 이동 방향 동북쪽 제시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8) 박작구 ~ 고구려의 옛 왕성인 환도성
ㅡ 총 500 리
ㅡ 특기 사항 : 역시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돼 있고 문맥 상 이동 방향 역시 동북쪽 추정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9) 환도성 ~ 신주(神州)
ㅡ 총 200 리
ㅡ 특기 사항 : 역시 물길을 거슬러 동북 방향 이동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10) 신주(神州) ~ 현주(顯州)
ㅡ 총 400 리
ㅡ 특기 사항 1 : 육로, 문맥 상 이동 방향 동북, 천보 년간에 왕(발해)이 도읍한 곳
ㅡ 특기 사항 2 : 천보 년간(天寶, 당 현종 후기, 742~756년), 안녹산(安綠山)의 난이 있던 시기
ㅡ 특기 사항 3 : 천보 년간의 발해 왕성은 발해 중경(747년 또는 751 년에 동모산에서 이곳으로 천도), 학계 통설에서 현 길림성(吉林省)화룡현(和龍縣) 북고성촌(北古城村) 남동쪽에 비정
ㅡ 특기 사항 4 :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직후인 756년 초에 현주, 즉 중경에서 상경(上京, 학계 통설에서 현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에 비정)으로 천도
ㅡ (정보 출처 : 한민족문화대백과 ‘발해’)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11) 현주(顯州) ~ 발해 왕성(王城)
ㅡ 거리 : 총 600 리
ㅡ 특기사항 1 : 정북쪽에서 조금 동쪽으로 치우친 방향
ㅡ 특기 사항 2 : 발해는 총 네 번 천도했는데 각각의 천도 시기는 의견이 분분함. 가탐 도리기 상의 발해 왕성은 상경으로 추정됨.
ㅡ 특기 사항 3 : 발해는 780년대 후반 상경에서 동경(東京, 학계 통설에서 현 중국 지린성 琿春에 비정)으로 천도
ㅡ (정보 출처 : 한민족문화대백과 ‘발해’)
ㅡ 특기 사항 4 : 따라서 가탐 도리기 정보는 발해 수도가 상경이었던 780 년대, 혹은 그 이전의 정보로 추정됨
ㅡ 특기 사항 4 : 가탐은 730년 출생, 805년 사망, 751 년에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며 관직에 진출.
ㅡ 경유지 : 정보 없음


2. 신당서 가탐 도리기 경로와 경유지에 대한 학계 정설로서의 해석과 그 비정

당나라 賈耽(730∼805)이 저술한≪道里記≫에 보면,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해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북방해로인 것이다. 이에 의하면 登州(山東省 蓬萊)를 출발하여 동북으로 大謝島(長山島)·鼉欽島(砣磯島)·末島(大·小欽島)·烏湖島(南隍城島)를 거쳐 300리를 나아간다. 그리고 북으로 烏湖海(黃詳川 海面, 老鐵山水道)를 지나 馬石山(老鐵山)의 都里鎭(旅順口)까지 200리를 가서 동쪽으로 靑泥浦(大連 부근)·桃花浦(金縣 淸水河口)·杏花浦(莊河縣 花園口)·石人汪(石城島)·橐駝灣(小洋河口)을 지나 烏骨江(鴨綠江口)까지 800리 길을 간다. 다시 남쪽 해안, 즉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烏牧島(平北 宣川郡)·浿江口(大同江口)·椒島를 지나 長口鎭(黃海 豊川郡)에 이른다. 다시 鵠島(白翎島)·秦王石橋와 麻田島·古寺島(江華島)·得物島(德積島)를 거쳐 唐恩浦(京畿 南陽灣)에 이른다. 이곳은≪도리기≫의 종점으로 신라시대에 대중국대륙 교통의 요지 가운데의 하나였다. 당은포에서 육로로 700리 길을 가서 신라의 서울 경주에 도달한다.
<출처 : 신편 한국사>

1) 해석1 :  登州東北海行을 등주에서 뱃머리를 동북 방향으로 몰아 나아가는 것으로 파악(동북ㅡ북ㅡ동ㅡ남)

2) 해석2 : 묘도군도를 따라 요동반도 끝에 도착해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경로로 파악

3) 경로 및 경유지 비정

登州(山東省 蓬萊) - 大謝島(長山島 묘도군도) - 鼉欽島(砣磯島 묘도군도) - 末島(大·小欽島 묘도군도) - 烏湖島(南隍城島 묘도군도) - 烏湖海(黃詳川 海面, 老鐵山水道 묘도군도와 산동반도 사이) - 馬石山(老鐵山)의 都里鎭(旅順口 려순) - 靑泥浦(大連 부근) - 桃花浦(金縣 淸水河口 대련 금주구) - 杏花浦(莊河縣 花園口) - 石人汪(石城島) - 橐駝灣(小洋河口) - 烏骨江(鴨綠江口 현 압록강) - 烏牧島(平北 宣川郡) - 浿江口(大同江口 현 평양 대동강) - 椒島 - 長口鎭(黃海 豊川郡 황해도 풍천군) - 鵠島(白翎島 인천 백령도) - 秦王石橋 - 麻田島 - 古寺島(江華島 인천 강화도) - 得物島(德積島 인천 덕적도) - 唐恩浦(京畿 南陽灣 경기도 남양만)


3. 煙臺市旅遊發展委員會의 견해
https://read01.com/Jg3LnD.html#.WrEicmjlI0O

明朝時期,南、北長山島合稱長山島。據《續登州府志》記載:長山島屹立海中,東西長三十里,若馬鬣然,島分南北兩山,相距五里,中通一路,故名。至1930年長山島被分為「南長山島」和「北長山島」。


廟島——沙門島
讀過水滸傳的人都知道,宋代不少英雄好漢都曾被發配到沙門島,據考證多數資料認為沙門島就是現在的廟島。

明朝時,因大黑山島西部的老黑山局部有玄武岩覆蓋,呈黑褐色,其山稱為「老黑山」,其島稱為「黑山島」。小黑山島與大黑山島相距很近,故合稱「黑山島」。 明朝中期,兩島分別改稱大黑山島和小黑山島。


砣磯島——駝基島
砣磯島唐朝稱「駝基島」,因唐軍東征時在島上留有石刻而得名。從宋代到清代因島似鼉形而稱為「鼉島」。民國時期,改用今日之名——砣磯島。

大欽島——歆島
大欽島:唐代稱「歆島」,北宋後期稱為「欽島」,清朝中後期稱為大欽島。

小欽島——末島
小欽島在北宋後期時稱為「末島」,清朝中後期稱為小欽島。

南隍城島在唐貞觀二十年設置烏海戍,稱為「烏海島」。明初,與北隍城島統稱為皇城島,至清初正式命名為南隍城島

北隍城島在唐朝時稱「烏湖島」,清初至今一直稱為北隍城島。

大竹山因島上有竹林而得名,名字最早出現在蘇東坡的《北海十二石記》中。

小竹山島因距離大竹山島較近,為大竹山島的姊妹島而得名。

車由島——帽島
車由島因島的形狀,之前有過「帽島」、「沙磨島」、「牽牛島」之稱,新中國成立之後定為車由島。

高山島
高山島島體陡峭挺拔,山高202.8米,高度為全縣諸島之冠,清朝中期時就被稱為高山島。



4. 묘도군도를 경유지로 거론하거나 묘도군도가 산동 등주에서 요동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거론한 사서들

1) 낙사(樂史, 930년 ~ 1007년)의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登州
州境
東西四百九十五里,南北一百六十三里。

四至八到
西南至東京一千九百五十里;西南至西京二千三百七十里;西南至長安三千里;東至文登縣界大海四百九十里;南至萊州昌陽縣二百一十里;西至大海四里,當中國往新羅、渤海大路;北至大海三里;東南至海州四百六十里;西南至萊州四百里;正北微東至海北岸都裏鎮五百三十里。


ㅡ 정북에서 다소 동쪽으로 치우친 530리 거리의 바다 북안에 도리진이 있다(正北微東至海北岸都裏鎮五百三十里。)

烏湖戍,在縣北海中二百六十里,置烏湖島上。唐貞觀二十年,為伐東夷,當要路,遂置為鎮,至永徽元年,廢。

ㅡ 오호수가 등주 북쪽 바다 260리 지점 오호도에 있다. 당 태종 20 년에 고구려를 정벌하며 이 길이 필요하여 병영을 설치했다

大謝戍,在縣北海中三十里,周回百二十步,亦唐太宗征高麗時,與烏湖戍同時置。

ㅡ 대사수(대사도)가 등주 북쪽 바다 30리 지점에 있다. 둘레가 120 보이다

咸泉池,其泉咸,百姓取之為鹽。牟平故城,漢為縣,理於此,在縣東南九十里故城是也。高齊天保七年,移於今黃縣東七十三里馬嶺山南置,隋廢,唐武德三年又置,貞觀元年又廢。


2) 호삼성(胡三省, 1230년 ~ 1302년)의 자치통감 주(1285년 완성)

慕容仁自稱平州刺史、遼東公。
秋,八月,王濟還遼東,詔遣侍御史王齊祭遼東公廆,又遣謁者徐孟策拜慕容皝鎮軍大將軍、平州刺史、大單于、遼東公,持節承制封拜,一如廆故事船下馬石津
〔自建康出大江至於海,轉料角至登州大洋;東北行,過大謝島、龜歆島、淤島、烏湖島三百里,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裏鎮;馬石津,即此地也。〕皆為慕容仁所留。


ㅡ 마석진이 요동에 있는데 이 마석진은 가탐 도리기 항로 상의 도리진이다(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裏鎮;馬石津,即此地也。)

烏胡鎮將古神感〔烏胡鎮當置於海中烏胡島。自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淤島而後至烏湖島;又三百里北渡烏湖海。姓譜,周太王去邠適岐,稱古公,因氏焉。〕將兵浮海擊高麗,遇高麗步騎五千,戰於易山,破之。〔「易山」,新書作「曷山」。將,即亮翻。麗,力知翻。騎,奇奇翻。〕其夜,高麗萬餘人襲神感船,神感設伏,又破之而還。〔還,從宣翻,又如字。〕

ㅡ 오호진의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역산에서 싸웠는데 이 오호진은 가탐 도리기 항로 상에 있는 오호도이다. 역산은 신당서에서는 갈산(曷山)이라 적었다


3)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1461 년)

沙門島在府城西北六十里海中凡海舟渡遼者必迫此以避風宋時嘗流放罪人於此其相聮属則有鼉磯牽牛大竹小竹凡四島皆紫翠巉絶出沒濤中

ㅡ 사문도는 등주 서북쪽 바다 60 리에 있는데 요동으로 가고자 하는 배가 바람을 피하던 곳으로 송나라 때에는 범죄자들을 이곳에 유배 보냈다
ㅡ 사문도를 비롯하여 여러 섬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데 타기도, 견우도, 대죽도, 소죽도 등 네 섬이 그것으로 모두 물결 위로 들쑥날쑥 솟아있다

髙麗戍在萊陽縣西南九十里司馬懿討遼東於此置戍故名土人訛為髙麗山

ㅡ 고려수는 래양현 서남쪽 90 리에 있는데 사마의(위, 179~251)가 요동을 토벌할 때에 병영을 설치하며 이름을 얻었으나 주민들이 잘못 알고 고려산이라 부른다

大謝戍在府城東北三十里
烏胡戍在府城北海中二百五十里烏胡島上
二戍皆唐太宗征髙麗時所築

ㅡ 대사수는 등주 동북쪽 30 리에 있고 오호수는 등주 북쪽 바다 250리의 오호도에 있다.


4) 고조우(顧祖禹, 1631 년 ~ 1692 년)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1678 년 완성)

산동 7

府僻在東陲,三面距海,利擅魚鹽,且北指旅順,則扼遼左之噤喉;南出成山,則控江淮之門戶,形險未可輕也。範氏曰:自古海道有事,登、萊為必出之途,而密邇遼左,尤為往來津要。三國吳嘉禾初,遣使通公孫淵,還至成山,為魏人所邀殺。宋元嘉九年,朱修之自雲中奔和龍,泛海至東萊初,修之守滑臺,城陷,為魏所執。梁普通初,高句麗遣使入貢,詔使者江法盛授高麗衣冠劍佩,魏光州兵就海中執之送洛陽。隋開皇十七年,伐高麗,別將周羅自東萊泛海趨平壤時郡境皆屬東萊也,遭風,船多飄沒,師還。大業七年,下詔討高麗,敕元弘嗣往東萊海口造船。八年,遣來護兒等分兵自海道趣平壤。九年,復遣護兒出海道伐高麗。唐貞觀十八年,伐高麗,遣張亮自萊州泛海趣平壤。二十一年,復伐高麗,命牛進達等乘樓船自萊州泛海而入。明年,復遣薛萬徹自萊州泛海擊高麗。顯慶五年,蘇定方自成山濟海伐百濟。開元二十年,勃海自海道寇登州。宋建隆初,女真自海道趨登州貢馬,後馬政亦由此通女真。元行海運,道出登、萊。明初遣馬雲、葉旺等撫定遼東,亦由登、萊渡海駐金州,繼亦由此以轉輸遼、薊。而遼東隸於山東,亦以登、萊海道也。正德中,禁遏海道,而遼東形援益孤。後嘗議由此通運,不果。

烏湖島府東北二百五十里海中。與大謝戍俱為伐東夷之要路。唐貞觀十八年,征高麗,置烏湖鎮,亦曰烏湖戍。二十二年,鎮將古神感浮海擊高麗,破之於曷山。曷山在高麗界,或作易山。《新唐志》:自登州東北海行,至大謝島、龜歆島、淤島,而後至烏湖島三百里。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裏鎮二百里。

ㅡ 오호도는 등주 동북쪽 250 리 바다에 있으며 대사수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벌하던 요충로이다
ㅡ 오호진의 장수 고신감이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갈산을 공격하였는데 갈산은 고구려 경계에 있다. 갈산은 역산이라고도 한다

大謝島,在府東北三十里海中。唐貞觀中擊高麗,置大謝戍於此。又長山島,在府北三十里海中,東西長四十餘里。又有島、虎島、半洋島,皆與長山島相近。

ㅡ 대사도는 등주 동북쪽 30 리 바다에 있다
ㅡ 장산도는 드주 북쪽 30 리 바다에 있는데 동서 길이가 40여 리이다
ㅡ 또 유도, 호도, 반양도 등이 있는데 모두 장산도와 가깝다

沙門島府西北六十里海中。又西北七十里為鼉磯島。與鼉磯相對者為欽島,相距三十里。又高山島,在沙門島北百餘里。

ㅡ 사문도는 등주 서북쪽 60 리 바다에 있다
ㅡ 타기도는 등주(혹은 사문도) 서북쪽 70 리에 있다
ㅡ 타기도와 마주 보는 섬은 흠도로 타기도와 30 리 거리이다
ㅡ 고산도가 있는데 사문도 북쪽 100여 리에 있다

산동 8

蓋州衛司西南二百四十里。

海(蓋州)衛西十里。又西十里為歸洲。又西南百十里曰葦子套,波濤險惡,不利行舟。《志》云:(蓋州)衛南海口有馬石津,晉咸和九年,遣使者由海道致命於慕容,船下馬石津,皆為慕容仁所留,時在棘城,路由平郭始達也。《新唐書》:自登州大洋東北行,過大謝、龜歆等島,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裏鎮。所謂馬石津,當即此處也。

ㅡ 개주위 서남쪽 110 리에 위자투가 있는데 물결이 거칠어 배가 다니기에 험하다
ㅡ 명일통지에서 이르길 개주위 남쪽 해구에 마석진이 있다 했으니(실제 본인이 명일통지에서 찾아봤으나 찾지 못 함) 이곳이 그곳으로, 가탐 도리기 항로 상의 도리진이 마땅히 이곳이다



5) 등주부지(登州府志)

關關酬
舟渡遼若必泊趾藏紹遮風土非謹鵝麻歷付皆春酷翩顧禾史太祖本如霆蠢暨一年宗內外葵熙不律眷酣瀕丹扁乾德亢年女遺國遣使靜名地調登洲帆剛鄙眼稅冷專治船渡錯先人通海撞吳沙門品翼豎血置戍其持與城北為一社明洪武初移口社之民附迫郭晦空其島役為遼人據而居焉齊乘云涉門島在登洲北海中九十畢子晉姦刑檢司海般南來轉巍雙加渤誨者皆望此出以偉里敘誠其相聯懌譚則有憲機牽沖大竹小竹諸曷歷歷海中蒼香朗蓋毒晦市塊厥引滯在五梟之上島中多童羹石吟八几稱為廟壽董

黼城東小竹島離顯山犬岫竹爵
在小竹中產竹

鵲赫肅懦嗚
六竹禪北

黑山島
沙門壽又連小高畏

供種
鼉機壽
沙門岳北七十其石可休麗
羊馳島
雕鼉機北七十里海連一所柱處
欽島
在羊繞醫云與置機

通對
啼高鱗島
在沙門島北百里詐

ㅡ 거론되는 주요 섬 : 타기도(사문도 북쪽 70 리), 양치도(타기도 북쪽 70 리), 흠도 등

※ 묘도군도 섬의 명칭과 각 위치

ㅡㅡ흑산도ㅡ고산도
묘도
ㅡ장산도ㅡ죽도ㅡ사마도ㅡ타기도ㅡ대흠도ㅡ소흠도ㅡ남황성도ㅡ북황성도

묘도와 장산도는 등주(봉래)에서 제일 가까운 섬
남북황성도는 가장 먼 섬(즉 묘도군도 가운데에 요동반도에 가장 가까운 섬)


나. 묘도군도 비정

※ 가탐 도리기 처음 300 리 경로

등주(봉래) - 대사도 - 구흠도 - 어도 - 오호도

1) 국내 사학계 통설

ㆍ대사도 : 장산도
ㆍ구흠도 : 타기도
ㆍ말도 : 대ㆍ소흠도
ㆍ오호도 : 남황성도

2) 중국 일반 견해(煙臺市旅遊發展委員會
https://read01.com/Jg3LnD.html#.WrEicmjlI0O)
ㆍ대사도 : 비정 없음
ㆍ사문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 묘도
ㆍ흑산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ㆍ타기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 본래 명칭 타기도(駝基島)를 거쳐 송~청 시대에 섬 모양이 악어 형상이라 타도(鼉島)라 했다가 근대에 이르러  현 명칭 타기도(砣磯島)로 바뀜
ㆍ구흠도 : 현 대흠도와 소흠도(대흠도는 당나라 때 흠도歆島였다가 북송 때 흠도欽島로 청나라 때 지금의 대흠도로 개명. 소흠도는 북송 때 말도末島였다가 청나라 때 지금의 소흠도로 개명
ㆍ오호도(烏湖島) : 현 남황성도. 남황성도는 당나라 때 오해수가 있던 오해도(烏海島)로 명나라 때 지금의 북황성도와 합쳐 황성도라 부르다고 청나라 때 남북황성도로 명칭 분리
ㆍ대죽산도/소죽산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ㆍ차유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 모도, 사마도, 견유도
ㆍ고산도(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 아님)

3) 낙사(樂史, 930년 ~ 1007년)의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ㆍ정북에서 다소 동쪽으로 치우친 530리 거리의 바다 북안에 도리진이 있다(正北微東至海北岸都裏鎮五百三十里。)
ㆍ오호수가 등주 북쪽 바다 260리 지점 오호도에 있다. 당 태종 20 년에 고구려를 정벌하며 이 길이 필요하여 병영을 설치했다
ㆍ대사수(대사도)가 등주 북쪽 바다 30리 지점에 있다. 둘레가 120 보이다

4) 호삼성(胡三省, 1230년 ~ 1302년)의 자치통감 주(1285년 완성)

ㆍ마석진이 요동에 있는데 이 마석진은 가탐 도리기 항로 상의 도리진이다(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裏鎮;馬石津,即此地也。)
ㆍ오호진의 장수 고신감이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역산에서 싸웠는데 이 오호진은 가탐 도리기 항로 상에 있는 오호도이다. 역산은 신당서에서는 갈산(曷山)이라 적었다

5)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1461 년)

ㆍ사문도는 등주 서북쪽 바다 60 리에 있는데 요동으로 가고자 하는 배가 바람을 피하던 곳으로 송나라 때에는 범죄자들을 이곳에 유배 보냈다
ㆍ사문도를 비롯하여 여러 섬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데 타기도, 견우도, 대죽도, 소죽도 등 네 섬이 그것으로 모두 물결 위로 들쑥날쑥 솟아있다
ㆍ대사수는 등주 동북쪽 30 리에 있고 오호수는 등주 북쪽 바다 250리의 오호도에 있다.

6) 고조우(顧祖禹, 1631 년 ~ 1692 년)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1678 년 완성)


ㆍ오호도는 등주 동북쪽 250 리 바다에 있으며 대사수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벌하던 요충로이다
ㆍ오호진의 장수 고신감이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갈산을 공격하였는데 갈산은 고구려 경계에 있다. 갈산은 역산이라고도 한다
대사도는 등주 동북쪽 30 리 바다에 있다
ㆍ장산도는 드주 북쪽 30 리 바다에 있는데 동서 길이가 40여 리이다
ㆍ또 유도, 호도, 반양도 등이 있는데 모두 장산도와 가깝다
사문도는 등주 서북쪽 60 리 바다에 있다
ㆍ타기도는 등주(혹은 사문도) 서북쪽 70 리에 있다
ㆍ타기도와 마주 보는 섬은 흠도로 타기도와 30 리 거리이다
ㆍ고산도가 있는데 사문도 북쪽 100여 리에 있다
개주위 서남쪽 110 리에 위자투가 있는데 물결이 거칠어 배가 다니기에 험하다
ㆍ명일통지에서 이르길 개주위 남쪽 해구에 마석진이 있다 했으니(실제 본인이 명일통지에서 찾아봤으나 찾지 못 함) 이곳이 그곳으로, 가탐 도리기 항로 상의 도리진이 마땅히 이곳이다

7) 등주부지(登州府志)

ㅡ 거론되는 섬들 : 사문도, 타기도, 대죽/소죽도, 양치도, 흠도 등으로 모두 가탐 도리기 경로 상 섬 명칭과 무관


다. 도리진 비정

1) 국내 사학계 통설
ㆍ려순(旅順)

2) 태평환우기
ㆍ도리진은 등주에서 정북보다 살짝 동쪽으로 치우친, 500 리 북쪽 해안에 있다(正北微東至海北岸都裏鎮五百三十里。)

3) 자치통감 주/호삼성
ㆍ도리진은 요동 마석진이다
ㅡ 至馬石山東之都裏鎮;馬石津,即此地也

4) 독사방여기요
도리진은 요동 마석진으로, 요동 개주위 서남쪽 110리에 있는 위자투이다(至馬石山東之都裏鎮。所謂馬石津,當即此處也。)


라. 도리진 이후 경로 비정

1) 국내 사학계 통설
都里鎭(旅順口 려순) - 靑泥浦(大連 부근) - 桃花浦(金縣 淸水河口 대련 금주구) - 杏花浦(莊河縣 花園口) - 石人汪(石城島) - 橐駝灣(小洋河口) - 烏骨江(鴨綠江口 현 압록강) - 烏牧島(平北 宣川郡) - 浿江口(大同江口 현 평양 대동강) - 椒島 - 長口鎭(黃海 豊川郡 황해도 풍천군) - 鵠島(白翎島 인천 백령도) - 秦王石橋 - 麻田島 - 古寺島(江華島 인천 강화도) - 得物島(德積島 인천 덕적도) - 唐恩浦(京畿 南陽灣 경기도 남양만)

2) 태평환우기
ㅡ 관련하여 정확하거나 비슷한 비정 없음

3) 자치통감 주
ㅡ 관련하여 정확하거나 비슷한 비정 없음

4) 독사방여기요
ㅡ 관련하여 정확하거나 비슷한 비정 없음


마. 도리기 항로 묘도군도 비정 비판

국내 사학계 가탐 도리기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경로 비정 비판

ㅡ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는 신라로 가는 길을 설명한 글이 아니라 고구려의 옛 땅이자 당시 발해의 땅인 요동을 지나 당시 발해 왕성이 있던 발해 상경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는 글이다
ㅡ 즉 출발지를 등주로, 최종 목적지를 발해 왕성으로 정하여(아예 길 이름이 바다를 통해 발해로 가는 길이다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ㅡ 따라서 신라는 발해 왕성 가는 길에 압록강을 기점으로 육로 동남 700 리라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ㅡ 신라 가는 길이면 요동을 배로 경유한 후 육로를 이용하여 그 경유지를 설명할 일이다 그런데 글 자체가 신라가 목적지가 아니고 발해 왕성이 목적지이므로 신라는 당시 발해 왕성으로 가는 중간 길목인 당시 압록강 입구에서 간략히 언급했을 뿐인 것이다
ㅡ 대체 이 글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어디에 그 목적지와 경유지가 신라라고 돼 있는 것이 있는가?

ㅡ 대사도와 오호도를 묘도군도에, 도리진과 도화도를 여순, 대련에, 오골강을 압록강에 비정하면서 오골강 이후의 경로가 현 강화도를 거쳐 경기도 남양만까지 내려와 버렸다
ㅡ 이런 식이면 도리기 경로상에 버젓이 있는 압록강은 어찌할 것인가?
ㅡ 발해 왕성 가는 길에 무엇하러 경기도 남양만까지 내려오는가?
ㅡ 경로가 신라 경내로 들어왔으면 도리기 상에서 박작구를 지나며 “여기서부터 발해 경내이다”하는 식으로 언급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ㅡ 그리고 길 제목부터가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인데 신라를 경유하거나 목적할 것이면 “등주해행입 고려신라발해도”라고 했어야 옳지 않은가?


바. 도리진 비판

송 태평환우기에서 요동반도 끝자락으로 막연히 비정하더니 그 2~300 년 후의 자치통감주에서 호삼성은 요동 마석진으로, 이를 받은 청 독사방여기요는 보다 구체적으로 요동 개주위 남쪽 110리 위자투를 마석진으로, 또 이 마석진을 도리진으로 비정하고 있다 특히 독사방여기요는 명일통지에서 개주위에 마석진이 있다고 하고 있으나 본인이 찾아보니 그런 기록은 찾지 못 했다

가탐 도리가 항로를 묘도군도를 따라 요동반도 남단에 도달하는 것으로 처음 비정한 대표적인 중국 사서들이 도리진을 요동만 일대에서 찾고 있는 반면 한국 사학계는 오히려 그 반대쪽인 여순/대련에 비정하며 팀내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꼴이다

뿐만 아니라 자치통감 주와 독사방여기요 등은 그들 사서 내에서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가탐 도리기 등주동북해행의 오호도 경로를 묘도군도에 비정한 이들 사서가 그 다음의 중요 경유지인 도화포, 오골강 등의 위치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자

<독사방여기요 산8>
寧遠衛司西七百七十里,西至廣寧前屯衛百三十里,東北至廣寧中屯衛百二十里,東北至廣寧衛三百里,西北至故大寧衛廢利州百五十里。

桃花島,在衛東十五里海濱,海舟往來,恆泊於此。又覺華島,在衛東南二十里,上有海雲、龍宮二寺。
ㅡ 도화도는 영원위 동쪽 15 리 지점 바닷가에 있다. 바닷배가 왕래하며 항상 이곳에 배를 댄다.

蓋州衛司西南二百四十里。
安市城衛東北七十里。
烏骨城,在安市東南,近大海。《唐史》:自登州東北海行,至烏湖島。又行五百里,東傍海需,有道至烏骨江。唐貞觀中,太宗圍白巖城,烏骨城遣兵為聲援。又太宗圍安市不下,群臣皆言宜釋安市,並力拔烏骨城,度鴨淥水,直取平壤。是也。
ㅡ 오골성은 안시 동남쪽 바다 가까이에 있다. 가탐 도리기 경로 상의 오골강이 이곳이다

현 학계는 오골성을 압록강 북안의 봉황성 근처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골성은 안시성 근처로 설명되고 있으며 개주위에 있는 것으로 제시돼 있다

<자치통감 주>

乙未,進軍白岩城。丙申,右衛大將軍李思摩中弩矢,上親為之吮血;將士聞之,莫不感動。〔中,竹仲翻。為,於偽翻。〕烏骨城遣兵萬餘為白岩聲援,〔自登州東北海行至烏湖島,又行五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人浦、石人汪、橐駝灣,乃至烏骨江。〕將軍契苾何力以勁騎八百擊之,〔契,欺訖翻。苾,毗必翻。〕何力挺身陷陳,槊中其腰,〔陳,讀曰陣。中,竹仲翻。〕尚輦奉御薛萬備單騎往救之,拔何力於萬眾之中而還。〔還,從宣翻,又如字。〕何力氣益憤,束瘡而戰,從騎奮擊,〔從,才用翻。〕遂破高麗兵,追奔數十里,斬首千餘級,會暝而罷。〔暝,莫定翻。〕萬備,萬徹之弟也。

安市人望見上旗蓋,輒乘城鼓噪,上怒,世績請克城之日,男女皆坑之,安市人聞之,益堅守,攻久不下。高延壽、高惠真請於上曰:「怒既委身大國,不敢不獻其誠,欲天子早成大功,奴得與妻子相見。安市人顧惜其家,人自為戰,未易猝拔。〔易,以豉翻。〕今奴以高麗十餘萬眾,望旗沮潰,〔沮,在呂翻。〕國人膽破,烏骨城耨薩老耄,不能堅守,移兵臨之,朝至夕克。其餘當道小城,必望風奔潰。然後收其資糧,鼓行而前,平必不守矣。」群臣亦言:「張亮兵在沙城,〔沙城即卑沙城。〕召之信宿可至,乘高麗兇懼,〔凶,許拱翻。〕並力拔烏骨城,渡鴨綠水,直取平壤,在此舉矣。」上將從之,獨長孫無忌以為:「天子親征,異於諸將,不可乘危徼幸。〔徼,古堯翻。〕今建安、新城之虜,眾猶十萬,若向烏骨,皆躡吾後,不如先破安市,取建安,然後長驅而進,此萬全之策也。」上乃止。〔太宗之定天下,多以出奇取勝,獨遼東之役,欲以萬全制敵,所以無功。〕

ㅡ 자치통감 주 역시 가탐 도리기를 인용하며 오골성이 도리기 경로의 오골강에 있는 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을 토대로 하면
독사방여기요×자치통감주에서 보는 가탐 도리기 항로는 묘도군도를 통해 요동만에 도착하여 해안을 따라 시계반대 방향으로 항해하는 것이 돼 버린다

1) 오골강은 안시성 근처
2) 도리진은 요동만, 또는 여순
3) 도화포는 현 호로도시

이런 미친 항로가 어디있는가?

도화포의 위치를 설명하는 사서 기록을 다시 보자

성경통지(盛京通志)

桃花島
新唐書地理志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烏湖島三百里至都里鎮二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ㅡ 신당서 가탐 도리기의 도화포는 도화도이다
ㅡ 금사 지리지에 흥성현에 도화도가 있다고 했다
ㅡ 명나라 초기에 이곳까지 배가 드나들었는데 지금 영원주 남쪽에 있다

금사(金史)

興城遼嚴州保肅軍縣故名,皇統三年廢州隸錦州。有桃花島。
ㅡ 흥성현에 도화도가 있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1461 년)

寜逺衞
在都司城西七百七十里本廣寜前屯中屯二衞地宣徳三年於此築城置衞又於城東五十里塔山别置中左千户所於城西四十里小沙河别置中右千户所屬焉
ㅡ 전둔, 중둔, 중좌소, 중우소 등

桃花島
在寜逺衞東一十五里濵海每嵗海舟漕運皆泊扵此
ㅡ 영원위 동쪽 15리 바닷가에 도화도가 있는데 배가 오고가며 정박한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북직 4)
河間府東至海豐縣三百里,南至山東德州二百五十里,西南至真定府冀州二百三十里,西至真定府定州二百有八里,西北至保定府安州百二十里。自府治至京師四百十里,至南京二千一百四十里。

靜海縣(河間)府東北百八十里。
海在縣東北百五十里,與山東、遼東接境。古名勃海。應劭曰:海之橫出者,曰勃。元行海運,以天津海道為咽喉要地。前朝亦嘗通運於此。嘉靖三十八年,遼撫侯汝翼,以遼東大饑,議移粟天津。其入遼之路,自海口發舟,至廣寧右屯河通堡,不及二百里,中間若曹泊店、月沱、桑沱、姜女墳、桃花島、咸可灣泊,各相去四五十里,無風濤、盜賊之虞。從之。尋復罷。《志》云:天津一隅,東南漕舶鱗集,其下去海不過百里,風帆馳驟,遠自閩浙,近自登、遼,皆旬日可達。控扼噤要,誠京師第一形勝處也。
ㅡ 하간부 정해현 동북 150리는 산동 및 요동과 접경이다(즉 오늘날 이 지역 동쪽부터 요동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음)
ㅡ 요동에 대기근이 들어서 나눠줄 곡식을 천진에서 운반할 일을 의논했다
ㅡ 천진은 요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길목이다)
ㅡ 천진에서 배를 타고 광녕위(현 진저우) 우둔하까지 200 리가 안 된다
ㅡ 천진과 광녕 우둔하 중간에 조박점, 월타, 상타, 강녀분, 도화도가 있는데 모두 정박할 수 있으며 각각 서로 간의 거리가 4~50 리 된다
ㅡ 명일통지에 따르면 천진은 한쪽 모퉁이에 있어서 동남쪽에 선박이 비늘처럼 밀집돼 있으며 그 아래 바다까지 불과 100리밖에 안 되고, 돛에 바람을 받아 빠르게 달리니 멀게는 민저(현 저장, 광둥 일대)로부터, 가깝게는 등주, 요동으로부터 모두 열흘이면 도달한다.

(산동 8)
寧遠衛司西七百七十里,西至廣寧前屯衛百三十里,東北至廣寧中屯衛百二十里,東北至廣寧衛三百里,西北至故大寧衛廢利州百五十里。

桃花島,在衛東十五里海濱,海舟往來,恆泊於此。又覺華島,在衛東南二十里,上有海雲、龍宮二寺。

ㅡ 도화도는 영원위 동쪽 15 리 지점 바닷가에 있다. 바닷배가 왕래하며 항상 이곳에 배를 댄다.

명사(明史)

嘉靖二年,遮洋總漂糧二萬石,溺死官軍五十餘人。五年停登州造船。二十年,總河王以旂以河道梗澀,言:「海運雖難行,然中間平度州東南有南北新河一道,元時建閘直達安東,南北悉由內洋而行,路捷無險,所當講求。」帝以海道迂遠,卻其議。三十八年,遼東巡撫侯汝諒言:「天津入遼之路,自海口至右屯河通堡不及二百里,其中曹泊店、月坨桑、姜女墳、桃花島皆可灣泊。」部覆行之。四十五年,順天巡撫耿隨朝勘海道,自永平西下海,百四十五里至紀各莊,又四百二十六里至天津,皆傍岸行舟。其間開洋百二十里,有建河、糧河、小沽、大沽河可避風。初允其議,尋以御史劉翾疏沮而罷。是年,從給事中胡應嘉言,革遮洋總。

寧遠衛宣德五年正月分廣寧前屯、中屯二衛地置,治湯池。西北有大團山。東北有長嶺山。南濱海。東有桃花島。東南有覺華島城。西有寧遠河,即女兒河也,又名三女河。又東有塔山,有中左千戶所,轄連山驛山至杏山驛,西有小沙河中右千戶所,轄東關驛至曹莊驛,俱宣德五年正月置。又南有鹽、鐵二場。東距都司七百七十里。
ㅡ 영원위에 도화도, 각화도, 여아하, 중좌소 등이 있음

天啟元年,沈陽破,應泰死,廷臣復思廷弼。給事中郭鞏力詆之,並及閣臣劉一燝。及遼陽破,河西軍民盡奔,自塔山至閭陽二百餘里,煙火斷絕,京師大震。
ㅡ 원숭환
ㅡ 심양이 무너짐
ㅡ 곧이어 요양이 무너지고 요하 서쪽의 군민이 도망쳤으며 탑산으로부터 여양 200여리가 연기와 불꽃으로 단절됐다

崇煥曰:「我寧前道也,官此當死此,我必不去。」第無以難,乃撤錦州、右屯、大、小凌河及松山、杏山、塔山守具,盡驅屯兵入關,委棄米粟十餘萬,而死亡載途,哭聲震野,民怨而軍益不振。
ㅡ 원숭환
ㅡ 금주, 우둔, 대릉하, 소릉하, 행산(본인은 이곳을 가탐 도리기의 행화포 관련지로 추정), 탑산(노룡위 탑산과 동명이처. 명나라 곳곳에 탑산이 산재) 등

廣寧中屯衛元錦州,屬大寧路。洪武初,州廢。二十四年九月置衛。東有木葉山。西有東、西紅螺山。西南有杏山。東南有乳峰山。又東有大凌河、小凌河。又西有女兒河,與小凌河合。又南有松山堡,在松山西,宣德五年正月置中左千戶所於此,轄杏山驛至小凌河驛。東有大凌河堡,洪武二十六年正月置廣寧右衛,二十八年四月廢。宣德五年正月置中右千戶所於此,轄凌河驛至十三山驛。又城南有鹽場二,鐵場一。又西有鐵場。東南距都司六百里。

금주부지(錦州府志)

桃花島 城南十五里海中明一統志云登萊海運泊船處按遼志為嚴州興城縣治

모두 가탐 도리기 항로 상의 도화포를 현 호로도시 남쪽 바다에 있었던 도화도라 적고 있다

또 “명일통지에 따르면 천진은 한쪽 모퉁이에 있어서 동남쪽에 선박이 비늘처럼 밀집돼 있으며 그 아래 바다까지 불과 100리밖에 안 되고, 돛에 바람을 받아 빠르게 달리니 멀게는 민저(현 저장, 광둥 일대)로부터, 가깝게는 등주, 요동으로부터 모두 열흘이면 도달한다.(《志》云:天津一隅,東南漕舶鱗集,其下去海不過百里,風帆馳驟,遠自閩浙,近自登、遼,皆旬日可達。控扼噤要,誠京師第一形勝處也。 )<독사방여기요 북4>”라 하여 등주와 천진, 현 호로도시와 진저우시, 요동을 잇는 연안항해로가 활달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탐 도리기의 7도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단순하게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지름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문장을 이어가며 그 주변의 정보까지 아울러 설명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 결론

국내 학계는 대사도를 현 묘도군도에서 등주와 가장 가까운 섬 가운데에 제일 큰 섬인 장산도로 비정하고 있으나 현 중국의 일반 상식에 비춘 등주관광청 연원고찰 안내글에서는 대사도가 비정돼 있지도 언급돼 있지도 않으며

대사도에 대해서 10 세기 말 태평환우기는 둘레가 겨우 120 보로 암초 수준의 아주 작은 섬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근 7 세기 후의, 아마도 학계가 비정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독사방여기요에서는 둘레가 40 리에 달하는 큰 섬으로 묘사(대사도가 아니라 장산도)하고 있어서 차이가 분명하다

또한 오호도를 현 남황성도에 비정하고 있으나
태평환우기, 자치통감주, 명일통지, 독사방여기요 등의 사서에서는 단지 등주 동북쪽/북쪽 250리, 혹은 260 리라 적고 있을 뿐으로 묘도군도의 기타 섬과의 관계에 있어 아무것도 언급된 바가 없다

또 이들 여러 사서와 등주관광청 묘도군도 연혁 안내글에서는 직접적으로 가탐 도리기 상의 “대사도 ㅡ 구흠도 ㅡ 어도 ㅡ 오호도”에 해당한다 볼 섬들이 없다

대사도를 장산도로, 오호도를 남황성도로 보는 게 현 통설이고 이게 분명하다면 이 두 섬 사이에 산재한 여러 섬들의 정보가 없다

국내 학계에서는 현 타기도를 구흠도로 보고 있으나 중국 측은 대흠ㆍ소흠도를 구흠도로 보고 있어서 배치가 되고

현 타기도를 구흠도, 혹은 구도로 보고자 해도
본래 타기도駝基島였다가 송~청 시대를 거치며 타기鼉磯, 혹은 타도鼉島로 바뀌었고 이것이 명일통지와 독사방여기요에서 확인이 되므로 타鼉가 거북 구龜와 비슷하여 타鼉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이 섬을 이르던 소리가 타였고 이것이 타ㅡ타ㅡ타로 한자만 달리하여 변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즉 타기도는 애초부터 타기도로 구도, 혹은 구흠도와 다른 섬이다

가탐 도리기는 출발지가 등주이고 목적지는 고구려/발해였으며 당 태종의 수군은 래주가 출발지, 고구려가 목적지였다

명나라 해안 상세 지도인 주해도편 지도에는 오호도가 래주 연안에, 사문도와 대사도가 등주 연안에 표시돼 있다

또한 주해도편과 도서편에서는 구흠도를 구도와 흠말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리진은 모두 대청하와 소청하 사이인 산동 포대 앞으로

그리고 이들의 현 호로도시~진저우시 연안의 처소가 영원주(였던 호로도시)에 있다고 도화도의 위치와 일치하며 이것이 조선시대 다수의 연행길 경유지와 중복 검증이 된다

심지어 학계는 현 장산도를 대사도에 비정하고 있으나 독사방여기요는 대사도와 장산도를 엄연히 다른 섬으로 기술하고 있고 섬의 방향도 다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거란과 금에 의해 하북과 요서 지역이 막힌 상황에서 가탐 도리기의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에서 登州東北海行을 東北이 髙麗渤海를 가리킴에도 東北을 섬의 위치이자 뱃머리의 직접방향으로 오해하고 또 당시 여진, 신라/고려 등의 사신이 등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송 당시의 실정을 200 여 년 전 가탐의 실정에 대입하여 등주와 려순까지의 거리가 근 500리인 거리정보를 근거 막연하게 등주에서 500리 떨어진 바다 북안으로 도리진을 비정(태평환우기), 이를 호삼성이 받고, 고조우가 받아서 요동 개주위 남쪽으로 구체화시키면서 스스로 모순에 봉착

국내 학계에서는 고대 압록강과 평양을 현 압록강과 현 북한 평양에 고정하여 기자조선ㆍ위만조선부터 한 낙랑군,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를 설명하는 통설을 뒷받침 하고자 발해 왕성이 목적지인 가탐 도리기 항로를 현 압록강과 평양에 끼워 맞추어서 도리기 상에 엄연히 구분돼 있는 오골강과 압록강을 같은 강으로 비정하고 도리기 경로를 경기도 남양만까지 끌어내리는 억지를 부린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감방친구 18-03-22 06:34
   
가탐도리기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연구
감방친구 작성일 : 18-03-19 14:05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7937&sca=&sfl=mb_id%2C1&stx=cellmate
감방친구 18-03-22 07:03
   
최종결론

가탐 도리기의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는
등주 ~ 압록강 당은포구에 이르는 시계방향 연안항로(등주 - 대사도 - 구흠도 - 어도 - 오호도 - 오호해 - 도리진 - 청니포 - 도화포 - 행화포 - 석인왕 - 탁타만 - 오골강 - 진왕석교 ~ 마전도 ~ 고사도 ~ 득물도 ~ 압록강 당은포구)와 오목도 ~ 신라 서북쪽 장구진에 이르는 반시계 방향 경로(오목도 - 패강구 - 초도 - 신라 서북쪽 장구진)가 오골강을 기점으로 교차된 “연안항로”이며

묘도군도를 경유하여 경기도 남양만까지 내려오는 현 학계 통설의 해석 및 비정은 틀렸다
도배시러 18-03-22 16:01
   
1) 국내 사학계 통설
都里鎭(旅順口 려순) - 靑泥浦(大連 부근) - 桃花浦(金縣 淸水河口 대련 금주구) - 杏花浦(莊河縣 花園口) - 石人汪(石城島) - 橐駝灣(小洋河口) - 烏骨江(鴨綠江口 현 압록강) - 烏牧島(平北 宣川郡) - 浿江口(大同江口 현 평양 대동강) - 椒島 - 長口鎭(黃海 豊川郡 황해도 풍천군) - 鵠島(白翎島 인천 백령도) - 秦王石橋 - 麻田島 - 古寺島(江華島 인천 강화도) - 得物島(德積島 인천 덕적도) - 唐恩浦(京畿 南陽灣 경기도 남양만)
...
청니포, 도화도는 가탐도리기에 나오며, 이후의 사서에서도 언급이되고
고지도에도 자주 언급되는 지명이며 려순에서 한반도가 아니라 요하~요서방향으로 배치된 섬이라
주류의 통설은 쉽게 무너질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연구하고 끼워 맞추는 관행은 이제 바낄때가 아닌가 싶네요.
 
 
Total 19,97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388
19972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위성 지도 3 ( 8K ) 아비바스 04-19 104
19971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지도 2 ( 2.5K ) 아비바스 04-19 88
19970 [세계사] 역사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세계 위성 지도 ( 2.5K ) (1) 아비바스 04-19 84
19969 [기타] 역사란...사관이란... (6) 윈도우폰 04-17 155
19968 [한국사] 역사학자의 위치비정 2 (4) 하이시윤 04-17 179
19967 [한국사] 역사학자의 위치비정 논문 일부 (5) 하이시윤 04-17 133
19966 [한국사] [역사지리 #4] Quiz의 답안 - 내가 생각하는 열국의 위… (12) 윈도우폰 04-08 401
19965 [한국사] [역사지리 #3] 부여의 위치 추정 (4) 윈도우폰 04-07 548
19964 [한국사] [역사지리 #2] 고조선 시대의 열국의 위치 추정 (2) 윈도우폰 04-07 350
19963 [한국사] [역사지리 #1] 한반도와 만주의 지형 (소국 들의 위치 … 윈도우폰 04-07 400
19962 [기타] 민족의 친연성에 대해 (1) 관심병자 04-07 250
19961 [한국사] 가설을 세우는데는 출처가 필요없죠 (16) 하이시윤 04-07 325
19960 [기타] 출처를 다는 건, 남녀노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입… (11) 아비바스 04-05 280
19959 [한국사] 소위 말하는 시민사학자들이 가생이 동아게에 계시… (7) 하이시윤 04-02 577
19958 [기타] 무식한 사람은 역사나 학문을 말하기 전에 기본을 갖… (2) 윈도우폰 04-02 297
19957 [한국사] 역사를 학문으로 받아드린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 (9) 아비바스 04-02 411
19956 [한국사] "정보" 를 다루는 사람들은 "출처" 를 달아야 맞습니… (11) 아비바스 04-01 364
19955 [한국사] 역사에 있어 사료나 증거라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3) 윈도우폰 04-01 409
19954 [한국사] 사이비 역사유튜버 거르는 꿀팁 (3) 아비바스 04-01 372
19953 [한국사] 요즘 역사 컨텐츠를 많이 보면서 깨닭는 것 ( 사이비 … (3) 아비바스 04-01 394
19952 [한국사] 동아게에서 역사글 관련 글 볼때마다 느낀 것 (5) 아비바스 04-01 303
19951 [한국사] 묘제로 본 고대 우리 민족과 이웃 민족 (5) 윈도우폰 03-31 536
19950 [한국사] 역사학자 돌려까기^^ 윈도우폰 03-30 354
19949 [한국사] 우리 고대사 #7 : 맥족의 이동 윈도우폰 03-22 605
19948 [한국사] 우리 고대사 #12 : 한민족과 재가승 윈도우폰 03-22 517
19947 [한국사] 우리 고대사 #11 : 한반도의 왜(倭) 윈도우폰 03-22 483
19946 [한국사] 우리 고대사 #10 : 진국의 한(韓)족 윈도우폰 03-22 52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