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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3 09:25
[한국사] 9)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481  





환단고기를 통해서만 밝혀지는 동명왕의 정체 : 동명과 주몽은 다른 인물



동명신화는 최초의 기록인 <논형>(1세기)부터 6세기 문헌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아닌 부여의 건국신화로 구분하고 있는데 반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동명왕편> 등에서는 주몽의 건국신화로 되어있다. 따라서 동명이 어떻게 왜곡됐느냐 하는 실체가 오직 <환단고기>의 <삼성기>에서만 밝혀지고 있다.



BCE 108년 한나라 무제가 요하의 우거정권(우거는 번조선을 찬탈한 위만의 손자)을 멸한 뒤 군현을 설치하고자 대군을 동원하여 동방(당시 북부여)을 침략했다. 이 때 거국적으로 위병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한족 침략군을 막아낸 북부여의 구국영웅이 고두막한이다.



고조선 47세 고열가단군의 후손인 그는 거병에 앞서 졸본에서 동명왕으로 즉위하였고, 훗날 민심을 얻어 북부여 5대 단군에 즉위하였다. 고두막학은 동명이라는 나라의 왕 동명왕)으로 22년간 재위하였고 북부여 5세 단군(고두막 단군)으로 27년간 재위하였으나 합하여 49년간 왕과 단군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동명(東明)은 흔히 고구려를 개국한 주몽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산의 묘지명에 "옛날에 동명東明은 이군에 감응되어 표천을 건넜고, 주몽은 광명으로 잉태되어 패수에 임하여 도읍을 열었다(昔者 東明感氣 踰俵川而啓國 朱蒙孕日 臨浿水而開都) 라고 하여 동명(東明)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천남산묘지명(泉男産墓誌銘).



大周故金紫光祿大夫行營繕大匠上護軍遼陽郡開國公泉君墓誌銘幷序」君諱男產遼東朝鮮人也昔者東明感氣踰㴲川而開國朱蒙孕日臨浿水」而開都威漸扶索之津力制蟠桃之俗雖星辰海嶽莫繫於要荒而俎豆詩」

書有通於聲敎承家命氏君其後也乃高乃曾繼中裏之顯位惟祖惟禰傳



대주(大周)의 고(故)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행영선대장(行營繕大匠) 상호군(上護軍) 요양군개국공(遼陽郡開國公) 천군(泉君)의 묘지명(墓誌銘) 및 서(序) 군(君)의 휘(諱)는 남산(男産)이니 요동(遼東) 조선인이다.


옛날에 동명(東明)이 기(氣)를 느끼고 사천(㴲川)을 넘어 나라를 열었고, 주몽(朱蒙)은 해를 품고 패수(浿水)에 임해 수도를 열어, 위엄이 해뜨는 곳[扶索]의 나루에 미치고 세력이 동쪽 지역[蟠桃]의 풍속을 제압하였으니 비록 성진(星辰)과 바다와 산악이 변방지역[要荒]에 걸려 있지 않았어도 예절[爼豆]과 시서(詩書)는 성교(聲敎)에 통하여, 가(家)를 잇고 씨(氏)를 받았으니 군(君)은 그 후예이다.





삼국사기에는 동명과 주몽을 같은 인물로 기록해놓았다. 그러나 김천령金千齡(연산군때의 문관)은 자신이 지은 부에서 “동명이 창업하고 주몽이 계승하였다 東明啓其赫業 朱蒙承其餘波”라고 하여 동명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전하였다.



다른 역사 기록서인 <만주원류고> 권1 부여조에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고 부여는 색리에서 나왔는데 부여는 고구려의 북쪽에 있고 색리 또한 부여의 북쪽에 있었으므로 동명은 (색리에서) 남쪽으로 달아나 부여에 이르렀고 주몽은 역시 (동부여에서) 남쪽으로 달아나 고구려에 이르렀다. 高麗出自夫餘 夫餘出自索離 夫餘在高麗北 索離又在夫餘北 故東明南走而至夫餘 朱蒙亦南走而至高麗 ”로 기록되어져 있다.







역사스페셜 동명루트를 찾아서 편에서는 동명을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그동안 동명왕을 주몽으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조금 당혹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나 동명왕편을 비롯한 여러 사서들에선 주몽을 동명왕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12세기 이후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러니까 주몽은 추모왕이나 추모성왕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이전 그 언제부턴가 동명왕으로 불렸을 테고 지금으로선 그 시기를 정확인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왜 부여의 건국신화 역시 비슷한 내용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한 가지 있다. ‘朱蒙自北夫餘道難 至卒本夫餘’ 즉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이다. 주몽이 다름 아닌 부여출신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는 강한 부여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고대국가들의 뿌리 부여가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 나아가 발해에 이르기까지 부여는 우리 고대국가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고대 이래로 우리민족에게는 바로 동명왕의 후예라는 생각이 이어져 왔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잊어진 부여사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한무제는 전쟁에 이기고 왜 승리한 장수들을 다 죽였는가?



환단고기는 한무제와 동명왕 고두막한의 전쟁 역사의 진실을 전한다





중국 한나라와 위만조선

 

사기(史記) 조선전에 보면 한무제는 양복으로 해군을 이끌고 제(齊 : 산동반도)로부터 발해를 건너고 순체는 육군을 거느리고 요동(요동)으로부터 위만을 쳤다. 이 당시 발해(渤海)란 현재와 같이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를 말하며 요동은 난하와 만리장성 사이로 산해관에서 출발했고 위만의 도읍지인 왕검성은 발해의 북쪽과 만리장성과 요하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왕검성은 패수의 동쪽에 있었는데 이 패수는 대동강이 아니라 대능하(大凌河) 이며, 왕검성은 대청일통지(大靑一統志)에 광녕현(廣寧縣) 동남에 있다고 하였다.






전쟁의 결과

 

전쟁의 결과에 대하여 사마천은 <사기>에서 "우거는 지세가 험하고 견고한 것만 믿다가 나라의 대가 끊어지게 하였고, 섭하는 공을 도둑질했다가 적의 군사에게 머리를 잃었으며 누선(樓船 : 양복)은 장졸이 적은 것을 가지고 어려운 일을 당해서 제 허물을 벗어나려 했다. 그리하여 번우를 잃고 도리어 의심을 받았다.


순체는 공손수와 더불어 전공을 다투다가 둘 다 함께 죽임을 당해서 양쪽(한과 위만)의 군사 모두 욕되었으며 장수로서 후(侯)에 봉해진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승리자는 누구인가?



전쟁의 결과를 보면 한(漢)도 우거(위만의 손자)도 모두 패한 전쟁인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자는 누구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환단고기의 <북부여기 상편> 4대 단군 고우루 13년조에 "한의 유철(무제)나 평나를 쳐들어와 우거를 멸하고 사군을 두고자하여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켰다. 이에 동명 고두막이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의 침략군을 연파하자 그 지방의 유민들이 사방에서 응하여 도우므로 군보가 크게 떨쳤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자 동명(東明) 고두막이 군사를 일으켜 유민(번조선의 백성)을 이끌고 한의 세력을 격파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 한무제가 동명왕 고두막한에게 대패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켜버린다. 그후 중국의 대부분 사서에서 북부여 역사가 사라지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가들이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였고 일제 식민사학자와 국내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였다.








고인돌 유적은 환단고기의 사료 가치를 높인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가 설명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기록 또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유적유물로 뒷받침하는 단군조선의 실증적 증거물이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장묘문화부터 고인돌 시대 장묘문화와 삼국시대의 장묘문화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고조선의 주무대였던 만주와 요서의 고인돌도 그 형성연대가 오래지만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인돌만해도 BCE 2000년 이전의 것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국내 강단사학자들은 방사능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신화로 보는 관점과 직결되어있다. 고인돌에서 보듯이 고조선은 중국과 뚜렷한 구별되는 독자적인 상례 문화를 갖고 있었다.



미국의 고고학자 사라넬슨Sarah Nelson은 경기도 양수리 고인돌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를 BCE 2665~ 2140년 것으로 추정한다 , 북한 학자들은 우리나라 고인돌이 BCE 4000년 후반기에 생겨나 BCE 2000년 전반기까지 성행했다고 본다 (성삼제,고조선 사라진역사 67,70)




새라 M 넬슨 교수= 1970년 한국을 방문해 1년간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공부했고, 1973년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한강 유역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산리 유적을 세계고고학사전에 올렸고, 1996년엔 세계동아시아 고고학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고고학을 독립 분과로 만들기도 했다(그 이전에는 한국고고학은 중국과 일본의 고고학에 속해 있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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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마루 18-03-24 05:54
   
이런 또라이들은 어디서 들어오는 거임?
     
스리랑 18-03-25 16:11
   
참 별놈 다보겠네. 일본놈이냐, 중국놈이냐, 아니면 민족반역자 식민사학에 염색된 놈이냐??
또라이가 보면 모든 것이 또라이로 보인다 이놈아
     
6시내고환 18-03-26 19:27
   
동명왕과 주몽이 다른 사람이라는건 이미 여러 사료와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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