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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4 12:25
[한국사] 태조왕 요서 10성 위치지도.jpg
 글쓴이 : 식민극복
조회 : 3,828  



고구려 태조왕 요서10성 기록은 '삼국사기'와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만 기록되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삼국사기에선 자세한 위치설명이 없고 환단고기에는 위치설명이 있습니다.


1. 안시(安市)성이니 개평부의 동북쪽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2. 석성(石城)이니 건안성에서 서쪽으로 50리덜어진 곳에 있고

3. 건안(建安)은 안시성에서 남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4. 건흥(建興)은 난하의 서쪽에

5. 요동(遼東)은 창려의 서남쪽 경계에 있고

6. 풍성(豊城)은 안시성의 서북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있고

7.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8. 옥전보(玉田堡)는 옛날의 요동국으로 한성에서 서남쪽 60리 떨어진 곳에 있고

9. 택성(澤城)이니 요택성에서 서남쪽으로 50리 떨어진곳에 있고

10. 요택(遼澤)성이니 황하 북류의 왼쪽 언덕에 있다. 환단고기 완역본 (상생출판 ) 1137p


*박지원의 열하일기

" 이른바 옛 안시성은 개평현 동북 70리에 있다"라고 기록.


*중국 정사의 안시성기록 → 하북성 북경일대라 기록.

- 한서 : 요동군, 하북성 북경

- 위서 : 안락군, 정주, 하북 북경, 밀운

- 독사방여기요 : 안시폐현, 북경현 동북 50리, 한요동속현






요서10성 위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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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18-03-24 12:29
   
그러네요  저 위치를 분석하면  다른 부분의 문제들도 풀수 있을거같은대

태조왕시절  요서위치도 알게되는거고  자연스럽게 요동도 구분지을수있고
남북통일 18-03-24 13:17
   
본인도 요서 10성의 위치를 찾는 중인데,
저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믿을 게 못 됩나다.
당장에 안시성, 건안성은 요동군에 속한 성이고요
     
스리랑 18-03-25 16:12
   
당신이 믿는 것은 뭔가요??
          
남북통일 18-03-25 16:29
   
한국의 정사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등.......
또한 중국 25사 등등.............
정사라면 저는 대부분 인정해준답니다 ^^
               
스리랑 18-03-25 19:37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국을 주인으로 우리는 중국의 속국으로 기록한 사대주의 책이고
사마천의 사기부터 우리역사를 왜곡한 책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이요??


당唐 태종은 고구려 정벌을 도모하다가 결국 패망해 버린 수나라의 뼈아픈 과거를 알면서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결국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한쪽 눈을 잃는 치욕을 당하고 되돌아 갔다.

당나라로 돌아간 당唐 태종은, 고구려와의 전쟁 후유증을 수습하지 못하고 멸망한 수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전대에 대한 역사서를 편찬하였는데


위진남북조시대 진晋, 양梁, 북제北齊, 북주北周, 진陳의 역사를 기록한 『진서晋書』, 『양서梁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진서陳書』 그리고 수나라의 정사인 『수서隋書』 등 총 6권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이 6권 어디에도 수나라의 패배를 비롯하여 중국이 한韓민족에게 당한 굴욕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한韓국사의 구체적 내용을 왜곡하여 기록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서史書에서 한韓민족 국가의 정식 국호國號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가지 별칭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옛 역사를 부정함과 동시에 한韓민족을 중국 주변의 야만인 집단으로 비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북통일 18-03-25 19:50
   
님이 백날 외치는 환단고기보다야 할까요?
그리고 중국의 춘추필법도 잘 압니다.
김부식, 일연이 사대주의자라는거? 잘 압니다.
근데.......'환단고기'보다야 더 신뢰성 있는 사서죠.
그리고 환단고기가 다른 사서들과 교차검증이 됨?
당시 1차 사료임?
아참, 그리고 김부식이 사대주의는 맞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을 모두
'본기'에 서술한 건 아심?
                         
스리랑 18-03-25 20:36
   
앞전에 댓글을 안읽으신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시요. 식민사학자양반

우리의 시원 역사를 단절시키고 파괴한 여러 손길이 있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중국에 의한 역사 왜곡과 그 왜곡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우리 유학자들의 존주사대尊周事大 사상’이다.


공자가 주창한 유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요, 그 밖의 민족은 중국에 예속된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제창한다.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은 고려와 조선의 존화(尊華) 사대주의자들은 이 중화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심각하다.


고려의 유학자들은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이 기자조선에서 위만조선, 남삼한, 신라로 연결되는 것으로 왜곡하였다. 그에 앞장 선 인물이 고려 중기 때 김부식이다.


김부식은 묘청의 북벌운동을 진압하고 우리민족의 고유사상, 낭가사상(郎家思想)을 말살한 경력을 가진 삼국사기의 저자로 신라의 독자적인 연호사용을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고 우리민족을 침략한 당나라 이세민을 우리 당태종(我唐太宗)”이라고 칭하였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비아(非我)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으로 우리 역사를 편찬할 때 발해사(渤海史)를 논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국을 지극 정성 섬기며 삼국사기 서술 주체가 중국이고, 객체가 한국이다.

그의 열렬한 모화(慕華,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김)정신은 망국멸족(亡國滅族, 나라와 민족을 함께 망하게 함)의 사대사관의 전통이 되어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위징 등이 쓴 『수서(隋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구려(高句麗)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토지(帝將討之)라.” 고구려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공손하지 않아서 수양제가 장차 토벌을 하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를 아(我)로 바꿔놓고는 "아(我)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帝將, 이걸 상장토지(上將討之)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오만해서 중국의 임금이 치려고 했다… 는 식으로 쓸 수가 있을까? 참으로 황당한 내용인 것이다. 이처럼 "김부식은 비아(非我)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신라 650년 진덕여왕 4년에 당나라 고종의 ‘영휘’라는 연호를 처음 쓴 부분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기를, “옛날에 법흥왕이 연호를 스스로 썼는데, 아, 편방(偏邦,중국의 변두리)의 소국으로서 왜 연호를 쓰나?


당 태종이 꾸지람을 했는데도 연호를 고치지 않다가, 650년에 고종의 연호를 갖다 쓰니, 허물을 능히 잘 고쳤다고 할 수 있도다” 이런 식이다. 이것이 국보로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구절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사대주의 책이라고 비판받아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통해서 중국을 흠모하고 존중하는, 존화사대주의 사상을 정립한 것이다. 그가 지은 삼국사기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왜곡의 기본 원전이 되었다. 한국을 점령한 일본제국주의자들도 바로 이 책을 얼씨구나 하고 악용하여 소위 반도사관, 식민사관, 왜식사관을 날조해 낸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러한 사관에 따라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삼국사기를 저술하면서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의 역사는 완전히 지워버린 반면, 같은 시대 신라 역사는 망하는 날까지 세세히 기술하였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사대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묘청, 정지상 등이 고토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벌인 서경천도 운동을 벌였을 때, 김부식을 대표로 하는 집권층 유학자들이 이것을 권력 장악을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유교를 국교로 신봉하는 조선은 개국 초 춘추(공자)와 자치통감 강목(주자)만 사필(史筆)로 여기고, 한민족 정통사서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압수 소각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철학,종교,문화의 중요한 자료들이 말살되었다.


주체적인 사관을 주장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였다. 그래서 우리역사가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서 철저히 왜곡되고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모든 역사가 왜곡이 되었다.


태종은 서운관(書雲觀)에 보관되어 있던 고유사서들을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소각하였으며,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전국 관찰사에게 사서 수거령을 내렸다. 이렇게 우리의 정통 사서들이 소실된 것은, 오늘날 우리 역사의 올바른 인식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한민족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국측 사료와 이 땅의 사대주의 사서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청 태조 누루하치가 보낸 국서를 보면 조선의 사대 근성이 적나라하게 고발되어 있다.


“요동은 본시 조선의 국토다. 지금 명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빼앗았는데, 너희는 명나라가 원수인 것도 모르고 도리어 신복하고 있다”고 조선을 꾸짖고 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조선 유학자들이 보였던 중국의 사상을 숭상하여 섬기는 모화정신(慕華精神)이다. 이것은 진실로 한국사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망국멸족(亡國滅族)의 표본이다.


세종 때 최만리는 훈민정음 제정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조종(祖宗)” 이래 지성으로 중국을 사사(師事)하고 모두가 중국 제도를 본받아 왔는데 만약 훈민정음이 중국에 전해지는 날에는 사대모화에 부끄러운 일이라“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은 명(明)을 ‘본조(本朝)’,즉 ‘내 나라의 조정’이라 부르며, 우리의 역사에 대해 ”단군시대는 아득한 태고시대라 증명할 수 없고, 기자(箕子)가 봉해지고 나서야 겨우 문자를 통했으며, 삼국시대 이전은 별로 논할 만한 것이 없다“고 폄하하였다(대동야승(大東野乘) 기묘록별집(己卯錄別集)



또한 명나라 군주를 ‘우리의 황상(皇上)이라 하고, 명나라 조정을 ’천조(天朝), 또는 ‘성조(聖朝)로 불렀다(본국청개종계주본(本國請改宗系奏本) 기자께서 동쪽으로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오랑캐가 바뀌어 중국인[夏]이 되었고 드디어 동쪽의 주(周)나라가 되었습니다['숙종실록(肅宗實錄)' 7, 9]”라고 하였다.



옛날 유학자들의 의식이 다 이렇게 되어 있다. 유가문화의 썩어빠진 역사의식으로 인해 나라가 망해 버렸다. 伏草 최인(崔仁)은 이 같은 행태를 두고 ‘조선은 한일합병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한중합병으로 망하였다’라고 일갈하였다.



조상의 비문 첫 머리에 유명조선(有明朝鮮:명나라에 속한 조선)을 내세우고, 조선 백성을 명(明)의 신민(臣民)이라 하고, 한문은 진서(眞書)로 존중하면서 한글은 언서(諺書)로 무시하였으니, 분명히 한중합병이라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혼 빠진 민족이 아니고 무엇인가.



단재 신채호는 외래종교, 외래사상에 물들어 역사와 문화를 다 잃어버린 가련한 한민족에 대해 이렇게 통탄하였다.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남북통일 18-03-25 20:47
   
식민사학을 가장 싫어하는 본인이 식민사학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적 사서라면 환단고기는 제국주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뎁쇼?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발해를 따로 서술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에는 발해가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해가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생긴 건 조선 후기때부터고요~
아 그리고 환단고기의 진본은 발견되었음?
6시내고환 18-03-24 20:17
   
항상 10성에 대해서 요동성이 최전방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거 흥미롭네요
감방친구 18-03-24 21:49
   
안시, 건안을 난하 서쪽에 두면서 비사성을 현 학계 통설대로 대련에 두는 게 웃기네요
     
Attender 18-03-24 22:29
   
감방친구님.....
한번만 그냥 못 본척 해주세요;;;;;;
          
남북통일 18-03-24 23:39
   
오류가 많으니까 그런 거죠.
요동군의 성을 요서 10성으로 배치하는 문제점 등등.......
환단고기는 여러모로 믿을 게 못 되는 사서에요.
               
스리랑 18-03-25 16:13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남북통일 18-03-25 16:31
   
아.......됐구요.
오기가 많은 책을 비판하는게 도대체 뭐가 문제지요?
                         
스리랑 18-03-25 19:22
   
환단고기가 오기가 많다고요??
삼국사기는 더 많다는 것은 아시요??
사마천의 사기의 역사책은 그야말로 역사를 왜곡한 사기를 친 역사서라는 것은 아시요?
                         
남북통일 18-03-25 19:51
   
삼국사기의 오기를 10으로 가정하면
환단고기는 대략 10,000일것이고
일본서기는 12,000쯤 되겠지요.
                         
신수무량 18-03-26 00:57
   
현존하는 모든 사서는 오기가 있습니다.ㅡ그리고 지나애들과 지나화된북방애들이 쓴 사서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내용을 잘 분석해야하는(제대로 기록했는지 아닌지 후에 왜곡된 기록이 있는지 아닌지 등) 사서들이 대단한건가는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나애들이 신주단지 모시는 사마천의 사기 원본은 없습니다. 후대에 복사에 복사...삼국사기도 김부식의 원본은 없습니다..후대에 어떤 한자를 어떻게 바꿨는지 그 배낀사람들만 알겠죠.
적발이들이 일본서기 잘 모시잖아요...그러니 우리쪽 못되먹은 이들이 그거 인용하거나 비교하잖아요..
한단고기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기록된 모든사서는 오기된 부분을 비판하면 됩니다...그게 비교 교차검증아닌가요? ...
제대로 기록된 사서들이라면 왜 그런 복잡한 검증을 할 필요가 있겠나요?
(제대로 된 사서(해당시대) 하나만 봐도 될일일텐데)
스리랑 18-03-25 20:30
   
삼국사기도 1981년에 발견된 고려 때 판본을 기존 판본과 비교한 결과 오자誤字가 무려 3백여 개에 이르는데 거기에 비하면 환단고기는 겨우 40건 정도 밖에 안되니 비교불가입니다.
     
남북통일 18-03-25 20:47
   
그에 대한 명확한 출처를 가져오시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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