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3-29 22:59
[중국] 홍산문명의 청동문명과 상나라의 관련성 그리고 고조선
 글쓴이 : history2
조회 : 2,174  

20080924.22018211537i1.jpg
                                                 적봉의 모습들 
hqdefault.jpg


1980년대에 만주 요하(遼河, 중국명 랴오허) 서부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차례로 발굴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는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한기 소하서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서기전 7000년까지 올라가는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仰韶文化)보다는 2500년 이상, 장강 하류의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보다는 2000년 이상 앞선다.

요하문명.jpg


소하서문화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사해문화(渣海文化), 부하문화(富河文化),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홍산문화(紅山文化)로 이어지는데, 이 일련의 문화를 요하문명(遼河文明)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1) 홍산문화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의 유적으로서 초기국가가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주목을 받고 있다. 

홍산-홍산문명.jpg



홍산은 적봉의 동북방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홍산문화는 내몽고와 요녕성(遼寧省)의 접경지역인 적봉, 조양, 능원, 객좌, 건평 등을 중심으로 유적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홍산문화는 서기전 4500년까지 소급한다. 홍산문화는 청동기시대로 가면서 적봉 일대의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서기전 2500-1500년),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서기전 1500-700년)로 이어진다. 

baa6abbf75f272910f91252b2951a1d1.jpg

3466.jpg


2) 홍산문화 만기(晩期, 서기전 3500-3000년)에 해당하는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능원과 건평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서기전 3,500년까지 올라가는 거대한 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적석총(積石塚)이 발굴되었다. 

이 시기에 이미 사회계급이 분화되고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져 초기국가단계 또는 초기문명단계에 진입하였음을 보여준다. 중국 최초의 국가라는 하(夏)나라가 설립되기 전에 이미 초기국가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발굴된 옥기 중에는 곰 형상의 웅룡(熊龍)과 돼지 형상의 저룡(猪龍) 등이 있다. 

또한 재단터에서는 희생(犧牲)으로 사용된 곰의 아래턱뼈가 발굴되었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홍산문화를 주도한 세력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적석총은 고구려, 백제, 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의 묘제이다.

홍산적석총우하량제단.jpg
                                              홍산과 한반도 중도 적석총의 유사
중도 적석총2.jpg
                                                            중도의 적석총
중도 적석총.jpg


난하요하일대신석기유적지.jpg


하가점하층문화(초기 청동기문화, 중국최고)는 노합하(老哈河) 유역과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하가점하층문화는 상한이 서기전 2500년이고 하한이 서기전 1500년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기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중원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인 이리두(二里頭, 중국명 얼리터우)문화는 상한이 서기전 2100년이고 하한이 서기전 1500년이다. 이를 근거로 중원지역에서는 서기전 21세기에 하나라가 건국되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원지역보다 더 이른 시기에 지금의 요서지역에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의 유적에서는 청동제품뿐만 아니라 금이나 납제품도 발견되고 있다. 청동제품을 주조할 수 있는 토제용범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킬로그램에 달하는 청동과(靑銅戈)도 제조한 것으로 보아 당시 청동제품 주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취락은 대개 하천 부근 평지에 위치하지만 구릉 위에도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의존하여 방어를 위한 유기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락은 담장을 두르고 그 밖에는 호구를 설치하였다. 담장은 보통 돌과 흙을 혼용한 구조이다. 취락 가운데는 석성 유적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커다란 돌로 담장을 쌓아 매우 강력한 방어기능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후는 지금에 비해 온난하고 다습하였으며, 이러한 기후조건에서 적응력이 비교적 강한 조를 심고 가축을 기르면서 농사와 목축을 병행하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복골.jpg
                                                       홍산의 여러가지 복골들 
htm_2008102203360840004300-001.JPG
                                                 상나라의 갑골문자

해남 군곡리 패총.jpg
                                            한반도에서 발견된 복골(해남 군곡리) 
  
art_1515203878983_51fbda.jpg




3) 홍산유적에서는 상나라에서 사용한, 그 복골(卜骨)양식이 널리 발견된다. 복골은 골복(骨卜)의 흔적이다. 골복은 뼈에 열을 가해서 그 위에 나타난 균열의 무늬를 근거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로 점을 치는 습속은 만주, 한반도, 일본에서 널리 행해졌다. 반면에 중원지역에서는 시초(蓍草)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점서법(占筮法)이 시행되었다.

03-036.jpg
                                                        중원의 점서법


하가점하층문화가 지속된 시기는 중국의 하나라가 일어나기 전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의 교체 시기까지에 이른다. 유적과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이 지역에서는 하나라에 필적할 만한 고대국가가 성립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립한 고대국가는 어떤 나라일까?

4) 중국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가 발견됨에 따라 상나라의 기원을, 홍산지역에서 찾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다. 상나라를 세운 세력의 문화가 이 지역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인종 또한 동일한 근원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나라의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유융(有娀)씨의 딸인데,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임신해서 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난생설화는 동북지역과 한반도에 많이 있다. 

상나라의 청동기 수준은 하나라의 그것과 차이가 많다. 타이완 출신의 재일역사학자 진순신(陳舜臣)은 이를 극도로 뛰어난 청동기가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청동기 기술이 외부에서 유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자생적인 기술이라면 유치한 단계로부터 점차적으로 개량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중국의 청동기는 최고의 것이 상나라 때 갑자기 출현한 것이다. 상나라의 청동기제품에 제기(祭器)와 주기(酒器)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아 상나라 사람들은 제사와 술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에 새겨진 동물무늬는 풍부하고 다채롭다. 이것은 

5) 상나라가 목축이나 수렵사회에서 온 외래 정복왕조(홍산에 기반을 두었던) 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상나라가 도읍지를 자주 옮긴 것도 유목사회에서 유래하였음을 보여준다. 상나라에서는 거북의 껍질과 짐승의 뼈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골복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만주, 한반도, 일본 등 북방계의 습속이다. 중원지역에서는 시초를 이용한 점서법이 시행되었다. 

6) 상나라의 귀족무덤에서 출토된 두개골을 측정한 결과 북아시아 몽고인종과 동아시아 몽고인종이 서로 혼합된 형태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상나라가 하가점하층문화 유역에서 앞선 청동기문명을 이룩한 세력이 중원지역에 진출하여 세운 나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

7) 홍산문화 유역은 상나라를 세운 세력의 근거지였다. 상나라는 북방계가 중원지역을 차지한 최초의 국가였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중원지역을 둘러싸고 북방계와 남방계의 대립 투쟁이 이어진다. 그러나 상나라가 홍산문화 유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고대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나라는 서기전 1600년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홍산문화 유역에서는 서기전 2500년 이전에 이미 고대국가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홍산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한 최초의 국가는 상나라보다 훨씬 먼저 성립하였다. 그리고 서기전 1600년경 권력에서 밀려난 일부 세력이 중원지역으로 들어가서 상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나라 이전에 홍산문화 유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하가점하층문화가 분포된 지역은 노합하 유역과 대릉하 유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오늘날 요서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따르면 기자(그 사실의 신빙성과 상관없이)가 조선으로 와서 기자조선을 세우자 그곳에 있던 단군조선은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에서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즉, 기자조선이 성립한 지역에 이미 단군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 북한학자 리지린은 동호(東湖)라고도 불렸던 북방계통의 예맥족(濊貊族)이 남하하여 요녕성 일대에 조선(단군조선)이라는 국가를 건설했다고 주장해서, 홍산문명과 고조선과 그리고 상나라 와의 관계성을 언급하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도배시러 18-03-29 23:13
   
동호는 꾸준히 대~상곡(장자커우) 부근에서 존속했습니다. 유목하기 좋은 위치이죠.
history2 18-03-29 23:21
   
동호를 신채호님도 고조선으로 비정했었는데요,,,, 동호가 유목만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농업에 종사한 계통이 조선이고, 유목족속이 선비,거란으로 분화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배시러 18-03-29 23:26
   
근거가 부족해요. 각종 문헌에서 동호의 위치는 상세하게 나옵니다. 산해경, 사기
억지로 동쪽으로 이동시키려는 이유가 수상합니다.
          
history2 18-03-30 06:55
   
딱히 동호가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제가 논증한 구절이 있는지요 ?? 전 그냥 요하지역에 계속 머물렀다고 생각을 합니다
history2 18-03-29 23:25
   
전국시대가 끝나고, 한나라가 강성해 지면서, 유라시아의 유목민족(몽염의 오르도스 지방공격으로)이 흉노라는 구심점으로 집합을 했고, 그에의해 동으로 밀린 동호는(동으로 이동이 아니라, 동쪽에 강대국이 있으니 더이상 그쪽으로 성장은 멈춘), 아무래도 지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기에, 그들의 역사책에서 사라졌고, 세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도배시러 18-03-29 23:30
   
동호의 직계 오환도 대~상곡 부근에서 생활하구요. 후한을 노략질할때도 그 지역입니다.

고구려처럼 3천리 이상을 건너와서 후한을 노략질하지는 않습니다.
후한을 노략질한 고대국가 중에서 가장 멀리 원정을 다닌게 고구려이죠.
고구려의 위치를 3천리나 동쪽으로 보내버리고... 그 틈새에 동호를 밀어넣으려는 수작이니...

잘못된 발상을 유지할려는 완벽주의자의 허망한 노력일뿐입니다.
history2 18-03-29 23:37
   
동호의 제 세력이 부족, 인종을 뛰어넘는 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아시다 싶이 동몽골에서 코카서스와 퉁구스의 혼혈인골이 자주 발견이 되지 않나요?
history2 18-03-29 23:42
   
동쪽으로 이동이라고 해도, 여전히 요하중심으로 있었으니,,,딱히 님 말씀처럼 뭐 크게 이동한 건 없네요...고조선도 난하를 중심으로 있었고, 남으로는 보정까지 점유했으니요....
history2 18-03-29 23:51
   
저는 동호의 농업계열 = 고조선으로 보고 있습니다...고구려는 한참 뒤의 일이구요... 그러니 동호의 동진은 고조선의 위치가 다소 동진되었다...즉 적봉  -> 난하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도배시러 18-03-30 00:21
   
동호는 산악지대로 진입 안해요.
동호가 묵돌에게 발린 이후에 유방의 동네친구 노관이 동호의 왕이 되는데... 상곡을 책임지죠.

그후 동호가 동쪽으로 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후한때에 여전히 상곡부근에서 오환이 존재하죠.
동호가 흉노에게 복속되었다가 맞는거겠죠.

그리고 전한 초기에 상곡의 좌측에는 흉노, 우측에는 예맥/조선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도배시러 18-03-30 00:22
   
연나라 장수진개가 동호를 천리밖으로 쫓아냈다는데도...
여전히 상곡 부근에서 동호가 나오고 오환이 등장합니다.
history2 18-03-30 06:50
   
동호에 관한 문제는 한번 더 정리를 해 보겟습니다....진개와 특히 노관과 위만을 위주로,,제가 홍산과 상나라와의 관계성에 너무 집중을 해서 저를 그쪽(환쪽)이랑 연결시키신 줄 알았습니다...
history2 18-03-30 06:53
   
제 글에도 진개나 흉노의 공격으로 동호(=고조선)가 특별히 대규모 이동을 했다거나, 수도가 이동했다는 구절을 적은적은 없습니다...완충지로 문제를 접근했습니다
     
history2 18-03-31 11:48
   
서울대학교 교수 노태돈은 연나라 진개의 침략으로 고조선의 도읍지가 지금의 요동지역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으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국지 三國志>에서 인용한 <위략 魏略>에는 전국시대 연나라 소왕(昭王, 서기전 312-279년) 때 장수 진개(秦開)가 고조선을 공격하고 땅 이천여 리를 차지하였으며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는 기술이 있다.
만번한은 행정구역인 요동군에 속해 있는 문현(文縣)과 번한현(番汗縣)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요동군은 중국의 동북변경에 있었던 행정구역으로서, 원래는 만리장성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결국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은 사실상,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즉, 진개가 빼앗은 땅은 연나라와 고조선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history2 18-03-31 11:48
   
<사기>에 위만이 망명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鄣)에 거주하면서 세력을 모아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하였다. 여기서 패수 동쪽에 진나라의 빈 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한 것은 국경 방어의 편의를 위해 국경 부근에 살고 있던 고조선 주민들을 소개(疏開)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고조선의 도읍지가 진개에 의해 침탈되었다거나 위협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history2 18-03-31 11:49
   
도읍지를 옮긴다는 것은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진개의 공격으로 고조선이 도읍지를 옮겼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이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history2 18-03-31 11:49
   
위만조선의 왕험성이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고조선(기자조선)의 도읍지는 위만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낙랑군 조선현에 위치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은 기자조선의 왕성을 빼앗아 한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도읍지를 옮기지 않았다. 낙랑군 수성현의 갈석산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있는 갈석산이므로 왕험성은 갈석산의 동쪽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도읍지들은 모두 지금의 요서지역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Total 46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64 [중국] 대륙계보? 아랫글 관련... (6) 윈도우폰 03-11 602
463 [중국] 자강두천 가슴이 옹졸해지는 <삼국지> 시리즈 ㅋ… (1) 아비바스 03-03 468
462 [중국] 지나족 족보 세탁 - 지나 한족의 시작은 1930년 중화민… Korisent 02-09 1411
461 [중국] 허풍 삼국지의 실제영토를 까발린다 (유비관우장비) … (6) 레종 10-17 2328
460 [중국] 중국의 정체성 (4) 하이시윤 05-25 1669
459 [중국] 한국사는 중국인 친구가 많은데,,, (10) 살강살강 04-15 3320
458 [중국] 중국 사극에서 (2) 윈도우폰 10-26 3237
457 [중국] 빅토리아3라는 게임에 역사고증 오류있더군요. Marauder 10-25 1937
456 [중국] 간장게장은 중국 전통음식이다 (2) 살강살강 07-31 1231
455 [중국]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 기믹한야기 11-26 1202
454 [중국] “한국인에게 숨겨야했던 '중국 고대사'의 비… (4) 사랑하며 11-09 1855
453 [중국] 근대 청은 조선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최악의 왕조 (5) 사랑하며 11-03 1590
452 [중국] 역대 중국 왕조들에 대한 이해 - 소중국 왕조, 대중국… (2) 사랑하며 11-03 1340
451 [중국] 조선과 명의 관계 (5) 사랑하며 11-03 1358
450 [중국] 근대에 중국도 분단될 뻔 했죠 (1) 삼한 10-28 1381
449 [중국] 사마천이 사기로 사기치다 만법귀일 10-04 975
448 [중국] 여진족도 한민족 만법귀일 10-04 1203
447 [중국] 진시황이 여진족 만법귀일 10-04 978
446 [중국] 한복공정 한방에 날리다. 만법귀일 10-04 1049
445 [중국] 중국은 곧 저물어 갈 것이다2 (2) 범고래99 10-04 1143
444 [중국] 중국은 곧 쇠퇴하여 저물어 갈 것이다 범고래99 10-04 1003
443 [중국] 추모곡 (3) 위구르 09-21 1056
442 [중국] 중국 바이두 내용을 인용할때는 조심해야한다는 생… (40) Marauder 05-09 2259
441 [중국] 동북공정~~~ 여름시로 05-01 1115
440 [중국] 중국이 언젠가 미국넘어설수있을까요ㅕ? (12) 콜리 04-09 1275
439 [중국] 중국의 문화재 왜곡을 보면 (5) 가난한서민 04-08 1289
438 [중국] bts에 화내는 중국 분노의 세대 심리분석 mymiky 03-28 2208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