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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2 20:16
[한국사] 환단고기가 아닌 황당고기인 이유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608  

우선 환단고기가 어떤 책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구한말 계연수라는 사람이 자기가 수집한 책 5권을 하나로 묶어 출판했다고 전해집니다.


수집한 5권의 책에 대해 언급하자면 삼성기(상), 삼성기(하), 북부여기, 태백일사, 단군세기 입니다.


태백일사, 북부여기, 단군세기에 대해서는 저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환단고기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삼성기(상)은 안함로라고 하는 사람이 지었고


삼성기(하)는 원동중이 지었다고 하지요.


이는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에 나오는 '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에 근거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환단고기에 나오는 주요 사항


환단고기를 보면 우리 민족은 기원전 7191년 또는 기원전 6만년 전 환국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인이 통치했는데 역대 환인은 모두 7명이며 3000년 혹은 6만 3182년을 다스렸다고 하지요.


영토는 동서 2만리, 남북 7만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넓은 땅에는 비리국, 수밀이국, 일군국 등 12개의 국(國)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와서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하지요.


환국 이후 기원전 3800년 경에 배달국이 등장하게 되는데


환웅이 통치했으며 태백산의 신시(神市)를 수도로 했다고 합니다.


총 18명의 환인이 1565년 동안 다스렸다고 하지요.


이 때 부터 중국에서 나타난 세력과의 갈등이 나오는데


환국에서 환웅과 같이 가라져 나온 반고가 돈황 인근 삼위산에 기거하였고


5대 환웅의 아들인 복희씨가 중국에 들어가 세력을 이루었으며


이후에는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온 소전씨 아들 신농씨가 공상(空桑)을 경계로


배달국과 국경을 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후 14대 환웅때 갈등이 본격화 되는데 이 때가 바로 치우천왕시기입니다.


치우천왕은 금속으로 된 갑옷과 무기를 만들었으며


신농씨 후손인 유망을 토벌하고 중국쪽에 자리잡은 세력을 몰아냈으며


헌원(신농의 아버지 소전씨의 또 다른 후손)씨에게 항복을 받고


산동성, 하남성, 하북성 일대를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18대 마지막 환웅이 웅녀와 결혼해 태어난 왕검은 기원전 2333년 조선을 건국했고


47명의 단군이 2095년 동안 다스렸으며 영토를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


진한은 단군의 직할령, 한반도에 해당하는 마한은 웅씨 후손, 중국에 있는 변한은 치우 후손이


다스리도록 했다고 합니다.


또 중국에 치수(治水)기술을 전수해주는 등 각종 기술을 전수해주었으며


3대 단군은 가림토 문자를 만들어 한글의 모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인구가 1억 8천만을 넘어섰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일본열도를 정복하는 등 여러 정복활동을 벌였다고 하는데


37대 단군에서부터 세력이 급속하게 기울어(기울어간 이유는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왕이 연나라 자객에게 살해당하거나 송화강을 따라 몽진하다 객사하거나


중국세력에게 점점 밀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조선을 해체하고 5가가 함께 다스리는 공화정을 펼쳤다고 하는데


이후 북부여가 탄생하지만 얼마 못가 망하며 고구려가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후의 내용부터는 매우 소략하고 별로 쓸 내용이 없어 생략하겠습니다.



2. 환단고기가 위서로 취급받는 이유와 진서론에 대한 반박


환단고기는 한국이나 북한이나 모두 위서로 취급받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하나하나 다 언급하면 매우 길어지는 관계로 중요한 부분 위주로 보겠습니다.


  2-1. 용어 문제

 

환단고기는 위에서본 것 처럼 삼성기, 태백일사, 북부여기 등 삼국시대 ~ 조선 초기까지 쓰였던

      

여러 책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당시 쓰이지 않았던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삼국시대에 쓰인 책에 '비행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던지 

 

조선시대 쓰인 책에 '잠수함'이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 그 시대에 다른 뜻으로 쓰였거나 등장할 수 없는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文化), 경제(經濟), 사회(社會), 원시국가(原始國家) 등등이 있습니다. 

 

문화는 우리가 한국 문화, 미국 문화라는 식으로 많이 접하는 단어입니다.

      

경제 역시 한국 경제, 세계 경제 등으로 많이 접하지요. 

 

이 단어들은 우리가 딱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모두 다 아는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과거에는 다른 뜻으로 쓰였습니다. 

 

문화는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줄임말로써 문()으로 백성들을 교화시킨다는 뜻이었으며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로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근대 이후 일본에서 서양의 Culture, Economy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엣서

      

문화=Culture , 경제=Economy로 번역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 중국에도 퍼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 경제와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던 문화, 경제는 달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환단고기에는 해당 단어들이 근대 이후에나 등장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농업을 권장하고 집을 세워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가 크게 진보하였다'


그 외에 사회(Society), 국가(Nation), 문명(Civilization) 등등 이런 단어들은


모두 근대 이후 서양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들이지요.


특히 국가에 대해 살펴보면, 과거 전제군주제...즉 왕이 통치하는 시절에는


나라(國)라고 하는 것이 왕의 소유하는 실재적, 비실재적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왕이 곧 국가(왕=국가)였던 셈이지요.


근대 이후 생겨난 국가는 각 개인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룬다는 개념이므로


그 뜻이 의미하는 바가 완전 다릅니다.


하지만 환단고기에는 어김없이 이런 단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환도 문명의 성대함이 나라 밖에 소문났다.'


'세계 문명에서 우리가 가장 오래되었다'


'장차 국가에 이롭지 않으리라'


'국가가 유사시에는 몸을 버려 의를 보전하여야 ... (생략)'


2-2 저자 문제


앞서 언급한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에 나오는


'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환단고기 옹호론자들은 이를 근거로 삼성기 상편은 안함로, 하편은 원동중이 지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것은 띄어읽기를 잘못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아시다시피 한자에는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읽는데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지요.


그러나 '안함로원동중삼성기'는 안함, 로원, 동중 삼성기'라고 읽어야 합니다.


즉, 안함 로원 동중 세 성인(삼성,三聖)에 대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안함원로동중'이 등장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황해도 해주목 내용을 보면


수양산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안함 원로 동중 삼인(三人)'이라고 하여


세 사람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조실록 역시 안함 로원 동중으로 읽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지요.


물론 '로원'이 '원로'로 되어 있고 세조실록의 안함(安含)이 승람에는 안함(安咸)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조선 뿐 아니라 모든 시대르 통틀어 비슷한 발음의 한자가 쓰인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즉,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매우 흔했던 일이란 것이지요.


그렇다면 안함 로원 동중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해동고승전에는 안함이 등장합니다.


해당 내용을 보면 안함은 신라 사람으로 601년부터 625년 까지 당나라 유학을 갔다온 승려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불법을 설파했으며


축지법을 쓰거나 예언서를 쓰는 등 기이한 행적을 보였다고 되어 있지요.


또한 중국에서 유학 후 돌아오면서 중국인 승려 두 명을 데리고 와 불경을 번역했다고 하는데


이 두 승려가 로원과 동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안함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실체는 명확해지는 것이지요.


환단고기 옹호론자들은 뒤늦게야 안함을 인정하고


안함로의 '로'자는 안함에 대한 존칭이라고 얼버무립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각종 사서 그 어디에도 존칭으로 로(老)를 사용한 사례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 신봉자들이 안함로를 안함이라고 인정했다면 더 이상해집니다.


삼성기의 내용을 보시면 도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무위(無爲)하지만 이루고, 무언(無言)하지만 행하였다.'와 같이 말이지요.


안함은 해동고승전에 따르면 신라의 승려입니다. 즉, 불교를 믿는 스님이라는 것이지요.


당나라 유학까지 갔다왔을 정도로 불교에 투철한 사람이


도교적인 내용의 책을 서술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원동중에 대해서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고려말 조선초 학자인 원천석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신라(통일신라) 승려인 안함이 삼성기 상편을 지었고


수 백년 후 고려말 조선초 사람인 원동중이 삼성기 하편을 지었다는...이야기가 됩니다.


시대를 초월한...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주장입니다.


더군다나 원천석은 중화주의를 동경하던 사람으로써


단군조선보다 기자조선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운곡행록에 보면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은 것에 대해


'조선이라는 이름은 이치에 적당하고 기자의 유풍이 일어난다면..'이라고 하여


기자조선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요.


그러나 삼성기 하편 보면 단군조선이 천하를 통일하고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단군조선을 매우 떠받들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요.


평소 원천석이 가지고 있던 인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서술된 것입니다.




  2-2. 지명 문제


환단고기에는 용어 뿐 아니라 지명에 있어서도 당시 쓰이지 않았던 지명들이 등장합니다.


영고탑, 세토내해(세토나이카이), 사벽력 또는 사려비아(시베리아)와 같이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영고탑은 오늘날 흑룡강성 영안현 일대의 옛 지명으로


만주어로인 닝구타(Ningguta)를 한자로 바꾼 것이지요.


만주원류고를 통해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닝구타는 '여섯'이라는 뜻으로


청나라의 시조인 누르하치의 할아버지 기오창가를 포함한 여섯 형제가


땅을 서로 나누어 가졌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결국 영고탑은 청나라 초기인 17세기 이전에는 등장할 수 없는 지명이지요.


하지만 환단고기에는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이를 두고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부여의 제천행사인 '영고가 행해졌던 곳이


바로 환단고기에 나오는 '영고탑'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여는 오늘날 길림성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유수노하심 유적'입니다.


더군다나 영고탑 일대는 과거 발해 상경 용천부가 위치했던 곳으로


오늘날에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상경 용천부'유적과 유물이 확인되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근거 없이 끼워맞춘 설명에 불과하지요.


그리고 세토내해...일본의 지명으로 세토나이카이라고 합니다.


세토나이카이는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있는 바다를 의미하지요.


이 역시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지명으로 과거에는 세토내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세토우치라는 지명은 있었지만 여기에 서양의 해역(The Inland Sea)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1872년 비로소 세토내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1911년 고니시에 의해 '세토내해론'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개념이 정립되었습니다.


따라서 세토내해라는 단어는 적어도 1800년대 이전에는 등장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오늘날에도 일본 도서관 등에는 고니시의 세토내해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벽력 또는 사려비아(시베리아)...


시베리아라는 단어는 15세기 킵차크 한국(汗國)이 분열하고


우랄산맥과 예니세이강 근처에 세워졌던 시비르 칸국에서 발생한 단어입니다.


러시아인들이 우랄산맥 넘어의 얼어붙은 땅을 시비리(сибирь)라고 부르면서


시베리아라는 단어가 비로소 생겨난 것이지요.


환단고기에는 그 훨씬 이전부터 시베리아를 뜻하는 것으로 사벽력 또는 사려비아가 등장합니다.



2-3. 고증적 문제


환단고기에는 환국의 영토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라고 적혀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 언급하죠.


이를 Km로 환산하여 지도에 표시하면


동서로는 일본열도 끝에서 부터 오늘날의 이란지역까지


남으로는 호주를 넘어 남극...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를 넘어 북극해 근처까지입니다.


한 마디로 황당한 영토선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를 단순히 영토가 넓다는 것을 표현한 추상적인 의미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자기들 스스로 환단고기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의 영토를 역사서에 기록하면서 추상적 표현으로 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뿐만 아니라 인구는 대략 1억을 넘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살면서 남긴 흔적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 시장이 형성되고 도시가 형성되지요.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흔적들이 남습니다.


토기를 만들었던 가마, 철기를 만들었던 제련유적, 생활했던 주거지 등등...'


하물며 쓰레기를 모아 묻었던 '폐기장 유적'도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데


환국과 배달국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단 하나도'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또, 그 넓은 영토를 다스린다면 효율적으로 이동하기 위한 도로, 방어하기 위한 방어시설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하지만 단 하나도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왕이 살았던 왕궁유적, 왕이 묻힌 거대한 무덤....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말이나면, 환단고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환국은 광활한 영토, 많은 인구를 거느렸던 대단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은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공중분해'되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환단고기를 입증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사마천의 사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런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중국은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역사만을 가르쳤습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존재하긴 했지만 요임금, 순임금, 황제, 염제와 같이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었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이전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은허유적'이 발굴되었고 거기서 나온 청동기에 새겨진 왕조의 계보가


사마천의 사기와 '완벽히'일치하였습니다.


삼국사기도 마찬가지이지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학계에서 상당히 신중하게 보고 있지만


적어도 4세기 이후의 내용은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때문입니다.


무령왕릉은 단 한번도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서 무덤 앞에서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묘지석'이 확인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적혀있었고 생몰연대가 나와있었지요.


그것은 삼국사기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였습니다.


환단고기는 이런 고고학 자료와 일치하는 자료는 커녕


고고학적으로 환국을 입증해줄 유적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3. 환단고기가 내포하는 진실


환단고기는 우리 민족이 고대에는 매우 강성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문명의 시초'였으며 초고대문명인 환국과 배달국을 건설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국에서 배달국, 배달국에서 고조선으로 가면 갈 수록 영토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원지역에서 나타난 헌원씨 등 중국세력을 처음에는 가볍게 누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세계 문명의 시초이고 초고대문명을 이룩한 우리 민족은


시간이 지나며서 점차 영토도 줄어들고 나중에는 중원지역의 세력에게 밀리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 민족은 문명의 시초이고 초고대문명을 이룩하였지만


그것을 발전시키기는 커녕 유지도 못한 채 퇴보하여 중국에게 점차 밀린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민족인 것입니다.


이것이 환단고기의 진실입니다.



환단고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오류들 중에서도 단편적인 부분만을 썼습니다.


모든 역사서들은 해당 책이 과연 진짜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사료비판'을 거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사기, 동국통감,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사기, 구당서, 신당서 등등 

 

이런 책들은 '사료비판'을 거쳐 사료로서의 가치가 입증된 책들입니다. 

 

사료비판이 무엇인지 아시겠지만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온다는 책에 대해서 '과연 이 책이 진짜 역사를 담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겁니다.

 

정말 극단적으로 말해서 먼 옛날 누군가가 우리나라 역사를 근거로

    

과대포장하고 없는 사실을 지어낸 책을 하나 썼다고 칩시다.

       

수백년이 흘러 오늘날 우리가 그 책을 보았을 때 

 

과연 이 책에 적힌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요.

     

이럴 때 다른 책과의 '교차검증', 당시 쓰였던 문장, 단어, 문법.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의 비교 등을 통해 책의 내용이 진실인지를 판별하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삼국사기는 이미 무령왕릉이라는 고고학적 발굴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다른 사서와의 교차검증에서도 들어맞는 부분이 없으며


고고학적으로도 하나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외국에서는 환단고기 옹호론자들 처럼 자국의 역사를 과장되게 부풀리고


그것을 진실인 것 처럼 호도하는 집단을 슈도히스토리(Pseudo-History)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이비 역사'가 되겠네요.


실제로 이런 집단을 우리는 '유사역사학' 또는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덕일, 복기대이며 증산도 계통의 종교에서 환단고기를 성서로 여깁니다.


일본의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칭키즈칸이 일본인의 선조라고 우기며


고대 일본은 한반도, 중국대륙 일대를 점유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터키의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돌궐제국의 영토를 대폭 확장시키고


고구려도 터키 역사라고 우깁니다.


헝가리의 사이비역사학자들 역시 몽골이 자국의 역사라고 우기지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의 유사역사학을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국의 역사를 뻥튀기하기 좋아합니다.


역사도 '학문'임과 동시에 진실을 토대로 설명해야 합니다.


각종 문헌자료와 고고학적 자료들....이것은 모두 강단사학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지요.



환단고기를 읽는 것이야 질문자님 마음인 만큼 누구도 뭐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치 역사인 것 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냥 소설정도로 생각해서 읽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그것도 참 애매한 것이...


같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뒤죽박죽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살펴보면 삼성기 상편에서는


환국이 만주 일대에 있었다고 하고 배달국의 환웅이 그 땅을 이어받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삼성기 하편과 태백일사에서는 환국이 바이칼호 근처까지 영토로 두고 있었으며


시베리아 고원, 천산산맥, 파미르고원 부근을 환국 영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의 책 안에서도 서로 모순되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수두룩합니다.


소설로 읽는다고 하여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흐름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더하자면 소설로서의 가치도 없는...


읽기에는 시간아까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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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미 18-04-02 20:24
   
좋은 환타지죠.

이름같은 고유명사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Attender 18-04-02 20:34
   
고이왕님 언제나 고생하십니다.....ㅎㅎㅎㅎㅎ;;;;;
history2 18-04-02 20:56
   
흑룡회가 환단고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바로 황제-치우의 탁록대전 이후 한족과 한민족이 허구한 날 싸웠다는 그들의 주장과 동일한 이야기 구조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중국 문명이 중동 문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에 의해 중국 한족의 이름을 ‘한민족’으로 바꿔치기하여 되풀이되었다. 물론 당시 일제의 유사역사가들은 그 자리에 ‘일본’이라는 이름을 넣었다. 이들은 일본이 서양의 신문명을 받아들여 동이·북적 민족 중 가장 발전한 만큼, ‘고대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일본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조선과 일본의 합방이 이들의 과제가 되었다. 이들은 아시아, 특히 동이족의 영토에 쳐들어오는 러시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베리아 등지에 많은 낭인들을 보내 정찰하게 했다. 이들의 선전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실제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의 대러 전쟁은 아시아 평화를 위해 짊어진 수고로움이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만들어진 친일단체가 바로 이용구의 ‘일진회’였다. 일진회는 흑룡회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한일 간의 동등한 합방을 요청하는 척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강제병합을 하였고, 곧바로 한국인 최대의 정치단체인 일진회를 해산시켜버렸다. 친일이건 뭐건 어떤 한국인 정치단체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용구도 죽으면서 자기가 속았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흑룡회의 이론은 결국 동이족의 영토를 모두 차지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토대로 활용되었다. 흑룡회를 만들고 흑룡회의 이론을 창안한 우치다 료헤(內田良平)의 이론을 보자. 그는 아세아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의 옛 이름인 ‘위원(葦原)’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 아시아가 일본의 옛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환단고기』에 입각해 전 아시아가 환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유사역사가의 주장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그의 주장 중에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history2 18-04-02 20:57
   
그들의 망언: “천지 이변 때문에 일본 본토와 대륙의 교통이 완전히 두절되기에 이르고, 그 결과 아세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여 인류 진보의 선구가 되는 만주와 몽고에서 중앙아세아에 걸친 지대는 교통이 불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후도 한랭하게 되어 이에 세계적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우리 야마토 민족은 이때 그 본거지인 만몽의 주요 지역을 파괴당하고 남하하여 황하를 중심으로 해서 발전하기에 이르렀지만, 본토(일본)와의 연락 교통이 완전히 두절되었기 때문에 홀로 대륙에 남아 일본의 통치를 떠나 독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에는 결국 같은 야마토 민족이면서도 역사와 풍속을 달리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중국 대륙에 자기들 종족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역사가들도 흔히 하는 이야기다. -> 이문영이 대륙백제 등을 이야기하는 말인 듯

*주의: 우리 역사가들은 사서 특히 ' 남조 등 중국 정통 사서들'을 근거로 논리를 제시하지, 일본인들 처럼 상상력에 근거한 망상이 아니다(위서아닌 위서같은 정사라는 일뽕서기?)



이들 대륙에 남은 동이족은 한족과 경쟁하고 대립하면서 자신들의 옛 땅인 만주, 몽골로 쫓겨나게 된다. 따라서 일본과 만주, 몽골, 조선은 다 같은 혈통이라는 것이다. 바로 내선일체론이다. 이런 점을 우리나라 유사역사가들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이 종가이고 일본은 분가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1920년대 말 대공황을 만나면서 일본에는 파시즘이 일어난다. 파시즘 아래서 흑룡회의 이론은 더욱 기승을 떨치게 되었다. 만주사변과 같은 전쟁의 이면에는 대동이족의 영토를 찾겠다는 신념이 일정 부분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파시즘의 대두와 더불어 천황의 신격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팔굉일우의 대일본제국, 대아시아주의, 대동아공영론이 등장했는데, 이들의 등장에도 역시 이런 이론이 어느 정도 기여한 바 있다고 보겠다. 천황을 유교적 가부장 체제의 정점에 놓고 혈연공동체로서 국가를 건설해 나가고자 한 것이다. 물론 우치다 료헤의 이론 같은 것은 그 황당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일본 내 주류 사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파시즘 일본 내에서도 비주류 중의 비주류에 속해 있었다.
history2 18-04-02 20:57
   
환단고기와 대한민국: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면면히 살아남아 대한민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유사역사가들이 ‘피의 순수성’, ‘혈통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일부는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것이 한민족의 순수 혈통을 ‘더럽히려는’ 선진국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행히도 오늘날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사역사학의 뿌리가 바로 이런 일본에서도 주류로 취급받지 못하는 사상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유사역사가들은 ‘동이’라고 되어 있는 종족은 다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몽연합국가론이나 대쥬신벨트 건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심지어 묘족이나 티베트도 우리 민족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유사역사가는 청이 우리 민족의 정통이고 우리는 곁가지라며 자기 정체성마저 상실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발상의 근원에 일본의 흑룡회가 있고, 또한 대동아공영론이 있었던 것이다.
history2 18-04-02 20:57
   
대동아공영권과 환단고기: 유사역사가들은 왜 이런 대동아공영론의 이론을 떠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의 사상적 기초를 놓은 인물들이 일제강점기에 그들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흑룡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 중 하나였던 최동은 그들의 이론에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꾼 『조선상고민족사』를 내놓아 유사역사가의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다. 이 이론은 일제강점기에 계속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당대의 학식 있는 인물들에게는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고급 문관으로 근무했던 문정창은 이 이론에 깊이 경도되어 여러 권의 책을 내놓았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중동 지방의 문명에서 우리나라가 기원했다는 주장도 문정창이 내놓은 것이다. 그 이론은 20세기 초에 흑룡회에서 내놓았던 주장의 주어를 살짝 바꿔 놓은 것에 불과했다.
history2 18-04-02 20:58
   
이유립, 문정창 그리고 가지마 노보루: 환단고기를 내놓은 이유립은 친일 단체인 조선유교회에 있으면서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흑룡회의 이런 이론들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최동과 문정창의 영향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상들이 『환단고기』 안에 깊이 배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일본 극우사가인 가지마 노보루는 『환단고기』가 자신들 극우사관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아보고 일본에 수입하여 소개했던 것이다. 가지마 노보루가 중동 지방에서 일본의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가라는 점은 임승국의 『한단고기』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history2 18-04-02 20:59
   
유사역사가들이 중동 지방이 일본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사가 아고우 키요히코(吾郷清彦) 등의 이론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본래 뿌리가 같기 때문에 그 이론을 보는 순간 친근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안에서는 이런 극우사관은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유사역사가는 일본이 ‘대쥬신’의 정체성을 망각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이들의 정체성 안에는 이처럼 일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런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는 좋은 방법은 다른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그 덕분에 국내 역사학계는 친일파의 본산지라는 음해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다
칼리S 18-04-02 21:00
   
그냥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저걸 진실된 역사라고 생각 안합니다.

종교쟁이들이 연관되면 머든지 왜곡되는건 기본이죠.

환단고기는 70년대 제작된 환타지 소설로 분류하는게 맞죠.
신수무량 18-04-02 21:16
   
환단고기가 위서니 아니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논할 가치도 없다는데 왜 논하는지....)
 지나 우리나라 왜 이 세나라의 역사왜곡이 더 중요하니 이런것도 좀 논해 봐요. 지나 짱개는 고장에 지네들거 아닌거도 자기들거라고 우기고 우리나라는 역사학계는 일데강점기 (왜곡된) 역사연구에서 발전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축소왜곡(그래..니들이(짱개, 적발이)맞아 이런 주장), 왜 적발이도 가짜역사서(일본서기) 열심히 파고 지네들거 아닌데 자기들거라 주장하는 장깨랑 비슷.....
     
abettertomor.. 18-04-02 21:38
   
왜구가 한국 비하하기 위해 쓴 글이니 그려러니 하시죠
남북통일 18-04-02 21:19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를 단순히 영토가 넓다는 것을 표현한 추상적인 의미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자기들 스스로 환단고기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의 영토를 역사서에 기록하면서 추상적 표현으로 넣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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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문점이 있네요.
자국의 영토 기록이 완전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의자왕 삼천궁녀도 궁녀가 진짜 3000명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의 추상적 표현이죠.
또한,  중국역사서에도 영토 관련 이상한 기록은 많습니다.(춘추필법 때문이겠져)
其地東西九千三百里,南北一萬四千八百一十五裏。東、南皆際大海,西至且末,北至五原-구당서
번역-(수나라)영토가 동서 9,300리 남북 1만 4,815리 동쪽과 남쪽은 큰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저말 북쪽은 오원이다.
北殄突厥?利,西平高昌,北逾陰山,西抵大漠。其地東極海,西至焉耆,南盡林州南境,北接薛延陀界;東西九千五百一十一裏,南北一萬六千九百一十八裏。-신당서
번역-북쪽으로는 힐리가한을 사로잡고 서쪽으로 고창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음산을 넘어 서쪽으로 대막에 접하고 동쪽은 바다에 닿는다. 서쪽은 엔치에 닿고 남쪽은 임주 남쪽경계에 닿고 북쪽은 설연타경계에 접한다. 동서 9,511리  남북 1만 6,918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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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환단고기 불신론자이긴 하다만.......머 그렇다구요.
스리랑 18-04-02 21:24
   
ㅎㅎ 물론 여기가 식민사학자들의 졸개들이 철방통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 글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은 하나같이 한통속이구만 ㅎㅎ 니네들 그모양으로 길게 살아봐야 다섯 손가락 안에서 다 정리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ㅎㅎ 참 어이없다.

지금은 봄날일테지만 얼마지나지 않아서 절단난다는 것을 기대하기 바란다. 식빠 중빠들아 !!
     
스리랑 18-04-02 21:37
   
여기 사이트에 내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그래도 이 중에는 만에 한사람이라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이다.
parnis 18-04-02 23:48
   
이것은 다른 의미일 수 있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의 나라가 100만 대군을 동원 한 것은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했을때 113만명의 대군을 이끈게 유일하다고 하죠.(이것도 모두 따지면 3백4,5십만이나 동원 된거죠)

실제로 백만 대군을 동원하려면, 식량,무기부터 나라가 거덜날 정도로 긁어 모아야 되는데,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수십만 대군을 동원하는 것도 정말 국운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죠. 이부분도 의문인게 동원된 병력등은 일급 기밀일텐데 그것을 그렇게 정확하게 파악해서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즉, 정사 조차 숫자는 완벽히 정확하다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구요.(태조실록에도 보면 백만 대군을 동원해서..이것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의미보다 말 그대로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로 봐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출병때부터 적군에게 두려움을 주려고 뻥을 치거나 부풀려서... 쉽게 언플 or 어그로등인데, 그것을 실제 역사서에 그대로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숫자는 크다, 많다의 추상적인 의미도 내포가 됐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 환단고기 본 적도 볼 생각도 없습니다.
지수신 18-04-10 02:48
   
환단고기는 서지학적으로 검증되기 전까지 사료로 쓸 수 없습니다.
검증된다 해도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쓸 수 있습니다.
1911년에 쓰인 3차사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참고는 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참고하여 얻은 영감과 역사상을
사료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연구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환단고기를 가지고 다른 기록을 검증하거나
환단고기만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할 수는 없습니다.
지수신 18-04-10 02:53
   
환단고기가 위서인 이유는
1979년에 이유립이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1911년에 계연수가 썼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환단고기의 내용을 가지고 관심법을 동원해 위서론을 펴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일입니다.
일본서기의 내용이 황당하다고 해서 일본서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자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건 바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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