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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3 14:34
[일본] 벛꽃...바람...그리고 신선조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484  

신선조(일본어: 新選組)는 막부 말인 1863년에 조직된 무사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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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교토로 가는 쇼군의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나 이후 교토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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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막부 체제가 붕괴하자 막부군의 일원으로 정부군에 저항하는 무진 전쟁에 참전하였다. 원래 에도에서 조직될 당시에는 '浪士組'(로시구미)라고 칭하였으나 이후 신센구미로 바꾸었다. 한자로는 '新撰組'라고 표기된 자료도 있으나 국장인 곤도 이사미도 ''''을 모두 썼다. 엄한 규율 유지를 위해 도입한 국중법도로 숙청을 하거나, '' 한 글자로 만든 깃발, 소매 부분에 톱니모양의 무늬를 넣은 독특한 하오리(羽織 - 일본옷 위에 입는 짧은 겉옷)복장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유명하게 된 계기로는 이케다야 사건(池田屋事件)을 들 수 있다.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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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에도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교토 상경때에 경호를 목적으로 주인 없는 무사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때 결성된 낭인 집단 로시구미는 기요카와 하치로의 인솔 하에 분큐 3(1863) 2월 교토로 향하였으나, 기요카와와 로시구미 일행은 곧 에도로 귀환하고 만다. 그 중 세리자와 가모, 곤도 이사미 등 24명의 무사들은 쇼군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교토에 잔류하여, 미부로시구미를 조직하였다. 818일의 정변 이후 이들 무사집단은 인정을 받게 되고, 세리자와 일파가 숙청된 뒤에는 새로운 이름인 '신센구미'로 개칭하게 된다. 유신지사들에게는 자비가 없는 것과 극악무도 하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극도로 엄격한 내부규율로 인해 할복이나 처형에 의해 희생된 단원들도 전체 사망자에서 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 로닌들은 대부분 높은 급료를 위해 마다 않고 참가하였다. 또한 탈퇴는 허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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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장

 

1) 세리자와 가모 - 곤도계파에 의해 암살.

2) 니이미 니시키 - 할복했다고 하나 오키타에게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세리자와의 심복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3)곤도 이사미 - 가장 대표적인 국장/신센구미를 이끌어간 사람.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항복 후 사형

 

 

1) 곤도 이사미: 곤도 이사미(일본어: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119~ 1868517) 는 일본 신센구미의 국장이다. 이사미는 통칭으로, 휘는 마사요시(昌宜)이다.

 

어릴적 이름은 가쓰고로(勝五郎)였다. 출신지는 지금의 도쿄도 조후 시에 해당한다. 1849년 시위관에 입문하였다. 도장을 운영하던 곤도 슈스케는 이사미의 실력을 인정하여, "천연이심류를 이사미가 계승하게 하고 싶다"고 미야카와 가문에 강하게 요청하였다.

 

결국 이사미는 슈스케의 본가인 시마자키(島崎)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시마자키 가쓰타(島崎勝太)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후 정식으로 곤도 가문의 양자가 되어 곤도 이사미가 되었다. 18618, 26세 때에 천연이심류 종가의 4대 당주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 후 이사미가 상속한 시위관에서는, 히지카타 도시조를 비롯하여 오키타 소지, 이노우에 겐자부로 등 천연이심류 문하의 사람을 기르고, 식객 중에서도 나가쿠라 신파치, 도도 헤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산난 게이스케 등의 신선조 간부를 낳았다.

 

18632, 28세 때 시위관 생활 도중에 섬길 영주를 잃은 낭인 무사대 모집에 응모하여, 교토로 상경해 막부 지지세력에서 존왕양이파로 변한 기요카와 하치로와 결별한 뒤, 친막부 세력인 아이즈 번의 자금으로 신센구미를 결성, 귀신 잡는 혹은 사람 잡는 곤도라는 명칭으로서 존왕양이 세력들에게 경악과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철저한 유신박해에 앞장섰다.

 

그 와중에 그와 같은 천연이심류파인 히지카타 도시조, 오키타 소지와 함께 최초의 국장이었던 세리자와 가모를 참살한 후, 신선조 내부에서도 곤도 이사미를 필두로 한 무사시노쿠니 출신이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여기에 반감을 품은 여러 간부들이 반역을 기도하고 적군에 들어가지만 이 때마다 무자비한 보복을 가하였다. 이런 와중에 곤도가 조직 내의 정보를 관리하고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간첩으로 활약시킨 이가 바로 사이토 하지메였다.

도바 후시미 전쟁에서, 전쟁 전에 암살당한 전 참모, 이토 가시타로의 잔당들에게 습격당하고 그들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에도로 돌아와 상처를 회복한 이사미는 갑양진무대를 결성, 고후 성을 점령하기 위해 에도를 출발하지만, 시기를 타지 못한 탓에 관군에게 대참패하고 만다. 그는 나가레야마(流山)에서 재기를 도모하려고 했으나 실패, 18684, 도바 · 후시미 전쟁 이후 유신정부군에 교섭을 요구해 관군에 항복하지만 곧바로 포박당하였으며, 이타바시(板橋)에서 적장의 예우를 조금도 받지 못하고 참수, 목은 교토의 산조가와라 모래밭에 효시(梟示)되었다.

 

일본역사에서 포로가 된 적장의 경우 예우를 갖춰서 할복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곤도 이사미에게는 할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유신지사들을 괴롭혀왔던 '신선조라는 정치깡패'에 대한 보복의 성격과 신선조가 그간 유신지사들을 탄압해 왔던 것에 대한 단죄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애검, 나가소테 고테쓰를 소지하고 있었고 그에 관련된 "오늘밤 고테쓰는 피에 굶주려 있다." 라는 말이 유명하다.

 

2) 세리자와 가모: 신센구미의 국장이다. 조슈 번 출생으로 세리자와 가모라는 이름은 탈번이후 개명한 것이다. 또한 그는 신도무념류의 달인으로 오키타 소지를 제외하고는 부대내에서 그의 상대가 없었다고한다.

 

신센구미의 창립 멤버로써 상임 국장 3인중 필두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부대내의 인심을 잃었고, 곤도파와의 내부 권력다툼에서 패해하여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야마나미 게이스케, 오키타 소지, 하라다 사노스케에 의해 암살됐다.

 

3) 이케다야 사건: 이케다야 사건은 일본의 에도 시대 후기인, 186478일에, 교토의 산조(三条) 기야마치 길(木屋町通)에 있던 '이케다야'(池田屋)에서, 교토의 수비를 담당하던 치안 유지 조직인 신센구미가, 잠복해 있던 조슈 번, 도사 번의 존황양이(尊皇攘夷)파를 습격하였던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조슈 번의 많은 대표급 인사들이 살해되었으며, 곤도 이사미 및 신센구미가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일본 메이지 유신을 1년 늦춘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당시의 인물로 신센구미 측 국장 a) 곤도 이사미 이하 b)오키타 소지, c)나가쿠라 신파치, d)도도 헤이스케, e)곤도 슈헤이 등이 있었고 유신지사 측 a)요시다 도시마로, b)미야베 데이조 이하 20~25인 정도가 있었다.

 

배경) 해시(10시경) 무렵, 신센구미 국장 곤도가 이끄는 부대는 이케다야에서 모의중이던 존왕파 지사들을 발견해냈다. 곤도 부대는 겨우 5~7명의 적은 대원들만을 거느리고 이케다야로 돌입해 한밤중에 전투가 벌어졌다. 스무 명 남짓의 존왕양이파에 맞서 먼저 발을 내딛은 것은 국장 곤도 이사미 1번대 조장 오키타 소지(沖田総司)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永倉新八) 8번대 조장 도도 헤이스케(藤堂平助) 네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이케다야 건물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 간 오키타는 요시다 토시마로를 베고 난 뒤에 분전 도중에 무더위에 지병이 도져서 전선에서 이탈해야 했고, 1층의 도도는 방심하고 鉢金을 잡으려다 이마를 베여 피가 흘러 눈을 뜨지 못하고 전선에서 이탈했다.

 

습격을 당한 미야베 데이조(宮部鼎蔵) 등 지사들은 응전에 나서 탈출을 시도했는데, 뒷문에서 지키고 있던 안도 하야타로(安藤早太郎)오쿠사와 에이스케(奥沢栄助) 닛타 가쿠자에몬(新田革左衛門) 등이 있는 곳에서 도사의 탈번 로닌인 모치즈키 키야타(望月亀弥太) 등 무사들이 탈출을 기도하며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그들을 베고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오쿠사와는 사망하고 안도닛타도 한 달 뒤에 사망하였다. 모치즈키는 부상을 입은 채로 조슈 번저(藩邸) 부근까지 도주하는데 성공했지만, 뒤쫓아온 신센구미 대원들에게 따라 잡히게 되자 자결했다. 함께 탈출하는데 성공했던 도사 번 출신의 野老山吾吉郎의 조서가 2009년 고치 현(高知県)에서 구입한 도사 교토 번저 자료(土佐京都藩邸資料, 고치 현 현립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소장)에서 발견되면서 사건 전후 상황이 드러났는데, 타치(太刀)나 하카마()도 잃어버리고 동료 이시카와 쥰지로(石川潤次郎)가 현장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날의 격렬했던 전투의 모습이 드러난다.

 

곤도 슈헤이는 창이 부러지고 실제 전력은 일시에 국장 곤도 이사미와 2번대 부장 나가쿠라 신파치만이 남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이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댄 채 11로 적을 하나씩 죽여 나가던 상황에서 히지카타 토시조 이하 10번대 조장 하라다 사노스케, 아이즈 번의 원병을 요청하러 간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 등의 병력이 도착하면서 전세는 역전, 신센구미의 전투 방침은 죽인다에서 생포한다로 변경되었고, 아홉 명을 죽이고 네 명을 붙잡았다. 아이즈구와나 번(桑名藩)의 응원은 전투 이후에나 도착하였다.

 

히지카타는 신센구미의 공훈을 빼앗기지 않도록 한 걸음도 다가오게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몇 사람의 존왕양이파를 놓치기는 했지만, 날이 밝아 시장을 수색해 아이즈구와나 번 등과 연계해 20여 명을 더 체포하였다.

 

시장을 조사하는 와중에 격전이 있었는데 아이즈 번은 5, 히코네 번(彦根藩)4, 구와나 번은 2명이 현장에서 죽었다. 신센구미는 한밤중에 예고없이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고 다음날 정오에야 미부 촌(壬生村)의 주둔지로 돌아왔다. 이때 길가에는 신센구미의 개선 행렬을 보러 나온 구경꾼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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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4-06 08:58
   
신선조는 나중에 흑룡회로 연결이 되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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