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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8 08:55
[한국사] 고려 조선의 인구와 당시 각 국가의 인구 비교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2,478  

역대 반도 인구 1.png

역대 반도 인구 2.jpg

역대 반도 인구 3.jpg

역대 반도 인구 4.jpg

고려 조선은 세계적으로 인구 대국이었음


1000년 당시 450만(세계인구 1.5%),1500년 당시 800만(세계인구 1.8%),1600년 1000만(~1200만 추정,세계인구 1.7~2%),1700년 1200만(~1600만 추정,세계인구 1.8%~2.3%)인데 갠적으로 11세기 당시 고려 인구도 조선시대와 비슷하게 세계인구의 2%언저리로 대충 600만까지도 볼수 있다고 본다 대충 전근대 인구비율은 현 반도에 러시아 인구가 살고 현 일본에 파키스탄 인구가 그리고 현 중국에 20억명이 사는 느낌이라고 보면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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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4-08 09:17
   
일본이 한국의 인구를 본격적으로 역전하기 시작한 시점은 임진왜란 때임.

그 이전에도 일본이 근소하게 고려-조선의 인구를 앞섰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자료처럼 2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힘듦.
이해한다 18-04-08 10:01
   
저 또한 임진왜란과 일제의 영향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사에 파고들수록 일본이 저지른 패악에 치가 떨리게 되더군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저렇게 경계하고 미워하는 이유도 본인들이 한 짓때문이겠죠.. 물론 과정이긴하나 임진왜란때 사활을 걸고 일본에 복수를 하였다면 혹은 조선통신사를 보내는 짓따위를 하지 않고 침략을 준비하였다면 더 나은 미래가 생겼을 텐데 라고 생각이 듭니다. 깡패, 양아치, 폭력배 등등 이런 자들은 용서로 감화 되는 자들이 아닙니다.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로 대해야지 플러스가 되지 플러스로 대하면 계속 마이너스로 남게 됩니다.
     
촐라롱콘 18-04-08 12:14
   
임란 직후에는 임란 당시에 입은 후유증으로 인해 일본 원정은 커녕 대마도정벌조차 엄두를
못내 논의만 몇 차례 하다가 유야무야되었고....

임란 이후에는 북방에서 여진족이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흥기하던 시점인지라
조선이 북방에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처지에서, 일본과 계속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또한 일본에서는 조선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가문이 무너지고, 조선과의 관계회복에
호의적인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임란 쫑난지 만 10년 내외가 지나지않아 일본과 다시 국교를 재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란 쫑난지 만 25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괄의 난으로 도성을 잠시 상실하고 공주로 피난가던 시점에서
전세를 호전시키고자 부산 왜관의 일본인들에게 SOS를 청하자는 논의까지
나올 정도로 점차 일본에 대한 경계심은 강하게 남아있었을 지언정
적대감은 어느정도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묘호란 이후에는 대마도를 매개로 일본으로부터 조총과 화약을 지원받거나
들여오기도 했고...
후금~청이 조선을 핍박하던 시기에는 후금~청에 대하여 조선과 일본과의 친선관계를
부각시켜 일본을 호가호위로 써먹기도 했습니다.

청나라 또한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항복을 받고, 이후 명나라까지 무너뜨린 시점에서도
당분간은 조선에 대한 경계심을 계속 유지했던 된 가장 큰 배경은 조선 자체 역량보다는
조선과 일본이 연계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에서였습니다.
          
북창 18-04-08 19:36
   
이건 뭔 또 개풀 뜯어먹는 소린지? ㅎㅎ
정말 개가 웃을 논리네요.
청나라가 그렇게 국제 정세에 어두웠을라고...
그런 뉘앙스의 자료 단 하나만이라도 제시해 보시죠.
일단 하나라도 제시를 해야...교차 검증을 하든 뭘하든 하지...
               
촐라롱콘 18-04-08 20:12
   
1.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5월 13일 을해 1번째기사 1638년 명 숭정(崇禎) 11년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는데 일본을 이용하자는 논의)

[[예로부터 원수를 갚고 치욕을 푸는 데는 반드시 우방의 도움을 힘입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이웃은 일본뿐인데 서로 성신(誠信)으로 사귀지 않았습니다. 근래 듣자니 중국과 일본이 서로 교통한다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럴 리가 없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중원(中原)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이때 만약 재변(才辯)이 있는 자를 가려 행장을 꾸려 가지고 가서 정세를 탐지하는 한편 우리의 실상을 알리게 하면 삼십 년간 사귀어온 나라인데 어찌 와서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묘당에 의논하라."]]



2. 인조실록 40권, 인조 18년 5월 9일 기축 1번째기사 1640년 명 숭정(崇禎) 13년
(청나라에 대적할 일에 관한 사간 조경의 상소)

일본은 우리 나라와 이미 국교를 맺고 있으니 처음으로 우호를 도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오직 성심과 신의로 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만약 한 차례 사신을 보내어 우리 나라가 오랑캐에게 곤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분명하게 알린다면, 일본은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리 나라를 돕겠다고 승락할 것입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일본은 믿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오랑캐들은 믿을 만하단 말입니까. 오랑캐를 섬기는 것이나 일본과 교린하는 것이나 모두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일이 모두 어쩔 수 없는 데서 나온 일이라면, 이미 화친을 맺고 있는 형세를 이용하여 오랑캐에게 원수를 갚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신의 계책은 오직 위세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것일 뿐, 왜병을 청하여서 우리 나라와 함께 쳐들어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 오랑캐들 역시 항상 왜사(倭使)가 왔는가의 여부를 물으며, 또 ‘우리도 역시 사신을 일본에 보내려고 한다.’ 하는데, 이는 일본을 꺼려서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사정을 몰래 일본에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오랑캐에게 한 장의 글을 보내어 우리 나라를 침입한 것에 대해 따지게 한다면, 오랑캐들은 필시 처음에는 우리 나라가 그렇게 시킨 것에 대해 화를 낼 것이나, 우리 나라와 일본이 깊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끝내 가볍게 우리 나라에 쳐들어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른바 그들의 관건을 제압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국산아몬드 18-04-08 20:22
   
조선이 일본의 힘을 빌리려 한건 사료는  있긴 했었죠. 하지만 논의에 끝났을 뿐입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청이 조선을 경계한 배경에 일본과의 연계가 우려스러워서라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두었나요?  당신 생각뿐인것 같은데
                    
북창 18-04-08 20:27
   
후금~청이 조선을 핍박하던 시기에는 후금~청에 대하여 조선과 일본과의 친선관계를
부각시켜 일본을 호가호위로 써먹기도 했습니다.
==> 위에 제시하신 답변은 논의와 상소 하나에 지나지 않네요? 호가호위로 써먹은 팩트가 빠졌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또한 병자호란으로 조선의 항복을 받고, 이후 명나라까지 무너뜨린 시점에서도
당분간은 조선에 대한 경계심을 계속 유지했던 된 가장 큰 배경은 조선 자체 역량보다는
조선과 일본이 연계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에서였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은 없고요.
                         
촐라롱콘 18-04-09 14:22
   
광해군일기[중초본] 142권, 광해 11년 7월 18일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호서에 답하는 내용에 대해 전교내리다]]

(....부연설명하자면 이 당시 강홍립의 조선군이 후금군에게 항복한 이후 후금에
억류되어 있는 와중에 후금이 조선군 가운데 양반-장교 출신의 수 백명을 색출해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광해군이 빡쳐서 전교한 내용입니다.)

[[전교하였다.
"호서는 답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금은 더욱 말할 근거가 생겼다. 그러니 그들에게 답하기를 ‘중국의 차관이 이미 본국에 도착하여 있으니 번거롭게 일일이 말할 수 없다. 왜노(倭奴)는 우리 나라가 만세가 되어도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이 있으므로 그들이 수교를 원한 후에도 백마를 잡아 하늘과 땅에 맹서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 하는 말을 복종하고 있으니 왜병 백만을 종이 한 장으로 부를 경우 아침에 명령하면 저녁에 모을 수 있다. 귀국에서도 화친을 하고 싶다면 즉시 노략하여 간 사람과 물건을 보내어 화친의 실상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감히 수백 명의 장사를 먼저 죽여 놓고 겉으로 화친의 뜻을 보이는가. 지금 만약 왜노가 한 것처럼 잡혀간 사람을 모두 돌려 보내고 흔쾌히 우리 나라의 말을 따른다면 어찌 우호의 뜻이 없겠는가.’ 하라.]]


그리고 후금~청나라 초기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해당분야 권위자인 한명기 교수가 쓴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에... 제가 위에 표현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참고문헌 또한 조선왕조실록 같은 우리나라 문헌 뿐만 아니라... 만문노당, 만주실록,
청사고, 만주원류고 등의 청나라측 사료에 언급된 건주여진-후금-청나라가 인식했던
일본에 대한 인식 또한 언급되어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참고로 해당 책에 기록된 청나라 초기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접수한 이후
남중국일대를 근거지로 한 남명과 대치하던 시기에 한정하여 당시 청나라가 가장
신경썼던 외부세력이 바로 일본입니다.

청나라는 남명이 일본과 연계되는 것 뿐만 아니라 남명과 조선과 일본이 연계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또한 신경썼고....실제로 남명이 일본 에도막부에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북창 18-04-08 19:48
   
일본이 이상할 정도로 뻥튀기가 되었다는 느낌이네요.
어떤 자료로 저렇게 추정하는 지는 몰라도...일단 인구 부양 능력에서...일본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에 미치지 못했는데...무슨 식인 문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어떻게 조선보다 2배가 많다는 건지...
1500년도에 한일 둘다 800만이었는데...1600년도에 전국시대였던 일본은 1850만? ㅋㅋㅋㅋ
이게 가능한거임? ㅋㅋㅋㅋ
평화가 지속되었던 조선은 950만으로 150만 증가했는데 비해...일본은 무려...1050만 증가...ㄷㄷㄷㄷㄷ
당시 훗가이도도 없었던 상황...
이건 뭐...말도 안되고...신빙성도 없고...
Hiryu 18-04-09 16:31
   
왜 저런 추정 자료들보면 일본은 항상 과대평가를 받는걸까나...
무지한 서구학자들이 현재의 일본을 보고 과거에도 대단했을것이란 선입견 때문이겠지?
지수신 18-04-10 01:48
   
그닥 의미없는 숫자나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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