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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2 00:51
[한국사] 백제 웅진하는 현 금강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816  

※ 도배시러님의 추정에 대한 반론입니다


백제 수도 변천
한성ㅡ웅진(문주왕~성왕)ㅡ사비(성왕~의자왕)

당시 신라는 경기도, 충청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일대를 강역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나제동맹에서 백제를 뒤통수 친 결과이죠

1. 한원(당나라 7세기, 660년 경)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2027344&cid=50826&categoryId=50826


2. 괄지지(당나라 7세기, 642년 경)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064741&cid=40942&categoryId=33394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3538054&cid=56777&categoryId=56777


한원은 백제 말기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다 보이고
당시 백제 수도는 사비였으나 웅진 역시 중시되었습니다

括地志曰 熊津河源出國東界 西南流經國北百里 又西流入海 廣處三百步 其水至清

又有基汶河源出 其國南山東南流入大海  


금강은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흐르다 바다로 들어갑니다

금강은 남한 지역에서는 한강,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입니다

섬진강 역시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갑니다

웅진하는 지금의 금강을 가리키는 것이고,
문하(汶河)는 섬진강을 가리킨다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1. 금강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50654&cid=46617&categoryId=46617

2. 금강 및 주변 지도

http://m.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550654&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2644_000_4%2F20150325193218965_A64NXE4B3.jpg%2F6d935ba6-d715-4d.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mode=entry&cid=46617&categoryId=46617


3. 전북 장수군 지도
: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

https://m.map.naver.com/viewer/map.nhn?lat=35.647299&lng=127.521107&pinTitle=%EC%A0%84%EB%9D%BC%EB%B6%81%EB%8F%84%EC%9E%A5%EC%88%98%EA%B5%B0&dlevel=4&rcode=13740&isShowPolygon=true&isDetailAddress=false


4. 섬진강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75390&cid=46617&categoryId=46617

5. 섬진강 및 주변 지도

http://m.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575390&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2644_000_2%2F20150324141731814_H3GXGJKQS.jpg%2Fb9c6c15e-397f-42.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mode=entry&cid=46617&categoryId=46617

본인은 6~7 세기의 대륙에 있어서의 백제 영토는 조선 전기 대마도와 같은 성격을 띠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십수 년 전부터 보유해 왔습니다

또 44 년 이후의 낙랑국 지역의 성격 역시 이와 비슷했을 것이라 봅니다

홍콩이나 마카오와 유사하다고도 생각됩니다

6~7 세기 백제 말기에 산동지역에 백제 거점이 있었고 이곳은 겉으로는 당나라에 속한 행정지역이나 속으로는 백제에 속한 지역이었다 보는 것이죠

당나라가 대군을 들어 백제 정벌에 공을 들인 이유는 이 지역의, 백제 소유의 경제권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이 그렇게 국력을 소모해 가며 바다를 건너 대군을 보내는 것이 설명이 안 됩니다 전근대도 현대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돈 때문입니다

백제는 황해 제해권을 두고 고구려와 치열하게 다투었고 황해 중북부 지역의 제해권을 고구려에게 빼앗겼죠


그리고ㅡ
본인은 백제 건국 초기에 소서노 무리가 거점한 곳을 현 태자하, 혹은 대청하(大淸河) 이남으로 보고 이러한 견해를 이곳에서 여러 차례 피력해 왔습니다

이 때에 백제는 동으로 낙랑국(낙랑국 및 이전의 마한의 강역이 요동남단/남만주 일원까지였을 가능성 역시 여러 차례 피력해 왔습니다)이 있고 북으로는 고구려와 패수(태자하, 혹은 대청하로 본인은 추정함)를 경계로 한 이곳 요동 남부에 최초 거점을 마련하였다가 서북한 루트를 타고 한반도로 중심지를 옮겼다고 보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오히려 백제 초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것이
요동 개주 남부의
웅악산(熊岳山)과 웅악하(熊岳河)입니다

잉커우시 바위취안구
http://www.google.co.kr/search?ei=V92xWo-KKMn38gWn34SICQ&q=%EC%9E%89%EC%BB%A4%EC%9A%B0+%EB%B0%94%EC%9C%84%EC%B7%A8%EC%95%88&oq=%EB%B0%94%EC%9C%84%EC%B7%A8%EC%95%88&gs_l=mobile-gws-serp.1.1.0i5i30l2.20205.23615..26007...3....245.2063.0j14j2..........1..mobile-gws-wiz-serp.....3..0j41j0i131j0i3j0i10j0i30j0i13j0i13i30j0i13i5i30.ZU3HlUDX6pA%3D

바위취안, 우리말로 발어권(鱍漁圈)의 명칭이 패수의 패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패수의 패는 우리말 밝/맑의 차자자라고 봅니다

고구려 평양과 패수 위치의 새로운 미궁
감방친구 작성일 : 18-03-21 13:58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804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B%85%EC%95%85%ED%95%98&sop=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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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4-12 01:28
   
강폭 3백보에 해당하는 강, 2개소를 먼저 찾아야죠.
그리고 백제 서쪽의 도성 도선성/역광성 (도선刀先 과 역광力光)  ~백제왕성 350리
백제왕성(부여?)에서 서쪽으로 350리를 가서 바다가 아닌 육지가 나올수있는 위치
도배시러 18-04-12 01:42
   
> 현대를 기준으로
요하, 압록강 하구폭 3km 이상....
대동강 금강 낙동강 한강 하구폭 2km미만
대릉하 하구폭 1km미만
감방친구 18-04-12 01:54
   
300 보면 200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입니다
백제 말기 중심지를 서북한으로 옮겨 버리면
풀어야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도배시러 18-04-12 01:59
   
642년 괄지지는 백제, 고구려, 신라 침략을 위한 당나라의 전쟁계획서로 보입니다.
당시 삼국의 지리정보가 가장 정밀하게 기록되었으리라 싶네요.

조만간 어디서 튀어 나올거라 기대해 봅니다. 미국, 영국 도서관에서...
     
신수무량 18-04-12 09:40
   
거리개념 때문에 참고내용으로 적어 봅니다...

/주척(周尺)은 주로 측우기 등 천측기구 측정, 사당의 신주(神主), 거리, 묘지의영역, 훈련관 교정 거리, 활터 거리, 토지 등을 측정할 때 사용했다. 주척은 삼국시대 당나라에서 들어와 고려, 조선시대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주척을 오늘날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20.6cm 정도이다./

/리(里)는 주척을 기준으로 360보를 단위로 하였고.../
/1902년 근대 도량형제가 도입되면서 리(里)의 거리 단위는 1,386척으로/

/조선시대 태종 15년(『태종실록』 15년 12월 14일)에는 주척 6척으로 1보를 삼고 매 360보로 1리를 삼아 10리마다 소후(小堠, 장승), 30리(1息)마다 대후(大堠, 장승)를 설치해 도로의 식수(息數)를 정했다(準中朝里數 以周尺六尺爲一步 每三百六十步爲一里 三十里爲一息)./

http://www.archives.go.kr/next/common/archivedata/render.do?filePath=2F757046696c652F70616c67616e2F32303137303730335f303031302e706466
(62쪽)

그래서 300보는 대략 370m 정도 되는군요.
고대 1리는 대략 4~500m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위 수치로 계산으로 하면 445m. 비슷하게 계산됩니다.
          
감방친구 18-04-12 10:04
   
님 말씀이 맞습니다
영웅문 18-04-12 08:14
   
무녕왕릉이 공주에 있습니다.
이것으로 백제의 위치는 끝이죠.
신수무량 18-04-12 10:28
   
충청도권이 백제영역이었다는데는 별 이견이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백제수도 중에 웅진과 사비가 (우리가 배웠던) 현재의 공주와 부여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당연합군과 최후의 결전지가 그곳이었을지는 몰라도...)

무령왕릉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지는 못합니다. (첫번째 이유가 현재까지 딸랑 하나만 발굴되었고(추가로 발굴한다고 했는데 하고 있는 것인지...그 이외에 발굴된 무덤의 주인공은 지역유지(?)의 무덤이었습니다. 둘째로 그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인 것을 지석을 통해 알겠는데 무덤(왕릉)을 아들인 성왕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 만들었지는 모릅니다. 아들이 만들었다면 지석의 내용이 (아들인 장수왕에 의해 세우진 광개토태왕비와 비교했을 때) 매우 의심스럽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저는 이 의심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지석내용 중에 ‘崩'(붕,황제의 죽음에만 사용하는)자 사용되었는데 무령왕이 아니라 무령황제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ㅎ)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 丙戌朔 七日壬辰 崩到'
(아들이 만들었다면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이렇게 썼을까 하는 의심과 '崩'到 )
     
영웅문 18-04-12 10:36
   
공주에 가보셨나요?
왕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수많은 왕릉이 일제때 도굴되었고요.
그 수많은 왕릉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백제의 대륙경영...
저도 믿고 있습니다.
다만 백제는 그곳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힘이 없었죠.

백제가 해상왕국이었다는 말도 맞을 듯하지만....
또 한편으론 바다와 가까운 서라벌을 바다를 이용해서 공략하지 못했냐는 의문도 듭니다.
거의 대부분이 합천과 옥천방향으로 진군하다 막히는 것으로 끝납니다.
만약 양동작전이었다면 신라군은 상당히 힘들었을 건데 말이죠.

어쩌면 신라의 해상방어가 막강할수도 있을 듯하지만....
          
신수무량 18-04-12 10:44
   
공주에 많은 무덤들이(송산리 고분군을 얘기하신 듯) 왕릉급이라고 하지 무녕왕릉처럼 밝혀진 왕릉은 없는 걸로 압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꽤 큰걸로 기억합니다만) 왕릉급 무덤을 발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금관이 나왔었는데 최종 밝혀진 그 금관의 주인공은 지역유지(?)였습니다.
그래서 백제수도 위치에 대해서(초기~마지막까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정도로 저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수무량 18-04-12 10:38
   
백제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지금의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으로 알려진)에 대해...
---------------------
부소산성 (위키)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다.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2에 달한다.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중략)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몽촌토성 (백제의 초기 수도 한성의 후보지 중 하나)
둘레는 약 2.7km이며, 높이는 6~7m이다. 3세기 초에 축조되었다.

남한산성
성곽은 기본적으로 원성과 외성으로 구분하는데, 원성은 하나로 연결된 본성이며, 외성으로 동쪽에 봉암성과 한봉성, 남쪽에 신남성이 있으며, 동 · 서 두 개의 돈대가 구축되어 있다. 원성은 1624년(인조 2년) ~ 1626년 (인조 4년) 사이에 개 · 증축 당시 축성되어 둘레 7,545m다. 원성 내부는 2,135,752m3로서 대략 627,200평으로 측량되었다.
---------------------
부소산성 크기: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2에 달한다.
설명으로 74m2이 꽤 큰 것처럼 보이지만...가로 세로 1Km도 안되는 조그만 영역입니다.

(둘레가 2.2km이면 반경이 350m입니다.)

백제 전성기 왕 중 한 분인 성왕이 축조 또는 개축한 왕궁을 방어하기 위한 성이라는 데....의심을 안가질 수가 없습니다.
(부소산성을 가 보신 분들은 과연 이곳이 백제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성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매우 들거라 생각하는데(그렇구나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지수신 18-04-12 15:52
   
부소산성은 왕궁을 방어하기 위한 성이 아니라
전시에 대비한 피난성입니다.
왕궁을 비롯한 수도를 방어하는 성은 나성이고요.
          
신수무량 18-04-12 17:08
   
근거 있나요?

사적 제5호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우리의 문화재청에서는 자랑스럽게 저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설명을 바꾸던지 해야죠..지금의 부소산성은 시비시대의 '도성'이 아니라 전시 피난하기 위한 피난처다..(이런 성이 있는 예가 또 어딨는지 잘 모르겠지만..)
또한 설명은 방어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0050000,34&pageNo=5_2_1_0

피난성이든 뭐든 좋은데 그렇다면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있다면  위와 같이(문화재청) 부소산성을 설명하면 안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지수신 18-04-12 17:29
   
고고학적 추측입니다.
요새 안에서는 '군창지'즉 창고도 발견되었고 종교 시설도 발견되었습니다.
평지 도성에 인접한 산 위에 만들어 놓은 요새의 용도가 무엇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님의 고견을 한번 말씀해보시죠?

추측은 다 배제하고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시라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지수신 18-04-12 16:38
   
삼국사기로 확인되는 백제 수도 변천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남 위례성(온조왕) -> 한산(근초고왕) -> 한성(근초고왕 이후 아신왕 이전 어느 시점)
-> 웅진(문주왕) -> 사비(성왕) -> 주류성(풍왕)

온조가 하남위례성에 도읍하였다고 한 이후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아신왕 이전 기사에서 '한성'이 도성임을 확증하는 기사는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北漢城'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는 기사는 있습니다.

그리고 근초고왕때 '移都漢山'이라 했으므로,
'한산'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천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아신왕은 '한성' 별궁에서 출생하였다고 합니다.
아신왕 출생 시점에서 백제의 수도는 '한성'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한산'에 이르렀다고 했으므로
아신왕이 고구려 원정을 개시하는 시점에 백제의 도성은 '한산'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이후 개로왕 대에 장수왕이 침략하는 시점에서 백제의 도성이 '한성'임이 확인됩니다.

즉 하남위례성=한성 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삼국사기 내엔 없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고전기'를 인용하여
'온조왕 때에 위례성에 도읍해 389년을 지냈고
근초고왕 때에 고구려 남평양을 취하고 한성에 도읍하여 105년을 지냈다'
고 했습니다.
위례성과 한성이 별개의 장소라고 명시한 겁니다.
또한 '고구려 남평양'과 백제 한성이 연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강단 주류는 요/금/원/청의 기록을 대하는 태도마냥 '杜撰'이다 라는 한마디로 무시할 뿐입니다만.

최초 온조가 도읍했던 곳이 '하남 위례성'이고
근초고왕대에 고구려와 싸워 이긴 후 '한산'으로 천도했다가
이후 아신왕 이전의 어느 시점에 다시 '한성'으로 옮겼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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