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배시러님의 추정에 대한 반론입니다
백제 수도 변천
한성ㅡ웅진(문주왕~성왕)ㅡ사비(성왕~의자왕)
당시 신라는 경기도, 충청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일대를 강역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나제동맹에서 백제를 뒤통수 친 결과이죠
1. 한원(당나라 7세기, 660년 경)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2027344&cid=50826&categoryId=50826
2. 괄지지(당나라 7세기, 642년 경)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064741&cid=40942&categoryId=33394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3538054&cid=56777&categoryId=56777
한원은 백제 말기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다 보이고
당시 백제 수도는 사비였으나 웅진 역시 중시되었습니다
括地志曰 熊津河源出國東界 西南流經國北百里 又西流入海 廣處三百步 其水至清
又有基汶河源出 其國南山東南流入大海
금강은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흐르다 바다로 들어갑니다
금강은 남한 지역에서는 한강,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입니다
섬진강 역시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갑니다
웅진하는 지금의 금강을 가리키는 것이고,
문하(汶河)는 섬진강을 가리킨다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1. 금강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50654&cid=46617&categoryId=46617
2. 금강 및 주변 지도
http://m.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550654&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2644_000_4%2F20150325193218965_A64NXE4B3.jpg%2F6d935ba6-d715-4d.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mode=entry&cid=46617&categoryId=46617
3. 전북 장수군 지도
: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
https://m.map.naver.com/viewer/map.nhn?lat=35.647299&lng=127.521107&pinTitle=%EC%A0%84%EB%9D%BC%EB%B6%81%EB%8F%84%EC%9E%A5%EC%88%98%EA%B5%B0&dlevel=4&rcode=13740&isShowPolygon=true&isDetailAddress=false
4. 섬진강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75390&cid=46617&categoryId=46617
5. 섬진강 및 주변 지도
http://m.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575390&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2644_000_2%2F20150324141731814_H3GXGJKQS.jpg%2Fb9c6c15e-397f-42.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mode=entry&cid=46617&categoryId=46617
본인은 6~7 세기의 대륙에 있어서의 백제 영토는 조선 전기 대마도와 같은 성격을 띠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십수 년 전부터 보유해 왔습니다
또 44 년 이후의 낙랑국 지역의 성격 역시 이와 비슷했을 것이라 봅니다
홍콩이나 마카오와 유사하다고도 생각됩니다
6~7 세기 백제 말기에 산동지역에 백제 거점이 있었고 이곳은 겉으로는 당나라에 속한 행정지역이나 속으로는 백제에 속한 지역이었다 보는 것이죠
당나라가 대군을 들어 백제 정벌에 공을 들인 이유는 이 지역의, 백제 소유의 경제권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이 그렇게 국력을 소모해 가며 바다를 건너 대군을 보내는 것이 설명이 안 됩니다 전근대도 현대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돈 때문입니다
백제는 황해 제해권을 두고 고구려와 치열하게 다투었고 황해 중북부 지역의 제해권을 고구려에게 빼앗겼죠
그리고ㅡ
본인은 백제 건국 초기에 소서노 무리가 거점한 곳을 현 태자하, 혹은 대청하(大淸河) 이남으로 보고 이러한 견해를 이곳에서 여러 차례 피력해 왔습니다
이 때에 백제는 동으로 낙랑국(낙랑국 및 이전의 마한의 강역이 요동남단/남만주 일원까지였을 가능성 역시 여러 차례 피력해 왔습니다)이 있고 북으로는 고구려와 패수(태자하, 혹은 대청하로 본인은 추정함)를 경계로 한 이곳 요동 남부에 최초 거점을 마련하였다가 서북한 루트를 타고 한반도로 중심지를 옮겼다고 보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오히려 백제 초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것이
요동 개주 남부의
웅악산(熊岳山)과 웅악하(熊岳河)입니다
잉커우시 바위취안구
http://www.google.co.kr/search?ei=V92xWo-KKMn38gWn34SICQ&q=%EC%9E%89%EC%BB%A4%EC%9A%B0+%EB%B0%94%EC%9C%84%EC%B7%A8%EC%95%88&oq=%EB%B0%94%EC%9C%84%EC%B7%A8%EC%95%88&gs_l=mobile-gws-serp.1.1.0i5i30l2.20205.23615..26007...3....245.2063.0j14j2..........1..mobile-gws-wiz-serp.....3..0j41j0i131j0i3j0i10j0i30j0i13j0i13i30j0i13i5i30.ZU3HlUDX6pA%3D
바위취안, 우리말로 발어권(鱍漁圈)의 명칭이 패수의 패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패수의 패는 우리말 밝/맑의 차자자라고 봅니다
고구려 평양과 패수 위치의 새로운 미궁
감방친구 작성일 : 18-03-21 13:58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804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B%85%EC%95%85%ED%95%98&sop=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