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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2 15:54
[중국] 중국의 동북방을 지배한 공손씨 왕국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788  

요동_공손씨_정권의_가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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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왜곡


그림 고대의 요동과 현재의 요동.jpg




중국 후한 말에서 삼국시대에 걸쳐서 요동에 할거했던 공손씨 일족의 정권. ()나라라고도 하며 구별할 때는 성씨를 붙여 공손연(公孫燕), 동연(東燕)이라 칭한다.

 

중국이 난세로 혼란한 틈을 타서 요동 지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중국 동부의 이민족을 관리했다. 왕을 칭하기도 하고 거의 왕 같은 권력을 누렸으나 결국 위나라 사마의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같은 공손씨지만, 후한 말에 유주를 중심으로 할거했던 공손찬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요동에는 '제후의 후손'이라는 뜻의 '공손(公孫)'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공손도를 양자 취급했던 집안도 공손씨이고, 공손도를 벼락출세한 놈 취급하고 공손강을 하인처럼 부렸던 것도 공손씨인 공손소이다. 물론 공손도가 요동태수가 된 다음에는 공손소의 목을 날려버렸다.

 

한국사에도 엮여 있는데, 요동군뿐 아니라 그보다 동쪽에 있는 현도군, 낙랑군의 명목상의 종주권자였다. 변방인 낙랑에 고구려가 침입하고 인구가 대거 삼한으로 요동으로 이주하는 걸로 봐서, 보다 남쪽에 있던 낙랑군의 대방현 외 6개 현을 분리해 대방군을 신설하였다. 고구려와 선비족에 대항해 공손도의 종가 딸(宗女)과 부여 위구태왕 사이에 혼인동맹을 맺기도 한다.

 

요동 공손씨 세력을 고구려나 위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선비족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거나, 오히려 유화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때, 한화(漢化)한 선비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진위는 불명이다. 공손씨 일족이 몰살된 후, 요동은 선비족 모용외가 장악한다.


① 공손탁(公孫度) 

생몰기간 : ?~204

집권기간 : 189~204


요동 공손씨 정권의 1대 왕. 우리말로는 공손도라고도 발음한다. 공손연(公孫延)의 아들이며 자는 승제(升濟)이고 아명은 표(豹)이다.


본래 요동군 양평현 사람이었으나, 아버지가 관리들에게 추격을 당하게되자 그를 따라 현도군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하급관리가 되었다. 이후 현도태수 공손역(公孫域)의 총애를 받아 학문을 익히고 혼인하였으며, 169년에 유도과에 천거되어 중앙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기주자사를 역임하였으나 파면당하였고, 189년에 동탁이 중앙 정계를 장악하게 되자 같은 요동군 양평현 사람인 중랑장 서영(徐榮)의 천거로 요동태수가 되었다.


공손탁은 요동으로 부임한 이후로 천하가 혼란해지자 요동 일대의 명문가와 호족들을 숙청하는 등의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또한 190년에 이르러서는 휘하의 관원들과 더불어 왕업을 도모하는 한편, 요동 일대에 참언을 퍼뜨리며 스스로 왕이 될 것을 선전하고 다녔다. 


또한 요동군을 분할하여 요서군과 중료군을 신설하고, 바다 건너 산동반도에 위치한 동래현을 점령하여 영주자사를 두어 다스렸다. 또한 한나라 고조와 세조(광무제)의 묘를 세워 제사지내고, 직접 부여의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는 등 요동 내부는 물론 그 주변 이민족들을 상대로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그 스스로도 "요동에서 왕이 되었다"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204년에 공손탁이 사망하자 아들인 공손강이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② 공손강(公孫康)

생몰기간 : ?~221?

집권기간 : 204~221?


요동 공손씨 정권의 2대 왕. 1대 왕인 공손탁의 아들. 204년에 아버지인 공손탁이 죽자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207년에 원소의 아들인 원상과 원희 등이 조조에게 쫓겨 요동으로 망명해오자 그 목을 베어 조조에게 보냈다. 또한 건안 연간(196~219) 사이에 고구려가 왕위계승분쟁에 휘말리자 이를 공격하여 큰 타격을 입혔고, 한반도에서 한족과 예족의 세력이 강력해지자 낙랑군의 남쪽 지역을 분할하여 대방군을 신설하고는 한과 왜 등과 교류하였다. 


대략 220~221년 사이에 공손강이 죽었는데, 그의 아들인 공손황과 공손연이 모두 어려서 뒤를 잇지 못하였다. 때문에 공손강의 아우인 공손공이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③ 공손공(公孫恭)

생몰기간 : ?~?

집권기간 : 221?~228


요동 공손씨 정권의 3대 왕. 1대 왕인 공손탁의 아들이며 2대 왕인 공손강의 아우.  220~221년경에 형인 공손강이 죽자 그 아들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공손공으로 하여금 그 지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이후 위 문제(조조의 아들인 조비)로부터 거기장군에 임명되었다.


공손공은 본래 병을 앓아서 일찍이 음경이 소실되어 고자가 되었고 몸이 쇠약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228년 경에 이르러 조카인 공손연이 장성하게 되자 숙부인 공손공을 겁박하여 그 지위를 빼앗았다. 


이후 유폐 생활을 하다가 238년에 공손연이 위나라의 사마의에게 침공당하여 멸망하자 해방되었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④ 공손연(公孫淵)

생몰기간 : ?~228

집권기간 : 228~238


요동 공손씨 정권의 4대 왕. 2대 왕인 공손강의 아들. 아버지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서 그 지위를 계승하지 못했으나, 장성한 후인 238년에 병약한 숙부인 공손공을 겁박하여 위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던 형 공손황을 재치고 그 지위를 빼앗았다. 이 일로 인하여 위나라 조정과 불화하게 되자 오나라와의 외교관계 개선을 도모하였다.


229년에는 오나라에서 장강(張剛)과 관독(管篤) 등을 사절로 삼아 요동으로 파견하였으며, 230년에는 요동이 오나라와 이어지는 것을 염려한 위나라가 요동에 사절을 보내서 공손연에게 거기장군의 관작을 내려 회유하려 하였으나 이후로도 공손연은 오나라와 사절을 주고 받으며 우호관계를 지속하였다.


232년에는 오나라에서 주하(周賀)와 배잠(裵潛) 등을 사절로 파견해왔으며 공손연 또한 숙서(宿舒)와 손종(孫綜) 등을 오나라에 사절로 파견하였다. 이 때 즈음에 손권이 공손연을 사지절ㆍ독유주ㆍ영청주목ㆍ요동태수ㆍ연왕으로 봉하였다.


이듬해 233년에 오나라가 장미(張彌)ㆍ허안(許晏)ㆍ하달(賀達) 등을 사절로 보냈으나, 오나라가 위나라를 상대하기에 역부족이라 판단한 공손연은 오나라를 배반하고 이들의 목을 베어 위나라로 보냈다. 위 명제는 그에 따라 공손연을 대사마ㆍ낙랑공에 봉하였으며, 한편 이에 분노한 손권은 요동을 치고자 하였으나 신료들이 만류한 탓에 이를 실행하지는 않았다.


237년에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이 공격해오자 공손연이 요수현으로 군사를 보내 이를 방어하였다. 그 때에 마침 열흘 간 비가 내려 이를 방어해냈다. 이후 위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선비족이나 오나라 등과 우호를 다지고 위나라 등에도 글을 보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후 공손연은 연왕을 자칭하고 스스로 백관을 설치하며 "소한(紹漢)" 연호를 사용하였다.


238년 6월에 위나라에서 사마의를 보내서 요동을 공격해오자 공손연은 이번에도 요수현으로 병력을 보내 이를 방어하도록 하였으나, 사마의가 일부 병력으로 요수현에 주둔한 공손연의 병력의 한 눈을 팔게 하고는 자신은 본대를 빼내서 요동왕국의 도읍인 양평현을 포위하였다. 이후 30일간 비가 쏟아지자 양평성은 고립되었으나 사마의는 범람한 요수의 물길을 통해 원할한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8월 23일에 이르러 공손연의 군대가 무너지고 양평성이 함락되자, 공손연은 아들인 공손수와 함께 수백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포위망을 뚫고는 동남쪽으로 도주하려 했으나 결국 사마의에게 주살당하였다. 이렇게 하여 공손씨 정권의 관할하에 있던 요동군ㆍ낙랑군ㆍ대방군ㆍ현도군 등이 위나라에게 평정되었으며, 50여년간 이어졌던 공손씨 정권은 멸망하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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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isent 18-04-12 18:32
   
지도가 왜곡되어 있네요.ㅋ
     
history2 18-04-12 21:04
   
요동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 지금과 고대가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물론 님의 말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 합니다
도배시러 18-04-12 19:37
   
2가지 요동의 위치 모두 고대해안선과 충돌하네요.
고대 요동으로 추정하는 북경은 해수면 아래의 지역입니다.
현재의 요동이라는것도... 5세기는 맞고... 그 이전 시대에는 바다에 잠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history2 18-04-12 21:03
   
고대 해안선을 고려하자니, 너무 건드려야 할 문제가 많아서 감당이 안되네요 ^^ 제 경우는요 ..저는 님의 고대 해안선 부분이 충분히 타당하다고 여기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할 게 너무 많아서요...지적하신 의도는 이해 합니다.
6시내고환 18-04-12 22:43
   
공손씨가 독립적인 세력으로 남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대륙내의 혼란이 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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