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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4 18:29
[중국] 만주국 개관 1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408  

1. 건국과 멸망

 

만주 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19321월에 장쉐량의 군대를 패퇴시키고, 진저우를 점령한 후 만주국 구상을 계획했다. 국제연맹에서는 중화민국에 리튼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리튼 조사단이 도착하기도 전에 193231일 만주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창춘인 신징을, 연호는 대동이라 했으며, 황제는 이전 청나라의 황제였던 푸이로 옹립했다. 19329월에 일만의정서를 조인해 일본이 만주국을 정식으로 승인했으며, 이어 독일,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헝가리 등 8개국이 정식으로 만주국을 승인했다. 19349월 제정 수립으로 연호를 강덕으로 고쳤다. 만주국의 실세는 관동군 사령관, 경제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맡았다. 만주국에는 군대도 있었으나 할힌골 전투 등에서 소련군에게 패하는 등 무능력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194588일 소련군이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지역을 공격(만주 전략공세작전)함으로써 818일 망하였고, 만주 지역을 점령한 소련은 같은 해 11월 해당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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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국의 배경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만주를 영향력 하에 두려는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일본의 국가 안전보장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1900년 러시아는 요시카즈단 사변으로 만주를 점령하고, 권익을 독점했다. 이것에 대항하여 일본은 미국 등과 함께 만주를 각국에 개방할 것을 주장하며,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영일 동맹). 마침내 일본은 1904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싸워 승리하였고(러일전쟁),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확보하고 요동 반도와 동청철도 남부의 조차권을 확보했다. 그 후 일본은 종래의 입장과 달리 러시아와 공동으로 만주에 대한 이익 확보에 나서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반발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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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멸망

 

194586,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88일 소련군이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전개하였다. 1945815일 일본이 패망한 직후 818일 푸이가 퇴위함으로써 멸망하였고, 8월 말 소련군은 만주 전역을 점령하였다. 같은 해 11월 소련은 만주 지역을 중화민국에 반환하였고, 1949년 중국의 통일 이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통치하고 있다.

 

4. 국가 체제

 

1)만주국의 초대 내각

 

만주국은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이념으로 미국을 모델로 건설된 아시아의 다민족 공생의 실험국가였다. 공화제 국가인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황제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였다. 오족협화란 만주족과 몽고족·한족·일본인·조선인의 다섯 민족이 협력해서 평화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왕도낙토란 서양의 패도에 반대되는 아시아의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왕도라고 해서 만주국 황제를 중심으로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주에는 오족 이외에도 러시아 혁명 이후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피해 온 백계 러시아인 등도 거주하고 있었다.

 

만주국은 일본의 계획적 지원 아래 극히 단기간에 발전했다. 내전이 계속되는 중국으로부터 한인의 이주, 새로운 환경을 찾는 조선인의 이주, 특히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만주국의 준비된 농지로 이주하는 일본 국내인의 이민이 많았다. 이러한 이주에 의해서 만주국의 인구도 급격한 기세로 증가했다. 이민 정책의 성공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만주국이 일본에 있어서 개척지였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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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가기관

 

만주국 국무원

 

만주국 정부는 국가원수로서 집정(執政, 후에 황제), 자문 기관으로서 참의부(参議府), 행정 기관으로서 국무원(国務院), 사법 기관으로서 법원(法院), 입법 기관으로서 입법원(立法院), 감찰 기관으로서 감찰원(監察院)을 두었다. 국무원에는 총무청(総務廳)이 설치되어 관제상으로 국무원 총리의 보좌 기관이었지만 실상은 일본인 관리의한 만주국 행정의 실질적인 핵심으로서 기능했다(총무청 중심주의). 그에 대한 국무원 회의의 의결이나 참의부의 자문은 형식적인 것에 머물렀고 입법원은 정식으로 개설조차 되지 않았다.

 

3)국가원수

 

만주국의 국가원수(집정, 후에 황제)로 푸이가 취임했고 1937(강덕 4) 31일 제위계승법 제정 이후에는 푸이의 남계 자손이 제위를 계승해야할 것로 여겨졌다. 또한 제위계승법이 상정한 상황 외의 사태에 대비하여 만주국 주차 일본 제국 특명전권대사 겸 관동군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청조복벽파의 책모를 억제하고 관동군에게 황제 지명권을 확보시키기 위해서 남계 자손이 없을 때에는 일본 천황에 의해서 제위 계승자를 정하는 칙지를 황제의 선언으로 하는 등을 내용으로 한 각서에 서명하였다.

 

4) 역대 지도자

황제: 푸이 (임기: 193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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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목록

1: 정샤오쉬 (임기: 1932~ 1935)

2: 장징휘 (임기: 1935~ 1945)

 

5)행정

 

1932(대동 원년)의 건국 시에는 수상(집정제하에서는 국무원 총리, 제정 이행 후는 국무총리대신)으로 정샤오쉬가 취임했고, 1935(강덕 2)에는 만주의 독립선언을 발표한 둥베이행정위원회 위원장 장징휘가 수상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실제 정치 운영은 만주 제국 주차 일본 제국 특명전권대사 겸 관동군 사령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원수는 수상과 각료를 비롯해 관리를 임명하여 관제를 정하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관동군이 실질적으로 만주국 고급 관리, 특히 일본인이 주로 취임하는 총무청장이나 각부 차장(차관) 등의 고급 관리의 임명이나 파면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으므로 관동군의 동의가 없으면 임면할 수 없었다. 또한 공무원의 약 절반을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관동군은 일본인을 만주국 정부의 각 행정관청의 장·차장으로 임명시켜 실권을 잡게 했다. 이것을 내면 지도라고 불렀다(23스케, 일본어: スケ). 즉 만주국은 정치, 경제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껍데기뿐인 일본의 괴뢰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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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만주의 실질적인 지배자 ..... 23스케

 

23스케(일본어: スケ)는 당시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5명의 일본인 실력자들에 대한 별명이다. 각자의 이름이 또는 스케로 끝나는 것에 유래하고 있다. 그 중에도 도조 히데키는 나중에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기시 노부스케도 일본 패전 후 총리에 올랐다. 아이카와 요시스케는 닛산의 전신인 닛산 콘체른을 만들었다.

 

도조 히데키: 관동군 헌병대 사령관

호시노 나오키: 만주국 국무원 총무장관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 총무청 차장

아이카와 요시스케: 만주중공업개발주식회사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 남만주철도 총재

특히, 기시 노부스케, 아이카와 요시스케, 마쓰오카 요스케의 3명을, "만주 삼각 동맹"이라고도 부른다.

 

5. 선거와 정당

 

헌법에 상응하는 조직법에 따르면 만주국은 일원제(단원제) 의회인 입법원의 설치를 규정했지만 선거는 단 한 차례도 실시되지 않았다. 정치 결사의 조직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협화회라고 하는 관민 일치의 유일한 정치 단체만이 존재하였고 정책의 국민에게의 침투나 국정의 지도를 수행했다.

 

6. 사법 제도

 

헌법에 상응하는 조직법이나 인권보호법을 시작으로 하여 일본을 모방한 법 제도가 정비된다. 당시의 일본 법과 다른 점은 인권보호법에서 법 아래 평등이 보증된 것, 조직법에서는 각 각료나 합의체로서의 내각이 아니고 수상 개인이 황제의 보필 기관으로 여겨진 것, 형법의 구성 요건은 거의 같지만 법정형이 일본 형법보다 약간 무겁게 규정되어 있는 것, 검찰 기구가 재판소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기관으로 여겨진 것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만주국 형법은 한국 전쟁 직후에 제정(1953918)된 대한민국 형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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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내고환 18-04-14 20:16
   
결국은 일본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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