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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6 10:37
[한국사] 조선 전기 간도 알박기 계획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783  

조선전기 간도 알박기 계획. 

출처 http://hyukjunseo.egloos.com/3559307


성종실록 276권, 성종 24년 4월 14일 무신 6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성준 등에게 장성을 쌓는 일을 하서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성준(成俊)과 북도 절도사(北道節度使) 변종인(卞宗仁)에게 하서(下書)하기를,

"여자신(呂自新)이 아뢰기를, ‘미전진(美錢鎭)으로부터 조산보(造山堡)에 이르기까지 장성(長城)을 쌓지 아니한 곳이 거의 3백 리입니다. 그런데 무이보(撫夷堡)로부터 경흥(慶興)을 지나 조산보(造山堡)에 이르기까지 장성을 쌓으려면 서로의 거리가 90리가 되니, 그 공역(功役)이 지극히 무거울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에 포구가 있는데,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들어가서 가로로 죽 뻗어 있고 바닷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무이보를 서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름을 야춘해(耶春海)라 합니다. 두만강(豆滿江)과 사이에 육지(陸地)로 되어 있고, 거리가 30리에 지나지 아니하니 성(城)을 여기에 쌓으면 공역이 가볍고 쉬울 것입니다. 조산보를 동쪽머리에 옮기고 경흥을 중앙(中央)에 옮겨 무이와 연결하여 배치하면 방어하기에 편하여 이른바 그 목을 움켜잡는 형세가 될 것인데, 그 안은 토지가 비옥하고 평평하고 넓어서 만여 결(結)이 될 만하니, 백성은 낙토(樂土)를 얻을 것이요, 방수(防戍)하기에도 또한 쉬울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편부(便否)를 함께 살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성종실록 283권, 성종 24년 10월 6일 정묘 6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영안도 관찰사 성준 등이 야춘의 축성과 함께 사목을 올리다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성준(成俊)과 북도 병마 절도사(北道兵馬節度使) 원중거(元仲秬) 등이 야춘(耶春)에 축성(築城)하여 진(鎭)을 옮기는 것이 적당하지 못한 일을 치계(馳啓)하고, 아울러 사목(事目)을 올리기를,

"1. 병조(兵曹)에서, ‘경흥(慶興)에 1백 호, 무이(撫夷)·조산(造山) 두 보(堡)에 각각 50호를 뽑아 들여보내는 일은 이미 수교(受敎)하였습니다. 무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흥과 조산은 적(賊)의 소굴과 멀리 떨어져서 방어(防禦)가 가장 헐(歇)하고, 성내(城內)에 사는 백성이 적지 아니하니, 조산은 뽑아 들여보내지 말고, 경흥은 50호를 감하여 들여보내게 하소서.

1. 아오지보(阿吾地堡) 안에 사는 백성은 비록 본디 경원(慶源)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경흥 지역으로 보를 옮겼으니 마땅히 경흥에서 수역(戍役)하게 하소서.

1. 경흥 이하 장성(長城)의 구참(溝塹)을 마치지 못한 곳은 내년 봄을 기다려서 지난 봄에 빠뜨려진 군정을 사역(使役)시켜 파기를 마치도록 하소서.

1. 보이덕보(甫伊德堡)와 진파보(榛坡堡)를 합보(合堡)하는 것과 영건보(永建堡)를 개축(改築)하는 일은 갑인년1388) 까지 역사를 마치기를 기약하고, 보이덕보와 진파보를 합보하면 마땅히 보를 쌓아야 할 것인데, 영건보는 그 무너진 곳을 새 만호(萬戶)가 날마다 조금식 쌓아도 몹시 낮지는 않겠지만, 후년(後年)에 고쳐 쌓는 것이 적당합니다. 옥련보(玉蓮堡)는 옛터를 버리고 부령진(富寧鎭) 아래 10여 리(里) 거리의 허통동(虛通洞)으로 옮겨서 설치하게 하소서.

1.운총(雲寵)·혜산(惠山) 남보(南堡)의 성자(城子)는 후년(後年)을 기다려서 물려 쌓을 것이며, 인차외(仁遮外)에서 혜산까지 내왕하는 강변 2, 3리(里) 땅은 모름지기 내년 봄에 장성(長城)을 쌓게 하소서.

1. 도내(道內)에 금년 농사가 잘 되지 못하였는데, 사민(徙民)한 처자(妻子)를 일시에 함께 들어오게 하면 비록 포화(布貨)가 있다고 하더라도 식량을 바꾸기가 어려우니, 금년에는 호수(戶首)만 먼저 들여보내어 전지(田地)를 절급(折給)하게 하고, 인하여 군적(軍籍)에 기록해 넣어서 그 처자는 내년 봄에 모두 들어오도록 하소서."

하였는데,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와 변경의 일을 아는 재상(宰相)들을 명소(命召)하여 이를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이철견(李鐵堅)·이극돈(李克墩)·정문형(鄭文炯)·신준(申浚)·이봉(李封)·변종인(卞宗仁)·이계동(李季仝)·신주(辛鑄)·이병정(李秉正)·조간(曹幹)·박암(朴巖)이 의논하기를,

"야춘(耶春)에 성을 쌓는 일은 조종조(祖宗朝)에서 처음 육진(六鎭)1389) 을 설치할 때 두만강(豆滿江)을 한정하여 장성(長城)을 쌓고, 봉수(烽燧)를 나열시켜 두어서 방비하는 방법이 지극히 정밀하고도 엄하였습니다. 그러나 얼음이 얼거나 물이 얕을 때에는 호인(胡人)이 그래도 틈을 타서 침입하여 약탈하였는데, 이제 장성의 험함을 버리고 오랑캐의 지역에 깊숙이 들어가서 수고롭게 성보(城堡)를 쌓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땅에 군사와 백성을 두면, 이는 바로 고기를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 던지는 것이니, 계책으로는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성준(成俊) 등의 아뢴 바가 옳습니다. 또 그 사목(事目)을 해조(該曹)로 하여금 의논해서 아뢰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병조 당상(兵曹堂上)이 된 자가 영안도(永安道)의 일을 어찌 다 알겠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지금 이 사목 가운데 사민(徙民) 등의 일이 한둘이 아니므로, 마땅히 의논하기를, ‘어느 일은 옳고 어느 일을 그르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제 다만 의논하기를, ‘해조(該曹)로 하여금 의논해서 아뢰게 하소서.’ 하였으니, 무엇 때문인가?"

하였다. 윤필상 등이 아뢰기를,

"이 일은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 아뢰게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 뒤에 신 등도 마땅히 그 옳고 그름을 의논하겠습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뭐 이러함

여기서 야춘은 훈춘.

그당시 훈춘은 조선이 사실상 간접지배하던 지역.

그래서 알박을까 하다가 과거에 알박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알박기를 포기.

하지만 이것이 육진방어선에 매우 큰 문제로 되돌아온 듯.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육진은 정말 억지로 개간한 티가 나는데, 바로 옆의 연변과 훈춘은 두만강 이남지역보다 광활함.

육진은 조선시대 거의 내내 자급자족이 힘들어서 억지로 인구를 올리고 식량을 수송해야 했던 지역임.

둔전병과 번상병 및 번호로 방어를 하는 시스템인데 만약 바로 건너편인 훈춘에만 진출해도 인구부양력이 확 높아짐.

여기에 연변까지 진출하면 더더욱 높아지고.

그럼 방어는 어이 하냐는 말에선.


고구려 연변-훈춘 장성을 다시 보수하고 세우면 됨. 

너무 낮은 토담수준이라 보수가 빡쎄야겠지만.

그리고 역으로 고구려도 이지역은 강보다는 장성방어가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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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4-16 10:52
 
그런데 성종 시기에 이르면 조선 건국 이후 100년이 흐르는 시점인데.....
오랫동안의 평화에 군기가 흐트러지는 모양새가 여기저기서 보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태종-세종-세조시기까지만 하더라도 국경 너머 여진부족들의 정벌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성종조에 실행한 몇 차례의 여진정벌에서는 확실히 이전 시기보다 전과가 상당히
떨어지고, 나라 전체의 전반적인 군기 상태가 흐트러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여집니다.

심지어 2만 대군을 동원하여 올린 전과가 불과 몇 명의 수급을 취한 것에 불과한 헛짓거리 원정도 있었습니다.
이 원정에서 반대로 조선군은 추위에 동사하고 여진족의 기습까지 더하여 수 십명의 사망자를
(조선측 기록에 의하더라도) 내기도 했습니다.(실제로는 최소 100단위는 넘었을 것입니다!)
     
고이왕 18-04-16 10:53
 
이만주 죽인 거요? 조선군 원정으로 인해서 이만주세력이 일소됨... 성종때 저걸 정말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좋았을 겁니다.. 아쉽네요..
          
촐라롱콘 18-04-16 10:58
 
이만주는 세조 시기의 원정당시에 죽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명과 조선이 다같이 출정했는데 이만주가 명나라군 피하다가

조선군 아가리에 스스로 들어오는 바람에.....^^
아비요 18-04-16 11:16
 
조선이 육진쪽에 하는게 좀 깝깝하긴하죠. 바로 코앞에 훈춘이랑 연변쪽 둘다 광대한 평야지대로 살기 좋은곳인데.. 놔두고 여진족이 대신 거기서 번성해서.. 항상 육진 뚜드리는 강성부족도 대부분 거기서 나왔다는 웃기는 현실. 차라리 거기를 차지하고 장성등으로 방어했으면 훨 나았을텐데.. 워낙 수도랑 먼 지역이라 신경을 안썼다는 생각이네요. 그렇게 치면 압록강 북쪽도 왜 버려뒀냐 하는 문제가 생기긴하죠.
     
감방친구 18-04-16 11:18
 
명나라 눈치를 너무 봤던 데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죠
          
6시내고환 18-04-16 12:40
 
명나라 눈치 본게 정답이죠, 형식상은 명나라 땅이니..
칼리S 18-04-16 12:04
 
지금이야 만주지방처럼 넓직한 땅이 있으면 좋겠지만, 조선초만 해도 만주지방은 농사짓기에 부적절한 땅이죠.

개간이 쉬운것도 아닌데다가 여진족들과의 마찰도 염두에 두면, 조선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만 아픈 일이죠.

당장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누가 거기로 가려고 하겠습니까? 백성을 이주시켜야 하는데, 이는 백성이나 정부 모두 꺼리게 되는 일이죠. 거기다가 그쪽의 여진족들이 반겨줄리도 만무하고 말이죠.

조선 정부에게 동북방은 골치만 아픈 동네로 계륵보다 못했죠. 동북방을 개척하는데 들이는 비용에 비해 돌아올 게 없으니깐요.

조선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간도로 넘어가 개발하자 조선정부에서 바로 관리 들어간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익이 되면 마다하지 않죠. 조선 초에는 농사기술도 그렇고, 만주는 조선 정부 입장에서 메리트가 전혀 없는 동네였던거죠.
히스토리2 18-04-18 21:07
 
글을 보며, 참 정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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