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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7 18:35
[한국사] 소소한 역사 탐방 (서울 동촌 -창신동, 낙산공원, 평화시장)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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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 단종을 잏은 정순왕후는 기름진 음식을 끊고
,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도성 밖 동촌 동망봉에 올라 님이 가신 영월을 바라보면서 매일 곡을 했다. 창신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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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에 오르면 서울의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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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잃은 개화파들이 힘든시절을 살아 견디고 마침내 나라를 되찾은 곳,

(한용운, 이태준, 전형필 등이 1930년대 성북동에 가기전 살았던 곳이 바로 동촌이다.)

봉제공장 누나들이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살아 견디어내고, 동생들을 공부시킨 곳, 동촌이다.

 

1. 창신동: 창신동은 조선 초부터 있었던 한성부의 방 가운데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 일부 지역이었다. 여기서 한 글자씩을 따서 191441일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동명으로 삼았다. 옛 지명으로는 자지동(紫芝洞), 홍수동(紅樹洞, 홍숫골), 돌산밑 등이 있다. 자지동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옷에 보랏빛 물을 들여 내다 팔 때, 그 물을 들이던 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의 창신3동 북쪽에 해당한다. 홍수동은 조선 시대에 빨간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무성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지금의 창신2동 동쪽에 해당한다. 돌산밑은 창신2동과 3동 사이의 절개지 서쪽 아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이 절개지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총독부에서 석재를 마련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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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순왕후 송씨: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 152177(음력 64)) 는 조선 단종(端宗)의 정비이다. 시호는 단량제경정순왕후(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여량부원군 송현수(礪良府院君 宋玹壽)의 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교서를 받고, 즉위하였다. 남편 단종이 강등되면서 군부인(君夫人)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한때 신숙주가 그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냈다. 이후 남편 노산군의 명복을 빌다가 사망하였으며, 그녀의 능의 소나무는 동쪽 방향으로 굽는다는 전설이 있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종 때부터 복위가 거론되다가 송시열, 김수항의 거듭된 건의로 1698(숙종 24)에 단종과 함께 복위되어 왕후로 추봉되었다. 전라북도 출신이다.

 

생애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해 가히 종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하여 간택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고모가 영응대군의 부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1454219(음력 122)에 열 다섯의 나이로 한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5,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일임하고 상왕이 되자 왕대비가 되어 의덕(懿德)의 존호를 받았다. 그러나 1457,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추진하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상왕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의덕왕대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노비로 전락

단종복위에 연류되어, 친정마저 풍비박산 난 상태였던 그녀는 동대문 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송씨는 시녀들이 동냥해온 것으로 끼니를 잇고 염색업을 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이를 안 세조가 집과 식량 등을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한편, 그녀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녀자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그녀의 집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고자 시장을 조직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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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있는 영도교(永渡橋)는 귀양 가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으로 전해지는데, 결국 두 사람은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단종이 끝내 유배지인 영월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군의 죽음을 전해 들은 송씨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큰 바위를 올라 영월을 향해 통곡을 하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세조는 그녀에 대해 '신분은 노비이지만 노비로서 사역할 수 없게 하라'는 명을 내려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냈다. 정업원은 부군을 잃은 후궁들이 출궁하여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후일, 영조가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라는 글씨를 써서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동망봉 근처 지역이 채석장으로 쓰였으며 그 바위는 깨어져나가버렸다. 2011년 현재, 서울 종로구 낙산 근처인 이곳 동망봉 남쪽에는, 동망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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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 말의 문장가이자 역사가인 김택영은 자신이 지은 야사에서 "신숙주가 그녀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많아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3. 이태준: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조치 대학에서 수학했다. 1925년 단편 오몽녀로 데뷔하였으며, 잡지 개벽등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구인회 동인과 문학잡지 문장출간 등으로 순문학 계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데뷔는 1924휘문에 발표한 물고기이야기이다.

 

작품의 경향은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 많고, 세련된 문장으로 1930년대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특히 단편 소설의 완성도가 높다 하여 한국의 모파상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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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는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활동, 이상의 천재성에 주목해 그에게 시를 쓸 것을 권유하였다.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여운형에게 부탁해서 이상의 시를 신문에 내도록 도와 주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시가 오감도이다.

 

박태원과 조용만 등 비롯하여 절친한 구인회 동료들이 친일 작품을 창작하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낙향하여 철원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않아, 친일행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몇 되지 않는 작가들 중 하나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경향파 문학과는 거리를 두었던 이전까지의 경향과는 달리 조선문학가동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좌파 계열에서 활동했으며, 한국 전쟁 이전인 1946년경에 월북하였기에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행적이나 세상을 떠난 시기가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 곳에서 이태준은 김일성을 영웅화하라는 노동당의 지시를 정면으로 비판, 거부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4. 평화시장: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미군복을 염색 혹은 탈색해 판매하거나 미싱 한 두대로 판자집에 들여놓고 옷을 짓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청계천변에 노점상들이 몰려들면서 큰 상권이 형성되었다. 당시 상인들의 60%가량은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다. 개발시대였던 1970년대에는 수공업을 위주로 한 영세 업체들이 밀집하여 도시 빈민과 일용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원동력으로 운영되었다. 당시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청계피복노조원이었던 전태일의 분신을 통한 항의를 초래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열악한 근로환경의 다락방들은 철거되었고, 공장은 인근 창신동, 숭인동, 신당동 지역 주택가 반지하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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