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5년, 1088년 요(거란)에 보낸 표문>
自天皇鶴柱之城, 西收彼岸, 限日子鼈橋之水, 東割我疆.
1) 이에 따라 우리의 강역은 서쪽으로는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요동성 건너 강안(江岸)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옛 고주몽(高朱蒙)이 건넜던 개사수(蓋斯水)로 확정되었습니다. (국역 고려사)
2) 승천황태후가 허락하신 이래(993년)로 서쪽은 화표주가 있는 고려 쪽 강안부터 동쪽은 동명성왕(일자)의 별교지수(엄리대수, 개사수, 시엄수)까지 고려 땅이 되었습니다. (본인)
<숙종 2년, 1097년 요(거란)가 보낸 숙종 책봉문>
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而海隅立社, 北抵龍泉, 西極鴨緣, 祗禀正朔, 奉輸琛賮.
12월 계사일. 요나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보내 왕을 책봉하는 책서(冊書), 옥으로 만든 인장, 면류관, 예식용 수레, 예복, 안장 갖춘 말, 비단필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그 책문은 이러하다.
“고려는 바닷가에 나라를 세워 그 영토가 북쪽으로는 용천(龍泉), 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 펼쳐져 있으며, 공경히 우리의 제도를 따르고 공물(琛贐)도 성실히 바쳐왔다.”
ㅡ 출전 : 고려사 세가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