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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5 10:32
[한국사] 경희궁 ... 고려 만월대와 가장 닮은 궁궐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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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려있다고 하여, 광해군이 강제로 집을 뺏어 지은 궁이다.
결국 인조반정이 성공을 하여, 정원군의 아들이 인조에 즉위를 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듯 한다.
그런데 이 경희궁을 보면 구조가 언덕을 의지하고 서있어, 고려의 궁전과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다 보니 밑에서 바라보면, 생각보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웅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두 궁궐의 비교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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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慶熙宮)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입장료도 없는 그곳에는 관람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정문을 지나면 어느새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마당에 당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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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왕족 집 빼앗아 만든 궁궐

 

경희궁은 광해군이 만들었다. 원래는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집이었는데, 집터에 왕기(王氣)가 많다 해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훗날 정원군의 아들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니 집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긴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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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처음엔 경덕궁(慶德宮)이라 불렸다. 하지만 영조 연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숭되며 ‘경덕(敬德)’이란 시호를 받자 이와 음이 같다 하여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로도 불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광해군은 자신이 만든 경희궁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는 1623년(광해군15년) 궁궐 완공 후 이어(移御·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 준비를 하던 무렵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후에 인조는 광해군이 만든 인수궁, 인경궁을 모두 없앴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자리에 만든 경희궁만은 보존했다. 경희궁은 1829년(순조 29년) 화재로 대부분이 불탔으나 1831년 중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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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경희궁 터에 학교(경성중학교)를 만들면서 서서히 궁궐의 존재를 지워나갔다. 대부분의 전각이 헐리거나 팔려나갔다. 1920년대를 지나면서 궁궐은 일부 회랑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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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에는 서울중, 서울고가 있었으나 학교가 강남으로 이사를 간 후 그 터가 현대그룹에 넘어갔다. 현대는 이곳에 본사를 지으려 했지만 유적 훼손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서울시가 터를 사들였다.

 

○ 궁궐 안 우물 영렬천

 

경희궁은 낮은 동산 위에 지어졌다. 언덕을 올라가 보면 경희궁 전각 용마루의 수평선과 그 너머로 펼쳐진 마천루의 수직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선들이 섞인 오묘한 조화는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 미래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 넓지 않은 경희궁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놓치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담장 밖에 있는 ‘영렬천(靈冽泉)’이란 각자가 새겨진 샘이다. ‘서궐도안(西闕圖案)’에도 나와 있는 이 우물은 경희궁 복원 시 숭정전의 위치를 잡을 때 큰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다.

 

영렬천은 위치상으로도 궁궐의 깊숙한 곳에 있어 특별한 우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궁궐에 대한 기록을 담은 ‘궁궐지(宮闕志)’에는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고, 매우 맑았으며, 여름에도 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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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에 그 물맛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지판 하나 없는 우물은 특히 여름에는 풀숲에 가려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그저 모기가 우글대는 산책로 옆 웅덩이 같은 신세라고 할까. 없는 것을 복원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있는 것 하나부터 보존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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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드르 18-04-25 17:41
   
경희궁 저도 참 좋아하는데... 제대로 복원됐으면 합니다.
6시내고환 18-04-25 23:28
   
하...만월대가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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