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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4 15:05
[한국사] 미국공주 앨리스(미친...년) 와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한 헐버트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2,331  

      앨리스-헐버트 이야기


 이방인 도움에도 국운은 사위어가고…


대한제국을 반신불수로 만든 을사조약이 맺어지기 직전인 1905년 9월26일 서울 전동에 있던 시종무관장 민영환 집에서 이색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빈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이고 배빈이 앨리스양을 수행한 해군대장 트레인과 앨리스양의 약혼자 커빈 해군 중장이었다.


한국에서는 민영환 이외 이준,이상재, 이용익, 윤치호, 그리고 미국인으로 서울에 와 항일 필봉을 휘두르고 있던 '코리안 리뷰'사 주간 헐버트(흘법) 등 반일 친미 인사들이 참여했다.


겉으로는 앨리스양의 접반사로서 민영환의 의례적 만찬이지만 내막으로는 은밀한 모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일공수동맹으로 일본이 한국 침략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연결해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황제 폐하를 비롯, 조야가 공감하고 있다는 화두로 한미공수동맹 필요성이 조심스레 거론됐다.


그리고 앨리스양에게 아버지인 대통령에게 다리 놓아줄 것을 부탁했고, 앨리스양은 황제의 국서를 지닌 특사를 파견한다는 조건으로 쾌히 응낙했다. 특사로 이준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비밀을 지키기에 미국인 헐버트가 적임자라는데 합의를 보았다. 민영환이 고종에게 밀주하여 허락을 받고 비밀을 유지하라는 황제의 특명으로 앨리스 일행의 청나라 방문이 끝난지 한달 뒤 상하이(상해)에서 합류, 미국에 들어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 활동중에 일본 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와 친일 오적이 야합, 황제와 국민을 기만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됐고, 한미공수동맹의 배후인 민영환이 울분을 못견뎌 순국했다. 미 국무부 태도가 표변했고, 헐버트가 쌓아올린 공든 탑은 무너지고 만다.


앨리스양의 한국 방문은 파리하게 꺼져가는 등잔불에 기름이라도붓는 민족의 대망이 깔려 있었다. 그러기에 그 환영 열기가 이전에 볼 수 없이 화끈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한국인이 여차 환영함은 한국은 한국전도에 대유효력할 것이 십분무의함이라' 했다.


또 원래 한국은 이웃 일본과 달라 겉치레를 하지 않는데도 이 앨리스양이 오는 날만은 성안 한집 빼놓지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미 국기를 내걸어 염원을 담았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했다.


또 당시 신문으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앨리스양에 관한 가십 기사까지 발굴해 보도한 것으로 미루어 앨리스양에 대한 기대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있다. 양의 교제가 빈번함이 비상하다 하고 한국에 오기 이전 15개월 동안 만찬회에 출석함이 403회요 무도회에 임석함이 300여회이며 가장무도회에 출석함이 350회, 다과회에 680회요 악수한 횟수만도 3만2000회를 넘겼으니 '다만 키스한 수 만은 불명하다더라' 했다.


앨리스는 당시 미국 언론에서 호칭이 두개 붙어다녔다. 하나는 말괄량이 앨리스요 다른 하나는 프린세스 앨리스, 곧 앨리스 공주다. 맏딸 앨리스를 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은 유명하다. '나는 미 합중국을 다스릴 수 있다. 그리고 내 딸 앨리스도 감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그만큼골치아픈 앨리스였다.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 당했을때 온 미국이 침통에 빠져있는데 당시 17세의 앨리스는 '기분 최고다'고 말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왜냐면 그 암살로 아버지 시어도어가 대통령을 계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돌한 앨리스다. 백악관에 손님이 오면 '아버지 욕하는 사람 대환영'이라는 수가 놓인 쿠션을 내놓기도 했던 짓궂은 앨리스다.


이런 돌출 행동으로 인기를 얻어 '앨리스 어디메 계시나요' 하는 노래가 유행하기까지 했다.  그는 백악관에 파란 앵무새와 애완 동물로 청사를 기른 괴팍스러운 면도 있었고 푸른 옷을 잘 입고 나타났다. 남편이 하원 의장까지 했으나 부부 관계나 자녀 관계는 불우했으며, 노후에도 대통령 지명대회에는 꼬박 꼬박 출석, 상석에서 인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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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년 앨리스  



금세기 들어 당선된 미국 대통령은 앨리스 할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관례였으며, 특히 케네디 형제와는 친교가 두터웠다. 그는 96세에 별세했는데, 죽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싱턴 저택에 매일처럼 손님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한다.


1977년에 방문했더니 전날 파티로 오후 2시 넘어야 일어난다 해서 못 만났는데, 그의 거실에는 수가 곱게 놓인 한국 수혜 한 켤레가 놓여있다고 들었다. 그것이 한미공수동맹을 모의했던 망국 한국에 들렀을 때 선물 받은 것인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한미공수동맹 이면공작에 실패한 헐버트가 자신에 대한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한국에 돌아온 것은 1906년으로, 이듬해에는 다시 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에 달려가 만국평화회의 황제 밀사인 이준 등과 합류한다. 헐버트는 도착하자마자 여론을 환기하려고 러시아 전권대사 네리토프 주선으로 토마스 테드 기자를 만나 국제협회 발행의 신문에 일본의 횡포를 고발하는가 하면 각국 대표를 만나 이면공작에 동분서주하였다.


당시 조선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는 본국의 외무대신인 하야시에게 암호 전보(55호)를 쳤는데 내용은 이렇다. '귀하의 전보 119호에 관하여 헤이그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세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을 알고 싶으며 그들 배후에 미국인 흘법(헐버트)이 활약하고 있다던데 사실 여부를 평화회의 일본 대표에게 확인하여 통고해주기 바란다'.


헐버트는 이준 대표를 앞세워 미국 대표 영국 대표 화란 대표, 그리고 의장인 러시아 대표를 장외에서 만나 로비했으나 대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분사한 이준을 이역에 묻은 이상설 이위종은 시베리아로, 헐버트는 고향인 미국 스프링필드로 뿔뿔이 헤어져 떠나간다. 한국을 국제적 양심에 호소하여 구하려던 마지막 노력의 말로는 이처럼 처절했다. 당시 그는 40대 후반으로 한국이 광복되던 해는 아흔 가까운 노인이었다.


광복된 한국에서 이 구국의 은인 헐버트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합동통신사 사장이던 김동성씨가 미국을 시찰하고 돌아와 헐버트는 아직 고향에 살아있다는 것과 그의 아들이 뉴욕에서 제너럴모터스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왔다. 이 말을 들은 왕년의 노기자 김을한이 모셔오고 싶다는 뜻을 아들 경유로 부쳤더니 이 날이 올 것을 확신했다는 답장이 왔다.


기념회를 만들고 이승만 박사에게 헐버트의 생존을 알렸더니 미국 망명시절에 몇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독립된 한국에 다시 가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란 말을 했다며 모시도록 하라 했다. 87세의 고령으로 슬하의 3남매와 더불어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한국에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초청을 쾌락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다음 사실 때문에 한국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편지에 썼다.


'헤이그 밀사로 나를 보낼 때 고종황제께서 막대한 내탕금을 국외 독립자금으로 나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상하이에 있는 노중은행에 예금했습니다. 병탄 이후에 그 사실을 알고 일본 당국이 그 돈을 몰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고종황제와 본인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결말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당시 은행에 맡겼을 때 증서와 모든 서류는 잘 보관하고 있으니 이번에 갖고 나가 일본 정부와 담판하여 그 돈을 배상으로 받아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한국에 나가지 않으면 안될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가 한국으로 출발하자 AP통신은 헐버트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서울을 향해 출발했으며 출발 직전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생을 마칠 셈으로 미국을 떠난 것이다.


1949년 7월 29일 헐버트는 프레지던트 헤스호를 타고 인천에 입항했다. 부두에는 1개 중대 의장병과 군악대가 나와 꿍짝거리고 있었는데, 이 민족의 은인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 군사고문 단장의 부인을 위해서였다. 승객이 다 내렸는데도 보이지 않아 보트를 타고 나가 보았더니 수행하는 사람도 부축하는 사람도 없어 선실에 지쳐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의장대를 지휘하던 당시 원용덕 대령에게 간청하여 받들어 총을 시킨 다음 양편에서 부축, 차에 태워 반세 기만에 경인가도를 달렸다. 박사는 사인교 타고 이 길을 많이 다녔노라고 회상했다.


노구에 워낙 긴 뱃속의 시달림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으며, 원장인 루우 박사는 회복이 난망이니 만날 사람 만나게 하라고했다. 이승만 박사가 국무회의를 중단하고 달려와 만났지만 서로 붙들고 눈물만 흘릴 뿐 말할 수 있는 기력마저 없었다.


한말 서울에서 자주 만났던 이시영 부통령이 다녀간 8월 3일 한밤중, 한국 땅을 다시 밟은지 닷새만에 숨을 거두었다. 식염 주사를 놓던 간호사와 호위 순경단 둘이 지켜보는 가운데-- .


그의 가방 속에 들어있을 내탕금 비밀을 비롯, 한말 비사는 영원한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시민의 재산을 보호한다 하여 그가 들고온 가방 세개를 미국 대사관에서 봉인해 가져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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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배려로 사회장을 지내고 소원대로 양화진 외인 묘지에, 생후 1년만에 한국에서 죽은 그의 장남 셀덤 무덤 곁에 묻혔다. 묘비는 상반에 영어, 하반에 한국말로 돼있는데 그 중간이 텅 비어있다. '헐버트 박사의 무덤'이라는 이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새기기로 한것을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아직도 비어있는 민족의 은인에 대한 불찰의 공백인 것이다. 그리고 그 비명에는 박사의 마지막 말이랄 수 있는 다음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출처] : 조선일보 [이규태 역사 에세이]  1999.06.10

[출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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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18-05-04 18:06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빨리 돌아가셨지만 이후에 닥쳐오는 6.25의 비극을 안보고 돌아가신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경에 이르니 참... 저런 분들도 그렇고 참전 용사들의 나라인 미국이나 튀르키예, 에티오피아, 엘라다, 프랑스, 잉글랜드, 호주 등등... 그런 나라들에게 우방으로서의 역사 만큼은 잘 챙겨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한것도 안타깝고 어째 도움을 받으면 우리나라는 은혜를 갚을줄 모릅니다.
     
zzag 18-05-04 21:39
   
원수도 안갚으니 괜찮은건가요..?
당연히 농담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친일파가 밉다면 그만큼 독립운동가들을 떠 받들어야 하는데
친일파 욕만 하고 마는걸 많이 봐서 단지 욕할 대상이 필요한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때가 많습니다.
6시내고환 18-05-04 20:27
   
미국에서도 앨리스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ㅎㅎ

글 주제와는 좀 상관 없지만 앨리스 보면 서양인이라고 꼭 비율이 좋은건 아니라는게 느껴짐...
민민 18-05-07 12:05
   
앨리스의 실제 성격이 어땠는지는 차치하고, 당시 미국은 조선에 대한 입장 정리가 완전히 끝나있던 상태였죠.

조선 조정만 그걸 몰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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