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ㅡ 고려는 고려 광종 때인 10 세기 중반에 숙여진 지역을 적극 공략하여 현 판진시 일대(보주 래원성, 흥화진)까지 진출합니다<고려사 서희 열전>
2 ㅡ 고려 성종 때인 10 세기 후반에 현 요하인 당시 압록강을 따라 그 지역 여진족(발해 유민)과 갈등을 일으키며 성보 축성과 정지 작업을 계속합니다 이 시기에 거란이 여진을 공격할 때에 요하 하구쪽의 길을 터주고 묵인하는 태도를 취하여 여진(발해 유민)은 송에 이 사실을 고발하며 하소연하고 송은 고려에 한국화를 파견하여 진상에 대한 시비를 걸며 고려로 하여금 거란을 공격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고려는 소극적 태도를 취합니다
3 ㅡ 거란이 현 심양/무순 지역을 중심한 여진 세력을 986에 대대적으로 정벌(10만 명의 포로, 20만 두의 말 획득)하자 그 후에 압록강 정지작업을 계속하여 991년에 완료(잔여 여진 세력을 백두산/장백산 북쪽으로 쫓아냄)합니다 이 시기 고려의 서북계가 어디까지 진출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혼하 상류까지 진출했다고 판단됩니다
4 ㅡ 거란은 1차 침략의 993 협정에서 고려에게 현 무순/요원 라인에 해당하는 강동6주를 할양하나 2차 침략에서 현 판진 일대의 고려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5 ㅡ 3차까지 진행된 거란의 근 30 년에 걸친 고려 침략으로 고려의 서북계는 잉커우ㅡ태자하 선으로 후퇴하고 혼하 상류ㅡ요원ㅡ장춘ㅡ길림 선의 강역을 확정하여 하얼빈 지역의 여진을 간접지배하고 흑룡강ㅡ연해주 지역의 여진을 직접지배하여 전성기 100 년을 구가합니다
이런거 보면...원나라 때문에...우리나라가 요모양 요꼴이 된 거네요...쩝;;
딱 각이 나오는듯...
쌍성 총관부도 저 지역이었을 테고... 공민왕이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홍건적에 개털리면서 국력이 파탄이 난 상태라 회복한 지역을 경영할 여력이 안되었던 것이고...자연히 명나라에 흡수가 되어버렸을듯...
예, 원나라 때가 기점입니다
또 공민왕이 회복한 다음에 명이 요심 지역에 진출하면서
심양과 본계 사이인 봉집을 기준으로 명과 고려의 경계가 나뉘어졌다가
조선이 명 중심의 국제질서에 순응하면서
1400년 대가 되면 연산관을 거쳐 봉황성까지 내려옵니다
그리고 후금이 들어서면서 현 압록강으로 굳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