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서 백제 5도독부의 명칭
置熊津、馬韓、東明、金漣、德安 五都督府 :
1.웅진熊津 2.마한馬韓 3.동명東明 4.금련金漣 5.덕안德安
● 1778 만주원류고 9권- 百濟諸城
唐顯慶中分爲五都督府曰 德安則百濟東方之得安城 曰熊津卽北方之熊津城 熊津今朝鮮漢江城在 全州西北
德安則百濟東方之得安城 : 덕안(德安)도독부 - 즉, 백제(도성) 동방향의 득안성(得安城)이다.
■ 사서 원문 : 신당서 지리지7, 가탐도리기
登州 海行入高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末島、烏湖島三百里。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里鎮二百里。
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石人汪、橐駝灣、烏骨江八百里。
乃南傍海壖,過烏牧島、貝江口、椒島,得新羅西北之長口鎮。
又過秦王石橋、麻田島、古寺島、得物島,千里至鴨淥江唐恩浦口。
진왕석교(秦王石橋)·마전도(麻田島)·고사도(古寺島)·득물도(得物島)를 지나서 1,000리를 더 가면
압록강의 당은포구(唐恩浦口)에 이르는데,
●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夏五月 二十六日 王與庾信眞珠天存等 領兵出京 六月十八日 次南川停 定方發自萊州 舳艣千里 隨流東下
二十一日 王遣太子法敏 領兵船一百艘 迎定方於德物島
여름 5월 26일, 임금이 유신, 진주, 천존(天存) 등과 함께 병사를 거느리고 서울[경주?]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定方)은 내주(萊州)에서 출발하여 천리에 이어질 정도로
많은 병선을 이끌고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
21일, 임금이 태자 법민을 시켜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정방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종왕 [太宗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신당서를 보니 백제에 설치된 백제 5도독부중에 덕안(德安)도독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덕안(德安)이란 명칭의 유래는 무엇인가 ? 뜬금 없습니다.
그러던중에 만주원류고에 다시 언급된 덕안(德安)도독부에 그 유래가 나옵니다.
백제 도성의 동방향에 있던 득안성(得安城) 때문이네요.
득안(得安) 의 발음을 듣고 받아적다가 덕안(德安)으로 표기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덕안(德安)을 득안(得安)으로 표기 할수도 있을겁니다.
비슷한 사례가 가탐도리기의 득물도(得物島) 와 삼국사기의 덕물도(德物島)가 아닌가 싶네요.
이런 발상을 고지도에 적용한다면 ? 1562년 명나라 주해도에 적용해 봅니다 [요하 부근 지도]
명나라 요하 입구에 있던 섬... 득물도, 고사도, 마전도는 이제 없습니다.
당시의 해안선이 뒤로 밀려나면서 지금은 육지가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