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5-06 13:04
[중국] 동양의 마타하리... 카와시마 요시코(숙친왕의 딸)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2,247  

카와시마 요시코



1.gif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라고 하면 흔히 1차 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로 활동한 마타하리를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의 고위 정보를 자신의 매력으로 빼돌려 독일 정보부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희대의 악마이며, 배신자 등의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사실 그녀가 어떤 정보를 빼돌렸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가 어떤 위험에 빠졌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미모의 여성, 그리고 댄서라는 면에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서양에 마타하리가 있었다면 동양권에는 남장의 미인이며 스파이였던 카와시마 요시코(川島芳子)라는 여성이 있다. 청조의 왕녀로 태어난 일본군 스파이로 활동한 그녀.


Example.jpg


그녀의 일생을 잠깐 들여다보자.


XTUmAQ08ia.png

1911년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조는 사실상 멸망하게 된다. 그 후 차기 정부를 담당하게 된 것은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국민당이었다. 1928년 무렵 중국 내부의 세력 관계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 그리고 장작림(張作霖)세력이었다. 이들은 각기 장개석은 구미열강 쪽모택동(毛澤東)은 소련 장작림은 일본에 연줄을 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장작림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굳건한 만주, 화북 지역에서의 영향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작림은 반일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결국 장개석과의 싸움에서 지고 장개석을 피해 만주로 피난오게 되는데 일본군 쪽에서는 장개석에게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 만주로 오는 장작림을 열차채로 폭사시켜버렸다.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은 그들(일본 관동군)1931년 만주철도를 스스로 폭파시키고 이를 중국군이 한 것으로 몰아붙여 공격을 개시, 5개월도 지나지 않아 흑룡강, 길림, 요녕 지역을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다. 바로 만주 괴로 정부의 수립이었다. 만주국의 초대 황제가 바로 청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일본군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공격에 대해 세계 여론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곧 조사단이 파견되었고 만주철도 폭파사건은 자작극이었음이 드러나 세계의 비난을 받게된다. 일본군은 이러한 비난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는데 이 때 마침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1932년 상해에서 일본인 승려가 중국인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빌미로 중국과 일본은 강하게 충돌, 이 과정에서 중국은 크나큰 피해를 입고 만주국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y.gif


이처럼 길게 설명을 하게 된 것에는 위에 열거된 사건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건 하나가 카와시마 요시코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카와시마 요시코는 청조 황족 중 하나인 숙친왕의 딸로, 1906년에 출생한다. 숙친왕은 북경에 거대한 궁전을 가지고 있는 명문 세도가로 시중드는 하인만 200명에 그가 가진 영토는 한반도에 필적할만한 크기였다. 하지만 청조가 망하며 그의 권세도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이를 지키기 위해 당시 동아시아의 거대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던 일본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일본의 창구 역할을 하던 카와시마 나니와(川島浪速 , かわしま なにわ)의 친분을 쌓은 이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딸 14번째 왕녀 금벽휘를 카와시마 나니와의 양녀로 삼게 한다. 금벽휘는 그렇게 하여 일본이름 카와시마 요시코를 얻게 되었다. 물론 일본군으로서도 중국의 진출을 원활히 하려면 숙친왕과 같은 거대 세력가와 결탁하여야 했고 흔쾌히 받아들이게 된다.


다운로드.jpg


 카와시마 요시코는 그로인해 일본으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총명하고 지적이고 아름다웠다. 칠흑같은 머릿결과 백옥같은 피부 하지만 의지를 담은 두 눈에는 황족으로서의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또한 수업 중에 중국에 대한 욕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뛰쳐나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생활 역시 매우 윤택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그녀는 거의 공주님과 같은 생활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니와가 지원하던 만주와 몽고 독립이 원활하지 않아 자금 회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대저택은 회수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나니와의 고향 신슈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이때 당시부터 그녀는 상당히 남성적인 취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말을 좋아해 공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말을 타고 학교를 가는 등 상당히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그녀의 모습을 동경하는 여학생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뤼순에 있던 그녀의 친아버지 숙친왕이 사망하게 되고, 이 때문에 장기간 휴학하여 중국에 다녀온 이후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장기간 휴학에 대하여 학교 측에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나니와의 통제 아래 독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랐다.

17세가 되었을 당시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큰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권총자결 미수에서 돌연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여성을 버리고 남성으로 살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양부였던 나니와는 그녀에게 "관계"를 요구했고 이를 완강하게 거절하는 의미로 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그 이후로 나니와는 그녀에게 어떤 애정적 접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친아버지 숙친왕의 재산 관리 등을 위해 나니와의 비서 역할을 겸하며 중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더욱더 간섭받지 않는 상황에서 더더욱 남성적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그녀는 어린시절 친구였던 몽고 왕족과 결혼하지만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결혼생활은 3년간 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관동군의 육군소좌 타나카 타카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정보국 소속이었던 그와의 교제가 시작되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관동군의 첩보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권총의 사용법, 기밀서류 입수방법, 암호, 변장방법을 비롯한 갖가지 스파이 기술을 섭렵한 그녀는 만주어, 일본어, 영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하는 등 정보부로서는 매우 활용도 높은 인재였다. 또한 그녀가 청조왕조의 왕녀라는 점 역시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에게 임무가 떨어졌는데, 그 임무가 바로 상해사변을 일으키는 것이였다. 군부로부터 전해진 1만엔의 자금으로 중국인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상기에 소개한 상해사변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단신으로 적의 포대에 잠입, 전력을 정탐하여 알려주는 등 상당한 임무수행 능력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청조왕녀로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때로는 기밀서류 탈취 등과 같은 스파이 활동을 하는 등 현대판 여성 제임스본드와 같았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공이 계속 될 수록 생활이 바탕해지고 군부로서는 제어하지 못할 정도의 돌발행동을 하는 등 점점 관동군의 미움을 사기 시작하며 그녀를 처분하자는 의견까지 오가게 된다. 결국은 이를 총수였던 사사가와 료이치에게 고하고, 료이치는 요시코를 불러 대강의 전말을 이야기한 후 그녀를 근신처분하게 이른다.

그 이후로 그녀는 활약(?)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중국 국민정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본의 손발이 되어 동포를 배반한 그녀는 지리한 재판 과정 속에서도 재판관들을 휘두르는 등 부러지지 않는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긴 재판 과정 속에서도 그녀를 스스로를 구명하기 위해 친분이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었으나 결국 사형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1948326, 총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1948년 총살집행 되어 죽은 카와시마 요시코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처형된 직후부터 다른 사람이 대신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소문이 끊임 없이 나돌었는데, 최근에 카와시마 요시코는 실제로 30년이나 더 생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도쿄신문과 지지(時事) 통신,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중국 신문화보(新文化報)를 인용해 가와시마가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지난 1978년까지 살았다는 증언과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출처: 아름다운 세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하늘나비야 18-05-10 02:12
   
이거 중국에서 영화로 만든게 있더군요 봤는데  당시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이 아닌 진짜 인생이 파란만장하더군요
 
 
Total 46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10 [중국] 시진핑의 어설픈 중화사상과 동북공정의 부메랑 역… (1) artn 11-20 1428
409 [중국] 중국산 벡신 안전하니 안심하고 맞으라고 ? 너나 맞… artn 11-19 1301
408 [중국] 중국은 왜 걸신들린 문화 불모국이 되었나 ? (1) artn 11-19 1368
407 [중국] 삼겹살은 중국 고유의 전통음식 (8) 즈비즈다 11-17 3645
406 [중국] 중국판 대장금 ㅡ 상식 (명나라 시대극) mymiky 11-13 1208
405 [중국] 한푸는 중국 전통의 복식 (2) 즈비즈다 11-13 1143
404 [중국] 베트남 아오자이는 사실 중국의 옷 (1) 즈비즈다 11-13 1464
403 [중국] 기독교는 사실 중국의 종교 (1) 즈비즈다 11-13 938
402 [중국] 세계 모든 언어는 사실 중국의 한 방언 (2) 즈비즈다 11-13 871
401 [중국] 인도네시아 의복 문화는 사실 중국 문화 (1) 즈비즈다 11-13 821
400 [중국] 시진핑 들어 꽃피우는 찬란한 중국 문화 인정해주자.… (2) artn 11-13 1083
399 [중국] 속국 좋아하고 자빠졌네~ 떡국은 먹어봤냐 ? 한류 문… (5) artn 11-12 1233
398 [중국] 중국 전통복 패션쇼에서 한복 등장 (4) mymiky 11-09 1470
397 [중국] 하룻 강아지 중국 범 한국 무서운줄 모른다 (5) artn 11-09 1454
396 [중국] [중국 바이두] 명나라 갓 모양 모자는 원나라에서 왔… (5) 예왕지인 11-08 1160
395 [중국] 이제서야 문화 후진국임을 자각한 중국이 온갖 오두… (1) artn 11-08 1069
394 [중국] 만주 옷이 싫다고, 되려 몽골과 고려 옷으로 회귀중… mymiky 11-08 1086
393 [중국] 중국 전국시대 갑옷 (15) 예왕지인 11-07 1594
392 [중국] 중국은 문화대혁명 중 (5) 즈비즈다 11-06 1616
391 [중국] 중국인은 문화대혁명이 종특입니까?? (5) 즈비즈다 11-06 941
390 [중국] 원말~ 명초 고려양 한푸 (1) mymiky 11-06 1096
389 [중국] 중세시대 한류ㅡ 중국대륙을 휩쓸었던 고려(조선)양 … (1) mymiky 11-06 1067
388 [중국] 중국의 복식공정은 아주 광범위하게 진행돼 왔습니… (7) 감방친구 11-05 1393
387 [중국] 중국 다큐 - 한복과 기모노는 중국이 근간 (3) 커밍쑨 11-05 908
386 [중국] 조선시대 모자는 중국 원조가 아닐까? (13) 예왕지인 11-05 1589
385 [중국] 한복 원조는 초기 명나라가 맞긴하죠 (46) 예왕지인 11-04 1844
384 [중국] 명나라 황실예복 (5) mymiky 11-04 1416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