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계에서는 평주로 옮겨진 안동도호부의 위치를 북평군 서남쪽으로 비정하고 있어요 천진 동북쪽이죠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당 영주로 비정된 현 조양 동남쪽 270리에 있다는 안동도호부를 저는 마지막 안동도호부인 요서고군성, 즉 요서의 옛 군성으로 본다고 말씀드린 바 있는데
중국학계 역시 그렇게 보더군요
그런데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평주에 있다가 안동도호부가 옮겨간, 마지막 안동도호부는 현 대릉하 동쪽 인근, 현 북진시 남서쪽이 아니라
북평군 북쪽에 있던 수나라 요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1) 안동도호부와 서안(장안)의 거리
ㅡ 북평군에서 서경(장안)까지 去西京四千三百二十里 <통전>
ㅡ 안동도호부(요서 옛 군성)에서 장안까지 西南至長安四千六百二十五里 <태평환우기>
305리 차이밖에 안 납니다
중국학계가 비정한 진저우 근방 요서 옛 군성은
ㅡ 북평군에서 영주까지 700, 영주에서 요서고군성까지 270 이니 근 1,000 리 거리입니다
이 두 곳은 완전히 다른 위치입니다
2) 시대적 상황
ㅡ 7 세기 말~8세기 초에 거란과 고구려 유민 등이 합세해 반란을 일으켜서 영주를 유주 어양으로 옮겼고 그 후에 안동도호부를 평주로 옮겼습니다
ㅡ 잠시 안정되었다 싶다가 다시 안녹산이 난을 일으켜서 유주와 연주 등을 장악합니다
3) 구당서와 태평환우기가 기술한 안동도호부는 마지만 안동도호부로 요서 옛 군성의 안동도호부입니다
ㅡ 즉 "안동도호부(요서 옛 군성)에서 장안까지 西南至長安四千六百二十五里 <태평환우기>"는 당 현종 후반기인 천보 년간의 안동도호부예요
ㅡ 즉 이 시기의 안동도호부와 그 관할 14주는 유주, 연주 일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록을 상세히 보세요
凡此十四州,並無城池。是高麗降戶散在諸軍鎮,以其酋為都督、刺史,羈縻之。
戶:唐天寶戶:五千七百一十八。
右自燕州以下十七州,皆東北蕃降胡,散處幽州、營州界內,以州名羈縻之,無所役屬。祿山之亂,一切驅之為寇,遂擾中原。至德之後,入據河朔,其部落之名無存者。今記唐天寶之故跡地理焉。<태평환우기>
당 나라 천보 년간의 안동도호부와 그 관할 주의 실상을 명백히 적고 있습니다. 이 태평환우기의 기록은 구당서 지리지 기록과 일치하여 사실 교차가 성립합니다
태평환우기의
"四至:南至東京缺。西南至西京三千八百二十里。西南至長安四千六百二十五里。"에서
南至東京缺 ㅡ 이게 뭔가 이해가 안 가서 다시 찬찬히 분석을 했습니다
송나라 서경은 낙양, 동경은 카이펑 (개봉)입니다
처음에는 평주 시기의 안동도호부를 설명하는 것인가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니 평주 시기가 아니라 요서 옛 군성 시기의 안동도호부였습니다
今記唐天寶之故跡地理焉。
사서를 분석하다 보면 욕심이 앞 서서 제반 내용과 문구를 놓치는 일이 있습니다
8세기와 8세기 이후 영주 역시 유주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東至東京缺。西南至西京四千二百一十里。西南至長安五千里。東至遼河,南至大海三百四十里。西至平州七十里十,一作百。北至秦長城二百七十里,至契丹界濕水四百里。東南至保定軍舊安東都護府一百七十里一作二百。西南至平州七百里。西北至契丹界七十里。東北至契丹界九十里,自界至契丹牙帳四百里。<태평환우기>
머리 속에 지도가 그려지십니까?
이 기록은 당송 시대 역사서에 계속 나오고 이후 명청 시대까지 받아적는 내용인데
유주 시기의 영주 지리 정보와 현 조양 시기의 영주 지리 정보, 뿐만 아니라 북송 시기의 영주 정보가 혼재돼 있습니다
신당서에는 영주가 어양으로 갔다가 다시 본 위치로 돌아간 것으로 간단히 적고 있지만 태평환우기는 더 상세합니다
營州柳城郡,上都督府。本遼西郡,萬歲通天元年為契丹所陷,聖歷二年僑治漁陽,開元五年又還治柳城,天寶元年更名。<신당서>
萬歲通天二年,為契丹李萬榮所陷。神龍元年,移府於幽州界置,仍領漁陽、玉田二縣。開元四年,複移還柳城。八年,又往就漁陽;十一年,又還柳城舊治。天寳元年,改為柳城郡。乾元元年,複為營州皝音幌。<태평환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