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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2 17:58
[중국] 한국의 노먼베순 "방우용" 1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040  

1. 중국인들 우리 시대의 편작이라 불러

 

방우용.jpg

방우용. 그는 경남 언양에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 (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조선인 의사였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자 조선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였고 사회주의를 추구한 혁명가였다. 중국인들로부터 우리 시대의 편작이라고 불렸던 흑백사진 속 남자다.


중국 산시성 옌안혁명기념관 3층 전시실에 걸린 이 사진의 제목은 백구은국제화평의원환송방우용대부합영’(白求恩國際和平醫院歡送方禹鏞大夫合影)이다. 백구은국제화평의원에서 의사 방우용을 환송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뜻이다. 날짜는 19459. 일제 패망 직후다. 사진 아랫줄에 앉은 이들의 이름이 제목 아래 적혀 있다. 왼쪽부터 양극기·설봉·담장·윤성·이덕신·방우용·노지준·유신권·유충한’. 산시성 전체를 누렇게 덮은 황토 흙벽돌처럼 단단한 표정의 그가 방우용이다.

방우용. 낯선 이름이다. 그는 경남 언양에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조선인 의사였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자 조선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였고 사회주의를 추구한 혁명가였다. 중국인들로부터 우리 시대의 편작이라고 불렸던 흑백사진 속 남자다.

방우용이 산시성 시안에 있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판사처(사무소)를 통해 장제스가 쳐놓은 국민당 봉쇄를 뚫고 옌안으로 들어간 것은 1939년 여름이다. 당시 옌안 동쪽 황허를 건너 열린 진차지(晉察冀, 산시·차하르·허베이 지역) 해방구 전선에는 우리에게 평전 <닥터 노먼 베쑨>(실천문학사 발간)으로 잘 알려진 캐나다인 의사 노먼 베쑨이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베쑨을 음차한 백구은(白求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다. 그즈음 베쑨은 팔로군의 열악한 의료 실태에 대해 절망하는 보고서를 쓴다


이곳은 지금 20만 군대가 포위 속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병원에는 거의 항상 2500명 정도의 부상병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의 교전 횟수는 1천 차례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의료 사정은 어떻습니까? 약품도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부 출신의 중국인 의사 5,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중국인 의사 50, 그리고 외국인 의사 1명이 이 부상병들을 다 처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닥터 노먼 베쑨>에서 인용) “전선에서 가장 나이 든 병사라던 49살의 베쑨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홍군들을 보고 절망하던 순간에, 46살의 방우용이 팔로군 총사령부가 있던 황토 오지 옌안을 찾는다.


방우용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서도 흥미로운 존재다. 그는 항일전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이 가진 의술을 혁명의 주된 도구이자 사람을 살리는 무기로 사용했다.  


중국 동북지역(만주)이나 화북지역(옌안)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벌이거나 직업혁명가로 활동한 조선인 독립운동가는 많다. 이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도 꽤 된다. 이를 근거로 2005년 일부 운동가들에게 독립유공자 추서가 이뤄지기도 했다. 반면 방우용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다. 그가 맡았던 직책만이 간간이 확인된다. 사망 연도도 모른다. 중국 쪽도 마찬가지다. 중국 혁명 속 베쑨이나 조지 하템(중국 이름 마해덕’) 같은 서양 의사들에 대한 기록물은 넘쳐나지만 방우용에 대한 기록은 몇 줄에 그친다. 북한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사실상 사진으로만 남았다. 


2. ‘홍색 관광열풍으로 커진 옌안혁명기념관

 

방우용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다. 그가 맡았던 직책만이 간간이 확인된다. 사망 연도도 모른다. 중국 쪽도 마찬가지다. 중국 혁명속 베쑨이나 조지 하템(중국 이름 마해덕’) 같은 서양 의사들에 대한 기록물은 넘쳐나지만 방우용에 대한 기록은 몇 줄에 그친다. 북한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옌안은 황허 지류인 연하가 와이(Y)자로 합쳐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을 따라 바짝 건물들이 들어섰다. 건물 뒤로는 황토 흙산들이 솟았고 거기에 집을 짓거나 토굴을 팠다. 현재 전체 인구는 200만명이 넘는다.


 Y자 중심 지역에는 40만 명 정도가 산다. 옌안 아래에는 시안이, 옌안 위로는 바오안이 있다. 미국인 기자 에드거 스노는 바오안에서 마오쩌둥을 만난 뒤 <중국의 붉은 별>을 썼다. 모두 홍군, 팔로군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이들 도시 이름에는 모두 편안할 안’()이 쓰였다. 중국 역사에서 전쟁과 외침이 많았던 지역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대장정으로 지리멸렬하며 잡동사니 군대로 쇠했던 홍군이 10년 넘게 터를 잡고 힘을 기른 옌안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3월 5~7일 중국 혁명의 성지라는 옌안을 찾았다. 한국에서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시안에서 고속철도나 기차, 버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시안~옌안은 고속도로 이정표상으로 326km 떨어져 있는데 최근에 개통한 고속철로는 2시간15분 정도면 간다. 에드거 스노는 시안에서 옌안까지 “6t 닷지트럭을 타고 꼬박 이틀이 걸렸다고 했다. 요즘은 베이징에서 곧장 비행기를 타고 옌안으로 갈 수도 있다. ‘백비라 불리던 국민당 군대의 옌안 봉쇄 따위는 지금 없다. 다만 고속철을 타는 데도 신분증을 제시하고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허름한 터미널에서 옌안행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3위안(540)짜리 지하철을 타더라도 엑스레이 검색대에 가방을 넣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느끼는 그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 하는데, 검색대 직원들은 마냥 건성이다.


2005년에도 옌안혁명기념관을 방문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낡고 크기만 한 기념관은 볼품없었다. 전시물도 그저 그랬다. 혁명 성지 옌안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길거리 좌판에서 뭉텅이로 흥정되는 마오쩌둥 열쇠고리가 그나마 혁명 성지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8년이 지난 2013년 다시 찾은 옌안은 달랐다. 옌안 곳곳에서 채굴되는 석유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옌안혁명기념관도 달라져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2009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예의 중국 정부가 지은 공공건물들이 그렇듯 과장되게 컸다. 혁명의 성과를 크기로 보여주려 했다. 옌안을 굽어보는 마오쩌둥 동상도 더 커진 듯했다. 2004년 대장정 70, 2006년 장정승리 70돌 즈음에 불어닥친 홍색 관광열풍의 결과물로 보였다. 경제대국의 자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한껏 고양된 민족주의가 과거 혁명의 기억과 기이하게 착종된 공간으로 다가왔다.


기념관 3층 전시실 중간쯤에 의료위생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마오쩌둥은 죽어가는 이와 부상자들을 구하는 것은 혁명의 인도주의를 밝히는 길이라고 했다. 인민해방군복 차림의 젊은 안내원은 장정 과정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서 옌안에 의료시설과 의과대학을 세우는 등 후방 지원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의료위생 전시실 맨 위에 걸린 것이 바로 방우용 사진이다. 사진 제목과 이름만 나와 있을 뿐 아무런 설명이 없다. 방씨 성을 가진 중국인으로 알기 쉽다. 옌안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 전시 자료와도 멀찍이 따로 떨어져 있다


기념관 직원들도 방우용이 조선인 의사라는 사실만 알지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기념관 사료실에 방우용 관련 자료가 더 있는지 문의했다. 있을 법도 한데 한참 찾아보더니 더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따로 큼직한 전시실을 차린 베쑨과는 대접이 달랐다.

 

3. 경성의전과 도쿄대학서 의학 공부 뒤 중국으로

 

방우용 연표

1.jpg


 

한국 쪽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들을 종합하면 방우용은 1890년 경남 언양에서 태어났다. 1941~47년 옌안에서 발간된 중국 공산당 신문 <해방일보> 등은 방우용의 출생연도를 1893220일이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일부 기록들은 그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고 돼 있다. 서울대 총동창회에서 펴낸 동문록을 보면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생 48명 가운데 방우용이라는 이름이 확인된다. 당시 조선인 학생이 많았던 경성의학 전문학교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일본 학생과는 다른 차별적인 교육과정, 일본인 교수의 민족 차별에 대한 불만도 컸다고 한다.


19193·1 운동 당시 구금된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이 서울에서 구금된 전체 학생의 20%에 달했다(신재의,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생의 민족의식’). 중국 쪽 자료는 방우용이 젊은 시절 일본의 식민지배, 조선 학생들에 대한 불평등한 대우를 목도하고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적고 있다. 서울대 의대 동창회 쪽에 문의한 결과, 방우용이라는 이름만 나와 있을 뿐 더 이상의 기록은 없다고 했다. 방우용은 왜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수천km 떨어진 혁명의 전선에 뛰어들었을까. 동창회 쪽은 그의 행적을 증언할 다른 졸업생들 역시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왔다.


중국 쪽 기록은 방우용이 일본 도쿄대학에서도 공부를 했다고 전한다. 의학 관련 공부를 했으리라 추정된다. 그는 다시 소련으로 건너가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1년이 지난 1928년 그는 중국으로 향한다. 난징과 상하이를 주요 활동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적은 1929년 그 유명한 황포군관학교에서 확인된다. 항일전쟁·국공내전 기간에 숱한 군사·정치 지도자를 배출한 황포군교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거쳐간 곳이다


이 학교의 학생·교직원 명부인 <황포군교동학록>에는 7기생 입교 시기 교관으로 방우용이 등장한다. ‘학교본부 군의처에는 교관 11명이 있었는데, 방우용은 소교직위에 국적은 한국으로 적혀 있다. 황포군교에서 군의관을 양성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6기까지 광저우에 있었던 황포군교는 7기 시기에는 난징에 본교를 두었다. 앞서 6기생 입교 시기에는 님 웨일스의 <아리랑의 노래>로 잘 알려진 김산도 교관으로 복무했다는 기록이 일부 남아 있다. 이 시기 방우용은 상하이에도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원이던 조공운(趙公雲)에 대한 중국 자료를 보면, 방우용은 조선인 혁명가였던 조공운이 상하이에서 국민당 군대에 들어가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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