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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3 03:23
[한국사] 고려시대 최대 강역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3,223  

고려최대강역.jpg


고려 문종 대에는 흑룡강과 연해주 지역의 모든 여진족이 단순 복속이 아니라 고려 백성이 되고자 자청하였고 저들이 살던 곳을 행정구역으로 편입해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하얼빈 지역에서 성장하던 완안여진의 경우도 11세기, 1백년 동안 고려의 귀덕장군직을 세습하며 고려에 복속돼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최대 강역은 오래 지속되지 못 하고 12세기 들어서며 깨지게 됩니다

그러나 또한 짧지도 않아서, 추정컨데 근 40년 유지되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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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5-13 03:33
   
고려 전기 공식적 영토는
현 잉커우ㅡ태자하ㅡ혼하 상류ㅡ요원ㅡ장춘ㅡ길림ㅡ목단강 라인입니다
감방친구 18-05-13 03:36
   
고려사 지리지 서문은 모순된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보다 동북계가 넓었다1)고 하면서 동시에 선춘령을 한계로 삼았다2)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1)은 문종 대에 편입된 연해주
2)는 공식적 영토로서의 목단강 일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5-13 03:40
   
금나라가 건국되면서
고려의 북방 경계선은
기존
현 잉커우ㅡ태자하ㅡ혼하 상류ㅡ요원ㅡ장춘ㅡ길림ㅡ목단강 라인에서 동북계 라인이 다소 위축이 되었으나 서북계는 유지가 되었다고 분석됩니다
감방친구 18-05-13 03:45
   
명나라가 14세기 말 현 요동 지역에 진출하며 인식한 당시 고려의 서북계, 즉 명 요동도지휘사사 관할지와의 접경지가 현 심양 동남쪽, 본계 서북쪽의 봉집현 기준 동서 500리(대명일통지)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5-13 03:49
   
고려는 발해 멸망 후 문종 대에 이르러 발해 강역의 절반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만주원류고는 현 사평 일대에 있던 거란의 신주를 설명하며 그 인근의 땅을 고려가 "회복하였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발해와 고려를 같은 나라, 동일 계통의 나라로 보는 인식이 바탕하고 있는 것입니다
탈레스 18-05-13 03:56
   
감방친구님 안녕하세요.
글을 보다가 문득 궁금한게 있어서 여쭤보려고 댓글 달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 지도처럼 여진족 영역까지 고려 영토로 볼수 있느냐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문종시기 군현을 통한 지배로 여진의 영토를 편입되었다면, 예종시기 여진정벌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고려 전기 여진은 요와 고려 사이에서 양속관계로 양다리 걸치면서 이익을 취하지 않았나요?
즉, 고려가 여진을 흡수해서 군현 통치를 했다면 요나라가 가만 있지 않았을것 같아서요.

또한 두번째 궁금증은 지배를 했다면 귀부한 지역의 판적을 거둬들여서 재편성하고, 군현을 설치하고 주요 지역에 성곽을 쌓고 관리를 파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관련 기록이 있을까요?

세번째는 고려가  이들을 직접적인 지배력을 발취할 정도의 국력이 있었을까요?
예로 동북9성의 반환이 있잖아요. 이민족과 조공-사여의 형식및 무역의 허가 그리고 관직의 수여와 같은 기미지배 형식이 아닌가요??
     
감방친구 18-05-13 04:05
   
요사에 여진은 이미 여진국으로 등장합니다
숙여진, 생여진은 동단국 교치 이후의 구분인데
숙여진 지역인 현 요동지역을 고려가 다 차지해서 거란과 여진 사이에 고려가 끼어있는 형세가 됩니다

여진족은 거란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여진족 대부분이 고려백성으로 1백 년 넘게 살았습니다
오직 하얼빈 지역의 완안여진이 거란의 간섭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고려의 간접지배를 받고 있기도 했습니다

동단국은 발해 영토 가운데 현 요하 동쪽 땅에 세워졌는데 2년만에 망하고 현 의무려산~요하 사이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발해 유민들을 현 요동지역에 끌어다 놓고 숙여진이라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감방친구 18-05-13 04:14
   
여진족이 뭔데요?
여진족이 영가와 아골타에 의해 통합되며 힘을 얻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고려사와 요사를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동북 여진의 반란은 크게 두 번 있었습니다
문종, 예종 때
둘 다 완안여진이 고려 경내의 여진족을 충동해서 발생

문종 때는 아주 쉽게 제압했으나
그 40 여 년 후인 예종 때에는 여진족이 무섭게 성장해 있었습니다

서북계와 달리 동북계는 고려가 전쟁을 해서 얻은 곳이 아닙니다
땅이 비어 있고, 또 그 근방 여진족들이 계속 귀순해 오면서 얻게 되고 또 넓혀진 곳으로 고려가 이들을 품어 살게 해준 것입니다

그쪽 지역 고려백성이 거진 여진족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고려에 반기를 든 것이죠
     
감방친구 18-05-13 04:21
   
거란이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건데요?
고려에 크게 3차례, 근 30 년 간 침입해 뒤지게 두들겨 맞은 거란이 뭘 어떻게 해요?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 사람들 인식이 거란 수십만 대군을 무찌른 당시 고려를 거란보다 약하다고 여기다 못해 심지어 당시 여진족보다 약하다고 여겨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거란은 11세기 1백 년 동안 강동 6주 다시 돌려달라고 징징댑니다
2~3차 침입이 그 목적 자체가 강동6주 빼앗는 것이었고요

제가 이곳에 수 차례 게시한 거란이 보낸 고려 숙종 책봉문 보셨나요?

"서쪽으로는 압록으로부터, 북쪽으로는  용천까지" 고려 영토라고 하고 있습니다

거란 스스로 고려 영토를 국서, 외교문서를 통해 거론하고 있습니다

용천이 어딘가요?
발해 상경용천부인데 현 학계 통설을 따르면 현 목단강시입니다
물론 저는 하얼빈 쪽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5-13 04:22
   
님은 제가 지금까지 지난 겨울부터 이곳에 게시한 고찰글들 제대로 읽어본 적 없으시죠?
     
감방친구 18-05-13 04:27
   
기미지배가 아닙니다
행정지 편입, 아예 고려 땅, 고려 백성이 되는 겁니다
여진족 인구가 많았습니까?
많이 잡아야 30~40만입니다


현종 17년, 1026년

閏五月 甲子. 契丹遣御院判官耶律骨打, 來請假途, 將如東北女眞, 不許.

윤5월 갑자일. 거란이 어원판관(御院判官) 야율골타(耶律骨打)를 보내 동북여진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해왔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정종 10년, 1044년

十年 夏四月 庚戌 東女眞一千四十五人執贄請盟, 各賜衣著銀器. 賜金元鉉等及第.

여름 4월. 경술일. 동여진 사람 1,045명이 예물을 가지고 와서 화맹(和盟)을 요청하므로 각각 의복과 은그릇을 내려주었다.

문종 27년, 1073년

夏四月 甲戌朔 日食. 丙子 制曰, “東北邊十五州外蕃人, 相繼歸附, 願置郡縣, 于今不絶, 此實頼宗廟社稷之靈. 其令宰臣, 先告事由, 待遠近畢納, 欵拓定州縣而後, 親行恭謝. 其行禮及太子攝事之儀, 有司詳議以聞.” 壬辰 幸龜山寺, 遂置酒于龜臺. 太子諸王宰樞侍宴, 夜半乃還. 丁酉 幸外帝釋院.

여름 4월 병자일. 왕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동북 국경지역 15개 주(州) 외곽에 사는 오랑캐들이 계속 귀부해 오면서 우리 행정구역에 편입시켜 줄 것을 끊임없이 간청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종묘와 사직의 신령들 덕분이다. 재상들을 시켜 종묘와 사직에 이 사실을 먼저 고하게 한 뒤, 멀고 가까운 오랑캐들이 완전히 귀부해 와서 행정구역을 결정짓는 절차가 끝난 다음 내가 친히 종묘와 사직에 감사하려 한다. 이 행사에 따르는 의식과 태자의 대행 가부에 대해 해당 관청에서 상세히 의논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六月 甲戌 王如奉恩寺. 戊寅 東北面兵馬使奏, “三山·大蘭·支櫛等九村, 及所乙浦村蕃長鹽漢, 小支櫛前里蕃長阿反伊, 大支櫛與羅其那烏, 安撫夷州骨阿伊蕃長所隱豆等一千二百三十八戶來, 請附藉. 自大支櫛, 至小支櫛褭應浦海邊長城, 凡七百里, 今諸蕃, 絡繹歸順, 不可遮設關防. 宜令有司, 奏定州號, 且賜朱記.”, 從之.

6월 갑술일.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무인일.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三山)·대란(大蘭)·지즐(支櫛)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所乙浦村)의 번장(蕃長) 염한(鹽漢)과 소지즐의 전리(前里) 번장 아반이(阿反伊)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與羅其那烏), 안무이주(安撫夷州)의 골아이(骨阿伊) 번장 소은두(所隱豆) 등 1천 2백 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褭應浦) 해변까지는 7백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關防)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乙未 東路兵馬使奏, “東蕃大齊·者古·河舍等, 十二村蕃長, 昆豆·魁拔等一千九百七十戶, 請依霜昆例內附, 又豆龍·骨伊·餘波漢等部落蕃長阿老漢等亦願爲州縣. 此輩所處遼遠, 在古未嘗朝覲, 今皆歸服. 若定封疆, 設關防, 則餘波漢嶺外齊遮古大史·伊稱見·昆俊·丹俊·無乙比化豆等, 壤地無際, 蕃戶連居, 不可窮塞設險, 請待領外諸蕃, 盡爲州縣, 然後漸至遠蕃”, 許之.

6월 을미일. 동로병마사(東路兵馬使)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동여진의 대제(大齊)·자고(者古)·하사(河舍) 등 12개 촌락의 번장인 곤두(昆豆)·괴발(魁拔) 등 1천 9백 70호가 상곤(霜昆)의 전례에 따라 우리에게 귀부하겠다고 요청해 왔으며, 또 두룡(豆龍)·골이(骨伊)·여파한(餘波漢) 등 부락의 번장 아로한(阿老漢) 등도 우리의 주현에 편입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거주지는 우리와 너무 떨어져 있어 이제까지 입조해 온 일이 없었는데 이제 모두 귀부해 온 것입니다. 이제 만일 국경을 그어버리고 관방을 설치하려 할 경우, 여파한(餘波漢) 고개 바깥에 있는 재차고(齊遮古)·대사이(大史伊)·칭견(稱見)·곤준(昆俊)·단준(丹俊)·무을비(無乙比)·화두(化豆) 등 지역은 너무 광활한데다 오랑캐들이 넓게 거주하고 있는 만큼 그곳에 모조리 요새를 설치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여파한 고개 바깥에 있는 오랑캐들의 지역이 우리의 주현으로 편입된 뒤에 점차 먼 곳의 오랑캐들까지 편입시키기 바랍니다.”

왕이 이를 허락했다.

秋七月 壬寅朔 有司言, “東北面兵馬使所奏, ‘支櫛村·那發村·褭臥立村·大信村·西好村·無主其村等, 部落蕃長, 請貢方物名馬.’” 制從之. 丙午 制曰, “黑水譯語加西老諭東蕃, 爲州縣, 可授監門衛散員, 賜名高孟.” 東南海都部署奏, “日本國人王則貞·松永年等四十二人來, 請進螺鈿鞍橋·刀·鏡匣·硯箱·櫛書案·畵屛·香爐·弓箭·水銀·螺甲等物. 壹歧島勾當官, 遣藤井安國等三十三人, 亦請獻方物東宮及諸令公府.”, 制, “許由海道, 至京.”

가을 7월 초하루 임인일. 해당관청에서,

“동북면병마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즐촌(支櫛村)·나발촌(那發村)·요와립촌(褭臥立村)·대신촌(大信村)·서호촌(西好村)·무주기촌(無主其村) 등 부락의 번장들이 토산물과 명마(名馬)를 바치겠다고 요청해 왔습니다.”

라고 보고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병오일. 왕이, “흑수(黑水) 말갈 출신 통역인 가서로(加西老)가 동여진인들을 설득하여 우리의 주군(州郡)으로 편입되게 한 공이 있으니 그에게 감문위산원(監門衛散員) 벼슬을 주고 고맹(高孟)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라.”고 지시했다.

九月 甲辰 翰林院奏, “東女眞大蘭等十一村內附者, 請爲濱·利·福·恒·舒·濕·閩·戴·敬·付·宛十一州, 各賜朱記, 仍隸歸順州”, 從之.

9월 갑진일. 한림원(翰林院)에서,

“동여진의 대란(大蘭)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濱州)·이주(利州)·복주(福州)·항주(恒州)·서주(舒州)·습주(濕州)·민주(閩州)·대주(戴州)·경주(敬州)·부주(付州)·완주(宛州)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歸州)와 순주(順州)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문종 34년(1080) 경신년

十二月 己未朔 東蕃作亂, 以中書侍郞平章事文正判行營兵馬事, 同知中樞院事崔奭, 兵部尙書廉漢爲兵馬使, 左承宣李顗爲兵馬副使, 將步騎三萬, 分道往擊之, 擒斬四百三十一級.

12월 초하루 기미일. 동여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문정(文正)을 판행영병마사(判行營兵馬事)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최석(崔奭)과 병부상서(兵部尙書) 염한(廉漢)을 병마사(兵馬使)로, 좌승선(左承宣) 이의(李顗)를 병마부사(兵馬副使)로 임명해 보병과 기병 3만을 거느리고 각 방면에서 공격해 적 4백 31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문종 35년, 1081년

三十五年 春正月 乙未 以廉漢爲兵部尙書. 丁酉 以文正爲長淵縣開國伯, 崔奭爲吏部尙書叅知政事, 金良鑑叅知政事判尙書兵部事, 王錫爲戶部尙書知吏部事. 丁未 知西北面兵馬事王佇奏, “西蕃酋長阿夫渙等九人, 專心保塞, 宜加爵賞.”, 命以阿夫渙等三人爲柔遠將軍, 山豆等六人爲懷化將軍, 賜物有差.


봄 정월 정미일. 지서북면병마사(知西北面兵馬事) 왕저(王佇)가, 서여진의 추장 아부환(阿夫渙) 등 아홉 명은 전심전력으로 변방을 지키고 있으니 관작을 올려주고 상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에 왕이 아부환(阿夫渙) 등 세 명은 유원장군(柔遠將軍)으로, 산두(山豆) 등 여섯 명은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임명하고 차등을 두어 물품을 내려 주라고 지시했다.

二月 辛酉朔 西女眞酋長遮亶等六人來, 獻鐵甲兵仗, 賜衣帶·綵帛有差. 制曰, “凡東西酋長欲來見者, 兵馬使申報, 取旨後, 方許赴闕, 以爲永制.

丙子 制曰, “去冬十二月, 東北路戎醜, 一朝掃滅, 邊祲廓淸, 是皆上賴宗廟之威靈, 下仗群帥之雄略. 今己凱還, 宜告大廟及六陵, 可擇日行事.”

2월 초하루 신유일. 서여진 추장 차단(遮亶) 등 여섯 명이 와서 철갑옷과 병장기를 바치자 왕이 그들에게 차등을 두어 의복과 채색 비단을 하사했다. 그리고 “동·서여진의 추장 가운데 입조하기를 희망하는 자가 있으면 병마사가 보고해 허락을 받은 후 대궐로 들여보내는 것을 항구적인 제도로 삼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병자일. 왕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지난 겨울 12월에 동북 지방의 못된 오랑캐들을 한꺼번에 소탕하여 변방의 골칫거리를 완전히 일소했다. 이는 모두 위로 종묘의 영령들께서 돕고 아래로 여러 장수들이 뛰어난 무훈을 발휘한 덕분이다. 이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한 사실을 종묘와 여섯 능에 고해야 할 것이니 날을 택하여 의식을 거행토록 하라.”

<고려사 세가>
     
감방친구 18-05-13 04:29
   
선종 5년, 1088년 요(거란)에 보낸 표문

自天皇鶴柱之城, 西收彼岸, 限日子鼈橋之水, 東割我疆.

1) 이에 따라 우리의 강역은 서쪽으로는 화표주(華表柱)가 있는 요동성 건너 강안(江岸)으로부터 동쪽으로는 옛 고주몽(高朱蒙)이 건넜던 개사수(蓋斯水)로 확정되었습니다. (국역 고려사)

2) 승천황태후가 허락하신 이래(993년)로 서쪽은 화표주가 있는 고려 쪽 강안부터 동쪽은 동명성왕(일자)의 별교지수(엄리대수, 개사수, 시엄수)까지 고려에게 할양되었습니다. (본인)

숙종 2년, 1097년 요(거란)가 보낸 숙종 책봉문

十二月 癸巳 遼遣耶律思齊·李湘, 來賜玉冊·圭印·冠冕·車輅·章服·鞍馬·匹叚等物. 冊曰,

而海隅立社, 北抵龍泉, 西極鴨緣, 祗禀正朔, 奉輸琛賮.

12월 계사일. 요나라에서 야율사제(耶律思齊)와 이상(李湘)을 보내 왕을 책봉하는 책서(冊書), 옥으로 만든 인장, 면류관, 예식용 수레, 예복, 안장 갖춘 말, 비단필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그 책문은 이러하다.

“고려는 바닷가에 나라를 세워 그 영토가 북쪽으로는 용천(龍泉), 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 펼쳐져 있으며, 공경히 우리의 제도를 따르고 공물(琛贐)도 성실히 바쳐왔다.”

<고려사 세가>
     
감방친구 18-05-13 04:30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10) ㅡ 고려 120년의 전성기
감방친구 작성일 : 17-12-25 07:55 조회 : 801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773&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6
     
감방친구 18-05-13 04:35
   
거란 동경도 실제 영역
감방친구 작성일 : 18-05-05 08:20 조회 : 695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1026&sca=&sfl=mb_id%2C1&stx=cellmate
     
감방친구 18-05-13 04:36
   
거란과 고려 접경지 관련 기록 종합 교차 (시각화 지도)
감방친구 작성일 : 18-04-29 12:40 조회 : 445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0780&sca=&sfl=mb_id%2C1&stx=cellmate&page=2
6시내고환 18-05-13 10:21
   
이런게 의미가 있나요?
     
감방친구 18-05-13 10:38
   
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요?
          
꼬꼬동아리 18-05-13 12:43
   
몇달만에 왔는데 감방친구님 내공이 어마어마 해졌네요 아님 그동안
지식을 뽐내지 않으셨던가 진짜 대단하세요 감방님 지식이 놀라울 정도네요
     
남북통일 18-05-13 10:54
   
??
     
꼬꼬동아리 18-05-13 12:46
   
이아이디 비트코인 하는 어그로꾼 아이디랑 똑같네요
     
히스토리2 18-05-13 14:40
   
이 지역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을 생각해 보면, 의미..라는 단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것 같습니다. 진심
     
6시내고환 18-05-13 18:25
   
회의감 때문입니다 평소에 님 글 잘 읽고 있어요 불편하게 했다면 용서하세요
Attender 18-05-13 12:26
   
아아앗, 결국 “성슬람 척결” 블로거님께서 말씀하신 영역지도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보다 “연해주 지역”은 오래가지 못했다는 감방친구님의 연구자료는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위구르 18-05-29 13:47
   
어쩌면 일본 황국사학자들이 고구려 영토와 대진국 발해 영토를 각기 고려와 간도 영토하고 바꿔치기 한 것일수도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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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6 [기타] 실수로 안 그린 독도, 이번에도 실수일까? 관심병자 05-23 1256
19705 [기타] 고구려 건국 시기 잡설/가설 (2) 관심병자 05-20 1440
19704 [기타] 단군을 부정하고... 이번엔 전라도를 팔려고 (1) 관심병자 05-20 1304
19703 [한국사] 고구려 아작낸 관구검 능력치 (7) 피테쿠스 05-17 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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