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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3 13:44
[중국] ‘동북의 왕’ 장쭤린(張作霖)[중국근현대인물사] 1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945  

‘동북의 왕’ 장쭤린(張作霖)[중국근현대인물사]
 
1. 말 고치는 법 배워 팔자 고친 ‘동북의 왕’ 장쭤린

전쟁의 와중에 마차에서 태어난 장쭤린의 장남 장쉐량(왼쪽 셋째).jpg



전쟁의 와중에 마차에서 태어난 장쭤린의 장남 장쉐량(왼쪽 셋째)은 장쭤린 사후 약관 28세 때 전 중국의 2인자로 부상했다. 1931년 봄, 수도 난징에서 열병(閱兵)을 하는 장쉐량. 
북양정부(1912~1928)의 마지막 국가원수 장쭤린(張作霖·장작림)은 어렸을 때부터 목수, 찐빵 장수, 어부, 사창가 심부름꾼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워낙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어쩔 수 없었다. 푼돈이 생기면 사숙과 도박장을 번갈아 출입했다. 마적 두목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사숙 선생은 툭하면 학생들을 두들겨 팼다. 소년 장쭤린은 사숙에 갈 때마다 작은 쇠몽둥이를 들고 갔다. 하루는 사숙 선생이 장쭤린을 불렀다. “흉기를 소지한 이유가 뭐냐”고 다그쳤다.장쭤린은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나를 때리면, 이 몽둥이로 선생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날 이후, 사숙 선생은 이 황당한 제자를 총애했다. 학비도 받지 않았다. “글공부와 도박장은 상극이다. 두 개를 동시에 열중하는 것 보니 싹수가 있고, 인물도 멀끔하다.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내 자식들을 잘 부탁한다. 나도 네 일이라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하겠다.”사숙 선생은 장쭤린에게 말(馬) 치료법을 익히라고 권했다. “만주인들은 워낙 건장해서 웬만한 병에는 끄떡도 안 한다. 만주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 말이 없으면 꼼짝달싹 못한다. 말이 탈이라도 날까 봐 항상 노심초사한다.” 장쭤린은 선생의 권유에 흥미를 느꼈다. 몇 달 배워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토비(土匪)와 기병들 상대로 돈을 모았다. 
비적이나 다름없는 보험대에서 출발.jpg

비적이나 다름없는 보험대에서 출발해 관동지역 최고의 가문(關東第一家)을 일군 난세의 효웅(梟雄) 장쭤린의 젊은 시절 모습
지금의 선양(瀋陽) 주둔군 사령관에 해당하는 성징(盛京) 장군의 애마(愛馬)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장쭤린은 장백산 산삼 한 뿌리를 들고 장군을 찾아갔다. “제가 애마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며칠간 산삼을 달여 먹이자 장군의 애마는 벌떡 일어났다.
장군의 하사금을 장쭤린은 사양했다. 대신 보험대(保險隊)를 만들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만주에는 비적들이 많았다. 주민들을 비적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돈을 징수하는 무장조직이 보험대였다. 성징 장군의 비호 아래, 장쭤린의 보험대는 하루가 다르게 대원이 늘어났다.후임 장군 쩡치(增祺·증기)도 장쭤린을 신임했다. 특히 다섯째 부인 선(沈)씨는 친정 동생보다 더 아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씨는 타고난 미인이었다. 어느 봄날, 혼자 꽃구경 나갔다가 비적들에게 봉변당할 뻔한 것을 장쭤린이 구해준 인연이 있었다.
“비적이 너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온갖 것을 다 챙겨줬다. 무덤 뒤에서 외간 남자를 몰래 만나다가 장쭤린에게 들킨 적도 있었다. 고자질하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했지만 장쭤린은 입이 무거웠다. 남편만 오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졸라댔다. “장쭤린이 아니었다면 비적들에게 무슨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조정에 상주해서 관직을 주도록 해라.” 만주 귀족 출신인 쩡치는 귀찮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씨의 부탁을 들어줬다.정규군에 편입된 장쭤린의 보험대는 규율이 엄했다. 순식간에 20여 개 마을을 관할했다. 1901년 러시아 군의 습격으로 후퇴하던 도중 마차에서 장남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이 태어났다. 3년 후,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장쭤린은 처음에 러시아 편을 들다가 나중에는 일본 편을 들었다. 그 덕에 역량을 보존할 수 있었다.1911년 10월, 남방에서 혁명이 발발하자 중국의 동북, 만주에도 혁명 바람이 불었다. 장쭤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군대를 몰고 펑톈(奉天)성(지금의 랴오닝(遼寧)성 일부)의 혁명군 진압에 공을 세웠다. 대총통에 취임한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는 장쭤린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연병대신(練兵大臣)과 중장 계급장을 하사했다. 황제를 칭한 후에는 자작 칭호와 함께 만주의 전권을 위임했다. 동북의 왕이나 다름없었다.장쭤린은 위안스카이의 북양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남방의 혁명세력을 대표하는 쑨원(孫文·손문)에게도 거금을 보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일본과 러시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부하들 앞에서 일본을 매도했다. “일본인들의 요구에 들어주는 척만 해라. 실제로 들어줬다간 동북의 부로(父老)들에게 매국적(賣國賊) 소리를 면치 못한다.”장쭤린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의지가 강했다. 사람 보는 눈도 뛰어나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했다. 매력도 당대에 따를 자가 드물었다. 특히 집안을 잘 다스렸다. 6명의 부인과 한집에 살며 엄격한 규칙을 요구했다. 부인들 방 앞에 준수사항 10가지를 동판에 새겨서 붙여놨다. 내용도 구체적이다.

 1. 부인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엄금한다. 베갯머리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듣지 않겠다.
 2. 여자들끼리 어울려 잡담하는 것을 엄금한다. 모든 사단은 거기서 비롯된다.
 3. 부인들은 서열이 없다. 호칭은 모두 부인으로 통일한다.
 4. 사사롭게 생일 쇠는 것을 엄금한다.
 5. 하인 학대를 엄금한다.
 6. 엄격한 봉급제도를 실시한다. 부인들은 매월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수령해 가라.
 7. 음식과 반찬은 자녀들 숫자에 비례해 등급제를 실시한다. 부인들은 각자 방에서서  자녀들과 함께 끼니를 해결해라.
 8. 일할 때와 휴식 시간을 엄격히 지켜라. 외출 활동은 일률적으로 밤 10시를 초과 할 수 없다.
 9. 자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훌륭한 선생들을 초빙해 자녀 계몽에 힘써라.
10. 자녀들은 혼인의 자유가 없다. 이 권리는 장쭤린 혼자만이 행사할 수 있다. 이 점을 자녀들에게 매일 각인시켜라.” 부인들의 인척과 자녀들에게는 더 가혹했다. 
2. 장쭤린 “내 자식이라도 거들먹대면 두들겨 패라”​
장쉐량(앞줄 왼쪽 셋째)을 호위한 동북강무당 출신 장교들..jpg

장쉐량(앞줄 왼쪽 셋째)을 호위한 동북강무당 출신 장교들. 1936년 겨울, 장쉐량은 이들과 함께 시안(西安)에서 장제스를 감금해 2차 국공연합과 항일전쟁을 이끌어냈다. 
​​1918년, 동북 3성(만주)을 장악한 장쭤린은 정규군 양성을 서둘렀다. 사병들은 긁어모으기 쉬웠지만 장교가 부족했다. 신해혁명으로 폐교된 ‘동3성 강무당’ 자리에 ‘동북강무당’ 간판을 내걸고 생도들을 모집했다. “완벽한 시설을 마련하고, 교관들도 최일류들 중에서 엄선해라. 독일과 미국에도 사람을 보내서 교관들을 모셔와라.”전국에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바오딩군관학교 입시를 앞둔 장쉐량(張學良·장학량)도 동북강무당 포병과에 지원했다. 소식을 들은 장쭤린은 반대했다. “딴 데로 가라. 입학 며칠 만에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내 체면이 깎인다.” 장쉐량이 고집을 부리자 “훈련 받다 죽을지도 모른다”며 허락했다.1기생 졸업식이 다가오자 주위에서 장쭤린에게 축사를 권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연설을 해본 적이 없는 장쭤린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래도 자꾸 권했다. “미래의 골간(骨干)들이라며 직접 길러내신 졸업생들입니다. 자식이나 친조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직접 축하를 해주시는 게 도리입니다.” 장쭤린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건 나도 알지만 연설을 해본 적이 없다. 축사건 뭐건 원고가 있어야 할 게 아니냐. 전쟁판에서만 굴러먹다 보니 머리에 든 게 없어서 만들 재간이 없다.”
국가원수 시절 미군 군사고문.jpg

국가원수 시절 미군 군사고문과 함께한 장쭤린(왼쪽). 1928년 1월 베이징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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