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외성·신성 등 3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내성은 고구려시대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안주성은 995년(성종 14)에 서희(徐熙)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한 것이며, 그 뒤 조선조에 들어와 1607년(선조 40) 개축하였다. 당시 성의 규모는 주위 3.043보, 높이 13척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많이 파괴되어 그 실상을 잘 알 수 없다. 내성은 동서로 긴 형태로 능선과 절벽 및 구릉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성벽의 아래 부분은 장대석으로 기초를 만들었고 그 위에 3~4단을 퇴물림형식으로 쌓아올렸다.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치성은 동·남·북쪽 성벽에 각각 2개소씩 모두 6개가 설치되어 있다. 성문터는 동·남·북의 3면에 있으며, 장대는 서·남·동쪽의 성벽에 설치되어 있는데, 서장대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유명한 백상루가 있다. 이 성 안에 있는 칠성지는 주위가 550m나 되는 인공의 연못으로 안주성 축조 때 함께 조영된 것이다.
이 성은 고려 때는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후금군의 침입을 받자 남이흥(南以興)이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목사 김준(金浚) 등과 함께 격전을 벌이다 무기가 떨어져 성이 함락되자 성에 불을 지르고 불 속에 뛰어들어 순직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