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5-16 16:17
[한국사] 임진왜란때 왜진작에 수군으로 일본군을 이기지 못했나요?
 글쓴이 : 소울스타
조회 : 1,317  

수군은 우라나라가 일본보다 앞선다고 알고있는데 왜란당시 왜애초에 수군이
일본수군을 전멸 시켰으면 육지로 올라오지도 못했을건데 왜그렇게되지 못하
였나요??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북창 18-05-16 16:24
 
옛날에 선전 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기습적으로 상륙하는데 어케 막나요?
그리고...부산은 경상 우수사 원균의 관할이었죠.
그는...해전에선 무조건 도선해서 싸우는 것밖에 모르던 무식한 놈.
왜선 숫자에 쫄아서 판옥선 100척을 스스로 침몰 시켰죠 ㄷㄷ
만약 경상 우수사가 이순신이었으면 님 말씀처럼 되었을 거...
     
촐라롱콘 18-05-16 16:59
 
[[부산은 경상 우수사 원균의 관할이었죠]]
.
.
부산은 경상좌수영 관할이었습니다. 임란 발발 당시 경상좌수사는 박홍이었구요~~~
오늘날 부산의 수영구-수영만 일대가 경상좌수영이 위치했던 곳입니다.

경상우수영은 거제도 대안인 통영에 있었습니다.
멋지게살자 18-05-16 16:29
 
이순신이 워낙 출중해서 그렇지 원균도 멍청한 장수는 아니었던 걸로 알아요. 원균 관련한 TV 다큐들 예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상전이 화포가 핵심이라 좋은 화포기술을 가졌던 우리나라가 유리했고 왜군들은 화포없이 조총 무장하고 근접전으로 달려들었기에 불리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거북선이라는 사기캐릭이 있어서 조총도 소용없고 월선도 못하니 깨박살.
     
Tenchu 18-05-16 16:38
 
겁장이에 멍청이였죠.
     
북창 18-05-16 16:39
 
그거야...그쪽 후손이나 일부 옹호론자들의 얘기겠죠.
완전 멍청했다고 봐야죠. 멍청함 플러스 정치충...
임란 초기에 판옥선 100척을 스스로 수장시킨 거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고,
자기가 통제사가 되면 바로 부산 칠 거라고 선조 부채질해서...이순신 파직의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충...
칠천량이야 뭐...말하면 입아프고요.
     
장자 18-05-16 18:12
 
원균은 멍청하고 비겁한 장수 맞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 너무 신격화 되었다고
상대적으로 원균을 띄우려는 시도
였을 뿐입니다
     
페닐 18-05-17 02:12
 
원균 명장론의 근거는 원균 증손자가쓴 수기가 전부임

원균이 막장이라는 근거사료는
임란 당시로부터 수두룩함.....
뭐꼬이떡밥 18-05-16 16:36
 
원균이가 대마도를 정찰하지 않아서요

대마도에 첩자만 있었어도
아니
규슈에 첩자만 있었어도

바다에서 1차 저지를 했겠죠
Tenchu 18-05-16 16:50
 
원균에겐 최소 73척의 군선이 있었죠. (부임했을때 경상우수영 전력임)
고니시의 1진이 부산동래 급습한거 듣고 바다로 나갔다가 왜선보자마자 놀라서 도주하면서 적 전력조차 파악안하고 그냥 도주하구 군영을 스스로 불태우고 수군도 해산시켜버리고 군선도 자침시켜버리고 달랑 4척가지고 도주했슴.
조선수군의 2/3를 전투 한번도 안하고 그냥 자침시켰단 얘기임.

고니시의 1진 (4월 12일) 가토의 2진 (4월 17일) 구로다 3진 (4월 17일)까지 왜군은 수군엄호 없이 그냥 바다를 건넌거였슴.
저거 보고 그냥 쫄아서 스스로 저짓해버린 희대의 개ㅄ이 원균임.

원균 후손이라면 스스로 ㄱㅊ를 자르고 대를 끊기 바람
     
촐라롱콘 18-05-16 17:28
 
문적상으로는 경상우수영이 보유한 전선-병력이 전라좌수영-우수영을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삼남해안지역의 여러 수영들 가운데 압도적으로 규모가 컸지만.....

임란 발발 당시 여러 수영과 병영 가운데 이순신의 전라좌수영만이 유일하게
문적에 걸맞는 병력과 군비를 보유하고 있었을뿐(이억기의 전라우수영도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일정 규모의 병력과 군비는 갖추고 있었지요)

경상우수영과 경상좌수영은 전국의 여러 병영-수영과 마찬가지로 문적상으로만 존재하는
전선-병력-군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전선을 예로 들자면 수시로 훈련하고 운행하고 정비해야 위급상황시 전력으로 써 먹을 수 있는
것인데... 모르기는 몰라도 임란 발발 당시 상당수의 전선은 하부에 이끼가 잔뜩 끼고, 정비에
소홀하여 썪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선이 한정적이었을 것이고
게다가 경상우수영 관내에 70척 이상에 달하는 판옥선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할 병력과 수부들 또한 군적상에만 존재하는 유령병력들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임란 일어나기 이전에 조정에서도 중대한 오판을 일으켰던 부분이...
다가올 일본군의 침략을 맞아서 해전보다는 육전에 집중하라는 훈령을 각 병영과 수영에
하달했고... 따라서 일본군을 처음 맞은 경상좌수영의 좌수사 박홍 또한 바다에서 대적할
생각을 안하고 부산진성을 비롯한 관할의 진에서 대적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박홍은 그나마도 소홀하여 부산진이 함락되자 그대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지만~~~

원균에 대해서 굳이 일말의 변명을 하자면... 임란 발발 당시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현지지휘관이나 수령들이 휘하병력들에게 제대로 된 후퇴명령이나 해산절차도 없이 잠적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해당고을의 많은 식량과 군비가 그대로 적들이 이용했던 사례가 비일비재
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원균은 전선-군비들을 소각하거나 바다에 유기하여
그나마 적들이 이용할 여지를 줄어들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Tenchu 18-05-17 10:47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전인 옥포해전을보면 이순신이 42척, 이억기가 40척, 원균이 7척가지고 합류했다고 나옴.
수치로보면 임란전에 각 수영에서 보유하던 군선 수치랑 비슷함.
경상좌수영만 문서상 전력을 보유했을까여??
               
촐라롱콘 18-05-17 15:34
 
이억기가 이끄는 전라우수영함대는 6월 초의 당포해전을 전후로 이순신함대와 합류합니다.
참고로 옥포해전은 5월 초, 일본군의 첫 번째 부산상륙은 4월 중순경입니다.

따라서 호남서해안에 수영이 위치하여 전장으로부터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일본군의 침입위협으로부터는 상당히 자유로운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함대는...
당포해전을 전후로 이순신함대에 합류하기까지... 병력,전선,군비를 어느정도는
재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다소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6시내고환 18-05-16 17:13
 
경상도 해군이 지례 겁 먹고 함선을 셀프로 침몰 시키고 도망간게 크죠
이순신 장군의 반만이라도 준비해서 싸워싸면 왜적의 상륙을 반은 넘게 막을수 있었을거에요
실제로 전라 좌수영이 제일 규모가 작았는데도 잘 맞서 싸운거 보면... 경상도 수군이 연합해서 싸웠다면 한양이 그렇게 쉽게 털리지는 않았을겁니다
마구쉬자 18-05-16 19:17
 
원균은 한마디로 후장에 전봇대를 쑤셔넣어도 할말없는 인간.
집정관 18-05-16 19:33
 
- 조선이 대비를 제대로 안 함

- 원균 같은 한심한 인간이 다 말아 먹음

- 일본 수군은 뗏목 타고 온 놈들이 아님

- 일단 일본군이 상륙하면 육지에선 조선군이 힘을 못 씀
에리리리언 18-05-16 19:48
 
정보 부족과 적은 수의 전함이 문제였죠.
조선이나 일본이나 서로 수군 본진이 어디있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일본은 조선 수군 본진을 지상군으로 치고 싶었으나 전라도쪽으로는
지상군 진입이 힘들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위치만 알고 정확한 위치를 몰랐습니다.
조선의 경우는 수세적인 입장이다 보니 제대로 공격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질적으로는 앞서 있었으나 절대적인 수가 적었죠.
그나마 조선 수군의 존재 때문에 일본 상륙 경로가 일부 지역으로 좁혀진 마당인데
(그런데도 지상군은 밀리고 있었으니...) 공격을 갔다가 상륙 루트가 늘어나면???
그리고 일본도 수군의 불리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뭉쳐다녔습니다.
원균 때문에 가뜩이나 적어진 전함으로 각개격파를 해야하는데 일본 수군은 뭉쳐있으니
제대로 싸울 수가 없던 거죠.

원균이 특히 더 욕을 먹는 이유도 원균이 통제사로 부임되었을 때
1. 조선 수군이 한 곳에 뭉쳐 있었서 대규모 한타를 붙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황이었다.
2. 일본 수군도 부산 옆에 대규모로 뭉쳐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괜찮은 상황을 날려버렸기 때문이죠.
(당시 날씨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최상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히스토리2 18-05-16 20:11
 
원균을 위한 변명) 이순신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터지기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나름 전란에 대비할 시간이 넉넉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균은 1592년 1월 고작 임진왜란 시작 3개월 전에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해전에 익숙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나서 원균은 1595년 충청병사(충청도병마절도사)로 옮겨가게 된다. 바다에서 육지로 전장이 바뀐 것이다. 

1596년과 97년 즈음 왜군은 이순신 제거를 위해 이간책을 썼다. 선조를 비롯한 조선 조정은 이간책에 넘어가 이순신에게 일본 수군 본진이 있는 부산을 치라고 명령한다. 이순신은 부산은 왜적이 강성하고 가릴 데도 마땅찮아 쳐들어가면 안 된다면서 거부한다.

이순신은 결국 왕명을 거역한 죄로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선조는 이순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육전에 익숙해져 있었던 원균이 이제는 다시 수전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통제사가 되기 전에는 원균도 선조와 마찬가지로 부산 깊숙이 쳐들어가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제사가 되고 나서 원균은 이순신이 부산으로 진격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과 달리 부산으로 쳐들어가기를 한사코 저어했다.

과정은 이처럼 달랐지만 이순신과 원균 모두 결과는 같았다. 그러자 도원수 권율이 원균을 여러 차례 나무라고 다그쳤을 뿐 아니라 곤장까지 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떠밀리다시피 나가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로 기록되는 칠천량해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스스슥 18-05-17 13:56
 
다른건 몰라도...
 
1. 이순신장군이었다면 곤장을 맞건 사약이 내려오건... 개인의 일신영달과 무관하게, 끝까지 전멸에 가까운 패전을 할 전장으론 나아가지 않았을 거임. 즉, 변명이 될 수 없음. 결국 이순신은 파직되어도 굽히지 않았고, 원균은 곤장 몇대맞고 전멸할 곳으로 나아 갔다는게 차이점.
 
2. 만약 칠천량 해전을 이순신이 지휘(장군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대가 나아간 상태에서 전장으로 부임했다던가..)했더라면 패전을 해도 전멸에 가까운 패전이 되진 않았을 거임. 따라서 원균의 무능력을 변명 할 순 없음.
G스마트SM 18-05-17 03:51
 
개전초기
부산 동래성 함락 직전
앞바다 부산과 대마도 사이 해역에 대한 조선수군의 해상초계.순찰에 공백이 발생해서 초기대응의 골든타임 자체가 없었던게 아닐지?
왜군의 병력집중등 사전징후 포착이라도 미리 성공했다면
해상의 수군이 함포전으로 지연시키고 육상에서는 상륙전 대비 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정도는..
     
Tenchu 18-05-17 10:48
 
박흥은 그점에서 이해라도감. 기습당한셈인거니..
원균은 거제도에 수영이 있던차라 부산동래가 공격당한다는 소식듣고 나가서 왜군선보자마다 도주하고 스스로 군영 태우고 군선들 자침시키고 도주한새끼임.
상식4 18-05-17 16:07
 
전쟁 기미를 조선이 몰랐던 것도 아니고, 준비를 아예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침략 규모(2~5만 정도)를 너무 적게 잡은 면도 있고, 그 마저도 전쟁 준비에 동원하는 것에 민심의 반발이 커서
반란의 기미까지 있어 이마저도 제대로 준비를 못했죠.

이순신의 전투를 보면 일방적 학살이죠. 전투에서 죽은 병사보다 탈영하다 잡혀
모가지 날아간 병사 수가 더 많을 정도로 해전은 조선이 압도적입니다.
원균이 부패하고 무능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순신 아니라도 허수아비를 앉혀놓고 특별난 작전 없이도 부하들 한테 하던대로만 하라고 해도
승률은 70% 이상이었을 겁니다. 이 것도 못 한 건 원균 무능한 건 빼박캔트입니다.
그 마저도 이순신이 잘 훈련시켜 놓은 군대이기 때문입니다만...

원균이 기본도 안 된 해군 장수 였다는 건 기록으로 다 남아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노꾼들의 체력 안배도 상정 안 하고 지쳐서 배가 떠내려가게 하는 돌대가리였어요.
원균은 패배했다기 보다 거의 자,살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조선 수군이 굳이 이순신 장군의 뛰어남이 아니라도 압도적인 전력이었는데 왜 미리 막지 못 했나?
전쟁의 기미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침략 시기까지 아는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맞이했죠.
그리고 조선이 제대로 된 첩보와 정보가 없었던 게 수뇌부들이 일본은 섬이라 수군이 강하고 육군이
약해서 해전 보단 내지로 끌어들여 육전으로 끝장낸다는 좀 얼척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였습니다.

임란 이야기 하면 일본군 찬양에 열을 올리는 게 전문가나 미디어 일반 인터넷에서도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이더군요.
임란이 이순신 장군 하나 때문에 이긴 것도 아니고 육전도 잘했다고 평가해줄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솔직히 당시 조선 해군을 맡았다는 것에서 이미 어드벤티지가 있구요.
원균과 비교돼서 그만큼 더 과대평가 받는 면이 있죠.

당시 조선의 군역을 지는 일반병사들은 솔직히 오래된 평화에 제대로 군사훈련 받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조선초 같은 경우 30만 병력을 모아 놓고 진법 훈련한 기록도 있는데, 이 시기와는 다르다고 봐야죠.
조선이 선천적으로 군사가 약한 유전자라도 있는냥 헛소리가 일반적으로 퍼져있더군요.
지금 예비군 훈련 하는 거 보다 더 개차반이었죠. 말그대로 서류에나 존재하는 병력이고 그 마저도 머릿수도
맞지 않을 정도, 무기와 방어구도 미비한 오합지졸 군대, 반면 일본은 내전을 100년 이상 치루고 지휘관이나 병사나 베테랑이 즐비했죠. 이 차이 때문에 생기는 근접전 기록을 가지고 이상할 정도로 일본군이나 일본 검술 과대평가하는 사람들 보면 좀 이상해 보여요. 객관적 상황을 보지 않고 막연하게 일본 위대해 조선은 하등해 이러고 자빠졌거든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역사에 무지는 커녕 엄청나게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말이죠.

현대에 비유하면 군사기업용병을 한국 예비군 보다 못한 인간들 모아 놓고 전쟁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게 이걸 감안 하고 보면 조선군이 잘 싸운 겁니다.
전체 전투 전적은 조선군이 미세하게 앞서는 우스운 통계가 나오기도 하죠.
실제로 선조가 조선군이 이기고 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이면 왜군은 다 뒤졌어야하는데 왜 이모냥이며 거짓말 한다고 노발대발하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조선군이 승리한 전투 많은 건 맞음...
문제는 규모가 큰 전투는 거의 다 패배하고 규모가 작은 전투에서 승리가 많았습니다.
전쟁 경험의 유무가 어줍잖은 무술실력 같은 게 아니라 대규모 병력 운용능력에서 차이가 확 났던겁니다.

일본군은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경험차를 두고 생각하면 더럽게 싸움 소질 없는 군대였다고도 할 수 있죠.
그렇다고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 보다 개인 전투 능력도 우수했다는 건 아니고...
일본군 무술, 검술이라는 게 판타지가 심하게 꼈다는 거지, 일본도가 대단한 물건인줄 착각을 많이 하는데
그거 지금 우리집 식칼만도 못 함. 일본도나 일본 검술 찬양은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뇌내망상임.

그리고 화약무기, 일본의 조총을 강조하는데, 조선은 이미 박격포가 있었음. 비격진천뢰. 1~2차 진주성 전투보면
조선이 저렇게 허무하게 밀린 게 좀 웃기죠. 2차 진주성 전투 병력비가 조선군 3천, 일본군 약10만 이었음.
보통 공성전시 열배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물론 수성측이 제자리를 굳건하게 사수하는 정예병일 때,
죽은 일본군만 수성병력의 10배인 3만이상 이었음...

조선이 대마도 도주의 충고까지 무시했음, 조선의 창길이가 왜군에 비해 너무 짧다는 것 말이죠. 조선 보병이 밀린 이유 중 창의 길이도 있음. 그러니까 객관적인 피지컬을 생각하면 아무리 조선군의 대부분 병력이 거의 민간인이나 진배없는 사람들을 모아놓았다고 해도 선조가 한양 도성에서 제대로 수성전 하며 화약무기의 장점을 살렸다면 이길 수 있었음. 이거야 결론을 아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전쟁이란 게 기세와 사기의 중요성이 커서 장담은 못하지만, 대부분의 임란 평가에서 일본군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조선을 폄훼하는 게 대부분이다.

라는 나의 생각...
     
국산아몬드 18-05-18 18:10
 
대부분 동의합니다만 조선도 큰 전투에서 많이 이겼어요. 1,2차 진주성전투 행주대첩이 적은 규모가 아니죠. 다만 개전초 6개월간 워낙 심각한 타격을 입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입니다
 
 
Total 16,09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동아시아 게시판 공지사항(2014. 5. 15) (9) 관리B팀 05-16 168794
16094 [중국] 패왕별희(覇王別姬): 역사상 가장 유명한 허위보도 히스토리2 20:42 70
16093 [한국사] 히스토리님 평양성관련 (6) 스파게티 20:05 66
16092 [한국사] 토기에 대해서...진품과 가품은 어떻게 구분을 하는… 히스토리2 19:59 39
16091 [한국사] 고구려 영토와 토욕혼 (10) 남북통일 18:06 207
16090 [기타] 집정수까(cyka))의 논리 요약본 (18) 위구르 17:30 119
16089 [기타] 이게 봐로 증산도군요 (25) 집정관 15:54 341
16088 [한국사] 신라의 요동정벌(오골성) ......고구려 평양 요동설 (12) 히스토리2 07:35 759
16087 [기타] 모용선비의 나라 토욕혼 (3) 히스토리2 06:45 333
16086 [한국사] 고구려 실제 강역에 대한 논의 (22) 감방친구 00:08 603
16085 [기타] 한민족 무대 반도 아닌 대륙史… (5) 관심병자 05-22 536
16084 [기타] 낚시 후기 (14) 위구르 05-22 385
16083 [한국사] 환단고기 역주본에 나오는 고구려 영토 이해 (40) 위구르 05-22 815
16082 [한국사] 노블리스 오블리제 ---경주 최부자댁 (4) 히스토리2 05-21 592
16081 [기타] 임팔, 일본군의 무덤이 되다… (4) 관심병자 05-21 1473
16080 [한국사] 보우마스터 - 살리타를 죽인 김윤후 (3) 히스토리2 05-21 942
16079 [한국사] 소드 마스터 '척준경' (3) 히스토리2 05-21 1243
16078 [기타] 당나라 곤룡포 탈취사건 (3) 응룡 05-21 734
16077 [일본] 임팔작전과 찬드라 보스 그리고 도조 히데키 (1) 히스토리2 05-20 566
16076 [일본] 임팔작전의 무다구치 중장의 명언 (4) 히스토리2 05-20 655
16075 [일본] 임팔작전과 '무다구치 렌야' 중장 (2) 히스토리2 05-20 575
16074 [베트남] 성직자 같은 혁명가 '호치민' (1) 히스토리2 05-19 565
16073 [중국] 한나라의 '진평'에 대한 의견 히스토리2 05-19 378
16072 [한국사] 전환시대의 지성인 리영희 그리고 사모함과 비판 히스토리2 05-19 159
16071 [한국사] 열정과 냉철의 시대를 살다간 서재필, 혹은 필립 제… 히스토리2 05-19 125
16070 [중국] 중국 최고의 악녀인가 재평가가 필요한가 ---여태후 히스토리2 05-19 428
16069 [중국] 송나라 시기 대리국에 대하여 (3) 히스토리2 05-19 445
16068 [중국] 중국의 당나라 시기 남조에 대하여 히스토리2 05-19 332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