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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7 16:15
[한국사] 조선의 약화 과정(펌)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047  

옛날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있어 옛날을 떠올리라면 십중팔구 조선시대를 떠올린다. 선비들은 큰 갓 쓰고 길을 다니고 있고, 잠방이 입은 농부들이 땅을 일구며, 파란 옷을 입은 도령들이 서당에 가는 광경을 떠올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퇴계의 위대한 주리론과 율곡의 주기론이 나왔고,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심오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후일 김집과 송시열등에 의하여 예학(禮學)의 집대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일본의 도쿠가와(德川)막부가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이는 등, 외국에 미친 문화적 영향도 상당하였다고 한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에 사대하고 그 제후국을 자처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조선을 두고 동방예의지국이라 하고 소중화(小中華)라 하며 무엇보다도 유교국가(Confucian Nation)라 한다.

 

그러나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추상적이고 이상화(Idealized)된 모습이다. 일시적으로 조선이 이러했다 하더라도 이는 17세기이후 교조화된 성리학이 자리잡은 이후의 조선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을 유교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통해서 보기 때문에 조선왕조를 정형화된 이미지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국가는 500년을 존속하였고 이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500년이란 기간이 얼른 와닿지 않는다면, 이를 세계사에 대입을 해보자. 조선이 하나의 왕조로서 역사를 이어간 시기(1392-1910)에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막부가 망하고 전국시대가 전개되었고, 이를 토요토미와 도쿠가와가 통일하고 명치유신을 거쳐 근대국가를 이루었다. 유럽은 100년 전쟁을 마치고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을 거치고 바다로 뛰어나가 식민지를 건설하고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1차대전을 불과 4년을 앞두고 있던 시기이다. 일본과 유럽이 이런 변화를 거쳤는데 조선에서는 변화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선이 하나의 이미지로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선 초기를 풍미하였던 여러 명신(名臣)들과 책사(策士)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선의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의 경우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불교를 비판하기 위하여 불씨잡변을 저술하기는 하였지만, 건국초기의 혼란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재상의 형범(型範)으로 옛날 제()나라의 관중(管仲)을 꼽았다. 관중이 국가이해를 위해서는 권모술수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인 것을 감안하면, 정도전의 정치는 성리학적 이상이 아닌 현실주의에 바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명나라의 지나친 요구에 맞서 요동정벌을 계획하는 등 중국을 상국으로 떠받드는 인식은 없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관점에서는 함부로 권력을 휘두른 권신쯤으로 보였을 것이지만, 조선 초기에 필요한 인물은 고루한 형식주의자보다는 융통성있는 현실주의자였다.

 

정도전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로서 태종때의 정책을 주도하였던 변계량도 이런 같은 경향을 보인다. 비록 유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위인 문형(文衡)이 된 그였으나, 그가 행한 정책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문사(文士)와는 거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려말 황산(荒山)의 싸움에서 궤멸되었던 왜구들이 다시 조선의 해안을 침범하기 시작하자 태종에게 건의하여 왜구들의 소굴인 대마도(對馬島) 정벌을 성사시킨다. 아울러 그는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숭앙하였고 사주(四柱)등의 잡학에 능하였다. 그가 살았던 조선은 건국기였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농업, 의학, 기술, 역법, 군사등 국가운영에 필요한 구체적 분야의 발전이 필요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변계량의 잡학다식(雜學多識)함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변계량은 아울러 왕권중심주의자였다. 비록 서양식의 절대왕정을 지향한 것은 아니지만 정책결정에 있어 최종적인 권한은 군왕에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건국기 같은 혼란스런 시기에는 전시수상격인 재상이 권력을 틀어쥐고 군왕을 보좌하여야 하지만, 건국기가 지난 안정기에는 여러 명의 신하들이 정책에 골몰하는 것보다는 군왕이 신속하게 결정을 하는 체제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실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왕도 하나의 사대부로 인식한 조선 후기의 유자(儒者)들과는 상당히 다른 인식인 것이다.

 

군왕적 정치와 현실주의는 세종-세조때의 양성지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게 표현된다. 양성지는 왕조실록에 기록된 것만 해도 300번 이상의 정책을 건의했다. 특히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에는 세조의 정책적 중추로서 활동하였다. 양성지에게서 주목할 점은 그의 정책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성지가 바란 것은 조선이 태평성대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전이나 변계량 같은 인물의 현실주의는 양성지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양성지는 내부정치의 효율적인 운영을 뛰어넘어 보다 국외의 위협에 맞서 나라의 국력을 적극적으로 신장시킬 것을 주장한다. 세종 32년에 건의한 비변십책(備邊十策: Ten Policies for the Defense of the Frontier)과 세조 11년의 군정십책(軍政十策: Ten Policies on Military Planning)은 군사정책에 집중이 되어있는데, 기실은 군사를 통한 행정의 효율화와 국력의 신장을 꾀하는 것이다. 아울러 양성지의 인식은 조선에만 머물러 있지않고 중국/일본/서역에 까지 미쳐 그가 우물안 개구리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사조가 바뀌어 지기 시작한 것은 성종조를 전후한 사림(士林)의 등장이다. 사림은 사상적으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조선왕조에 반발하여 협력하기를 거부한 야은 길재(吉再)의 학맥이다. 지방의 중소지주이자 학인(學人)으로 있던 이들은 유학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유교의 경전에 담긴 이념을 중시하였고, 철학적인 연구에 매진하였다. 중앙정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유교적 이념에 기반하여 농촌의 사회를 재편하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성리학은 엘리트적 학문으로 머물러 있었을 뿐, 일상사는 고래의 습속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었다. 아울러 수백년동안 민간의 인식을 지배한 불교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 민중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양반관리들과 심지어는 군왕들까지도 불교를 숭앙하고 있었다. 이에 사림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농촌사회라도 유교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성향의 대표적인 인물이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인데, 그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모든 의식과 가정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주자가례를 철저히 좇았다. 아울러 향사례와 향음주례 같은 의식을 통하여 향촌의 선비들을 결집시키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유향소의 부활을 주장한다. 이를 통하여 탐관오리의 횡포와 미신적 행위를 근절시킨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의 힘을 약화시키고, 양반중소지주 계급이 향촌생활을 주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에 사림들은 향촌에 단단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진출 초기에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충돌하면서 사화(士禍)라는 된서리를 맞기도 하였으나, 향교와 서원(書院)을 통하여 향촌에 거대한 인재군()을 형성한 사림세력은 계속 재기할 수 있었고, 결국 조선의 정계를 장악하기에 이른다.

 

조선 초기의 왕성하고도 진취적인 정치사조는 서서히 퇴장하고 있었고 결국 경직된 유교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되면서 조선은 약해져 갔던 것이다.


출처 http://damulism.egloos.com/228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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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8-05-17 16:18
 
그리고 이들의 퍼트린 독기는 아직도 오늘날 까지 내려져 오고 있으며 한국의 모든 인간관계를 망치는 아주 사악한 맹독으로써 지금도 계속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젊음 1020세대들이라도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만민평등 사상이란 약으로 이 독을 해독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배시러 18-05-17 16:22
 
조선 초기의 왕성하고도 진취적인 정치사조는 서서히 퇴장하고 있었고 결국 경직된 유교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되면서 조선은 약해져 갔던 것이다.
===> 주류 사학이 망가지는 패턴일지도... 정치가 아닌 학문을 하라
     
Attender 18-05-17 16:24
 
어........짱깨놈들의 동북공정과 쪽빠리 놈들의 임나일본부 및 독도역사 왜곡을 보면 도배시러 님의 말씀이 아주 피부에 와닿는군요......ㅠㅠ
히스토리2 18-05-17 16:23
 
고이왕님의 글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사실 임진왜란만 잘 수습했어도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듯 싶은데, 아쉽습니다...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Attender 18-05-17 16:24
 
ㄹㅇ, 임진왜란 직후, 이씨조선은 사실상 망한왕조
          
mymiky 18-05-17 16:31
 
왜란으로, 이씨조선이 사실상 망한 왕조라는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임진전란후에,
폐허의 이미지가 대중들 머릿속에 이미지화 되어 있어서 그렇지.

왜란 와중에도, 조선의 행정 시스템은 잘 돌아갔거든요.
왜란 수습도 못 하지 않았어요.

왜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못 했으면, 조선이 그후 또 어떻게 지속될수 있었겠습니까? -.-
               
Attender 18-05-17 16:38
 
Mymiky님 // 그렇습니다, MYmiky님께서 말씀하신 “폐허의 이미지” 를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ㅠㅠ
mymiky 18-05-17 16:29
 
원래, 왕조 초기는 강건해도, 뒤로 시간이 흐를수록 모순이 쌓이고
고인물이 썩고 그런 것입니다.

사림이 처음 나왔을때,
훈구파들도 개국 100년이 지나고 서서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면서
썩었기에,

사림이 개혁한다고 나와서 결국엔 훈구파들 몰아내고,
자기들이 권력을 잡은 거니까요.

사림파도 그 안에서 스펙트럼이 넓어서, 딱 뭐다-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조선말기로 보자면,

숙종-영정조 이래 왕권강화가 순조때와서 무너집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순조가 신하들을 제어하지 못 했고,

본인 성격마저, 카리스마 있던 아버지보단,
조용하고 얌전한 엄마쪽을 닮음.

그와중에, 후계자들도 비실비실 거리고

왕조말기가 되면, 아들 하나 얻는것도 굉장히 힘이 듬..

이건 조선만 그런게 아니라, 청나라, 에도막부도 비슷함.

초기 왕들은 자식들이 번창했는데, 후대로 갈수록 자식 농사가 어려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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