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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8 07:12
[한국사] 이지함의 중상주의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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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하면 토정비결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양반 출신으로 당시 조선사회에서 천시하던 상업활동에 직접 뛰어든 인물이었다. 천시하던 상업을 그것도 양반의 신분으로 뛰어든 이지함, 그는 어떤 인물일까?
 
최근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지함을 중상주의 학파의 선구자라 한다. 조선최초로 중상주의를 통해 부국을 지향한 이지함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이지함이 몸소 상인이 되어 막대한 재물을 축적했으며 백성에게 생업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이지함은 손수 상인이 되어 백성을 가르치고 맨손으로 생업에 힘써 몇 년안에 수 만석에 이르는 곡식을 쌓았다 그러나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준 다음 소매를 펄럭이며 떠나가버렸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 들어가 박을 심었는데 그 열매가 수만 개나 되었다. 그것을 갈라 바가지를 만들어 곡식을 사들였는데 거의 1,000석에 이르렀다. 이 곡식을 한강 변의 마포로 운송했다.
 
 이지함은 육지는 물론 바다와 강을 자유롭게 이용한 상업활동을 펼쳤다. 해상과 수상교통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상술이었다. 그가 평생 거처로 삼았던 지역이 뱃길을 활용하기 쉬운 상품 유통의 중심지였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해로와 수로를 이용한 상업활동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1778년 박제가는 조선이 수레를 이용하는 이로움을 포기하고 배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오로지 이지함만이 상선을 이용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이 일찍이 외국의 상선 여러 척과 통상하여 전라도의 가난을 구제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분의 식견은 탁월하면서도 원대했다고 하겠다. 북학의(강남 절강의 상선들과 통상해야 한다는 의론)
 
이지함은 자신의 탁월한 상재(商材)와 뛰어난 상술을 축재에 쓰지 않고 백성의 가난을 구제하는 일에 활용했다. 그는 가난을 구제할 때도 반드시 일정한 생산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친 다음 생산한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도록 했다.

이지함이 살았던 조선의 16세기는 이제 막 지방 장시와 시장경제가 번성하면서 민간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와 농본상말(農本商末)의 국가정책 탓에 상업과 상인은 여전히 천대받고 멸시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지함은 나라와 백성과 개인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면 마땅히 상업을 중시해야 한다고 믿고 몸소 상인이 되어 막대한 재물을 축적하는 상재와 상술을 보여주었다. 그는 수백 년을 앞서 상선과 뱃길을 이용한 상업방식과 공장제 수공업이라는 경영방식을 조선사회에 도입한 ‘최초의 양반 사대부 출신 상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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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지함 사상 하나, 상공업을 발전시켜 농업을 보완하다

조선은 개국 때부터 농업을 근본으로, 상공업을 말업(末業)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국시로 삼았다.  그러나 16세기에 과전법 체제가 붕괴되고, 지주-소작인 관계와 대농장 경영이 크게 확산되면서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동이 시작되었다. 자영농민층과 일부 중소 양반계층이 몰락한 반면 양반관료와 대지주 등은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토지에서 이탈하는 농민들이 나타났다. 부의 집중에 따른 사치풍조가 만연하면서 민간에서 상공업이 발달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당시 조정관료와 유학자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가 농본상말의 경제시스템과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상공업을 억제하는 것을 국가 정책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지함은 당시 주류의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농업이 아닌 상공업과 어업, 광업에서 나오는 재물 또한 나라와 백성에게 이로움을 주고 부유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본업과 말업의 어느 한 쪽도 폐지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말업으로 본업을 보완해야 한다’라는 이른바 ‘본말상보론’을 주창했던 것이다.
 이지함은 자신의 경세지학, 즉 부국안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국부의 창출과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국부를 창출하고 확대하는 면에서 ‘농본상말’의 경제체제와 ‘사농공상’의 사회질서는 근본적인 장애였다. 상공업을 억제하고 상인과 수공업 장인을 천시하는 탓에 나라와 백성의 삶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지함은 이런 사회 경제적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상공업으로 농업을 보완하여 나라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본말상보론을 내놓았다.
 
전라도 만경현에 양초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나라와 개인이 소유하지 않은 섬입니다.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고기를 잡아 팔아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황해도 풍천부 근방의 초도에 염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섬 역시 나라와 개인이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이 섬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소금을 구워 팔아 곡식을 사들인다면 몇 년 안에 수천 섬의 곡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토정집』 「포천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올린 상소문」
 
위에서 보듯 이지함은 자신의 경제철학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옮기는 면에서 탁월한 혜안을 보여주었다. 이지함은 국부를 축적하기 위해 나라와 임금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경제 정책, 즉 자원 경영, 인재 경영, 공동체 경영을 주창했다. 이것이 ‘삼대부고론(三大府庫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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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지함 사상 둘, 세 가지 정책으로 경제를 발전시킨다

삼대부고론은 이지함이 독창적으로 주장한 ‘조선의 국부론’이다  그는 임금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에는 상, 중, 하의 세 가지 대책이 있다고 하였다. 

a)상책은 도덕을 간직하는 창고인 인심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임금이 법칙을 세운 다음 창고를 열어 아낌없이 베푼다면 백성 역시 자신의 창고를 열어 임금이 세운 법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면 백성이 재물을 더불어 모으고 나누어 온 나라 백성이 배불리 먹고 풍요롭게 사는 ‘대동 세상’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경영을 주장한 것이다. 이지함의 경제 철학은 특정 사회 계층의 희생을 감수하는 일방적 경제성장이 아닌 더불어 발전하고 함께 잘사는 균등한 경제 성장이었다.

b)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인재경영을 중책이라고 보았다. 아무리 좋은 대책을 세워도 지도자가 어질지 못하고 보좌하는 사람들이 현명하지 못하면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대해를 이루듯 어질고 현명한 인재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인재지부고를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함의 주장과 행적을 통해 볼 때 인재의 창고를 활짝 연다는 의미는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뛰어넘고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발탁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치한다는 뜻이었다.

c)마지막으로 부국안민을 위한 하책은 육지와 바다를 이용해 온갖 재물을 생산하는 창고를 여는 것이다. 이지함은 당대 현실에서 도덕지부고(상책), 인재지부고(중책)은 열기 어렵더라도 하책은 적극적으로 실시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육지와 바다는 온갖 재물을 생산하고 간직하는 창고이기 때문에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이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진실로 이 창고를 잘 개발할 수 있다면 백성에게 돌아가는 이로움이 끝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상공업, 어업, 광업이 사사로이 재물을 탐하는 일이라 해도 마땅히 취할 것은 취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지함은 재물을 탐하고 사사로이 이익을 취하는 욕망을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부국안민에 도움이 된다면 하책일지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주장은 부를 축적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의 단초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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