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年戊戌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0羅城加太羅谷男女三百餘人自此以來朝貢0事」 廣開土王碑文 永樂八年條 -광개토대왕릉비
번역-8년은 무술년이다. 정예부대를 백신(식신)과 토곡에 보내어 동정을 살피고 막0라성과 가태라곡을 쉽게 차지하여 그곳의 남녀 300여명을 포로로 잡아왔다. 그들은 이때부터 조공을 바쳐오게 되었다.
여기서 백신 혹은 식신은 '숙신'을 의미합니다.
몇몇 분들은 이걸 그대로 '토욕혼'으로 해석하여 고구려가 감숙성을 공격하였다고 주장하지만
1)토욕혼은 당시 국호를 바꾼 상태였음.
2)토욕혼을 치기 전에 여러 나라들이 있는데, 이들이 길을 열어주었나? 아니면 고구려가 이들도 전부
굴복시킨 것인가?
3)고구려 입장에서 감숙성까지 갔다는 것은 대단한 원정인데, 정작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에서는
이를 크게 중요한 것으로 다루지도 않을 뿐더러 패려 정벌처럼 장거리 원정마냥 묘사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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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의 이러한 기록은 고구려가 만주와 연해주에 살고 있던 부족을 모두 통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