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무역이 한시 제한된 신라인들이 발해 사신 인 척하고 다니고 발해인과 신라인 접촉했던 태재부 관리들이 한동안 이들이 발해인인지 신라인지 혼란스러워함...만약 발해가 말갈인이고 혹은 발해의 전신인 고구려가 한국인과 다른 종족이었다면 일본당시 관리들이 혼동할 이유가 없습니다....따라서 발해인은 한국인 그 자체라고 보면 됩니다
구당서에 말갈추장 대조영은 고려의 별종이라 써놓았죠 말갈과 고구려를 종종 분류하긴 했지만 같은 고구려 소속 맞습니다. 백제가 망하고 그 땅을 말갈과 신라가 나눠가졌다고 적어서 고구려를 말갈로 표기하기도 했구요
얼마전 여기 동아게에 흑수말갈이 고려에게 보낸 사신들 이름을보니 고씨가 많더라구요
고구려 땅과 발해 땅의 위치가 대동소이한데 (연해주 지역은 제외하고라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가 갑자기 확 바뀔 수가 있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같지도 않은 소리.
어디서 그 많은 말갈족이 갑자기 들어옴?
고구려 멸망후 발해가 생기기까지 고작 30년밖에 안 걸렸음.
당연히 고구려 유민들이 다 되돌아오기 딱 좋고 그들의 언어는 당연히 ..
[[신라어와 발해어가 유사했다는 증거 중 하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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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 내용을 보면 발해인을 사칭인 신라인들과 일본관리가 글을 통해 문답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그것만 가지고는 신라어와 발해어가 유사했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발해와 일본이 서로 국교를 맺고 교류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양국이 동해를 사이에 두고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뱃길 또한 상당히 위험했기 때문에....
(발해사신일행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중간에 조난당하여, 일본 북방의 아이누족의 영역으로 표류해들어가
살해당하거나 약탈당하는 경우도 여러차례 일어났습니다.)
공식적인 사행횟수를 기준으로 보자면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10년에 1번꼴로
상당히 뜸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신라 시기에는 신라와 일본의 교류 또한 발해-일본관계에 비해서도 뜸할 만큼
미미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신라상인이 일본에 가서 신라왕자-신라사절을 사칭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사기사건이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수도 또는 발해사신들이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항구를 제외한다면...
일본의 여타 해안지역 포구에서 발해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이들도 거의 전무했을 것이고,
더구나 신라어와 발해어를 구별가능할 정도로 식별할 수 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전무했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말갈은 여진족의 이전 이름이
아니죠.
그냥 만주 지역의 고구려에 복속한 이민족들의
통칭이죠.
말갈에는 7개 민족 집단이 있는데 그중 흑수(=흑룡강)
말갈이 발해 멸망후 거란의 지배하에 세력화된게
여진족이죠.
흑수말갈은 발해와 사이가 않좋았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복속되기는 하지만요.
대조영은 속말말갈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속말말갈이나
백산말갈은 예맥계/부여계로 애초에 한민족이 아니라고
말할수 없죠.
속말말갈이나 백산말갈이외에도 흑수말갈을 제외한
나머지 말갈 4부 역시 고구려, 발해에 잘 적응하고
살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