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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6 13:46
[한국사] 백제와 고구려 관계의 미스테리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3,135  

4 세기 가량 외교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삼국사기 교차 분석을 제 1근거로
한서~수서 지리지 교차 분석을 제 2근거로
하여

백제가 소서노 때에 현 요동반도 남부에서 북쪽으로 고구려, 동쪽으로 낙랑국과 경계하여 최초 건국하였다가

그 후에 거점을 다각화 하며
1국 2체제 형태로 서한반도와 요서로 본거지를 나누어 발전하였다고 추정하였습니다만

고구려와 백제가 근 4세기 가량 직접적 교류가 없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입니다

하여 백제가 사실은 3~4 세기까지는 고구려에 속하여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부가하였던 것이죠

이것은 이곳에서 활동하다 활동을 접은 한 재야사학자 분의 '진왕체제론'과 오버랩되어서 우리 역사 탐문자들에게 시야의 혁신적 확장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도배시러님이 삼한과 중국계 왕조 사이의 교류사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계신데 이것도 겹치는 부분이고요

또 이곳 유저 가운데 고고학 전공하시는 현직 연구자(박사과정) 분이 댓글 대화에서 힌트를 주신
ㅡ 고구려사에 있어서 내분과 이동

이것도 백제/고구려/신라사에 있어서 추적해 볼 가치가 있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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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5-26 13:52
   
감방친구 18-05-26 13:59
   
고구려와 신라의 직접 접촉은 3세기입니다
동천왕이 245에 신라를 침략한 후 화친 관계를 맺죠
그리고 4세기 말인 고국양왕 때, 392에 신라가 볼모를 보내어 고구려 천하의 지배체제 속에 몸을 의탁하죠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5179&sca=&sfl=mb_id%2C1&stx=cellmate&page=30
감방친구 18-05-26 14:08
   
감방친구 18-05-26 14:13
   
감방친구 18-05-26 14:19
   
후한서는 5세기 중엽,
삼국지 위서는 4세기 말에 작성됨

낙양 기준
구당서를 보면 영주까지 근 3,000리인데
후한서 요서군은 3,300리, 요동군은 3,600리, 현도군은 4,000리, 낙랑군은 5,000리

낙랑군 치소를 현 평양으로 보면 요동군은 현 요ㆍ심이 아님
요양과 평양은 전근대 리수로 1,000여 리

즉 후한서의 거리 기록은
현 평양을 낙랑군으로 보는 통설을 수용하고 보더라도
과장되었다는 추론이 가능
감방친구 18-05-26 14:27
   
그런데 고구려 수도는 장안에서 5,100리, 백제 수도는 6,200여 리

백제 수도와 고구려 수도는 1,000여리

 참고로 장안~낙양 거리 차는 800여 리

도배시러님 게시글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5857&sca=&sfl=mb_id%2C1&stx=likone&page=4
     
감방친구 18-05-26 14:31
   
리수를
낙양이 아니라 장안으로 보면
(괄호 안이 장안 기준)

낙양 기준
구당서를 보면 영주까지 근 3,000리(3,800)인데
후한서 요서군은 3,300리(4,100), 요동군은 3,600(4,400)리, 현도군은 4,000리(4,800), 낙랑군은 5,000(5,800)리
     
감방친구 18-05-26 14:34
   
'현 평양=낙랑군 치소=고구려 수도 평양'이라는 통설을 따를 때에

장안에서
1) 낙랑군 5,800리
2) 고구려 수도 5,100리
3) 백제 수도 6,200리
     
감방친구 18-05-26 14:37
   
독사방여기요 (17세기) 기준

현 조양시에서 현 요양시까지 700리
현 요양시에서 압록강까지 540리

조선 시대 연행길 기준

한양에서 압록강 의주까지 1,000여 리
압록강 의주에서 북경까지 2,100여 리
     
감방친구 18-05-26 14:40
   
구당서 기준

장안에서 현 북경 (탁군)까지 2,400리
     
감방친구 18-05-26 14:41
   
현 평양에서 압록강까지 전근대 리수 기준 500여 리
     
감방친구 18-05-26 14:44
   
장안~북경 2400(구당서) + 북경~의주 2100(조선 연행길) + 의주~현 평양 500(전근대 사서, 연행길) = 5,000 리

5,000리와 5,800리

전혀 맞지 않음
     
감방친구 18-05-26 14:47
   
<구당서>

장안~요동 (학계 현 요양시 비정) 4,400리

<명ㆍ청 시대 사서>

현 요양~현 압록강 540리

<구당서>

장안~고구려 수도 5,100리

<명ㆍ청 시대 사서&조선 연행길>

현 평양~현 압록강 근 500리

역시 전혀 맞지 않음
     
감방친구 18-05-26 14:50
   
즉 '현 평양=낙랑군 치소=고구려 수도 평양'이라는 현 학계 통설은 사서 기록 교차 분석 시 전혀 성립할 수 없음
남북통일 18-05-26 14:53
   
아마 근초고왕 이전까지는 사실상 백제는 고구려의 보호를 받는
번국 혹은 속국이거나 반독립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제-신라 관계도 초기에 신라가 백제의 번국,속국,반독립국 정도 되었겠지요
     
감방친구 18-05-26 14:55
   
이 얘기가 맞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하셨던 한 재야사학자의 '진왕체제론'을 제가 계속 언급하고 또 상기하는 이유죠
도배시러 18-05-26 15:17
   
백제-고구려 미스테리는 한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게다가 고구려 사람을 대거 차출하여 나라를 만들었는데...

고구려-백제의 축성 방식이나 생활용품의 차이가 갈라진 시점이 언제인가 ?
고고학이 백제의 흔적을 고구려 흔적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닌가 ?
     
도배시러 18-05-26 15:25
   
마한의 54개 소국은 동일한 문화를 공유했는가 ?
북부 마한, 남부 마한이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면... 북부 마한을 백제라고 오해해도 되는가 ?
도배시러 18-05-26 15:40
   
그러구보니 371년 백제의 고구려 평양성 공격 이전까지 고구려-백제의 군사충돌은 기록이 없었네요.
말갈의 백제 공격 기록만 371년 이전에 가끔 기록됨.
백제 건국후 371년까지 패수를 사이에 두고, 가뭄과 기아로 백제민이 고구려로 망명한 기록정도...
.
백제-고구려 군사충돌은 없었으나 백제인의 일방적인 고구려 망명 기록 존재
     
감방친구 18-05-26 15:59
   
낙랑군 문제는 일단 정인성 교수 견해대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네요
Attender 18-05-26 18:16
   
오오오......!
이제는 수수께끼에 베일에 쌓인 백제의 연구에도 도전하시는군요......!!!!!

감방친구님의 발표를 언제나 두근두근 기대하는 1인 입니다.....!!!!!
꼬마러브 18-05-26 19:17
   
백제의 위치를 경기도로 보고

고구려와 가운데에 낙랑국에 의해 막혀있었다고 생각하면

쉽게 풀리지 않을까요?
     
촐라롱콘 18-05-26 19:43
   
꼬마러브님의 댓글이 가장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지요!

낙랑군=낙랑국이 아니라고 하시면 개인적으로는 비록 동의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3세기까지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는 낙랑-대방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도배시러 18-05-26 20:15
   
백제인이 가뭄과 기아로 살고자 피난을 간곳은 낙랑이 아니라 고구려

온조왕 37년(서기 19) 봄 3월, 달걀만한 우박이 떨어져 새들이 맞아 죽었다.
여름 4월, 가뭄이 들었는데, 6월이 되어서야 비가 왔다. 한수의 동북 마을에 흉년이 들어 민가 1천여 호가 고구려로 도망가니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조 온조왕 [始祖溫祚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관심병자 18-05-26 23:15
   
우리 고대국가에 대한 관점에서 중원식 국가, 유럽식 국가, 제국주의 시대의 국가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성격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것들을 그대로 우리 고대국가에 대입할수가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삼국유사에 마한 72국 이라고 했습니다.
72국이면 왕이 72명 이었다는 얘기인가?
중원기록에 황제와 싸웠던 구려의 치우에게 72명의 형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고대국가는 중세 유럽이나 중원처럼 중앙집권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공동체적인 성격.
연맹체적인 성격의 국가였다는것으로 봐야할듯 합니다.
이는 부여 5가, 고구려 5부, 신라 6촌, 백제 8족 이라는 기록에서도 엿볼수 있죠.
중앙,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야만 강한 국가인가?
자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한창 연구될 시기인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런것들이 그럴듯한말이었을지 모르죠.
하지만 철기로 인해서 왕권이 강화되 고대국가가 출현했다는건,
이집트, 마야 같은 국가들에 대한 연구가 되면서 맞지 않는것이고,
위 가설은 당시 강대국들인 유럽 중심의 시각일 뿐이었죠.
위의 중앙집권에 관한 반대의 예로 현재의 미국과 EU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하지만 계속 초강대국이고,
EU도 연합안에 각각의 정부가 있지만 군사, 경제 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다른 정부를 갖고 있지만, 같은 세력이 될수 있다는것이죠.
     
감방친구 18-05-26 23:28
   
72국의 그 국이라는 게 과연 나라를 의미하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것이죠

國이라는 거 자체가 본래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땅 ㅡ 지역 ㅡ 나라

땅이라는 뜻에서 나라를 뜻하고 지역/지방을 뜻하는 말이 파생돼 나옵니다
감방친구 18-05-26 23:43
   
4세기 진나라 때는 이미 낙랑군이 지금의 진황도 일대로 교치되었다는 것을 태강 지리지, 진서 지리지, 수서, 당서, 통전, 자치통감 등 여러 사서의 교차 분석을 통하여 수차례 고찰한 바 있습니다

또 태강 지리지는 태강이라는 연호만 쓰고 있을 뿐 진서와 실상 동시대 지리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도 이미 이곳에서 따졌고요

위나라가 호동이교위를 설치하고 진나라가 그것을 잇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요동, 낙랑군 등 군 지역을 군국, 즉 반자치 성격의 소국으로 개편한 것입니다

낙랑을 중심으로 보면
진나라 때 진황도 일대로 교치됐다가
북위 때는 보정시로 교치됩니다

즉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있던 3세기 낙랑군, 대방군의 군과 국, 태수와 왕으로 혼용되는 것들은 동이교위 군국인 것이죠
     
감방친구 18-05-26 23:56
   


3세기) 현 조양/의무려산 일대
4세기) 현 진황도 일대
5세기) 현 보정시
     
삼바 18-05-27 23:54
   
/////////낙랑을 중심으로 보면
진나라 때 진황도 일대로 교치됐다가
북위 때는 보정시로 교치됩니다///////////

진나라는 낙랑군을 진황도시 일대로 교치한 적이 없습니다.
북위가 432년 부터 요서지역 갈석산 인근에 낙랑군을 순차적으로 교치한것입니다.
만약 진나라가 진황도로 교치하였다면, 313년 고구려가 낙랑군 주민을 잡아 올수 없었을것입니다.
또 모용선비의 대극성이 대릉하 또는 소능하 유역이라면 그런일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낙랑군은 원래 모용외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요서군 지역에 낙랑군의 흔적이 있는 것은 위서 지형지이며. 요서군에 대방군의 속현인 함자현이 속해있고,  옛 요서군 비여현 계에 북평군 조선현이 설치되어 있으며, 후대의 가사가 삽입되었다고 여겨지는 태강지리지에도 갈석산 수성현이 나옵니다.
이로보아 낙랑군 교치는 북위와 북연의 전쟁 결과의 하나로서, 북위가 실효지배를 하지못한 낙랑군 대방군 요동군 등을 옛요서군 지역에 432년 부터 순차적으로 교치하였다가,
효창(孝昌525.6~528.1) 년간에 영주(營州)가 함몰되자, 남영주를 영희(永熙532年十二月—534年十二月) 2년에  보정시 인근에 만들어 창려군 낙랑군 대방군 영구군 요동군 건덕군을 또다시 설치한 것입니다.
뉴딩턴 18-08-17 10:32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고구려계 돌무지무덤이 나와는데 그게 고구려 유민이 남하했다고 증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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