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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13 17:28
[중국] 6·25 남침 선봉은 조선족 부대(모택동의 팔로군)
 글쓴이 : 봉달이
조회 : 6,737  


“나는 팔로군(八路軍)입니다”
 
  1950년 6월25일, 인민군 제6사단 제15연대가 개성(開城) 송악산을 넘어 개성시내에 진입한 시간은 대충 새벽 4시30분에서 40분경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18세였고 개성 송도(松都) 중학교 학생이었다.
 
  송악산 기슭에 있던 기숙사엔 북한에서 월남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송악산 기슭엔 아직도 새벽의 어둠이 짓게 깔려 있었다. 새벽은 언제나 거룩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 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고요하고 성스러운 새벽이었다.
 
  기숙사 식당에서 느닷없이 뛰어내려온 학생의 전갈은 기숙사 주변에 국군이 쫙 깔렸다는 숨넘어가는 소식이다. 인민군을 국군으로 잘못 본 것이다. 학생들은 앞 다투어 본교 지하실로 대피했고 잠시 후 지하실 창문으로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비친 물체는 포복자세로 교정을 뒤덮은 인민군들이었다. 이때가 새벽 4시40분경이 아닌가 싶다.
 
  인민군이 개성시내에 진입하면서 철도경찰과 약간의 전투를 벌인 것 외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인민군은 개성을 점령했고, 날이 밝으면서 학생들은 모두 등교하라는 하교 측의 지시가 시내에 전달됐다.

학생들은 인민군 환영대회에 참가했다. 거기서 학생들과 인민군 사이에 좌담회가 열렸다. 개성 시내 한복판에 10여 명씩 모여앉아 인민군 장교와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앉은 자리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고급장교가 왔다. 얼굴엔 구레나릇 수염이 시커먼 전형적인 군인이었다. 틀림없는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을 연대장이라고 소개하며 “나는 八路軍(팔로군)입니다. 우리가 개성 시내에 들어올 때까지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는데 개성 시내에 들어와서 병사들이 개죽음을 했습니다”라며 울분을 토하는 것이 아닌가.
 
  개성 송악산을 넘어온 방호산(方虎山) 소장(少將)의 인민군 제6사단은 모택동의 팔로군 출신으로 구성된 부대다. 이들은 6·25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1950년 6월18일 사리원에서 기차로 개성 북방에 배치된 역전의 노장들이었다.
 
  “나는 팔로군입니다.”
  브루스 커밍스 같은 수정주의자들과 김일성과 그 추종자들의 北侵論(북침론)이 날조라는 사실이 한 순간에 폭로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 엄청난 말을 듣고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6·25 전쟁이 공산권 붕괴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세계사적 사실을 전쟁이 끝난 뒤에 알게 되면서 북괴군 6사단 15연대장의 “나는 팔로군입니다”라는 말이 한국전쟁 발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귀중한 증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택동은 1949년 7월 약 2만2000여 명에 달하는 팔로군 소속 조선인 부대를 6·25 남침(南侵)을 준비하는 김일성에게 넘겨주었고, 이들은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인민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김일성은 이들을 6·25 남침의 주력으로 삼았다.
 
  한편 스탈린은 전차(戰車) 300대, 전투기(戰鬪機) 200대, 대포(大砲) 1300대, 군사고문 3000명을 보내 김일성의 6·25 남침을 적극 도왔다. 6·25 한국전쟁은 이렇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의 치밀한 계획 하에 꾸며진 세계 공산화 전략의 일환으로 일어난 공산침략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이처럼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의 철저한 한반도 공산화 전략에 따라 준비된 계획적인 침략전쟁인데도 중국 공산당은 아직도 자신들의 음모를 철저히 감추고 ‘되놈’ 근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차기 중국공산당의 유력한 지도자 습진평(習近平・시진핑)은 “위대한 抗美援朝戰爭(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60년 전에 발생한 전쟁은 제국주의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라고 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1949년 7월에 6? 남침에 대비해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약 2만2000여 명을 김일성에게 넘겨주어 김일성의 인민군을 대폭 증가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모택동이다. 그 때 미국이나 한국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등에 업고 남침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까지 뒤집으며 한국전쟁의 성격과 의미를 공산당 식으로 짜 맞추지만, 진실은 언제나 들어나는 법이다. 거짓말도 백번 되풀이 하면 진실이 된다는 공산당의 사기술도 이제 공산당 역사박물관으로 가야 할 신세가 됐다.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봉쇄정책을 처음 실행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20세기의 중대 사건’이라는 미국 역사학자들의 평가처럼, 6·25 전쟁은 소련의 세계 공산화 야욕을 차단하고 세계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 전쟁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6·25 전쟁에 미 육군 공수 부대 장교로 참전해 오른쪽 팔과 다리 하나를 잃은 윌리엄 웨버(84) 예비역 대령은 “2차 세계대전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전쟁이라면, 한국전쟁은 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했던 전쟁”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이 그렇다. 한국전쟁은 세계 공산화 전략으로 시작된 전쟁이었고,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의 야욕을 꺾기 위해 국군 사상자와 행방불명 99만, 미군 피해 15만, 남북한 민간 피해 약 200만과 중공군 피해 90만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그처럼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 한국전쟁의 기억이 서서히 61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 묻히며 빛이 바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쟁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전쟁 다큐멘터리 작가 존 톨랜드가 그 혐오스럽고 지루한 한국전쟁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공산권 붕괴를 지켜보며 6·25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느낀 톨랜드는 그의 저서 《6·25 전쟁》에서 “비록 미국 국민에게는 인기 없는 전쟁이었지만, 6·25 전쟁은 미국이 더 많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도록 국민경제에 큰 활력소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경제적, 군사적 힘이 남아 돌만큼 국력이 신장됨으로써 어떤 국제분쟁도 미국의 관여 없이는 해결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6·25 전쟁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탄생시킨 것이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해석 참조)
 
  ‘잊고 싶은 전쟁’, ‘잊혀진 전쟁’으로 ‘역사의 고아’가 된 한국전쟁, 그런 가운데 美 해병 4000여 명의 희생자를 내며 세계 최악의 전투로 불리는 장진호 참전용사들은 “우리는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사람들이다. 이대로 역사 속에 묻힐 수는 없다”고 외치며 1995년 워싱턴에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美 해병동상 19개를 세웠다.
 
  그들은 그 기념공원 벽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를 새겨 넣어 자신들의 값진 희생을 역사에뿐 아니라 인류양심에 인정받으려 했다. 이처럼 6·25 전쟁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기에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전쟁이다. 한국전쟁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보면 6·25 전쟁은 ‘비기기 위해 싸운 전쟁’ 같지만, 우리에게 준 역사적 교훈은 한국 현대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진로를 바꾼 대사건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세계 공산주의 종식을 최대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악의 제국 소련’이 붕괴되면서 6·25 전쟁은 세계 공산주의의 종식을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단순한 남북한 간의 내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상적 대결장이었던 한국전쟁은 확실히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국제전이다.
 
  한편 ‘한국전쟁(This Kind of War)의 저자 페렌바크(T.R. Ferhenback)는 “한국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기묘한 전쟁”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물론 유엔군의 막강한 전력도 큰 힘이 되었지만 그 보다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주역들의 대한민국 수호와 국가미래 보장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힘’이 전쟁참화 속에서 국가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역사해석이 아닐까.
 
  6·25 전쟁의 開戰(개전)과 停戰(정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어쩌면 전쟁 마지막 세대인 나로서 전쟁 61주년을 맞는 감회가 왜 이럴게 착잡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6·25의 의미를 잊은 채 다시 이념적 혼돈에 빠져드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 탓이 아닐까.
 
  세계 전사(戰史)상 가장 참혹했던 후퇴작전으로 불리는 장진호 전투에 미 해병대로 참전 했던 메링골로 씨는 왜 한국전에 참전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국의 부름을 받으면 어디든 간다.

난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대답했다. 이런 기록을 읽을 땐 빚진 사람의 심정과도 같다. 빚을 지고 갚지 않은 죄인의 심정 말이다.
 
  ‘181일간의 치열한 전쟁의 흔적, 한국전쟁’의 저자 더들리 휴즈는 갓 결혼한 신혼의 단 꿈을 접고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동기를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공산 집단의 침략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자 낯설고 먼 한국까지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의 생활과 생각은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는 한참 먼 거리에 있다. 6·25 전쟁의 약효(藥效)가 바래서일까, 아니면 종북(從北) 세력의 준동을 허용한 中道實用 탓일까, 정말 이대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건전할 수 있을까.

가슴의 금배지 관점에서 국가를 보는 현 저질 정치인의 정신이 아니라, 후손들의 미래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고 국가를 본 건국주역들과 호국선열들의 정신과 의지가 오늘의 대한민국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 하는 중요한 계기가 6·25 전쟁 61주년을 맞아 이루어지길 하늘에 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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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 11-06-13 18:04
   
출처좀 알려주실수 있으신가요?
     
봉달이 11-06-13 18:32
   
ㅇㅇㅇㅇ 11-06-13 18:07
   
이거 이미 꽤 알려진 사실 아닌가ㅇㅇ
조선족은 대다수가 팔로군출신과, 그 후손들입니다.
모이자나, 연변통신 같은데 보면. 부모나,혹은조부가 팔로군으로 전사한게 자랑스럽다고 하는 글이나 댓글꽤 심심찮게 올라오는데.
또 애시당초 모택동이 조선족 자치주를 인정해준게 팔로군에대한 핏값이기도 햇고..
이거 모르는사람 꽤 많던데.. 조선족은 6.25 때 우리와 총부리 겨누고 싸운 중국군 후손이 맞습니다ㅇㅇ
동포로 볼놈들이 아니에요
R.A.B 11-06-13 18:38
   
에휴 저런것들이 독립군 후손이란 개 헛소릴 하고 자빠졌으니 -.-
qwe 11-06-13 18:42
   
그게 항일독립운동은 외교노선을 걷던 상하이 임시정부외에도 무력투쟁이 있었고 그 중에는 공산계열도 있었으며.. 그 중 독립운동으로 명성을 얻은 김일성이 북한에서 소련을 빽 삼아서 짱먹은 후에

중국에서 2차 국공내전 발생하자, 북한 역시 조선인들을 보내서 공산당 승리를 도왔음.
국공내전이 공산당 승리로 끝나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전쟁경험많은 베테랑 조선군, 즉 팔로군이
625 남침의 중심세력이 된거죠.

그렇게 알고 있음.
그냥 중국군 후손이 아니라.. 중국내전 당시 북한에서 원조나갔다가 전쟁끝나고 돌아온 것이라고 앎.
     
봉달이 11-06-13 20:09
   
45~49년도의 북한이 중국을 도울 여력이나 있었는지 의문이고

중국의 이이제이 전술과 모택동이 동북군구  견제심의 발로로

조선족 부대를 북한에 파견(국제사회에 중국이 개입 되어있지 않음을 내세우기 위하여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 선택) 하여 전무후무한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능지처참할 죄악을 저지름
          
qwe 11-06-13 20:59
   
위키페디아가 꼭 정확한 건 아니지만, 참고삼아 붙여넣어볼께요. 공산계 항일운동세력과 북한에서 건너갔다가 돌아온 조선인이 팔로군을 구성하고...
중공이 참전하는 것도 이러한 혈맹적 관계 때문이겠죠.

조선인의 활약
1945년 이후 국공내전 시기에 동북삼성에서 중공측으로 참전한 조선족의 숫자는 6만 3천여명으로 연변에서만 3만 5천여명이 참전하였다. 이는 연변 총참군의 85%에 달하는 숫자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공 내전시 조선족 병사는 3,550여 명으로, 길림성에서만 2,262명으로 조선족은 항일전쟁과 마찬가지로 중국혁명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북한도 중국공산혁명을 위하여 기여를 했는데, 직접 병력을 파견하여 전투에 참여하였고, 북한지역에 중공군의 후방기지를 세워, 훈련기지와 병원 등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만포진, 청진, 정주 등에 주둔하였다. 북한에 주둔했던 중공군의 숫자는 47년 당시 5만 ~ 7만 5천에 달하였다. 이렇지 않았더라면 중공군은 국민당군에게 포위되어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 이후 한국 전쟁 직전, 중공군에 소속된 조선인들은 대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동되었으며,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었다.
               
봉달이 11-06-13 21:34
   
위키백과야 누구나 편집 가능하여 믿을만한 정보는 아니며

남한에서 45~49년도 사이에 북한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 위키백과는 신뢰가 안감

개전초기에는 조선족 팔로군 투입하여 낙동강까지 밀고 나갔으나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압록강까지 밀리자

장개석의 국민당군에서 항복한 중공군과 조선족 의용군 전격투입


아래글은 아마도 자빠리 내지는 중국인이 쓴글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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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의용군 입북
한국전쟁을 앞두고 김일성의 요청과 모택동의 지시에 의해 팔로군(八路軍)중 한인 출신들로 ‘조선의용군’을 만들어 입북 시켰다.

이중 팔로군 제 4 야전군 휘하 제 55군단 164 사단은 만주지역에 주둔해 있는 한인들로만 구성된 단일부대로 1949년 7월 20일 입북하여 조선인민군 제 5사단으로 개편 되었다. 입북한 사단 인원은 10821명이다.

제 4 야전군 휘하 제 55군단 166사단은 국민당군을 쫒아 대만해협까지 진격한 역전의 사단이며 한중 혼성 부대이다.

원래는 166사단중 1개 연대만 한인이며 조선의용군으로 개편과정에서 중국인들을 한인으로 교체하여 1949년 7월 20일 입북 시켜 조선 인민군 제 6사단으로 개편 시켰다.

사단 병력은 10320명으로 이후 김일성의 요청으로 팔로군 제 156사단을 중심으로 139, 140, 141사단의 한인들을 모와 1950년 4월경 입북하여 약 1만 4천 병력으로 조선인민군 제 7사단을 만든다.(이후 제 12사단으로 명칭 변경)

그외 중국인민해방군에 부대단위가 아닌 개인적으로 복무중인 한인들을 모와 1개 연대를 만들어 입북시키는데 이들은 오토바이 연대가 된다.

 이렇게 하여 모택동이 보내준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 출신 조선의용군은 3개사단 5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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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11-06-13 19:05
   
진보 좌파 정권10년동안 조선족,김씨왕조에 대한 불리한보도,교육을 못하게 했으니깐요..
모피 11-06-13 20:17
   
팔로군 없었으면 중국이 공산화되지 않았겠지
그당시에 모택동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 오합지졸에게 발린 중국 국민당은 워낙 부패해서 발린것이구요.

팔로군은 조선족이 아니라. 일본에 무장투쟁하던 사람들 중에 공산당성향에 한국인들이 팔로군에 들어간겁니다.

그리고 중국국공전쟁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10만 팔로군들이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남쪽으로는 와봐야 전부 제거대상이니 갈 곳 없어진 팔로군은 당연히 북한으로 들어갔겠지요

북한으로 들어간 것만 봐도 팔로군은 조선족이 아니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중국 공산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10만명의 팔로군은 북한으로 들어간 이후 한국전쟁 과정에서
대부분 전사합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후 한국군이 미군,유엔군과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가나
조선족들은 그 후에 중국정예병 90만명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여하다
전부 모택동 아들과 함께 괴멸되어버리죠.

대략 근대사가 이런식으로 흘러간겁니다.

조선족들은 팔로군들 대부분이 조선족출신이라고 우기고 있으나
이것은 근대사를 모르는 후안무치로 역사를 아수인격으로 왜곡주장하는 것에 불과하지요.

중국공산화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팔로군들은 대부분 북한으로 들어갔지
조선족에 지역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객님 11-06-13 22:33
   
이 기사 올라올꺼라 예상했습니다. 제가 올려볼까도 했었는데..
부왕부왕 11-06-13 23:35
   
결론은 조선족 개객끼
바람꽃 11-06-14 01:02
   
이차대전 당시 항일전쟁을 하던 중국 공산군의 최선봉부대가 조선의용군입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국공내전때역시 중국 국민당을 박살내던 최선봉부대 역시 조선의용군입니다. 그런데 조선의용군들은 김일성을 별로 탐탁치 않케 생각했는데 전쟁을 구실로 그들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전쟁후 김일성에게 숙청당합니다.
월하낭인 11-06-14 09:39
   
- 남한에서 45~49년간 북한 사정 모르고 있다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군염.
  48년에 거의 막히긴 하지만, 50년까지(전쟁 직전)도 왕래를 합니다.

- 6.25 동란중에도 피난 내려온 사람 많습니다.
  1. 공산치하에서 미처 못내려왔던 사람들(내려오고자 했으나, 거의 국경이 되어버린 3.8선)
  2. 계속된 UN군의 폭격(주로 미군)을 피해
     
봉달이 11-06-14 10:11
   
드물다는 듯을 오해한듯 하군요

북한에 있다 남하한사람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했거나

살아있어도 북한의 인민군 실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임
구경꾼 11-06-14 17:05
   
같은 민족 열심히 죽여 받은 훈장 자랑하는 연변족도 있었ㅁㄴ이라ㅓㄴㅁ리ㅏㅓㄷㄽㅂㄻㄳ
     
월하낭인 11-06-15 08:30
   
- 6.25 전쟁에 참전한 남북 양국 훈장 수여자의 대다수가
  같은 민족 열심히 죽여서 받은 겁니다만.
          
봉달이 11-06-15 13:09
   
북한이 남침만 안했어도 동족을 죽이는 불상사는 안벌어지고

훈장 받을일도 없지않나요?

전쟁 일으킨 놈들은 죽어서도 죄값을 치러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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