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신라의 왕릉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모두 36기이고 경주를 벗어난 지역에 남아있는 왕릉으로 전하는 것이 경남 양산시에 있는 전진성여왕릉과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경순왕릉이다. 따라서 신라의 왕릉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모두 38기인데, 이는 신라 역대왕의 수가 56위인데 비하여 전해지는 것은 적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왕릉으로 전해지고 있는 38기 가운데도 많은 것이 남아 있는 기록상의 위치나 시대적인 능의 형식과는 차이가 있어 의문시되고 있다.
다만 능비가 남아 있는 무열왕릉만은 확실시되고 여기에 덧붙여 기록상의 위치비정과 학계에서 논의된 시대적인 형식에 맞아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흥덕왕릉, 문무왕릉, 선덕여왕릉 정도이다.
이와 같이 대부분 왕릉의 주인공이 부정되고 있는 것은 조선 영조 6년(1730)을 전후하여 그 이전에 전해 오던 10기(무열왕릉, 성덕왕릉, 헌덕왕릉, 혁거세릉, 미추이사금릉, 법흥왕릉, 진흥왕릉, 선덕왕릉, 효소왕릉)에 갑자기 17기(진덕왕릉, 일성이사금릉, 진지왕릉, 진평왕릉, 신문왕릉, 신무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 헌강왕릉, 정강왕릉, 효공왕릉,지마이사금릉, 희강왕릉, 신덕왕릉, 경명왕릉, 경애왕릉, 아달라이사금릉)가 더해지고, 근래에 다시 9기(경덕왕릉, 원성왕릉, 남해차차웅릉, 유리이사금릉, 탈해이사금릉, 파사이사금릉, 나물마립간릉, 민애왕릉)가 더해져 전해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편찬 이전부터 왕릉의 주인공이 불확실하였고, 그 후 억측과 구전이 사실화되어 전승되고 있는데다 해방 후 정부에서 법정지정 시에는 주인공의 고증보다는 법적 보호의 측면이 더 강조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출처] 신라 왕릉의 유형및 새로운 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