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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31 18:24
[기타] 김유신이 찬양한 수수께끼의 화랑 문노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391  

https://blog.naver.com/ohyh45/221009324438
[출처] :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 <추척 한국사의 순간> /중앙Sunday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은 전장에서 장렬히 죽은 군인들의 전기다. 그 주인공 중에 김흠운(金歆運)이라는 신라인이 있다. 영휘(永徽) 6년, 신라로는 태종무열왕 재위 2년(655)에 벌어진 백제와의 조천성(助川城) 전투에 낭당대감(郞幢大監)이라는 직책으로 출전했다가 백제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지(詮知)라는 참모가 일단 후퇴해 후일을 기약하자고 설득했지만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바친 이상 남이 알든 모르든 매한가지이니 어찌 감히 명예를 구하겠느냐”며 단호히 거부하고는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삼국사기』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밀왕(奈密王·내물왕) 8세손으로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어린 시절 화랑 문노(文努)의 문하에 있을 때, 낭도들이 아무개가 전사해 현재까지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흠운은 분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북돋웠다.”
 
같은 문하에서 이를 지켜본 승려 전밀(轉密)이 “이 사람이 전쟁터에 나간다면 틀림없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리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수수께끼의 인물 문노와 맞닥뜨린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의 문하에 든 낭도들은 저와 같은 무용담을 논했을까? 아쉽게도 그가 화랑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뿐, 언제적 인물인지,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구체적 행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화랑세기』의 출현으로 퍼즐의 일부가 풀렸다.『화랑세기』에서 문노는 당당히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표기가 약간 달라져 『화랑세기』에선 그를 ‘文弩’라고 적고 있다. 노(弩)란 화살 발사 장치 일종인 쇠뇌를 지칭하는 말이다. 맹렬한 전사(戰士)의 풍모가 짙다는 점에서 어쩌면 ‘文弩’라는 표기가 더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야 관계 요동치던 때 출생

『화랑세기』에 의하면 문노는 건복(建福·신라 진평왕 때 연호) 23년(606)에 69세로 죽었다. 따라서 출생은 법흥왕 25년(538)이 된다. 신라와 가야의 관계가 요동치던 때다. 『삼국사기』에 그려진 당시의 정국을 보면, 법흥왕 9년(522) 3월에 가야국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자 이찬(伊飡·신라 고위 관위) 비조부(比助夫)의 여동생을 시집보낸다. 이태후 11년(524) 9월에는 법흥왕이 남쪽 변경 개척지를 돌아보다가 그를 찾아온 가야국왕과 만나기도 했다. 신라가 비조부의 여동생을 시집보낸 가야는 지금의 경북 고령에 근거지를 둔 대가야(大伽倻)다.
 
『화랑세기』문노 열전에 의하면 놀랍게도 문노의 아버지는 비조부, 어머니는 가야국 문화공주(文華公主)다. 『삼국사기』에서 ‘여동생을 가야왕에게 시집보냈다’고 한 그 비조부 말이다. 정리하면, 비조부는 여동생을 가야국왕에게 시집보내는 한편, 자신은 가야국왕의 딸을 처(혹은 첩)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공주는 누구인가. 『화랑세기』는 그 출생을 둘러싼 이설(異說)을 소개하면서, 하나는 북국의 왕녀(王女)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국(夜國)의 왕이 가야에 바친 왕녀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야국이란, 왜국(倭國)을 말한다. 그렇다면 북국이란 어디란 말인가? 의문을 풀 열쇠가 화랑세기에 담겨 있다.  
 
“법흥대제(法興大帝)가 가야를 남북으로 나누어 이뇌(異腦)를 북국왕으로 삼으면서 양화공주를 처로 삼게 하는 한편, 청명(靑明)을 남국왕으로 삼았다. 얼마 안 있어 (북국에서는) 이뇌의 숙부인 찬실(贊失)이 이뇌를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자 (신라의) 호조공(好助公)이 가야에 사신으로 가서 (왕위를 찬탈한 찬실을) 책망했다. 이에 앞서 찬실은 야국왕의 사위가 되었는데, 문화공주는 틀림없이 찬실의 딸일 것이다. (문화공주는) 처음에 호조공의 첩이 되었다가 (호조의 아들인) 비조부공과 몰래 정을 통해 (문노)공을 낳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법흥왕이 대가야를 남국과 북국으로 나누어 각기 왕을 임명했다. 이 와중에 문화공주는 북국왕인 이뇌의 왕비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국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뇌의 삼촌인 찬실이 왕위를 찬탈한 것이다. 찬실이 반란을 획책한 군사적 배경에는 틀림없이 왜국이 있었을 것이다. 찬실은 왜국 왕녀를 부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노의 어머니인 문화공주가 왜 한편으로는 왜국왕이 바친 공녀라는 이설이 생겨났는지, 그 의문의 일단을 풀 수 있다. 아마도 문화공주는 찬실이 왜국 왕녀를 받아들여 낳은 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공주는 가야왕 찬실의 딸이면서, 동시에 모계에서는 왜국의 피가 흐르고 있던 것이다. 문화공주와 이뇌간 혼인은 사촌간 근친혼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다름 아닌 친정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찬탈당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문화공주. 아마 이뇌는 폐위되면서 죽임을 당했거나 유폐됐을 것이다. 과부 혹은 그와 다름없는 신세가 된 문화공주를 이 사태 해결을 위해 신라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호조라는 사람이 첩으로 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신라로 오게된 문화공주는 호조의 아들인 비조부와 눈이 맞아, 마침내 문노라는 아들까지 낳게 된다.  
 
문노는 혈통으로 보면 (대)가야 왕통이지만 첩의 자식이다. 신분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그는 골품(骨品)을 얻지 못했다. 문노는 핸디캡을 딛고 성공하는 처세의 수단으로 무술을 택했다.『화랑세기』는 “공이 어려서부터 격검(擊劍)을 잘했고 의기(義氣)를 좋아했다”고 적고 있다. 격검이란 요컨대 격투기에 능하고 칼을 잘 썼다는 말이며, 의기란 의협심을 말한다. 이런 문노 주변엔 자연히 의리를 숭상하는 젊은이들이 따랐던 듯하다. 그는 가야계인 까닭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다른 가야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두머리로 통했다. 문노를 따랐던 무리중에 그 유명한 사다함(斯多含)도 있다.  


대가야 반란 진압작전엔 참전 안 해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본기와 사다함 열전에 의하면 사다함은 15~6세 때인 진흥왕 23년(562) 9월에 이사부(異斯夫)를 따라 종군해 (대)가야의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다. 그런데 용맹을 떨치던 문노가 이 대가야 반란 진압작전엔 참전하지 않았다. “어찌 어미(양화공주)의 아들로서 외할아버지의 백성들을 괴롭히겠는가?”라면서 참전을 거부했다고 한다. 대가야의 피를 물려받은 자신이 대가야를 정벌하는 일을 차마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다른 전쟁에는 죽음을 불사했다. 17세 때인 개국 4년(554)에는 김유신 조부인 무력(武力)을 따라 백제를 쳤고, 이듬해에는 북한(北漢) 전투에서 고구려를 쳤으며, 7년(557)에는 국원(國原·충주)으로 출전해 북가야를 쳤다. 그러다가 579년 정치를 어지럽히고 방탕하다는 이유를 들어 진지왕을 폐위하는 쿠데타에 가담해 아찬(阿飡·제6등 관위)이 되었는가 하면, 일약 풍월주에 취임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사후의 문노를 대대적으로 추숭한 이가 김유신이다. 『화랑세기』에는 “유신이 삼한을 통합하고 나서 공을 사기(士氣·일종의 군인정신)의 으뜸으로 삼는 한편, 각간(角干·신라 관위 체계의 제1등)으로 추증하고, 신궁(神宮·종묘의 일종)의 선단(仙壇·역대 화랑들의 신주를 모신 곳)에서 대제(大祭)를 행하였다”고 했다.
 
김유신이 이렇게 문노를 받든 이유는 신라가 삼한을 통일한 힘을 문노가 일으킨 기풍에서 찾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비록 출신은 대가야(문노)와 금관가야(김유신)로 다르지만, 같은 가야계라는 동지 의식도 작동했을 것이다. 가야는 신라에 멸망하면서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이 아니라, 김유신과 문노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히려 신라를 장악해 나갔던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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