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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31 20:04
[기타] 매초성의 신라 승전과 발해의 등주공격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717  

https://blog.naver.com/yicheongho/221066041657

-전략-

전쟁사에서 이순신의 명랑대첩도 중요하지만 이 매초성에서의 신라의 승전은 전쟁사에서 길이 길이 남을 정도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평양에서 점령군으로 머물렀던 당나라, 곧 대당제국 안동도호부는 이 매초성 승전(675년)을 기점으로 그냥 저 요하를 넘어 요서지역의 무순 지역으로 옮겨갔다. 무슨 역사적 의미인가? 

당나라가 고구려의 평양성을 무너뜨리고 그 지역에 당나라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하였는데 그게 668년 이후 지속적인 고구려 부흥군, 곧 검모잠이나 안승 등이 일으킨 저항군의 저항을 받다가 675년 '끈질긴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서 결국은 실패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라 문무왕의 치적을 뭐라고 하는가? 삼국통일? 개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를 무너뜨리고는 연합하였던 당나라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책동을 신라-당나라 전쟁을 불사하면서 결국은 한반도에서 당나라를 몰아낸 것이 아닌가?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은 문무왕의 업적은 삼국사기식으로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김부식의 12-13세기 천년 전의 고려시대 사람들의 사관일 뿐이다. 


신라 문무왕의 업적은 '당나라 식민지 건설을 완전히 저지한 선봉장'이었다는 것이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우선 고구려의 안승은 문무왕에 의해서 '고구려왕으로 책봉'을 받는다. 고구려왕으로 책봉했다는 증거가 다 있고, 그것은 신라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고구려 '태왕'이 바로 국왕 위의 상위 개념의 왕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문무왕 대에는 고구려왕을 책봉했다고 나온다. 

예제(禮制)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이거 뭐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의심부터 한다. 일제식민사관이 남겨준 정말로 지저분한 사고습관(thought habit)에 사로잡혀 있다는 자기 반성 부터 해야 한다. 


   문무왕이 처음으로 김씨 신라 왕조에서 '신라 태왕(太王)'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태왕 신라의 군편제가 어떻게 되었는가? 9서당이 되었다. 이에 맞추어서 태왕 신라의 9주가 완성된 것이다. 고구려 땅에는 한주, 삭주, 명주의 3 주, 옛 백제 땅에 3 주, 원래의 신라 땅에 3주가 생겼다. 

     이게 <삼국사기> 문무왕 본기에 나온다. 그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매초성 신라승전을 이해 못하는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의 역사교관들의 일제식민사관 대가리들이다. 


     안승이 고구려왕으로 책봉되고는 어떻게 되었나? 문무왕이 승하하면서 아들 왕이 등극할 때에 반란이 일어난다. 하마터면 제 2 대 신라 태왕인 신문왕(神文王)이 왕위를 빼앗길 뻔 하였다. 그 때에 고구려왕 안승이 이 반란 진압을 도운 것 같다. 그리고는 태왕 신라의 도성으로 이주한다. 태왕조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한 것 같다. 아버지 문무왕은 평양 장안성 함락 이후에 7천명의 고구려인을 데리고 도성에 온다. 


     668년 고구려 평양성이 무너지고는 검모잠이나 안승 같은 지도자들이 평양 부근에서 저항군을 조직하여 저항전을 벌이고 있을때에 만주지역은 어떤 형국이었는가? 698년에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이 현재의 만주 길림성 둔화(敦化)에서 진국이라는 첫 국호를 내어 걸고 고구려를 계승하는 국가를 세웟다. 668년 이후 30년간 만주지역에서도 당나라에 굴복하지 않은 성들이 많이 있었다. 왜 이런 사실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숨겨져 왔을까? 


    길림성 둔화는 고구려 왕부족인 계루부의 옛 고토였다. 주몽의 발상지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계루부의 옛 고토의 속말말갈은 원래 주몽의 부족이고, 둔화는 계루부 족속 기원지인 것이다. 계루(桂樓)는 읍루(邑樓) 처럼 루자로 끝나는 어미를 가지는데, 주몽의 건국 이전의 4부는 모두 소노부 처럼 노(奴)자로 끝나는 어미를 가지고 있다. 이주한 새로운 부족이라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주몽과 같이 움직인 오이, 마리, 협보는 모두 속말말갈족이었다는 것이다. 


    698년 발해 건국은 668년 고구려 평양성 함락 이후 30년 만의 일이었다. 흑수말갈의 일부는 이근행을 필두로 하여 당나라 군에 편입이 되었다. 흑수말갈은 이후 발해가 건국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해의 북부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나라의 주구가 된 것이었다. 


    반면에 속말말갈 출신의 대걸걸중상 및 걸사비우는 거란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의 당나라에 대한 반란을 틈타서 요하를 건너서 저항군 활동을 계속한 것이다. 그리고는 당나라 고종 이치가 죽고 측천무후가 들어서서 당나라 조정이 시끄럽고 서북방의 변경에서 당나라가 침공을 당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진국에서 발해로 국호를 변경하게 된 것이다. 


   매초성 신라 승전은 두번째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평양 지역에서 당나라 군사적 영향력이 비게 된 것이다. 16-17년 이후의 대조영의 발해의 건국이 이루어진 지정학적 정세가 만들어 진 것이었다. 옛 평양 안동도호부가 있었으면 발해 건국 이루어 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평양에서 요서 무순으로 물러난 안동도호부는 이후에 없어진다. 


  신라 태왕 문무왕의 업적을 '당나라 식민지 건설을 완전히 저지한 선봉장' 평가하는 이유는 이후의 발해 시조 발해 고왕(高王) 대조영의 아들인 대무예, 곧 발해 무왕(武王)이 어떻게 732년 당나라 영토인 산동성의 등주를 공격 할 수 있었느냐와 연결된다. 

발해 무왕은 719년에 등극한다. 이 당시의 만주-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는 어떠했을까? 675년 매초성 전투를 기점으로 당나라 세력은 이미 요하 부근에 있었다. 그리고는 돌궐과 거란의 저항을 막느라 신라나 고구려의 만주 영토에 대한 욕심을 낼 경황이 없었다. 또한 티베트나 서쪽의 변경에서 문제가 일어나 설인귀나 이근행도 차출당해 그쪽을 막는 데에 열을 내고 있었다. 그러니 발해 고왕대에 이미 국내성 인근을 넘어서 요동반도 까지 발해의 영향력 안에 들어와 았었다. 그리고는 당나라에는 현종이 등극했다. 등극 초기에는 당현종(712~756)이 정치를 잘 했지만 이후 양귀비와 놀아나던 시대이니 등주 공격을 받은 것도 양귀비와 놀아나던 때와 겹친다. 


   발해는 연호를 독자적으로 썼다. 당나라 역사서들은 이것은 발해가 참람되게 연호를 사적으로 썼다고 쓰고 있다. 개소리 하고 있는 것이다. 발해 무왕의 연호는 인안(仁安)이다. 인안 14년이 바로 732년 발해 장군 장문휴가 등주를 공격한 해 이다. 요동반도를 건너서 기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호를 독자적으로 쓰는 국가!  발해를 무슨 중국의 지방정권이니 하는 소리, 정말 어불성설에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닌가? 발해 고왕, 무왕 모두 독자적인 시호(諡號)이다. 만주-한반도는 태왕 신라 및 발해 시대까지 묘호를 전혀 쓰지 않았다. 묘호를 쓴다고 자랑하고 다니고 외교 문제를 삼은 당나라와는 전혀 다른 왕조 체제 였다. 태종무열왕만 앞에 태종이라는 묘호를 썼다.  


   발해 무왕은 동해 바다 건너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수복하고 부여의 옛 풍속을 회복하였다"고 쓰고 있다. 무슨 뜻인가? 발해 무왕의 치적은 무엇일까? 신라 제 1대 태왕인 문무왕의 675년 업적을 이어서, 중원의 당나라 식민지 건설을 만주에서 차단했다는 것이다. 발해 무황대의 '인안 연간(仁安年間)'에 와서야 비로서 '태왕 신라'의 만주한반도계열의 남조(南朝) 연호를 쓰는 북조(北朝) 발해의 시대가 완전히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태왕 신라는 9주(州) 체제였고 북조 발해는 부(府) 체제 였다. 발해의 상경, 중경, 동경, 서경, 남경의 5경 체제는 이후 거란이 세운 요나라 및 여진족의 금나라에서도 계승된 체제였다. 중원 왕조는 이런 것 없다. 


   675년의 매초성 전투와 735년의 발해의 산동성 등주 공격이 만주한반도계열일 뿐이지 중원의 역사와는 병치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이해해야 될 때가 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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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내고환 18-05-31 20:35
   
발해 역사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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