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상기하여야 할 또 하나의 『상식』이 있다.
그것은 대군大軍의 진군로는 마주치게 되는 큰 강의 상류가 도하지점으로 선택되고 진군로 역시 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상류지점이 『천협淺狹』하여 도하하기 쉬운 까닭이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요동군 속현에 대한 비정은 결국 요하라는 큰 강의 『심광深廣』한 하류를 도하지점이 되게끔 강제한다.
역사상 몇 번이나 등장하는 요하의 도하渡河 지점으로 유명한 『遼隧縣』(요하 東岸)이 오늘날의 비정에서 요하 최 하류에 자리 잡게 된 이유이다.
*《讀史方輿紀要》<산동8·遼東都司·海州衛>에 “遼隊城 衛西六十里.”(遼隧城은 海州衛 서쪽 60리)라고 기록한다. 海州衛는 지금의 鞍山市 海城(縣級 市) 부근.
오늘날의 柳河·淸河·渾河·太子河 등 요하 兩岸의 큰 支流가 합류하여 강폭은 넓어지고 수심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곳을 도하지점으로 선택하는 『비상식적』인 일을 감행하였다는 것이 된다.
더구나 『요수현』은 『요동 남계南界』라고 《삼국지》<明帝紀>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