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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4 18:28
[한국사] 강화도 조약 후 조선과 일본의 행보 2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847  

1) 러시아의 위협 

김홍집이 도쿄 체류 중 일본인은 물론 중국인들로부터도 가장 심각하게 들은 경고는 러시아의 위협이었다. 하지만 김홍집을 비롯한 조선 사절단은 처음에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예컨대 7월 11일에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와 하나부사가 김홍집을 찾아와 국제정세를 언급했는데 그때 김홍집을 비롯한 조선 사절단은 “과장된 저의가 아닌 것이 없었다”고 느꼈다.

당시 이노우에 등이 언급한 국제정세는 러시아의 위협이었다. 그때 일본 신문에는 러시아가 두만강 하구에 16척의 군함과 5만 가까운 병력을 집결시키고 장차 남해와 서해를 돌아 중국 산동 반도에 상륙했다가 북경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런 소문은 일본인들을 크게 긴장시켰다. 만에 하나라도 산동반도로 향하는 러시아 함대가 도중에 방향을 틀어 일본 또는 조선을 공격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척의 군함과 5만 가까운 병력은 일본으로서도 벅찼고 중국으로서도 벅찬 규모였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본토에는 100만 가까운 대군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 사이에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이노우에가 김홍집에게 역설할 국제정세 역시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조선과 청나라 그리고 일본의 동북아 3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에 김홍집을 비롯한 조선 사절단은 공감을 느끼기보다는 공갈·협박으로 느꼈던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위협이 실감나지 않아서였다.

김홍집이 중국인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홍집은 7월 16일 청국 공사관으로 가서 주일공사 하여장을 처음 만나 필담(筆談)을 나눴다. 그때 하여장은 “지난번 러시아 사람들이 귀국 두만강 일대에 군사 시설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듣건대 귀국 사람들 중 러시아로 간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선생께서 잘 아신다고 하니 알려주십시오”라고 해 러시아 문제에 관심을 표시했다.

김홍집은 “러시아와는 국경을 접하기는 했지만 통상하지 않아 그들의 사정을 잘 모르고, 함경도 주민들이 러시아 땅으로 들어갔다고 듣기는 했지만 그 역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런 대답으로 보면 당시 김홍집을 비롯한 조선 당국자들은 러시아에 대하여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여장 역시 그렇게 짐작하고 러시아의 위협을 강하게 경고할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하여장은 “요사이 각국에는 균세(均勢)의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한 나라가 강국과 이웃해 후환이 두렵다면 각국과 연결해 안전을 도모합니다. 이 또한 예전부터 부득이하게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라고 했다.

이는 마치 춘추전국시대에 강국 진(秦)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나머지 국가가 합종연횡(合從連橫)했듯이, 조선도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해 서구 열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물론 이 같은 하야장의 언급은 이홍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김홍집 역시 그런 속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김홍집은 러시아 위협보다는 국내의 위정척사파가 더 걱정이었다. 그래서 김홍집은 “본국은 옛 법도를 엄격하게 지키며 외국을 홍수나 맹수처럼 질시합니다. 또한 예전부터 서양의 이교(異敎)를 엄격하게 배척해왔습니다. 하지만 가르침이 이와 같으니 귀국 후 조정에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으로 볼 때 김홍집은 아직 러시아의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 하여장은 주제를 돌렸다.

5일 후에 김홍집은 다시 하여장을 찾아 필담을 나눴다. 그때 하여장은 “오늘날 시변(時變)이 이와 같으니 귀국은 서양각국에 개항하고 통상·왕래하며 각국과 더불어 대양을 왕래해야 합니다”라고 직설적으로 권고했다. 며칠 전에는 서양 각국과의 외교·통상을 완곡하게 권고했지만 김홍집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권고한 것이었다.

김홍집은 “오늘날 시변이 비록 이와 같지만 우리나라는 각국과 왕래할 수 없습니다. 국내 형세가 그렇습니다”라고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자 하여장은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미국과의 통상을 권고했는데,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2) “친중·결일·연미 해야 러시아 막을 수 있다”

“제 생각에는 러시아 문제가 아주 시급합니다. 세계 각국 중 오직 미국만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또한 국세가 부강합니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와 통상하면서 오히려 신의를 준수해 침략하고자 심하게 도모하지는 않습니다. (…) 만약 조선이 굳게 걸어 닫고 거절하다가, 훗날 다른 급변사태가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조약을 맺게 된다면 분명 큰 손해를 볼 것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언급으로 볼 때 당시 하여장은 이홍장의 지시 아래 조선과 미국을 통상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이홍장이나 하여장은 청나라를 러시아 또는 일본으로부터 지켜줄 서구 열강은 오직 미국뿐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믿음은 아편전쟁 이래 오직 미국만이 청나라를 침공하지 않았다는 경험에 더해 류큐(琉球)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과 대결할 때 미국의 전 대통령 그랜트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청나라를 지지했다는 경험에서 생겨났다.

게다가 미국은 비록 백인들의 나라이기는 해도 영국에서 독립한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유럽 열강보다는 오히려 아시아 각국에 우호적일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그런 믿음과 희망에서 이홍장과 하여장은 조선을 미국과 통상시키기만 하면 조선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처럼 강경한 하여장의 발언에 김홍집은 더 이상 부정적이 반응을 보이기 어려웠다.

김홍집은 “이렇게 숨김없이 알려 주시니 폐국(弊國)의 사세상 갑자기 교섭할 수는 없다고 해도 어찌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말하길 한 나라와 조약을 잘 맺으면 다른 나라도 준수하므로 만국과 교류하는 것이 한 나라와 교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들으니 미국은 서양보다는 동양과 동반자가 되고자 한다는데 정말인지요?”라고 물었다.

이제 김홍집도 러시아의 위협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이 정말 믿을 수 있는 나라인지 물은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하여 하여장은 “선생이 언급한 이토 히로부미의 발언은 사실입니다”라고 해 러시아의 위협 및 미국에 대한 신뢰에서는 청나라나 일본 공히 같은 생각임을 드러냈다.

하여장은 필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판단하고 참찬관 황준헌을 시켜 조선이 취해야 할 대외정책을 책으로 정리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조선책략]이라고 하는 책이 완성됐다. ‘친중국(親中國)·결일본(結日本)·연미국(聯美國)’을 핵심으로 하는 [조선책략]은 조선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의 국토는 진실로 아시아의 요충지에 위치해 반드시 다퉈야 할 요해처(要害處)가 되므로 조선이 위험해지면 중국과 일본의 형세도 날로 위급해집니다. 러시아가 영토를 공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아! 러시아는 승냥이와 같던 춘추전국시대의 진(秦)나라와 같은 나라입니다. (…) 그러므로 오늘날 조선의 급선무를 계책할 때 러시아를 방어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습니다. 러시아를 방어하는 계책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바로 친중국·결일본·연미국입니다.”

1880년 8월 4일 김홍집은 도쿄를 출항해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8월 28일 한양에 도착한 김홍집은 고종에게 복명하면서 [조선책략]을 바쳤다. [조선책략]을 놓고 조선양반은 찬성과 반대로 갈려 격심한 투쟁을 벌이게 됐다. [조선책략]이 조선 양반사회에 격심한 충격을 던졌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김홍집과 함께 귀국한 개화승 이동인 역시 조선사회에 격심한 충격을 던졌다. 

3) 유교문명과 서구문명 충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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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헌이 쓴 [조선책략]. 조선이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의 봉원사 스님으로 있던 이동인은 강화도조약을 전후해 유대치를 매개로 개화파 인사들과 연결됐다. 이동인은 김옥균·박영효 등의 후원과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 본원사(本願寺)의 부산 포교당 당주(堂主) 오쿠무라 엔신(奧村圓心)의 도움을 받아 교토의 히가시 혼간사(東本願寺)로 밀항, 유학했다. 그때가 1879년 9월이었다.

그 후 7개월에 걸쳐 일본어와 일본 불교를 공부한 이동인은 1800년 4월 동본원사에서 수계식을 마치고 도쿄의 아사노(淺野) 별원(別院)으로 갔는데 그곳은 조선통신사가 머물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동인은 승려로 활약하며 일본의 정객은 물론 서양 각국의 외교관과도 교류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런데 마침 그 즈음 제2차 수신사 김홍집이 도쿄에 와서 아사노 별원(別院)에서 묵게 됐다.

이동인은 하나부사에게 “저는 국은에 보답하고 불은(佛恩)에 보답하고자 결심해 나라를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감내하고자 합니다. 원하건대 김 수신사를 만나게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김홍집을 만난 이동인은 일본 옷을 입고 조선어로 말했다. 수상쩍게 여긴 김홍집은 이동인의 정체를 자세하게 물었다. 이동인은 작년에 자신이 밀항한 일, 공부한 일, 사람들을 만난 일 등을 자세히 설명한 후 자신은 다른 뜻은 없고 단지 조선을 문명개화로 이끌고 싶다고 열성을 다해 말했다.

김홍집은 무릎을 치며 말하기를 “오호! 이런 기인남아(奇人男兒)가 있어서 국은에 보답하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아마도 김홍집은 불쌍한 조선을 위해 부처님이 예비한 인물이 바로 이동인이라 생각했을 듯하다. 이동인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한 김홍집은 함께 귀국할 것을 종용했다.

그래서 이동인은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김홍집을 뒤이어 귀국하게 됐다. 한양으로 간 이동인은 김홍집의 추천을 받아 민영익의 사랑방에 기거했으며 고종과도 면담했다. 민영익과 고종 역시 이동인을 깊이 신뢰하게 됐다. 개화에 미온적이던 고종은 김홍집의 보고와 이동인의 설명을 듣고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고종은 [조선책략]과 이동인을 이용해 ‘연미국’을 추진하고자 했다. 반면 위정척사파는 미국의 기독교 문명과 이동인의 불교사상이 조선 유교문명을 파탄시킬 것이라 주장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바야흐로 고종의 ‘연미국’을 계기로 유교문명과 서구문명이 조선 땅에서 격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출처] :​ 월간중앙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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