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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5 03:16
[한국사] 낙랑군 수성현 문제에 대한 학계의 공론과 이견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663  

1. 일치점

1) 당빈의 장성은 노룡이 동단점으로 태강/진서지리지 갈석은 현 노룡에 위치
2) 태강지리지는 서진 태강 연간이 아니라 당빈의 장성 보축 이후에 작성

2. 이견

1) 주류 학계
ㅡ 3세기 말 북평지역으로 침입하는 선비족을 방비하고자 당빈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장성을 보축
ㅡ 313 년 낙랑군이 '서북한'에서 노룡 지역으로 교치, 또는 의무려 지역으로 교치 후 다시 노룡 지역으로 교치
ㅡ 태강지리지의 기술 내용은 당빈 당시인 태강 연간이 아니라 낙랑군 교치 이후에 작성
ㅡ 태강/진서 지리지 낙랑군 수성현은 진황도 지역이 아니라 노룡 지역

2) 비주류 학계
ㅡ 3세기 말 북평지역으로 침입하는 선비족을 방비하고자 당빈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장성을 보축
ㅡ 낙랑군은 '서북한'이 아니라 본래 위치인 의무려산 일대에서 노룡지역으로 교치, 또는 본래 위치인 현 요동 지역에서 노룡 지역으로 교치
ㅡ 낙랑군은 313 년에 교치되지 않았으며 그 이전에 교치, 또는 의무려 모용씨 세력 하의 낙랑/대방과 서진 통치 하의 낙랑/대방 병존
ㅡ 태강지리지의 기술 내용은 당빈 당시가 아니라 그 이후에 작성

3. 더 논의할 점

0) 비주류 학계의 일부 논자들은 노룡이 아니라 보정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 비주류 학계의 일부 논자들은  태강/진서 지리지 내용을 근거로 처음부터 한사군이 현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0과 연결)ㅡ하는 주장을 펼쳐 오고 있음

2) 노룡과 북평의 위치가 서진 시대와 당나라 시대가 달랐을 정황이 사서 곳곳에서 관찰되기도 한다

3) 서기 240 년을 전후한 소위 기리영 전투 시기에 이미 낙랑/대방이 하북성 지역으로 교치돼 있었을 가능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음

4. 본인의 견해

ㅡ 2-2)와 3-3)
ㅡ 다만 낙랑군은 애초 현 요동지역이 아니라 현 대릉하/의무려 일대에 있었다 판단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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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6-05 04:36
   
서기 3세기까지의 서북한과 낙랑군의 연계성 (후한서, 삼국사기, 삼국지 위서)은 낙랑군의 서북한 지역에 대한 지배력내지 영향력이라보다는 위만조선 시대에 위만조선의 이들 지역 (북한 및 남만주 제집단)에 대한 경제/문화적 지배력/영향력 하에서 형성된 교류창구로서의 역할을 위만조선 중심지에 설치된 낙랑군이 계승(또는 탈취)하였다 봐야 옳을 것이다
도배시러 18-06-05 04:54
   
가설 : 낙랑군 교치설 [서진3,700호 => 모용씨 천여가]
검증 : 교치된 낙랑군 지역에서 대동강 평양과 동일한 유물이 나오는가 ?
     
도배시러 18-06-05 05:05
   
교치된 낙랑군 지역 : 북위의 낙랑군 - 연성連城
연성의 위치 [백랑수가 북쪽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두갈래로 갈라져 남향하는곳]

북위가 초기에 북연을 공격할때 낙랑 사람을 옮겨와 북경 부근에 조선현을 설치... 이후에
북연을 점령하고 기존 낙랑지역의 치소로 연성을 두고 낙랑군이라 명명.
     
감방친구 18-06-05 05:43
   
이미 3세기에 들어서면 기존 한 요동군이 현 요하 동쪽으로 확연히 밀려버리기 때문에 이 시기 낙랑/대방은 대릉하 유역이 아닐까 생각되고요

모용씨가 성장하면서 조양ㅡ의무려 사이에 세 잡고 서진의 북평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서진은 일찌감치 호동이교위를 현 노룡ㅡ창려ㅡ진황도 근방으로 교치하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봅니다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로

그렇다면 애초 낙랑/대방 서쪽에 있던 백제(의 요서 근거지)는 어찌 됐을까
백제를 추적할 단초를 발견한다면 정말 획기적일 거 같습니다

4세기 백제의 성장과 고구려 위협,
그리고 5 세기 산동에 출현하여 북위와 대규모 전쟁

그 공백

5호 16국
감방친구 18-06-05 06:00
   
기리영 전투 전후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 기록은 최류가 양원왕을 두들겨 패서 양원왕이 용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는 북사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위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감방친구 18-06-05 06:33
   
정황상 두우의 소위 우갈석은 노룡의 갈석, 좌갈석은 진황도 갈석을 가리킨다
도배시러 18-06-05 06:43
   
영주는 거란땅 - 구당서 거란
거란(契丹)은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지역인 선비족(鮮卑族)의 옛 영토에 살고 있다. 당(唐)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동북쪽으로 5,300 리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와 인접하며 서쪽으로는 해국(奚國), 남쪽으로는 영주(營州)와 북쪽으로는 실위(室韋)에 다다르고 있다. 이 나라의 남쪽에는 냉형산(冷陘山)이 위치하고 해국의 서산(西山)과 서로 맞대고 있으며 영역은 사방 2,000리이다. 사냥을 일삼아 왕래하므로 사는 곳이 일정한 거처가 없다. 군장(君長)의 성씨는 대하씨(大賀氏)이다. 정예병사 43,000명인데 8부족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만약 군사의 징발이 있으면 각각의 부족에서는 모두 반드시 합의를 해야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거병을 할 수 없었다.

수렵은 각 부족별로 행하였으며 전쟁은 각 부족이 함께 수행하였다. 본래 돌궐(突厥)에게 신속하였으나 해와 함께 싸우기를 좋아하여 불리하면 청산(靑山)이나 선비산(鮮卑山)에 숨어 들어가 보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당서 거란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해동성국 발해),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도배시러 18-06-05 06:51
   
선비의 청산(靑山)이나 선비산(鮮卑山) => 거란땅이 됩니다.
          
감방친구 18-06-05 06:53
   
이거는 쭝궈가 고구려 강역을 고구려 중심지와 그 지방을 구분하여 기술하는 태도로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말갈 지역도 고구려 땅이 아닌 게 되는 것이죠
               
도배시러 18-06-05 07:00
   
영주의 위치에 대한 참고사항 입니다. [해국] 주의
     
도배시러 18-06-05 15:38
   
영주는 말갈땅 - 구당서 말갈
> 구당서 말갈
有酋帥突地稽者,隋末率其部千餘家內屬,處之于營州,煬帝授突地稽金紫光祿大夫、遼西太守。武德初,遣間使朝貢,以其部落置燕州,仍以突地稽爲總管。劉黑闥之叛也,突地稽率所部赴定州,遣使詣太宗請受節度,以戰功封蓍國公。又徙其部落於幽州之昌平城。會高開道引突厥來攻幽州,突地稽率兵邀擊,大破之。

말갈 추장 돌지계(突地稽)가 수나라때에 천여가를 이끌고 내속하여 영주에 살게 하였다. 수나라 양제(煬帝)는 돌지계에게 금자광록대부 요서태수의 벼슬을 주었다. 당나라 무덕 초에는 관리를 보내와 조공하였고 그 부락을 연주(燕州)로 삼고 돌지계를 총관으로 삼았다.
유흑달(劉黑闥)의 반란이 있었을 때, 정주(定州)에 와서 태종에게 사자를 보내와 절도(節度) 벼슬을 청하니, 전공(戰功)에 따라 시국공(蓍國公)에 봉하였다. 또 그 부락을 유주의 창평성(昌平城, 거용관 부근)으로 옮겼다. 고개도(高開道)가 돌궐의 군사를을 이끌고 와서 유주를 공격하니, 돌지계가 군병을 데리고 요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도배시러 18-06-05 07:17
   
신당서 연군성 燕郡城 이  북위 낙랑군 연성連城  부근일듯 합니다. 연성의 동남쪽에 여라성이 있었네요.
     
감방친구 18-06-05 09:09
   
연군성은 연군수착성의 준말이고
여라성과 여라수착성은 구분해야 할 거 같아요
중국역사지도집이었나 거기서는 호로도시 근방에 여라성을 찍어놨던데 기억이 확실치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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