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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5 22:32
[한국사] 이의민은 베트남계인가?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3,101  

이의민은 베트남계인가?

고려 무신정권 이의민 장군 - 소금장수 아들이 장군이 되다 t - KBS.jpg



1) 이의민(李義旼, ?~1196)은 최충헌(崔忠獻, 1149~1219)과 더불어 무신정권의 황금기를 연 인물로, 미천한 신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중부(鄭仲夫, 1106~1179)를 제거하고 등장한 경대승(慶大升, 1154~1183)에 이어 무신 최고 집권자로 12년간 권력을 쥔 인물이다. 1183년 7월 경대승이 나이 서른에 갑자기 병들어 죽자 그의 측근들은 모두 제거되고 정권은 이의민에게로 돌아갔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의민은 경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소금장수인 이선(李善)이며 어머니는 영일현 옥령사의 종이었다. 경주 이씨는 신라 6두품 출신이나, 부친의 직업으로 볼 때, 이의민 집안은 고려시대에 큰 영화를 못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이의민의 출생에 대해 최근에는 베트남 귀화인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이의민의 본관은 경주가 아니라 정선 이씨라는 것이 그것인데, 정선 이씨는 베트남 귀화 성씨로 그 시조인 이양곤(이양혼, 李陽尡, ?~?)은 안남국(安南國, 현 베트남) 남평왕(南平王)의 셋째 아들로, 고려 때인 12세기 초 금나라와의 전쟁을 피해 한반도에 들어와 경북 경주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의민이 정선 이씨라는 설이 맞는다면, 이양혼의 6대손이 된다.
(이양곤 혹은 이양혼(Lý Dương Côn, 李陽焜)은 정선 이씨(旌善李氏)의 시조이다. 베트남 대월국의 왕자이며, 리 인종의 셋째 아들이자, 5대 황제인 리 신종의 아우로 왕위 다툼 끝에 밀려나 송나라로 망명하여 관직 생활하던 중 북송 휘종 때 금나라와의 전쟁을 피하여 1123년 고려 인종 때에 이주해 경주에 정착하였다.)

2)  8척의 거구, 의종을 살해하다

이의민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거구였다. 큰 키만큼 힘이 장사였던 이의민은 젊은 시절 고향에서 형들과 함께 나쁜 짓만 일삼던 건달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고려 후기를 다소 부정적으로 서술한 [고려사]가 내린 것이어서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해도, 이의민은 다른 무인들에 비해 평가 절하한 측면이 더 크다. 이의민은 안찰사 김자양(金子陽)에게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두 형은 죽었으나 이의민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를 가상하게 여긴 김자양의 추천으로 경군에 발탁되었다.

경군에 들어간 이의민은 수박희(手搏戱)를 특히 잘해 의종(毅宗, 1127~1173)의 눈에 띄었고 대정을 거쳐 별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다가 정중부의 난에 가담한 공으로 중랑장 지위에 올랐으며 그 뒤 서경 조위총의 난 때도 전공을 세워 상장군까지 뛰어올랐다.

무신란 3인방 중의 한 사람인 이의민은 자신을 총애한 의종을 살해하는 일도 마다치 않은 인물이었다. 당시 이의민은 맨손으로 의종의 척추를 꺾어 죽였는데 힘센 그의 손이 닿자 의종의 등뼈는 뚝뚝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이 소리를 들은 이의민은 껄껄대며 웃었다고 한다. 그는 의종을 죽인 다음 시체를 이불에 둘둘 말아 가마솥 두 개 사이에 끼운 채로 연못에 내다 버리는 비정함까지 발휘하기도 했다. 이후 이의민은 의종을 죽인 공으로 대장군으로 승진하였고 당대의 권력자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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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대승의 죽음과 함께 권력을 쥔 이의민

무신란을 일으켰던 정중부가 경대승에 의해 제거되자 이의민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급기야 의종을 죽인 일로 경대승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경대승의 암살 위협을 피하고자 자기 집 골목과 대문까지 호위병을 세우고 있었는데 경대승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나도 죽이지 못한 경대승을 누가 먼저 죽였는고? 나보다 손이 빠른 놈이 있구만”하고 기뻐했다 한다.

하지만 이때는 경대승이 아닌 그의 측근 허승(許升, ?~1180)의 죽음이 잘못 전해진 것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경대승은 앙심을 품게 되고 겁에 질린 이의민은 병을 핑계로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 버렸다. 이후로 이의민은 명종(明宗, 1131~1202)이 여러 번 소환해도 오지 않았으며 경대승이 죽은 이후에도 혹시 그가 살아 있을까 두려워하여 좀처럼 미동도 하지 않다가 명종의 간청으로 마지못해 상경하였다.

경대승의 죽음과 함께 실권을 잡은 이의민은 중서문하평장사에 임명되고 공신의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의민은 무장 출신인 두경승(杜景升, ?~1197)이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앉아 있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하루는 중서성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는데 이의민이 두경승을 제압할 목적으로 힘자랑을 하고 나왔다. “어떤 사람이 힘자랑을 하기에 내가 이렇게 때려눕혔지.” 이 말을 내뱉은 후 이의민은 손으로 기둥을 내리쳤는데 그 힘에 서까래가 내려앉아 버렸다. 그러자 두경승도 이에 질세라 힘자랑을 했다. “어느 때 내가 빈주먹질을 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망치더라.” 그러면서 벽을 내리쳤는데 그만 벽이 무너져 버렸다.

 이 일이 있었던 후에도 두 사람은 중서성 회의 도중에 또다시 의견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때 이의민은 “네가 무슨 공이 있다고 나보다 지위가 높은 거냐?”고 외치며 주먹으로 기둥을 내리치는 등 자신의 직위가 낮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들 외에 당시 조정에는 무장 출신인 추밀원사 김영존(金永存, ?~?)과 추밀원부사 손석(孫碩, ? ~ 1196)도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대판 싸움을 벌이곤 했는데 항간에는 중서성과 추밀원의 이 같은 권력다툼을 빗대어 “중서성에는 이가와 두가요, 추밀원에는 손가와 김가로다”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또 어떤 문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이들을 조소하기도 했다.

나는 이가와 두가가 무섭더라.
위풍이 당당해서 진짜 재상 같거든.
황각에 앉은 지 삼사년에
주먹 바람은 만 번도 넘게 불었네.

4) 이의민 일족의 권력 남용

이의민은 권력을 잡은 이후로 본성을 드러내며 뇌물을 많이 받아먹는가 하면, 여러 민가를 빼앗아 자기 소유로 만들고 백성의 논밭도 수시로 빼앗곤 했다. 그의 포악성에 걸맞게 그의 아내 최씨도 성격이 모질던 여자였다. 한 번은 이의민이 자기 집 여종을 건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질투에 못 이겨 여종을 때려죽이기까지 했다. 최씨는 음욕도 대단해서 자기 집 머슴과 간통하다 이의민에게 발각되어 결국 쫓겨났다. 이의민도 부인 못지않게 여색을 밝혀 아내를 내쫓은 후로 양갓집 예쁜 규수가 있으면 아내로 삼았다가 싫증 나면 차버리기를 반복했다.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의 아들 지순, 지영, 지광도 횡포한 짓을 마음대로 했는데 특히 이지영(李至榮, ?~1196)과 이지광(李至光)이 더 심해 사람들은 이 두 형제를 ‘쌍도자(雙刀子)’라고 불렀다.

이지영은 자기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아무 때나 죽이고 아름다운 부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기만 하면 그녀의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서 꼭 겁탈했으며, 또 길에서 미모가 뛰어난 부인을 만나면 사람을 시켜 강제로 끌어다가 욕을 보이는 등 변태적인 만행을 수없이 저질렀다. 나중에는 명종이 총애하는 여자까지 겁탈하기도 했는데 왕이 처벌하지 못하자 조야가 비웃으며 개탄해 마지않았다. 아들 못지않게 이의민의 딸 역시 방종하고 음탕하기가 그 어머니와 다를 바 없어 심지어는 남편 이현필이 더럽다며 함께 살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의 아들 진옥 또한 별장직에 있으면서 그 행패가 대단했다.

이렇듯 자식들과 더불어 권력을 남용하던 이의민은 급기야 자신이 왕이 될 꿈마저 꾸었다. 이의민은 일찍이 홍예(紅霓, 붉은 무지개)가 양쪽 겨드랑이 밑에서 일어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용손이 12대에 끊기고 십팔자(十八子)가 일어난다’는 참위설을 자신과 결부시켜 고향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를 부흥시킬 야심을 품었다.

이에 이의민은 당시의 남적 가운데서 신라 부흥을 내걸었던 운문의 김사미(金沙彌, ?~1194)와 성주의 효심(孝心, ?~?) 등과 내통하고 김사미와 효심에게서 많은 재물을 받아내기도 했다. 1193년(명종 23년)에는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李至純, ?~1196)이 대장군 전존걸(全存傑, ?~1193)과 함께 남적을 토벌하러 내려갔는데 이지순이 그의 부친 이의민을 왕위에 앉힐 목적에서 김사미와 효심과 내통하여 군수품을 보내주고 군사기밀도 일러주기까지 했다. 이지순의 내통으로 관군은 남적을 토벌할 수가 없었고 이에 분개한 대장군 전존걸은 “내가 이지순을 처벌해도 그 아비 이의민이 나를 해칠 것이고, 내버려 두면 남적이 더욱 창궐할 것이니 이 죄를 누가 져야 하느냐”라고 한탄하며 자진해 버렸다.

5) 이의민의 실각과 최충헌 형제의 등장


1196년 이른 봄, 이의민의 아들 지영이 상장군 최충헌의 아우로 동부녹사이던 최충수(崔忠粹, ?~1197)의 집 비둘기를 강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에 앙심을 품은 최충수는 그 길로 그의 형 최충헌을 찾아갔다. 흥분한 최충수가 이의민을 암살할 뜻을 전하자 최충헌은 잠시 머뭇거리다 곧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마침 왕이 보제사(普濟寺)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의민은 병을 핑계로 수행을 거부하고 몰래 미타산 별장에 가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최충헌과 최충수는 별장으로 가서 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윽고 이의민이 그곳을 떠나려고 말을 타려 할 때 달려들어 죽였다. 이의민의 암살에 성공한 최충헌은 곧 개경으로 올라와 이의민의 머리를 거리에 효수하고 감행령장군 백존유의 도움을 받아서 곧 군사를 소집했다.

이런 급보가 전해지자 보제사에 있던 명종은 급히 환궁하였고 이날 왕을 수행했던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과 이지광은 최충헌의 부하들과 맞서 싸우다 수세에 몰려 도주해 버렸다. 이지순과 이지광 일당이 도망치자 최충헌 형제는 곧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가서 명종을 알현하고 이의민 일당을 토벌할 것임을 알렸다.

 이윽고 명종의 허락을 받아낸 최충헌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어 이의민 일당이 도망가는 것을 막고 하나하나 체포해 나갔다. 그리고 장군 한휴를 시켜 이지영을 체포하게 했는데, 이때 이지영은 안서도호부(해주)에서 기생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다 잡혀 죽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해주 백성들은 “이지영이 죽었으니 우리는 이제 걱정이 없게 됐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최충헌은 이의민의 3족을 멸하고 각 지방에 사람을 보내어 이의민의 도당들과 노예까지 다 잡아 죽였다. 이 무렵 도망쳤던 이지순과 이지광이 돌아와 잘못을 빌었는데 최충헌은 “네 놈들이 화근이니 용서하지 못한다”며 모두 죽였다.

 최충헌 형제의 정변으로 1184년(명종 14년)에서 1196년(명종 26년)까지 13년간 지속된 이의민 정권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고려사] 이의민 열전에는 그의 실각을 예고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 한토막이 실려져 있다.

“이의민은 까막눈에다 무당을 몹시 신봉하였다. 그의 고향 경주에 나무로 만든 귀신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두두을(豆豆乙)’이라고 불렀다. 이의민은 자기 집에다 사당을 짓고 그 귀신을 가져다가 날마다 제사하면서 복을 빌었는데 하루는 사당에서 귀신의 곡성이 들렸다. 괴상히 여긴 이의민이 연유를 물으니 그 귀신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너의 집을 오랫동안 지켜주었는데 이제 하늘이 재화를 내리려 하니 내가 의탁할 곳이 없어져 울고 있는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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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6-05 22:49
   
정선 이씨의 시조라는 베트남 왕자(?)가 금나라와의 전쟁을 피해
고려에 정착했다는 구절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네요!

물리적으로 금나라와 베트남 사이에는 남송이 가로막고 있어
금나라가 베트남에는 도저히 위협이 되지 못하는 위치인데....
     
호랭이해 18-06-05 22:52
   
베트남 -> 송 -> 고려
     
Tenchu 18-06-06 10:21
   
윗글그대로.. 북송에 망명했다가 금나라 위협에 고려에 이주했다는건데.. 1123년이면 북송 망하기 4년전이고 당시는 송금이 연합해서 요나라 치구서 금이 송나라 위협할때네요.
히스토리2 18-06-05 23:13
   
이양곤 혹은 이양혼(Lý Dương Côn, 李陽焜)은 정선 이씨(旌善李氏)의 시조이다. 베트남 대월국의 왕자이며, 리 인종의 셋째 아들이자, 5대 황제인 리 신종의 아우로 왕위 다툼 끝에 밀려나 송나라로 망명하여 관직 생활하던 중 북송 휘종 때 금나라와의 전쟁을 피하여 1123년 고려 인종 때에 이주해 경주에 정착하였다.
     
촐라롱콘 18-06-06 00:18
   
본문 내용 바로 뒤에 부연설명이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군요...!!!

제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히스토리2 18-06-05 23:15
   
죄송요 ......
ParisSG 18-06-06 01:07
   
훗날에 고려로 귀화한 이용상도 화산군이란 작위가 주어졌는데
이양혼도 왕족으로 왔으면 귀족 작위는 주어졌을텐데
6대만에 노비 출신으로 떨어진게 이상하긴하죠
Korisent 18-06-06 08:42
   
왕족출신이었는데 소금장수?
     
지수신 18-06-11 11:49
   
고구려 미천왕이 된 소금장수 을불이 생각나네요 ㅎㅎ
히스토리2 18-06-06 18:48
   
정선 이씨의 시조 이양혼

이양혼은 리 왕조의 4대 황제 인종 이간덕의 셋째 아들로 리 왕조 5대 황제 옹립과정에서 장남인 형 이양환이 태자가 되자 혼란을 피해 송나라로 피신했으나 같인 피신한 동생 이양완이 송나라에서 살해되자 불안스러워 고려로 망명했다.

당시 고려로 망명했을때도 항구로 망명하지 못하고 경주로 은밀하게 피신했다고 한다. 그런 위급 상황에서 가족과 지천명의 몸으로 신변의 안전을 위해 황자의 신분을 감출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이양혼이 고려의 경주에 뿌리내려 생겨난 분파가 바로 정선 이씨이다. 그리고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유명한 맹장이자 괴력을 가진 금강야차 이의민은 이양혼 황자의 손자이다.
히스토리2 18-06-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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