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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7 09:00
[기타] 왜구 잡던 '최강' 궁기병을 몰락케 한 치명적 선택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3,549  

https://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214686148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64호
필자 임용한
인터비즈 박근하 정리
inter-biz@naver.com

군사 분야에서 우리나라 군대의 전통적인 장기는 무엇일까? 요즘도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궁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에 기병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재상과 장군들이 손꼽는 우리의 최고 장기는 기병과 활의 결합, 즉 궁기병(弓騎兵)이었다. 

궁기병은 얼마나 위용을 떨쳤던 걸까?

조선 궁기병의 실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강릉을 침공한 적이 있었다. 이때 강릉의 말단 병사'이옥'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단신으로 말을 타고 해안에 자리 잡은 왜구의 진지로 달려가 화살을 퍼부어댔다. 그를 잡기 위해 왜구가 구름 같이 몰려나왔다. 화살이 떨어진 이옥은 말을 되돌려 해안의 방풍림 속으로 달아났다. 숲속에는 미리 숨겨놓은 화살 수백개가 나무 곳곳에 꽂혀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달리며 이 화살들을 뽑아 왜구를 쏘고 다시 달리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작전을 구사했다. 아슬아슬하게 왜구를 근접시켜 놓고 활을 쏜 후 살짝 달아나는 전술을 쓴 것이었다. 저녁이 되어보니, 화살에 맞아 죽고 부상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이옥 단 한명에게 우롱당해 전력을 크게 상실한 왜구는 결국 강릉 약탈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의외로 임진왜란 전까지 백병전에 관한 한 왜구는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이런 백병전의 달인을 상대로 조선이 육상전을 자신했던 근거가 바로 이옥과 같은 궁기병이었다.

최고의 말(馬) = 궁기병의 기본

궁기병의 핵심은 우수한 종마(種馬)에 있었다. 전쟁에서 싸워 이기려면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말도 보통 말로는 어림없었다. 우수한 말을 얻으려면 먼저 우수한 종자를 얻어야 한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신무기 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지만, 옛날 제국들이 말에 들인 정성과 비용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최고의 명마는 징기스칸의 전설을 이룬 몽골말이다. 오늘날의 경주마를 연상시키는 멋진 근육과 잘 빠진 몸매를 가진 서역 말도 꽤 인기를 끌었지만, 의외로 겉보기엔 볼품없어 보이는 몽골말이 가장 주목받았다. 체격은 조랑말보다 약간 큰 정도고, 머리는 말과 당나귀의 혼혈처럼 느껴질 정도로 크고 둔탁하다. 그러나 이 말은 세계 최고의 지구력과 체력, 열대에서 한대까지 어디든지 가는 강인함과 인내심을 갖췄다. 물론 몽골말이 모든 점에서 일등은 아니다. 순간적인 힘과 스피드는 체격이 좋은 서역마가 우위였다고 한다. 그러나 군마로서의 보편적 자질은 몽골말이 우위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말은 과일나무 밑으로도 지나간다고 해서 과하마(果下馬)라고 불린 조랑말이었다. 덩치는 작아도 체구에 비해 놀랄 만큼 힘이 세고 강건했다. 다리도 짧아 산길도 잘 다녔다. 그런데 고분벽화에 묘사된 고구려 기병을 보면 고구려 군이 탔던 말은 조랑말보다는 크다. 만주 지역에서도 몽골종의 영향을 받아서 좋은 말이 생산됐고, 후대에는 여진족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고구려 군이 탔던 말도 이 만주의 품종이 아닌가 싶다. 고려시대에는 순수 혈통의 몽골말이 수입됐다. 고려와 원나라가 사돈국이 되면서 몽골종을 제주도에 들여와 방목했고, 이 말들이 멸종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조선시대까지 혈통이 이어졌다. 

조선의 국영 목장 제도

조선은 군마의 품종을 보존하고 양성하기 위해 국영목장 제도를 시행했다. 전국에 60∼100개 정도의 목장을 설치하고, 2만∼4만 마리의 말을 사육했다. 하지만 목장 운영의 전성기에도 군마의 조달은 골칫거리였다. 목장 제도에도 불구하고 말 값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제일 좋은 말은 한 필 값이 쌀 30가마가 넘었다. 이것은 일반 자영농의 1.5∼2년 치 생산량, 또는 남자 종 6∼7명 값이었다. 그런데 기병은 전마 한 필에 수송용 말 한 두 필은 있어야 했고, 이 말을 돌보려면 최소한 종 한두 명은 거느려야 했다. 수송용 말을 전마의 반값으로 쳐도 이를 합하면 종이 최소 12명 이상은 있거나 3∼4년 치 수입 전액을 투자해야 출동준비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것도 개인 장비(무기와 갑옷)와 말 갑옷 비용(이 비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은 뺀 수치다. 

말 값이 비싼 이유는 공급 부족 때문이었다. 국영 목장은 조선의 국방력을 좌우하는 정부의 야심 찬 프로젝트였지만, 목장의 생산성은 형편없이 낮았다. 목동은 인도의 카스트처럼 신분제도에 의해 직업이 고정된 사람들이고, 말을 잘 키워봤자 보수도, 판매 수익도 기대할 수 없었다. 관에서는 1년에 번식시킨 새끼의 수를 매년 점검해서 목동을 평가하고 생산율이 낮으면 처벌했다. 그러나 이런 행정적인 수단으로 말의 질까지 평가할 수는 없었다. 좋은 말은 관리와 훈련이 필수인데, 목동에게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이 아니라 말의 질까지도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제도는 결코 시도되지 않았는데, 질이란 주관적 평가이고 감정의 공정성을 보장할 방법도 없었다. 조선의 행정 체제는 아주 세밀하고 엄격했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경직돼 있어서 이처럼 부정의 소지나 가시적 기준이 없는 제도는 결코 도입하지 않았다. 그러니 군마 양성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품종 개량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기껏 몽골이나 여진족의 말을 수입해 놓아도 ‘질보다 양’이므로 엄격한 교배를 통한 품종 유지에는 신경 쓰지 않아 금세 잡종으로 변해버렸다.  

정부는 이 문제를 알고 민간에 불하하는 방법도 써 보았다. 하지만 조선은 농본국가라 말 시장이 크지 않았고, 말을 키우는 비용에 비해 수익성은 형편없었다. 말을 불하받은 사람은 말을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기는커녕, 말을 받은 대가로 국가와 관청에서 필요할 때마다 말을 제공해야 했다. 이것은 무상 대여였고, 말이 죽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결국 17세기 이후로는 목장 제도가 점점 더 쇠퇴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에서도 탐을 내던 말이었지만 품종은 단종되다시피 했고, 조선 후기가 되면 웬만한 정예 기병들은 만주에서 수입한 말을 탔다. 이 때문에 목장을 재건하자는 주장과 아예 재원을 마련해서 대대적으로 말을 수입하자는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다. 

사실 조선시대에 목축업은 의외로 번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몽골종 말을 보존하고 개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중국 시장이라는 큰 수요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조선의 군마들은 관리가 안 되다 보니 모두 조랑말로 변해버렸다. 조선군의 주력이 기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이 모든 결과가 농본정책에 따라 민간의 산업진흥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고 통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오늘날 선진국은 군에도 아웃소싱과 민간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효율성과 성장을 위해서는 경쟁과 보상체제의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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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늑대 18-06-09 01:15
   
조선의 기병을 망가뜨린건 태종이었죠
명은 조선의 기병이 요동을 넘어올까 두려워
조선 조정을 엄청 압박했는데
이에 빡친 태종이 조선의 말이란 말은 죄다 명에게 보냄
그러다보니 조선의 기병도 줄어 들었죠

임란때 기존에 있던 기병만 있었어도 초반에 제압했단 말도 있습니다
     
국산아몬드 18-06-09 02:27
   
왜군이 조총으로 신립의 8천 기병대를 전멸시키지 않았나요? 이여송의 기병대도 왜군의 조총앞에 무력했고요. 남원성 전투에서 양원의 기병대도 마찬기지였고. 일본도만 사용하던 왜군상대로는 기병이 효과적이었겠지만 조총을 사용하면서 기병의 효력도 약화되었습니다.
          
자기자신 18-06-09 03:10
   
신립의8,000명 모두가 기병대가 아니고요 기병대가 더 많았을뿐이예요 보병도 있었습니다 이여송의명나라군기병대도 정면에서 당하게 아니라 기습으로 당한것군요 산속 숲에서 매복해있다가 지나갔는 명나라군기병대한테 조총을 쏘아서 이긴것  남원성전투도 성안에서 싸워기때문에 기병대가 별로 위력을 못발휘한것예요 더구나나 양원이 이끄는 명나라군은 고작 3,000여명 그에 반해 일본군은 56,000여명 일본군이 10배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군요 애초부터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였죠 수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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