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자 一道安士, '김상'의 저서 '삼한사의 재조명' 1,2권을 드디어 독파했습니다.
그가 이 게시판에서도 '홈사피엔스'라는 필명으로 잠시 활동하다 홀연히 떠나셨던 모양입니다.
남아있는 ‘홈사피엔스’의 글들을 보니 과연 그분다운 논리와 태도입니다.
아무튼
10여년 전 인터넷 공간에서 스쳐보았을 때보다 100배쯤 더 놀라운
'계몽'의 충격이 책을 읽는 내내 휘몰아쳤습니다.
그동안 끊없이 이어져 왔던 해묵은 의문들이 차례로 해소될 때의 그 쾌감이란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한다고 깔짝거렸던 제게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과 함께^^
그가 2권의 저서에서 보여준, 불완전하고 왜곡된 역사기록을 대하는 참된 역사가의 자세와,
그의 통찰력으로 재구성한 '삼한시대'의 역사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 큰 선생님이 제 눈앞에 계시다면 큰절이라도 하고 싶더군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왕력을 가만히 보면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경우, 도저히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즉위년수와 계승구도가 나옵니다.
서기 2세기에 이미 ‘인생은 70부터’이고 ‘120세 시대’를 살았던
외계인 종족이 아닌가 싶은 고구려의 태조/차대/신대 이른바 3대왕대
그에 준하는 장수를 과시하는 백제의 다루/기루/개루 이른바 3루왕대와,
뭔가 수상한 ‘둘째 아들(第二子)’들, 그리고 즉위와 사망만 전하는 이상한 왕들.
시공간을 제멋대로 워프하는 듯한 신라본기 초기기록.
황당무계한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왕력, 특히 김수로왕의 상식을 벗어난 장수 등.
그래서 강단 주류는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삼국사기 초기기록도 소설 취급하며 무시합니다.
물론 일부, ‘주류 내 비주류’라 할 만한 몇몇 이들이 신빙론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단지 ‘나는 믿는다’는, 그저 권위와 감성에 기댄 공허한 선언일 뿐이었습니다.
명백히 모순 투성이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정체를 논리적으로 통합 분석해낸 연구는, 제가 아는 한 없었습니다.
재야사학자 一道安士의 ‘삼한사의 재조명’ 이전까지는 말입니다.
삼국사기는 소설이 아니며, 단지 여러 이유로 왜곡되었을 뿐인 역사기록입니다.
이것은 최근 흔한 삼류 역사가들에 의해 ‘판타지 소설’로 낙인찍혔고,
민족주의적 감정까지 더해 심지어 ‘쓰레기’취급받고 있는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너무 많이 왜곡되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서기는 사실을 담고 있는, 게다가 대체불가한 귀중한 역사서입니다.
일본서기 읽기를 포기한다면, 동북아 고대사 특히 백제사와 삼한사 연구는
단언컨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재야사학자 一道安士에 의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기록의 이면을 읽어내는 재해석 작업을 통해 원형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원형을 복원해 놓고 나면, 삼국사기가 얼마나 정밀한 기록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재해석 작업의 방식은 어쩌면 기존 역사학의 상식에 위배될지도 모릅니다.
기존 역사학의 소위 ‘실증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에겐
이것은 ‘관심법’같은 허무맹랑한 짓거리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료를 그저 글자 그대로 읽기만 해서는 역사를 복원할 수 없습니다.
대개 사료의 본질이란 목적에 의해 왜곡된, 하나의 텍스트일 뿐입니다.
그것을 경전 읽듯 주워섬기는 것은 역사가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냥 읽기만 해도 역사가 복원된다면, 역사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동양 고문서의 글자는 한학자가 훨씬 더 잘 읽습니다. 한학자만 있으면 됩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소위 실증주의의 대명사 랑케는 19세기 사람입니다.
그 이후 2백년 간 눈부시게 성취된 현대 인류의 인식론적 진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런 학문은 아무런 이로움도 없으며, 자원의 낭비일 뿐이므로 도태되고 폐지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