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40 대 남자로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가가 아직 시골 그곳에 그대로 있다
본인의 어린 시절 시골 풍경을 떠올리면
비포장 신작로가 있었고
가을 추수 끝나면 아버지들은 이 산, 저 산으로 겨울 땔감용 나무를 하러 지게 지고 다녀오시곤 했다
우리 마을은 하천을 따라 그 가에 형성된 곳이라서
개울은 놀이터였다
여름에 장마가 들면 주변 논밭 토사가 유실되고 다리와 도로가 끊기고 했다
장마 뒤에는 하천 변으로 아주 넓게 갈대밭이 형성됐다
장마 때가 아니라도 개울가는 늘 질었다
주변에서 무수한 천연 도랑이 개울로 흘러들었고
미나리꽝이 이곳저곳에 있었고
거머리들이 득실댔다
고대로 가보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부락이라면
농지확보를 위해서 하천변을 개간하고 둑을 쌓고 수로를 파서 물길을 만들어 물을 빼고 길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가 아니라 목초지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이라면 어찌했을까?
지금의 적봉ㅡ승덕ㅡ조양 지역은
무수한 강하가 이리저리 엉겨있다
그리고 그곳에 북적이니 오환이니 선비니 해니 거란과 같은 유목민족이 몰려들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