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자료를 통해 추정복원 가능한 한국 고대사에는
크게 2가지 갈래의 종족/문화/정통성 흐름의 계통이 보입니다.
단군조선->북부여->고구려/백제로 이어지는 계통이 하나이고
은나라->기자조선->마한->삼한->신라로 이어지는 계통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그런데 전자는 금석문과 고고학 자료(에 대한 주관적 해석) 및
자국의 후대 문헌(삼국사기/삼국유사/제왕운기)과 '위서'들(뭔지 아시죠?)을 통해 추정되는 계통인 반면
후자는 타자인 중국 측의, 비교적 당대와의 시간간격이 짧은 문헌에 나타나는 계통입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더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고
그 존재 논의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양자가 상호 배격하는 모순관계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자는 상호 보완적 역사상 재구성이 가능한 병존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강단주류에서는 어떤 역사상을 취하고 있는가 하면
두 계통을 모두 부정하고 있습니다.
'단군조선은 고려시대에 날조된 신화'이고
'기자조선은 중국에서 한대 이후 날조된 허구'라고 보는 것이
한국 사학계 강단 주류의 견해입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사의 시작은 한나라의 망명자 위만이 세운 찬탈정권과
그 나라의 '전신'인 '준왕이 다스리던 조선'이 됩니다.
주류 한국사에서 말하는 소위 '고조선'이란,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위만조선과 그 전신인 준왕조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준왕조선은 곧 기자조선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물론 준왕이 등장하는 기록엔 '-기자-의 40여세 후손인 -기준-'이라고 되어 있지만
강단 주류는 준왕의 -출자-는 날조이고, 준왕의 -존재-만 사실이라는 '선별적' 사료읽기를 합니다.
참 편리하죠? 내맘에 드는 부분만 사실. 내맘에 안드는 부분은 날조.
요즘 '뷔페'뭐시기가 유행이라던데... 이분들도 뷔페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최근 중국에서는 기자조선도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견해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소위 동북공정의 배경과 실상에 대해 좀 알아보면,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에 대한 한국사학계 강단 주류의 반응입니다.
선제적 대응을 하는 모양입니다.
중국 학계에 대응해서요? 아니요 한국 비주류에 대응해서요.
'기자조선을 사실로 보는 자들은 중국 동북공정의 앞잡이다'라며
국수주의적 감성을 앞세워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조선이 중국사라면 위만조선은 더 명백한 중국사입니다.
그리고 위만조선을 시조격으로 놓는 강단 주류의 한국사 계통을 따른다면,
한국사는 전체가 다 모조리 중국사가 됩니다.
강단 주류 '한국사'의 계통은
위만조선->한군현->삼국->통일신라->고려 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국수주의적 감성 선동이 역사관을 지배하는 사정이
일본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일본 문명의 시작이 한반도 계열 '도래인'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진 지가 오래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우익과 국수주의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열도의 신성성과 만세일계 천황가의 존엄성'수호를 위해
'도래인의 정체성'을 놓고 정체성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한국 강단주류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도래인'의 -존재-만 인정하고 -출자-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래인'들이 '한반도'나 '백제'에서 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륙'에서 왔다고 뭉뚱그립니다.
일본 학계 우익들이 한국 학계 강단주류에게 배운 걸까요?
그럴리가요. 당연히 그 반대입니다. 근현대사가 명백히 증언합니다.
그런데 일본 우익 사관이 말하는 그 '대륙'이란 어디일까요?
물론 한반도나 중국대륙은 아닙니다.
시베리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어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실질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우익에게 있어 자기들 고대 문명의 출자는 반드시
'시베리아'로 표상되는, '중국도 한국도 아닌 그 어떤 곳'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일본 문명은 '대륙 지나 문명'과 대등한 '독자적 해양 문명'의 위상을 얻을 수 있고
'시베리아'를 통해 서역과 연결됨으로써 '탈아입구의 역사적 연원'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오사카의 초대형 전방후원분, '응신릉'과 '인덕릉'을
일본제국 패전 후 미국인들이 발굴(이라 쓰고 도굴이라 읽습니다)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나온 유물들 중 일부가 미국의 보스턴 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일본 정부에서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시치미 뚝 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발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 하다가 말고 덮어버렸다고 합니다.
보스턴 박물관이 보유한 일본유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발굴한 것이 아니라 홍수로 무덤이 붕괴되어 유출된 것을 습득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즉, 지금이라도 '응신릉'과 '인덕릉'을 발굴한다면
보스턴에 간 것보다 훨씬 많은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본 정부는
일본 고대사의 핵심적 열쇠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큰 두 고분에 대한 조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진실이 두려운 모양입니다.
두서없이 긴 글을 쓴 이유는
속지주의적 국가관념과 국수주의적 감성 선동이 지배하는
한국사와 일본사 체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입니다.
한민족의 근원 중 하나가 기자조선이라면
기자조선은 은나라 유민이 세운 나라이므로 은나라의 후계입니다.
그렇다면 은나라는 '중국사'이므로 한국사 전체가 중국사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반대로 은나라 역사가 한국사 계통에 포함되어야 할까요?
일본 문명의 근원은 '백제계 도래인'입니다.
뭉뚱그려 '도래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백제 그 자체가 열도로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제는 '한국사'이므로 일본사 전체가 한국사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반대로 백제사가 일본사 계통에 포함되어야 할까요?
비슷한 사례가 서양에 있습니다.
영국의 문명적 근원은 켈트족 원주민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브리타니아 지배에서 비롯됩니다.
아더왕 전설의 역사적 배경은 로마가 멸망하던 서기5세기 말경으로 추정하는것이 보통입니다.
그렇다면 로마는 '이탈리아사'이므로 영국사 전체가 이탈리아사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반대로 로마사가 영국사 계통에 포함되어야 할까요?
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속지주의적인 국가관념 영토관념과
국수주의적인 감성선동을 걷어내고 본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