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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8 12:02
[기타] 삼조선 분립의 시작 - 조선상고사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07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51274&cid=56779&categoryId=56779&expCategoryId=56779

대단군이 정한 제도에서는 삼한이 삼경에 각각 주재했다. 삼한 중 신한은 대단군으로서 제사장 겸 정치 지도자였고, 말한·불한은 신한을 보좌하는 부왕에 불과했다. 
조선은 이렇게 나라의 체제를 확립했기 때문에 삼조선이란 명칭이 없었다가 삼한이 분립된 뒤에야 생겼다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그렇다면 삼한은 언제 분립된 것일까? 《사기》에 나타난 진·막·번 조선은 전연시() 즉 연나라의 전성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연나라의 전성시대는 전국시대 초반이다. 
발조선이 기록된 《관자》는 춘추시대 관중의 작품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위작이다. 
발숙신이 기록된 《대대례》는 한나라 사람인 대승의 작품이지만, 발숙신에 관한 부분은 제나라 사람인 추연이 말한 것이다. 추연이 전국시대 인물이었기 때문에, 신·말·불 삼조선이란 명칭이 그의 입에서 거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삼조선의 분립은 중국 전국시대의 일이다. 전국시대는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니, 그 이후에 신·불·말 삼조선이 분립한 것이다.

신조선의 왕족은 해()씨로 대단군왕검의 자손이라고 불렸고, 
불조선의 왕족은 기()씨로 기자의 자손이라고 불렸다. 
말조선의 왕족은 한()씨로, 선조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왕부의 《잠부론》에서 “한서(西) 역시 성씨가 한()이며, 위만의 공격을 받아 바다 가운데(한반도를 의미_옮긴이)로 옮겨 갔다”고 한 것을 보면, 한서는 말조선에 속했고 말조선의 왕족은 한씨였다고 볼 수 있다. 
《위략》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는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지는 것을 보았다. 이때 연나라가 스스로를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을 노려 땅을 빼앗으려 했다. 조선후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군대를 일으켜 연나라에 반격을 가함으로써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자 했다. 대부 예()가 반대하므로 중지하고, 예를 서쪽으로 사신으로 보내 연나라를 설득하도록 했다. 이로써 연나라를 억제하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위략》은 서양 백인종인 대진() 즉 로마까지도 중국인의 자손이라고 말한 책이다. 가장 중국적이라 할 수 있는 병리적 자존심을 발휘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 전체를 맹신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신한·말한·불한을 진한·마한·변한으로 음역했다. 
신한은 어떤 경우에는 태왕이나 대왕으로 의역됐다. 따라서 신한은 한자로는 조선왕이라고 표기됐을 것이다. 
말한·불한은 의역하면 좌보·우보이므로, 한자로는 조선후라고 표기됐을 것이다. 기자는 불한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위략》에서 조선후로 부르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불한의 조선후인 기씨가 신한의 조선왕인 해씨를 배반하고 스스로 조선왕(신한)이라 칭함으로써 삼조선 분립의 국면을 열었다. 
불한이 신한을 자칭한 것은 연나라가 왕을 자칭한 뒤였고, 연나라가 왕을 자칭한 것은 《사기》에 따르면 주나라 신정왕 46년 즉 기원전 323년이다. 
이는 신·말·불 삼조선이 분립한 시점이 기원전 4세기경이라는 확증이 된다. 
대부 예는 모사꾼 중의 모사꾼이었다. 불한을 권유하여 신한을 배반하고 신한이라고 자칭하도록 하고, 불한과 연나라가 결탁하도록 한 인물이다. 대부 예는 삼조선 분립을 주동한 인물일 것이다.

삼조선 분립 이전에는 신한이 하나뿐이었으나, 분립 이후에는 신한이 셋이나 됐다. 신조선의 신한이 하나요, 말조선의 신한이 하나요, 불조선의 신한이 하나였으니, 세 명의 대왕이 있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조선 분립의 시작 (조선상고사, 2014. 11. 28., 역사의 아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51276&cid=56779&categoryId=56779&expCategoryId=56779
삼조선이 분립된 지 얼마 뒤, 신조선왕인 ‘모갑(, 성명을 알 수 없는 사람 중에서 첫째 사람이란 의미_옮긴이)’이 영민하고 용맹스러워 말·불 두 조선을 다시 연합시켰다. 
오늘날의 동몽골 지역을 공격해 선비족을 정복하고, 연()나라를 공격해 우북평(지금의 영평부)1)과 어양(지금의 북경 부근)과 상곡(지금의 산서성 대동부) 등지를 다 차지했다. 
불리지 때의 고토를 회복한 것이다. 
러자 연나라왕이 크게 두려워했다. 그는 신조선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고 신하를 자처하며 태자를 인질로 보냈다.

모갑이 죽고 ‘모을(, 위의 모갑의 후계자_옮긴이)’이 신조선왕이 된 뒤, 연나라 태자가 귀국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장군 진개를 왕자로 속여 인질로 보냈는데 모을은 속임수를 깨닫지 못했다. 
진개의 민첩하고 영리함에 빠진 모을은 진개를 늘 자기 옆에 두었다. 
진개는 모든 군국의 기밀을 탐지한 뒤 연나라로 도망쳐 돌아갔다. 
그러고는 연나라 군대를 끌고 와서 신조선을 기습했다. 그는 신·말·불 삼국 수비대를 돌파하고 서북 변경, 그러니까 이전에 신조선왕 모을이 점령한 상곡·어양·우북평 등지를 탈취했다. 더 나아가 불조선을 기습하여 요서(오늘날의 노룡현)와 요동(오늘날의 요양 부근)을 함락했다.

진개는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에 5군()을 설치하고 2천여 리의 장성을 쌓아 조선을 견제했다. 
《사기》 〈조선 열전〉의 “연나라의 전성기에 진번조선을 침략해서 복속시켰다”와 《사기》 〈흉노 열전〉의 “연나라에 진개라는 명장이 있었다. 동호에 인질로 갔더니 동호에서 그를 매우 신뢰했다. 귀국한 뒤 동호를 습격하여 격파하니 동호가 천여 리나 물러났다. ······ 연나라도 장성을 수축하니 조양에서 양평까지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군을 설치했다”와 “연나라가 이에 장군 진개를 보내 그 서쪽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땅을 빼앗으니 만반한(滿)까지 이르렀다”는 모두 이 일을 가리킨다.

그러나 진개가 인질로 간 조선은 신조선이지 불조선이 아니다. 
또한 만반한은 불조선이지 신조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에서는 이를 〈흉노 열전〉 및 〈조선 열전〉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위략》은 〈조선 열전〉에서 이것을 다루었으나, 진개가 인질이 된 사실은 다루지 않았다. 
만반한은 조선 역사지리상의 중대 문제이므로 본편 제3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불조선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을 막고자 중국 북방에 장성을 쌓은 나라는 비단 연나라만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직예(수도의 직할지란 의미_옮긴이) 서부의 절반과 하남성 북부와 산서성을 차지한 조()나라의 무령왕도 지금의 산서성 북부에 장성을 쌓았다. 
이 장성은 조선과 조선 속국인 담림·누번 등으로 인해 쌓은 것이다. 지금의 섬서성을 차지한 진()나라의 소왕도 장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의거()를 멸하고 흉노를 막기 위해서였다. 의거는 본래 조선의 한 종족으로 지금의 감숙성으로 이주한 뒤, 성곽과 궁궐을 건축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상당한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의거는 병력으로 진나라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시황의 고조모인 선태후는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는 의거가 진나라를 멸망시킬까 두려워하여, 의거왕을 유혹하고 통정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마침내 의거왕을 진나라로 끌어들여 살해하고 두 아들까지 죽인 뒤 그 나라를 기습하여 멸망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조선의 서침과 연·조·진나라의 장성 (조선상고사, 2014. 11. 28., 역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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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7-08 14:59
 
○ 사마천의 사기
史記 卷43 趙世家 第十三 武霊王 조세가 무령왕 [연나라의 서쪽 조나라]
吾国東有河、薄洛之水, 與斉、中山同之, 無舟楫之用.
自常山以至 代、上党, 東有燕、東胡之境, 而西有樓煩、秦、韓之邊, 今無騎射之備.
故寡人無舟楫之用, 夾水居之民, 将何以守河、薄洛之水;変服騎射, 以備燕、三胡、秦、韓之邊.

우리나라(吾国)는 동으로 황하와 장수(漳水)로서 제나라의 중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배를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상산(常山)에서 대(代), 상당(上黨)에 이르는 동쪽은 연나라, 동호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으로 누번, 진(秦)나라, 한(韓)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과인은 배를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물(夾水)에서 사는 인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황하와 박락수(薄洛水)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복장을 바꾸고 말을 타고 활을 쏨으로써 연나라, 삼호(三胡), 진(秦)나라, 한(韓)의 변경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령왕 [武霊王] - 한글 번역문 (사기: 조세가(번역문), 2013. 5. 1.)
감방친구 18-07-11 16:05
 
이거 제가 여기에 첫 댓글로 썼는데 누가 지웠죠?
다시 게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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