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이이집니다)
A와 B 異說간의 비교검토를 통해 갑툭튀한 듣보잡 ‘우태’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뒤에 이어지는, 앞서 전재했던 C의 내용에 다시 눈이 가게 된다. 시각적 편의를 위해 재인용한다.
C
《북사(北史)》와《수서(隋書)》에는 모두 “동명의 후손 중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대방(帶方)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한(漢)의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가 자기의 딸을 시집보냈고, 그들은 마침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이른바 ‘구태 시조설’이다. 갑툭튀 듣보잡 ‘優台’를 검토하고 나니 이번엔 ‘仇台’인가? ‘우태’는 B에서 건국시조 비류의 아버지라고 기록돼있는데, ‘구태’가 등장하는 C에서는 아예 ‘그가 처음으로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구태’가 백제의 건국시조라는 말로 읽힌다.
대체 이 구태라는 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뭔가 롸임이 맞아들어가는 ‘우태’와 ‘구태’의 관계는 무엇인가?
잘 알려진 기존 견해중에 仇台를 ‘구태’가 아닌 ‘구이’로 읽어야 한다면서, ‘구이’와 음가가 비슷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8대 왕 고이왕을 ‘구태’의 실체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물론 고이왕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계보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일종의 중시조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음가를 가지고 견강부회하여 인위적으로 역사이야기의 구조를 창조해 낼 필요가 있는지는 대단히 의문이다. 비류 온조 이야기를 ‘설화’로 취급하고, 삼국사기의 8대 고이왕을 백제의 실제 시조로 보려는 견해의 저변에는,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허구로 치부해야만 했던 일본제국 시대의 관념이 또아리를 틀고 있음도 물론이다.
C를 볼 때에는 두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로 C는 중국의 북조, 즉 선비족 왕조라는 타자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C는 긴 시간에 걸친 사건들을 짧은 문장에 함축해 놓은 축약형 기록이라는 점이다. C는, 서사시 형태에 가까운 A B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기록이다.
그런데 국편위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한 위의 번역문에는 상당히 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니, 사실상 번역 자체가 오역이다. 역자가 임의로 존재하지 않는 주어를 삽입하였고 문장 구획 또한 임의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술적으로든 대중적으로든 바람직한 번역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식의 자의적 번역은 독자로 하여금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오독하게 한다.
그렇다면 원문은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자.
C-1
北史及隋書皆云,
<<북사>>와 <<수서>>에 모두 말하였다.
東明之後有仇台, 篤於仁信.
동명의 후예로 구태가 있었다. (그 사람됨이) 도탑고, 어질며 신의가 있었다.
初立國于帶方故地,
처음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漢遼東太守公孫度, 以女妻之,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가 딸을 시집보냈다.
遂爲東夷強國.
동이의 강국이 되기에 이르렀다.
未知孰是.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척 보면 바로, 위의 번역문과는 느낌이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C의 번역문을 읽어서는 이것이 백제 역사 개략에 대한 극도로 축약된 표현임을 인지할 수 없다. ‘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우고, 공손도의 딸에게 장가들고, 동이의 강국이 된 것이 모두, 마치 ‘구태’라는 인물이 혼자서 이룩한 일인 것처럼 읽게 된다.
하지만 C-1처럼 자의적 주어 삽입과 문장 구획을 치우고 단지 직역만을 해 놓고 보면 어떤가? 중국측 사료의 이 내용을 가리켜 ‘구태 시조설’이라고들 흔히 말하지만, 사실 여기서 ‘구태’를 나라를 세운 주체로 읽는 게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C에서는 자의적으로 구태를 주어로 만들었지만, C-1에는 그 어디에도 ‘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운 자가 ‘구태’라고 밝힌 문장은 없다.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는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공손도와의 혼인’이나 ‘동이의 강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동명의 후예로 구태가 있었다’는 문장은 마치 ‘태초에 XX가 있었다’마냥, 단지 맨 앞에서 ‘근원’을 밝히는 전치문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 기록은 단순 사실의 건조한 나열이다. 게다가 각 사건의 시점은 물론이고 주체도 생략되어 있다. 백제에 대한 기록이므로 생략된 주어는 ‘백제’임을 미루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생략된 각 문장의 주어를 ‘백제’로 가정하고 기록을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