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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17 11:11
[한국사] 어떤 미친사람이 고구려를 선비족 주장하고 백제를 중국남조라고 주장한 사람.
 글쓴이 : 뉴딩턴
조회 : 6,461  

어떤 미친 사람이 고구려 선비족이고 백제는 중국 남조 왕국이라고 하던데 이 모든 글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분?    http://kys5159.blogspot.com/2018/01/blog-post.html?m=1 연구자료 찾으시분 화이팅 하세요.      글쓴이 드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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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8-17 12:02
   
그리고 평양에서 출토되어진 낙랑 고분에 한(漢)나라 시대의 목간(木簡)이 발견되었는데
그 목간에 한사군을 대상으로 한 인구조사 즉 호구조사를 했는데 거기에 “고구려현” 이라는 이름이 출현했음

===> 이후의 문장에서 이 내용[고구려현]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음.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단순 뇌피셜 선언으로 종료.
Tenchu 18-08-17 12:39
   
선비족 자체가 동호의 후예들임.  동호경우는 고조선과 별개든 동일이든간에 비슷한 민족이었슴.
로마법 18-08-17 13:03
   
고구려를 선비 + 한족 혼혈, 백제를 한족 왕조, 오직 신라만을 한민족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또라이 있어요. 걔 같네요. 더 나아가 전라도를 비하하고 전라도를 왜구의 후손이라고 하는 또라이 새끼입니다.
     
남이 18-08-19 16:35
   
전라도가 왜구라는 건 맞는데요... 왜구는 영산강, 섬진강 서부 유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고, 그게 대마도와 큐슈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임나본부설 써먹는 자료로 활용하구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라북도는 백제.마한권이고 전남과 경남서부는 왜구가 맞습니다.

그리고 님이나 저나 만주에서 고구려 후손일지. 강원도에서 살던 고려의 후손일지 모르는데 지금사는 곳이 전라도라고 천년전 전라도에서 살았던 사람을 왜구라고 하는 것에 흥분할 필요가 있나요?

추가로...
왜구와 왜적은 다릅니다. 왜적은 노략질하는 해적이고, 왜구는 그냥 정착해서 하는 우리와 다른민족이에요... 왜국(일본 중앙), 왜구, 왜적은 다릅니다.

일본은 고려나 조선에서 왜적(삼국시대와 달리 이때부터 왜구였다가 왜적으로 돌변하면서 통칭왜구라고 부르게 되었음) 문제로 외교적으로 항의하자... 자체 군대로 왜적(왜구)을 쑥밭으로 만들었는데... 이러자 왜적들이 본거지를 큐수서북지대, 대마도로 옮김.

그리고 왜적이 횡행할 때는 일본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할 때임... 참고로 에도 막부 이후로는 왜구침략이 현격히 줄어 듬...

그리고 여담이지만 조선통신사 때문에 정한론이 생겼음... 자신들의 과학기술이 조선보다 발달했다고 인식한 순간부터 여전히 자신들을 하대하는 조선의 관료를 보면서 정한론이 들어섬...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무역할 때는 침략이 들했으나 우리가 무역을 중단시키자 침략이 늘어났음... 그렇다고 왜관을 허용하며 왜색문화의 오염도 있고, 살생을 함부 함... 우리나라는 지배층이양민을 함부로 살인하고... 그렇기에 왜구의 살인 행위를 처벌하기에도 문제가 있었음...

신라는 지배층이 흉노족이 맞고... 그래서 백제한테 침략 받을때 흉노와도 연관이 있는 고구려한테 구원요청하고 동맹관계 맺다가 나중에 고구려군을 내쫓은 것이고, 백제의 경우에는 요서를 비롯해서 중국의 동해안쪽에 관계를 맺었기에 남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었음...
          
송구리 18-08-21 11:37
   
정한론의 원조는 8세기에 나온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입니다.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복하자, 백제와 고구려가 항복해오면서 속국이 되겠다고 한 내용이 있는데 이걸 보고 일본인들이 한반도는 옛날부터 자기네 땅이었는데 조공을 안 바치니까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이 정한론에 따라 한반도를 침략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임진왜란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히데요시의 참모인 사이쇼 조타이西笑承兌가 일본서기에 나온 신공황후 이야기를 맹신해서 히데요시한테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고 부추긴 겁니다.
조선통신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신수무량 18-08-17 14:31
   
가짜역사매국노역사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런 어거지 역사 매국노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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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는 내용 중 한두가지만  짚어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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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且高句麗秘記曰, ‘不及九百年, 當有八十大將㓕之.’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勣年八十矣… (후략) >
<삼국사기> 보장왕 조(668년 02월(음))
해석 :
"...또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에 말하기를 ‘900년이 되지 못하여 마땅히 팔십(八十)대장이 있어서 이를 멸망시킨다.' 고 하였는데, 고씨(高氏)가 한(漢)나라로부터 나왔고, 지금 900년이고, 이적의 나이가 8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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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자체에서 모순이 있다 보이는데요....
고구려 (보장왕)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지 900년되는 해라면 고구려는 서기전 231년에 건국되었다는 말인데,
그런데 유방의 한나라는
'한(漢, 기원전 206년 ~ 220년)은 진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로서 후에 삼국으로 갈라졌다(220년 ~ 280년).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이런 산술적인 계산이라면 한나라보다 25년이나 더 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네요...그런데 한나라로부터 나왔다고 해석하는 것은 저 주장이 얼마나  억지/사기인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B.C37년) 잘못 기록된 것이고...아직도 우리의 역사책에는 이 기록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시기가 표기되어있죠...고구려현이라는 이름은 그보다 몇 십년 전에 등장하는데도 말이죠.)
여기서 고구려와 고구려현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
 한서지리지에서는 그 선후를 알 수 없으나, 후한서 동이열전, 북사열전 고구려전을 보면 그 선후를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현이 먼저 일 수가 없겠죠.

역사는 잘못기록된 것들이 너무 많으니 그 안에서 사실/진실이 무엇인지 거짓기록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여 연구하는 것이 옳바른 것이지 단편적인 몇몇문장과 몇몇 유물만으로 그 시대의 역사의 전부인양 주장하면 그것이 바로 사기입니다..

그리고, 삼족오에 대하여..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이다.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그려지며, 종종 달에서 산다고 여겨졌던 원 안의 두꺼비에 대응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블로거의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3000년 사이에 양사호 문화의 유적지에서 삼족오 문양이 발굴되었고 상(商)나라 수도 은허(殷墟)에서도 발굴되었고 랴오닝 성 차우양 지구 원태자 벽화묘에도 삼족오 문양이 있음'

황하중류에서 발생한 양사오문화가 블로거가 언급한 '지나' 한족들의 문화이고 저 은허의 주인공인 상(은)나라가 한족의 나라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이미 그것부터 잘못되었군요.

우리의 수의 체계는 3, 9, 81...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삼신일체사상(천/지인/), 고조선 제기인 삼족정등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삼족오를 그 의미대로 신성시하고 국가의 상징으로 간직한 나라는 고구려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요...그것을 고구려의 상징으로 봐도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블로거의 주장인 억지일 뿐..
     
칸헤원 18-08-19 15:19
   
공감합니다 링크타고 들어가서 봤는데 완전 엉터리 글
저는 아무리 삼국사기 라지만 '고구려비기' 에서 사관의 뇌피셜 느낌이..
근데 저 문장이 팩트고  '고씨'가 직접적으로 성씨를 말하는거면
계루부 고씨 이전에 비류나부(연노부) 해씨가 왕족이었으니까
900년 설도 억지 좀 부리면 가능은 하겠네요. ww
뉴딩턴 18-08-17 14:35
   
돌무지무덤와 적성총은 고구려 고분이죠 백제도 역시  초기에 고구려식 돌무지무덤 써죠 그게 몽촌토성와 서울 석촌동 고분이 고구려 유민 이 내려왔다고 증거데 문제는 서기전 3-4세기 라는거죠 몽촌토성와 풍납토성 필적할만 성이 아직 못찾아고요 그래도 석촌동 고분에  돌무지무덤 많이 발견되어서 다행이죠.
도배시러 18-08-17 14:44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포함하며 제시하는 문헌 : 주 무왕때 고구려(고이 高夷)가 있었다.
『逸周書』 《王會解》 기원전 12~11세기(BC 1100~1000년)
北方臺正東,高夷嗛羊,嗛羊者,羊而四角。獨鹿邛邛,邛邛善走者也。
孤竹距虛。不令支玄模。不屠何青熊。東胡黃羆。
호랭이해 18-08-17 14:59
   
고진 

공은 곧 부여의 귀종(貴種)이며, 진한(辰韓)의 영족(令族) 

고현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

고모

군의 휘는 모요 자는 구이고 안동사람이다. 가문은 진한에서 융성하고 다른 명문의 명예를 모두 압도하였다.

고요묘

이름과 자는 요묘(생략)이다. 집안은 진변(辰卞)에서 존귀했고 명성은 순기처럼 두터웠다.
이궁놀레라 18-08-17 15:00
   
중뽕 ㅋㅋ
     
패기남 18-08-18 03:37
   
중뽕은 아니고 일베출신 신라뽕이 심한놈임 ㅋㅋ
호랭이해 18-08-17 15:24
   
블로그 해석본

또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에 말하기를 ‘900년이 되지 못하여 마땅히 팔십(八十)대장이 있어서 이를 멸망시킨다.' 고 하였는데, 고씨(高氏)가 한(漢)나라로부터 나왔고, 지금 900년이고, 이적의 나이가 80이다...."

"...고구려는 본디 진한(秦漢)의 후손이다(혹은 뒤를 이었다).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어, 그 북쪽 이웃은 모두 천자의 관아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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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해석본


또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에 말하기를 ‘900년이 되지 못하여 마땅히 팔십(八十) 대장이 있어서 이를 멸망시킨다.’고 하였는데, 고씨(高氏)가 한(漢)으로부터 나라를 가지고 있은 지 지금이 900년이고, 이적의 나이가 80입니다. 오랑캐는 거듭되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서로 빼앗아 팔고,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고, 이리와 여우가 성으로 들어가고, 두더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인심이 두려워하고 놀라니, 이 원정을 다시 일으키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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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때 건국되었단 소리


고구려는 진한 이후부터 중국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어, 그 북쪽 이웃은 모두 천자의 관아가 있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영웅이 특별히 일어나 분에 넘치는 이름과 자리를 가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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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대 이후에 모퉁이에 고구려가 존재했단 소리
     
도배시러 18-08-17 15:52
   
고구려 900년설 문헌
八月,初為算賦。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漢書 高帝紀 上 => 고구려 900년설
북맥 北貉 을 고구려로 보는 시각과 부여로 보는 시각으로 나뉨
호랭이해 18-08-17 16:03
   
고구려현의 경우, 진번군처럼 이전에 있던 공동체의 이름을 현, 군 으로 바꾼것.
호랭이해 18-08-17 16:06
   
일본의 경우 오키나와, 서양국가들을 남만으로 표현했는데 일본도 중국의 지방정권인가?
호랭이해 18-08-17 16:15
   
고현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 

아무튼 고현 묘지명 하나로 저글 전제를 죄다 틀어버릴 수 있음
     
도배시러 18-08-17 17:46
   
대주(大周)의 고인(故人)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행좌표도위(行左豹韜衛) 익부(翊府) 중랑장(中郞將) 고부군(高府君) 묘지명(墓誌銘) 및 서문(序文)
고현(高玄)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다. 옛날 당나라 왕실이 일어나 천하를 병탄하자 사방이 호응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투항해왔지만, 동이(東夷)는 복종하지 않고 청해(靑海)를 점거하여 나라를 유지하였다. 공(公)은 올바른 법도에 뜻을 두었고 다가올 일을 미리 아는 지혜가 있어서, 저 백성들을 버리고 천남생(泉男生)을 따라와 교화를 받들었고, 황제의 가르침을 사모하여 동쪽으로부터 귀순해오니, 서경(西京)을 본향으로 삼고 적현(赤縣)에 이름을 올렸다. 증조(曾祖)는 고보(高寶)로서 본주(本州) 도독(都督)을 지냈고, 할아버지는 고방(高方)으로 평양성(平壤城) 자사(刺史)를 지냈으며, 아버지는 고렴(高廉)으로 당나라에서 천주(泉州) 사마(司馬)로 추증되었다. 모두 삼한(三韓)의 귀족으로 누대에 걸쳐 현달하였고, 동이(東夷)의 이름난 현인(賢人)으로 계속해서 높은 지위에 올랐으니, 이렇게 공(公)과 후(侯)가 필시 반복되는 것은 대대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이리라.
.
=> 여기서 청해(靑海)는 중국의 서해로도 불리는 호수이며... 옥문관 주변에 있는 호수 ?
뉴딩턴 18-08-17 20:45
   
근데 기원전 75년에  원고구려 토착세력의 저항 때문에  현도군이 해체 그라고 서북쪽으로 옮겨고 그때  고구려현에 생기지 않아나요 추정입니다.
     
도배시러 18-08-17 20:52
   
*** 정 리 ***
고구려 1,800년설 => 일주서, 백이숙제/箕子가 놀던 시기, "고이"라는 나라가 중국 동북에 있었음.
고구려 900년설 => 한서 고조 유방, 북맥(고구려 혹은 부여)이 유방을 도와줌
고구려 800년설 => 한서지리지 현도군 고구려현
삼국사기 고구려 700년설 : BC 37 ~ AD 668
뉴딩턴 18-08-17 21:17
   
고이족는 중국 동북공정 설 주장이죠 후한서 동이전에서는 엣조선은 예맥족이 보니 예 맥 고조선 토착세력이 혼합해 원고구려 주민이 가능성이 있늘곳 같아요
     
도배시러 18-08-18 00:05
   
BC 6,000~ 홍산문화를 배척하는 방향을 잡을 것인지... 끌어 안을것인지...
노선을 정하고 접근하는 방법이 있죠.
패기남 18-08-18 03:36
   
이거 주장하는 대부분이 일베애들인데 ㅋㅋ 신라인(경상도민)을 지구최강의 민족으로 소설쓰고 나머지 고구려 백제는 한반도의 외인취급함 ㅋㅋㅋ 미친놈들임
KilLoB 18-08-18 13:55
   
고구려 부흥 운동의 구심점은 신라로 망명해 고연무, 검모잠 등에 의해 한성에서 신라에 의해 새로이 고구려 왕으로 추대된 안승의 고구려국

요동 지방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이 거세자 보장왕을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 朝鮮王)에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하여 부흥 운동을 무마시켜보려 했으나 오히려 보장왕은 말갈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 나무위키 보장왕에서 펌

1. 이후 반란은 실패하고 보장왕은 스찬성으로 가서 거기서 늙어죽는데...
 - 만약 선비였다면... 반선비가 북위부터 당나라까지인데.. 망국군주는 연개소문때문에 그렇다 살려준다 치더라도.. 두번째 반란도 살려준다고... 선비족이었다면 살려줄리가 없지 않겠어요? 완전히 중화권과는 전혀다른나라로 인식했다는것.

2.그럼 저 글귀안에 "조선왕"은 또 뭡니까? 훗날 서희와 요나라가 이문제로 다투다 고려의 논리를 인정한게... 강동6주 아닌지.

훗날의 열하일기에도 당시가 간도개척기도 아닌데.. 고토란 인식이 남아있는데..

보장왕을 고려 조선왕으로 임명한건.. 훗날 조선도 중국의 지방인 모양. 그럼 현재 한국인은 중국인이고.

그럼 지금 있는 한국인은 도대체 정체가 뭐임? ㅋ

그래서 중국인들이 조북성, 한남성 내부적으로 주장하는 듯

그리고. 저런것들.. 지들 뭐가뻥인지 진짜인지 찾아볼라면 한참걸리고..
깔아놓은 판에서 반박하고 또 재반박하고 그거 시간낭비고...

전혀 다른 반대논거로 새로 논지 펴는게 가장나은 대응책으로 봅니다..

글고 저 광개토비 내용은 사실인데. 훗날은 보면 요동삼한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게 또 고구려, 또 광개토 비 안에도 신라등에 대해 "구시속민"이란 글도 있죠
뉴딩턴 18-08-19 13:47
   
사이트 글에서 백제가 남조랑 조공했서 속국이라고 하고 월나라 오나라 이주민이 한반도로 이주해 증거로 문신와 옹관묘인데 어땋게 반박하죠?
     
남이 18-08-19 16:40
   
백제가 남조에게 조공한 것 맞아요... 그런데 약해서 조공한건 아니고 당시 외교가 그랬습니다. 오죽하면 서하나 다른 민족들도 중국 왕조한테는 형식적으로 조공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이득을 더 많이 취했으니까요? 통일신라 이후로는 진짜 사대하는 조공이었구요...
     
도배시러 18-08-19 17:21
   
링크 내용에 문신. 옹관묘, 월나라 오나라 이주민 ...  없네요
도배시러 18-08-19 20:43
   
링크 내용을 보면 꼴리는데로 번역이 있네요. 2개를 비교해봅니다.
1.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고씨(高氏)가 한(漢)나라로부터 나왔고, 지금 900년이고, => 고씨와 한나라는 동족 ?
2. 自晋已來常修蕃貢 백제(구다라)는 진(晋)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해왔다.

自~의 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1번은 유래를 뜻하고 있고, 2번은 시점을 뜻하는 의미로 번역을 했네요.
1번이 오류입니다.  2번처럼 시점으로 번역해야죠.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한(漢)나라 시절부터 고씨高氏의 나라가 있었는데, 지금 900년이고,
     
감방친구 18-08-20 00:13
   
自는 조사/부사로 쓰일 때에 그 뜻이
1) ~ 이래로
2) ~ 로부터
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해석이 옳습니다
그리고 
高氏自漢有國과 今九百年로
대구를 이루는 문장으로서
自漢하여 今이 九百年이다 하는 식으로 문장이 구성돼 있습니다

이 기록은 고구려 900년 설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근거로서 거론돼 왔는데 왜 이게 엉터리로 해석되며 억지 주장의 재료로 사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배시러 18-08-20 00:30
   
자주 오셔요. ㅋ
     
감방친구 18-08-20 03:41
   
그리고 번藩을 '속국'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藩(번국:藩國)은 속국이 아닙니다

제후국, 또는 통교가 있는 주변국 정도의 의미입니다
뉴딩턴 18-08-20 02:11
   
그러면 정확한 해걱이 뭔가요 1번와 2번은?
     
감방친구 18-08-20 03:43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고씨(고구려)는 전한 이래로(때부터) (그) 나라가 있어서 지금 (그 나라의 연혁이) 900년이 되었다
뉴딩턴 18-08-20 02:12
   
또 그자가 쓴 글 ㅋㅋㅋㅋ 돌무지무덤까지 중ㄱ ㄱ꺼라고 함 고구려 무덤 양식인데
먼저 우리나라 한계레(일명 한걸레) 신문사 기자들의 지식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도 알아두기 바람 ㅋㅋㅋ


중국인이 왜? 백제 무덤서 찾은 ‘다문화 흔적’?? ㅋㅋㅋ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8221.html

위에 내용들을 한번 보기로 하자

<하남 감일동 굴식 돌방무덤 52기
출토품•석실 얼개 전형적 중국풍
무덤 주인, 대륙 혼란기에 건너온듯>

<“전형적인 중국계 무덤입니다. 여기 살던 토착세력의 것들이 아닙니다.”백제 고고학 전문가인 권오영 서울대 교수가 무덤 내부를 보고 한마디했다. 주변의 학자들은 고민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끄덕거렸다.>

<-- 당연하지 백제(구다라)는 짱개 남조 한족놈들이 넘어와서 세운 왕조니까 ㅋㅋㅋ

아 한사군의 하나였던 대방군(현 황해도)의 짱개 한족 잔당놈들과 함께 세운 왕조임

당연히 첫 도읍지는 대방땅이였음 ㅋㅋㅋ


<지난달 18일 낮 폭염 속에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백제석실분 발굴현장에서 열린 전문가 설명회는 흥분과 의문이 뒤섞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한성(서울)에 도읍한 4~5세기 초기 백제시대의 대형고분들이 전례 없이 쏟아져 나온 성과를 보면서 연구자들은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무덤의 얼개와 출토품을 보니 주인이 중국계 이주민일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고민거리를 안게 된 것이다.>

<-- 4~5세기 아님 ㅋㅋㅋ

풍납토성에서 발견되어진 중국 남조 유물들을 중국 고고학자들과 역사 학자들이 중국 남조 시대 것들과 비교 분석 해 본 결과 동진 시대 후(420년 후)때의 유물들이라고 밝혔고 논문도 발표했었음(예로 왕즈가오 교수)

다시 말해서 5세기 초때 유물들 밖에 안보인다는 것임 ㅋㅋㅋ


<유적은 고려문화재연구원이 2015년 11월부터 하남시 감일동 공공주택지구 조성터에서 구제발굴 조사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수만평에 달하는 조성터에서 4세기 중반∼5세기 초반의 백제시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이 52기가 드러났다. 그동안 경기, 충청, 전라권 일대 백제 권역에서 나온 횡혈식 석실분은 70여기, 한성백제 석실분은 2000년대 이래 경기도 판교, 서울 우면동 일대의 고분군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한꺼번에 시대 편년이 가능한 백제 석실분들이 나온 것은 ‘벼락같은 축복’이자 ‘횡재’라고 할 만했다. 출토품들도 획기적이었다. 호랑이머리와 닭머리가 물 따르는 주구에 달린 중국 동진의 청자 호수호, 청자 계수호가 처음 나왔다. 누금기법으로 만든 금제구슬, 망자를 기리려고 만든 ‘미니어처’ 형식의 작은 토기인 명기들, 주둥이는 곧고 어깨는 넓직한 동진•남조 스타일의 직구광견호 항아리 등도 출토돼 이 시기 백제계 고분과 출토품의 연대를 가리는데 결정적인 근거를 찾게 되었다.>

<-- 야 어떻해 거의 전부 짱개 남조 시대 유물들뿐이냐 ㅋㅋㅋ


<문제는 무덤 얼개가 전형적인 중국풍이란 점이다. 대개 평면을 장방형으로 조성하고, 사방벽면에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고 윗부분을 판돌로 덮은 석실 구조는 3~5세기 중국 동진•남조, 한반도 서북 지역의 낙랑계 무덤에서 보이는 전축분(벽돌로 쌓은 무덤) 양식과 판박은 듯 닮았다. 한성백제 지배층의 핵심유적으로 꼽히는 서울 방이동, 석촌동 고분이 주로 돌무지무덤(적석총), 옹관무덤, 토광묘 양식인 것과는 크게 다르다.>

<-- 뭐가?? 크게 달라 ㅋㅋㅋ

돌무지무덤도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이고 전형적인 일본식 무덤들인 왕관묘는 왜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니 나오는 거지 ㅋㅋㅋ

중국 문헌들에도 다 나옴 ㅋㅋㅋ

그리고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와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와 짱개 남조 왕조들은 같은 편이였음 ㅋㅋㅋ

당연히 서열은 짱개 남조 왕조들>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짱개 남조 백제(구다라)임 ㅋㅋㅋ

왜냐고?? 중국 문헌들, 일본서기, 삼국사기등에 다 나오니까 ㅋㅋㅋ


<권 교수나 박순발 충남대 교수 등 고고학계 상당수 전문가들은 감일동 고분의 이질성이 3~5세기 중국 대륙의 전란과 낙랑군 멸망 등을 계기로 백제에 들어온 중국계 이주민의 생활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당대 동아시아 혼란기에 다수의 유민들이 한반도에 뿌리내린 건 학계에서 공인된 사실이다. 백제에서 이들은 외교, 역법, 교육 등의 전문 직종에 종사하면서 자기네 특유의 문화 공동체를 형성했다. 감일동 고분군은 그런 이주민 집단 일부가 전통과 습속을 지키며 남긴 생활문화의 흔적이라는것이다. 백제가 국가사업으로 외국 고급 두뇌유치에 나서, 중국의 전문인 집단을 데려와 ‘테크노크라트’ 계층으로 육성하며 토착인들과 공존하게 했을 것이란 역사적 상상도 가능하다.>

<-- 상상을 하면 안되지 ㅋㅋㅋ

줭국 문헌들에 짱개 백제(구다라) 왕들이 중국 남조 왕조들한테 기술자들, 학자들등이 필요하다며 요청해서 중국 남조에서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로  건너 갔다는 내용들이 다 나옴 ㅋㅋㅋ

그리고 우리나라 학자들도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구만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가 정말로?? 한민족 역사가 맞나?? ㅋㅋㅋ

또 짱개 한족놈들과 짱개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인 왜족놈들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넘어간 이유는 내가 다 말했지??

팔왕의 난, 영가의 난,  비수대전등과 같은 사건들이 중국에서 일어났고 그 사이에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 멸망했었음

영가의 난(311년~312년 사이), 낙랑 멸망(313년) <--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냐 ㅋㅋㅋ


<이른바 ‘미니어처 토기’로도 불리는 작은 크기의 토제품들. 부뚜막이나 여러 항아리 모양을 축소시켜 만든 것으로 망자가 내세 생전과 같이 생활하기를 기원하며 넣는 명기에 해당한다. 이런 소형 명기를 넣는 것은 당대 중국 동진과 남북조의 장례 풍속이다.>

<-- 무덤 양식도 중국풍, 유물들을 무덤에 넣어서 기원하는 풍습도 중국풍, 사마왕의 매지권(도교 사상)등도 중국풍 다 중국풍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 보온다 ㅋㅋㅋ

아 중국 화폐인 오수전 또한 사마왕릉 매지권 앞에 놓여 있었음 ㅋㅋㅋ


<옛 문헌 기록들을 봐도, 외국인의 이주와 활동이 당대 백제의 왕성한 국제교류와 개방성에 비춰 전혀 이례적이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수나라 사서 <수서> ‘백제’ 전을 보면, 백제 주민 가운데 신라인, 고구려인, 왜인, 중국인이 숱하게 섞여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속일본기>에는 6세기 왜국에 <논어> 등 유교경전을 전해준 백제 박사 왕인이 한나라 고조의 후예로 백제에 귀화한 중국인 왕구의 손자였다는 구절도 등장한다. 왕씨, 진씨, 고씨 등 중국계 성을 지닌 이들이 백제 조정에서 외교•행정 관료로 일하면서 업적을 쌓은 내용들도 묘지명이나 중국 문헌들에 상당수 전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고구려, 신라의 문헌기록에는 특별히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백제인들은 민족, 국적 가리지 않고 가장 적극적인 다문화 다민족 포용 정책을 쓰면서 이주민들의 기술과 역량을 국가의 운영에 십분 활용했던 셈이다. 최근 제주도의 예멘 난민 수용 문제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었던 후대의 현실에 견주어 고대 타자에 대한 관용과 상생을 증언하는 감일동 석실무덤은 의미심장한 역사적 선례임에 틀림없다.>

<-- 응 대부분이 짱개 한족들이였음 ㅋㅋㅋ

그리고 다음으로 많은 족들이 짱개 남조 오나라 월나라 후손들이 세운 전라왜구+큐슈왜구놈들였고 ㅋㅋㅋ

또 짱개 남조 백제(구다라)는 국제적인 나라가 아니였음

오직 짱개 남조 왕조들을 위해서 존재했던 왕조였음

국제적인 도시는 스키타이 아리아인 신라(훈족(흉노) 가야 부여 진국 삼한 금나라 청나라 그리고 아메노 히보코 포함)였지 ㅋㅋㅋ

그리고 왕인은 가공의 인물이고 ㅋㅋㅋ

중국에서 천자문이 만들어지지도 안았던 시대인데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 줬다던 그 왕인?? ㅋㅋㅋ

또 역시 한걸레 기레기답게 이 문제를 지금 개슬람 난민들과 연결시킴 ㅋㅋㅋ

진짜 골때린다니까 ㅋㅋㅋ

이래서 한걸레가 쓰레기 신문사라는 거야 ㅋㅋㅋ


하여간 이제 정식으로 밝힐때가 되었음

짱개 남조 괴뢰국 백제(구다라)는 중국사라는 것을 ㅋㅋㅋ

잘 생각해 보도
     
호랭이해 18-08-20 08:53
   
기사 날짜가 재밌네요
가난한서민 18-08-21 15:14
   
당고조 이연이 돌궐에게 신하의 맹세를 했다고 해서 당이 돌궐의 지방정권은 아니죠
고조선 멸하고 그 땅에 고구려현 설치한겁니다. 나중에 고구려한테 싸그리 호되게 당하지요 그냥 개소리라 생각하세요

이런 글이랑 똑같은 겁니다. 무려 신당서에 기록되 있죠 ㅋㅋ 그냥 코미디입니다.

"당태종은 백제 무왕의 제후였나? 백제 무왕의 죽음에 당태종이 소복입고 곡을 한 의미는?"
http://www.pluskorea.net/16254

이렇다고 당이 백제의 신하국은 아니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항복과 전쟁을 반복하는겁니다. 고구려랑 당이 거란을 수차례 산하로 두었다고 그 한시적인 이유로만 신하국이 아니듯이요 둘다 나중에 크게 당하죠

아 참 그리고, 신라 동이족 얘기 나와서 그런데 만주원류고에 보면 건륭제가 스스로를 동이라고 칭했는데
그럼 청나라 역사도 더 이상 한국사로 논란의 여지없이 편입하기 편하겠군요.  < -  라는 논리입니다.
뉴딩턴 18-08-23 13:18
   
돌무지무덤은 고구려 백제 초기 무덤 서울 석촌동 돌무지 무덤 발견 했는데 무조건 중국남조 무덤 왜? 중국토기가 80프로가 나와다고 그리고 하남에 중국 남조 돌방무덤이 나와서. 주구묘도 역시 기원전에 한반도에서 발견했죠 그리고 마한인들이 흙을 자주 움집 토성 같은것 만든다고 하던데삼국지 동이전레 나와는데..  어이없네요
위구르 18-09-05 21:39
   
링크 들어가서 보면 막판에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으면서 동부여 쳐부순걸 문제걸고 자빠졌는데 빙신인가. 부여가 한둘이 아니었고 동부여는 적통 북부여의 아류에 불과했는데 답없는 놈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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