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한 고아시아족을 섬멸시키고 이 땅에 민무늬토기와 고인돌, 청동기를 갖고 들어온 위대한 퉁구스 예맥족이다’라고 쓰는 게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인 해석이 됩니다”라고 썼다. 청동기 문화를 소유한 퉁구스 계열의 사람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신석기 주민들을 몰아내고 현대 한반도인들의 직접적 조상으로 되었다는 주장 역시 허물어졌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가 스키타이(퉁구스)계열의 청동기 문화보다 훨씬 앞섰다는 것이 유적 유물로 밝혀졌다. 스키타이 청동기 문화는 기껏해야 기원전 12~13세기를 넘지 못하는데,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출발은 우리 학계에서 기원전 20세기 또는 기원전 15세기로 편년됨으로써 스키타이 청동기 보다 앞섰다. 더욱이 한반도 청동기 문화는 다른 지역의 청동기와는 문화 종태가 매우 다른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한반도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이 서로 다른 주민이라는 주장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 시대의 무문토기는 주민집단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른 문화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한다.
구석기 시대의 역사적 의미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밝혀진 유적 유물로 볼 때 10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처럼 이른 시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은 세계에서 몇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반도를 인류 발상지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100만 년 전 전기 구석기 유적은 상원 검은모루 유적이다. 한반도 전기 구석기 유적은 이외에도 단양 금굴 유적(70만 년 전), 평남 순천 동암동 유적(88만 년 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구석기 유적뿐만 아니라 중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의 구석기 유적들이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수적으로도 전국적으로 수백 군데 이상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이로써 구석기 시대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 뼈 화석도 체계적으로 발굴되었다. 화대사람(30만 년 전), 역포사람(10만 년 전), 덕천사람(10만 년 전), 용곡사람(5만 년 전), 승리산사람(4~5만 년 전), 홍수아이(3~4만 년 전), 만달사람(1만5천 년 전) 등 30만 년 전 중기 구석기 시대 초기 화석에서부터 10만 년 전 중기 구석기 시대 후기를 거쳐 4~5만 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1만5천 년 전 중석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화석들이 체계적으로 발굴되었다. 이것은 한반도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혈연적 계승성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인류 화석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들 사이의 인류학적 계승성이 확고히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고산리 유적 등을 통해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연결고리도 밝혀졌다. 우리나라도 일본 중국처럼 후기 구석기–중석기–신석기 시대의 주민계승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